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23)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23화
9장 잊혀진 기사들의 땅(2)
태연하게 외쳤으나 수하들의 심정은 참담했다. 그들이 모시는 주군이 원령들의 땅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결계에 갇혔으니, 어찌 안심할 수 있겠는가?
“불안해하지 말라. 내가 지금까지 그대들을 실망시킨 일이 있었나? 그것도 아니면 거짓말을 한 적이 있었는가?”
모두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면 믿고 기다려라. 금방 돌아올 테니까.”
그제야 두 탑주와 수하들이 진정되었다. 그들을 보며 레이먼은 씨익 웃어 보이고서 몸을 돌렸다. 그러고서 잊혀진 무덤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 *
-황제 폐하! 만세!
-우리는 정의로운 토벌의 선봉대다! 절대 물러서서는 안 될지어다!
-전진해라! 두 제국과 다섯 왕국이 우리의 뒤에 함께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무덤과 가까워질수록 원령들의 아우성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이들은 인간족 부흥의 이름을 걸고 종족 전쟁의 선봉에 선 용맹한 기사들.
오직 후대에 기억되기 위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위대한 성전의 정면에 섰다.
-후대는 결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후대는 잊었다. 기억하지 않았으며 망각의 강에 모든 것을 쏟아냈다. 그리고 굳이 되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영광은 너무나도 빛나는 것이었기에 과거에 흘린 피와 어둠은 묻혀 버렸으니, 원령들의 소리 없는 외침만이 최전방이었던 검은 산맥에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들으며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긴다. 안타까운 심정에 품고 있던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단장님, 우리가 다시 돌아갈 곳이 있을까요?
-어제만 해도 웃고, 떠들던 동료 삼십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내일은 더 죽어 나가겠지요.
-이 전쟁이 그토록 가치 있는 일이었습니까?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처음의 호기롭던 외침들은 사라지고 절망적인 분위기다.
-후대는 결코 너희를 잊지 않을 것이다.
또다시 누군가의 목소리, 하지만 거기에 더 이상 확신은 없다.
“여기까지인가?”
목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눈앞에는 작은 제단이 있다.
원래라면 ‘영혼검’이 있어야 할 자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레이먼은 알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은둔 용사 슈하인이 자신의 손자이자 《망자들의 제국》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리처드에게만 알려주는 비밀, 제단 위에 영혼검이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방법을 레이먼 또한 알고 있다.
“두 제국과 다섯 왕국의 고귀한 혈통으로서, 그대들의 희생을 기억하노라.”
영혼검을 꺼내려는 자, 그 무게를 기억하라.
“내가 걷는 길에 그대들도 함께할 것이니.”
수천 년간 잊혀진 맹세를 꺼내는 자여, 그 원한을 기억하라.
“망각의 죄를 마신 자들의 앞에 빛나는 영광을 대신하여 피의 몰락을 선사할 것이다.”
바람이 불어온다. 들어선 통로에서 불어온 것이 아니다. 닫혀 있는 벽면에서 불어온 바람이다.
지하 특유의 텁텁하고 답답함이 섞이는 바람이 뭉쳐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그 수가 일곱이다.
-필리어스의 혈통이여.
-그대는 우리의 희생을 기억하는가?
-어찌 이 자리에 그대만 있는 것이냐?
갑주를 입은 영혼들이 몰려와 말했다.
-후대는, 후대는 어째서 우리를 잊었는가?
-왕국 연합의 다섯 왕가는 모두 우릴 잊었는가?
-다른 제국의 고귀한 혈통은 어디에 있는가?
질문이 계속해서 쏟아졌다.
-그만들 하게, 가장 명예로웠던 제국의 고귀한 혈통이 그나마 우리를 기억하기 위해 찾아왔지 않았는가?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제국은 세 갈래로 찢어져 삼국이 되었고, 다섯 왕국은 북방의 하이펠이 남하하였을 때 잡아 먹혔지. 지금으로서는 경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건 나뿐이라네.”
슬프지만 사실이다. 이 가련한 원령들도 알고 있어야지.
-영광의 시대도 이렇게 끝나는가…….
눈앞의 영혼 기사 중 하나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레이먼은 그를 향해 차분한 시선을 던지며 입을 열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거지.”
냉정하지만 사실이다.
-우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자여, 이곳에 찾아온 이유가 뭔가?
영혼 기사 중 하나가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다.
“그대들에게 약속되었으나 지금은 잊혀진 영광을, 다시 선물해 주기 위해서 찾아왔지.”
-과거가 반복될 겁니다. 나는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대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나를 믿지 않으면, 누구를 믿는다는 건가?”
날카로운 지적에 영혼 기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영광을 일으킬 자는 나뿐이라는 것을, 그대들은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역시나 말이 없다. 레이먼의 말이 정곡을 찔렀으니까, 그들 또한 알고 있다. 종족 전쟁의 명예를 되찾기에 그것은 너무나 먼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을.
-고귀한 혈통이여, 그대가 원하는 건 뭔가?
창을 들고 있는 영혼 기사가 물었다.
-우리에게 남은 건 영혼과 원한밖에 없다네.
소설을 쓴 작가의 설정대로 대답하는 모습이 마치 NPC와 같아서, 진지한 상황임에도 레이먼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야만 했다.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그대들의 영혼과 원한.”
강인한 기사들의 영혼을 재료로 수천 년의 원한으로 담금질한 검, 그것을 원한다.
-재밌는 대답이로군.
-그대는 선대 황제 폐하를 닮았군.
-정말이지, 누가 필리어스의 혈통 아니랄까 봐…….
영혼 기사들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불쾌한 기색이 아니었다.
“진정한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지금이라도 함께한다면 과거는 물론이고 새로운 영광이 그대들을 비출 것이야.”
이 소설의 프롤로그는 끝난 지 오래다.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려 하고 있으니, 동참한다면 에필로그에 이름을 새기는 일 정도는 어렵지 않으리라.
“그대들이 나의 영혼과 함께할 것이니, 내가 배신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영혼검을 든다는 건, 일천의 기사와 함께한다는 의미다.
-나쁘지 않은 제안이군.
-그러게 말이네.
-검은 산맥 너머가 궁금해지기도 했고 말이지.
영혼들이 소곤거렸다. 기사들답게 순수한 면이 있다. 사실, 레이먼의 말에 현혹될 정도는 아니었다.
단순히 그들이 여기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과 검은 산맥 바깥에 대한 호기심이 컸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족이 이곳, 검은 산맥까지 찾아왔고 종족 전쟁의 희생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나마 신뢰를 주고 있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고귀한 혈통이여, 그대를 따르겠다.
고민과 짧은 논의 끝에 일천의 원령을 대표하는 일곱의 영혼 기사들이 결정을 내렸다.
이걸로 오러 블레이드와 동등한 위력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영혼검을 손에 넣은 것인가?
-하나, 아직 그대를 완전히 믿는 게 아니다.
그럼 그렇지, 수천 년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배신당한 기억이 잊힐 리 없다.
비록 희생을 기억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의심을 모두 거두지는 못한 것이다.
“그게 무슨 뜻이지?”
하지만 이건 소설과는 조금 다른 전개다. 설정에도 적혀 있지 않은 경우다.
레이먼은 당황한 기색을 감춘 채 차분히 질문을 던졌다.
-그대와 함께하겠지만 영혼검의 출력을 제한하겠다는 말이다.
예상하지 못했지만, 최악의 경우는 아니다. 레이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영혼 기사는 설명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출력을 제한한다고 마나 소드 정도의 출력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니, 그대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
마나 소드라면 ‘검과 마법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을 충족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오러 블레이드급의 출력을 내려면 영혼들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흔한 소설의 클리셰 같은데, 그 정도는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레이먼은 오러 블레이드라는 극의의 경지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영혼검은 그저 리처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 기연, 마검사가 될 수 있는 ‘검과 마법의 축복’을 받기 위한 중간 과정에 불과했다.
-그대는 함께할 준비가 되었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영혼 기사들이 양옆으로 물러났다. 중앙의 제단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레이먼은 천천히 제단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영혼 기사들은 레이먼이 지나치는 순간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마침내 제단에 도착했을 땐 넓은 공동에 혼자 남았다.
소설 속에서 본 대로 제단 위로 손을 뻗자 백색의 기운이 뭉쳐 하나의 검이 되었다.
‘영혼검.’
종족 전쟁 선봉에 선 일천 기사의 ‘영혼’을 재료로 수천 년의 원한에 담금질한 그것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날카로운 칼날을 머금고 있다.
“이게 영혼검인가?”
시험 삼아 한 번 휘둘러 보았다. 출력은 충분한 것 같지만 문제는 검술이다. 검에 대해 배운 적이 없으니, 마나 소드를 얻었다고 해도 당장은 활용할 수 없겠지.
하지만 검술이야 게슈타인에게 배우면 되는 문제다. 뛰어난 고위 기사가 곁에 있는데 굳이 다른 이를 찾아갈 필요가 있을까?
레이먼은 차분한 마음으로 영혼검을 갈무리하고서 잊혀진 무덤을 떠났다.
“경들의 원한, 내가 기억하겠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두운 통로를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가 무덤을 나오자 불투명한 결계가 안개가 걷히듯 천천히 옆으로 물러났다.
“주군!”
친위대장, 게슈타인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두 탑주와 데시아 또한 근소한 차이로 레이먼의 곁에 닿았다.
“괜찮으십니까?”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질문을 던졌다. 청탑주는 옆에서 묻은 게 많은 눈빛이었지만 애써 입을 다물고 있었다.
“군사들에게 곧 안개가 걷힐 것이니, 이동할 준비를 서두르라 전하라.”
레이먼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크론을 보며 말했다.
젊은 귀족은 처음에는 믿기 힘들어하는 표정이었지만, 이윽고 정말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자 그 의심은 환희로 변했다.
“5황자 전하께서 길을 열어주셨다!”
황군 지휘관이 이때다 싶은 마음에 외쳤다. 군사들이 환호했다.
* * *
5황자, 레이먼이 검은 산맥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황성에 전해지고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황제와 황실이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었다. 대규모 수색군을 보낼 수는 없다고 하지만 소수의 황실 기사들을 파견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다.
황제는 소식을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실력 좋은 황실 기사들을 크레이어 후작령으로 보냈고, 국경군에 황명을 내려 특수대 3개를 지원하게 했다. 파견된 황실 기사들은 3개 조로 나누어져 특수대와 함께 검은 산맥으로 진입하여 5황자 수색 활동을 벌였다.
“펠튼 경. 곧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동료 기사의 목소리에 황실 기사, 펠튼은 졸음을 떨쳐내고 고개를 들었다.
북부의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수면을 줄여가며 검은 산맥을 순찰하면서 쌓인 피로 탓에 잠이 쏟아지는 걸 참기 힘들었다.
“전령이 말했던 임시 거점이 분명합니까?”
“확실합니다, 펠튼 경.”
펠튼의 물음에 동료 기사는 강한 확신을 담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좀처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크레이어 후작가의 장남, 크론이 전갈을 보낸 게 무려 2주 전이었기 때문이었다.
검은 산맥에서 2주는 사람 하나의 목숨이 날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펠튼은 더욱 두려웠다. 고생해서 도착한 곳에 5황자의 시신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속도를 조금 올리는 게 좋겠군요.”
펠튼의 말에 동료 기사들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특수대가 행군 속도를 올렸고,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크론의 보병대가 주둔하는 임시 거점의 인근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임시 거점의 중앙 탑에 5황자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그것을 본 펠튼은 안도했다. 5황자가 전사했다면 그의 깃발을 탑에 계속 걸어 놓을 리가 없었다.
“펠튼 경입니까? 전령을 통해 명령서를 보내줄 수 있겠습니까?”
보병 장교의 요청에 펠튼은 전령을 통해 명령서를 보냈다.
확인 과정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문이 열렸고 펠튼은 휘하 군사들과 함께 거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5황자 전하께서는 어디 계시나?”
펠튼은 거점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5황자를 먼저 찾았다. 그가 이 척박하고 위험한 검은 산맥까지 찾아온 이유가 5황자 때문이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연무장에 계십니다.”
황군 소속의 장교가 달려와 보고했다. 펠튼은 군사들에게 휴식을 명령한 뒤, 안내를 부탁했다.
두 사람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고 황제가 보낸 황실 기사들 몇몇이 뒤따랐다.
“크아아아악!”
임시 연무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공터에 들어서기 무섭게,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딱딱하게 얼어붙은 바닥에 나뒹구는 건장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5황자 전하!”
흙먼지가 가라앉고 얼굴이 드러났다. 펠튼이 깜짝 놀라 외쳤다. 흙투성이의 가벼운 가죽 갑옷을 입은 그는 다름 아닌 5황자, 레이먼이었기 때문이었다.
펠튼은 연회장, 그 참상의 중앙에서 황제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먼저 달려온 5황자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 눈앞에 쓰러진 남자는 펠튼의 기억보다 살이 많이 빠지고 체격이 더 건장해지긴 했지만 5황자가 분명했다.
“으윽……. 진검이었으면 팔이 날아갔겠군.”
짧은 불평과 함께 5황자, 레이먼이 일어났다. 그는 가죽 갑옷에 묻은 흙먼지를 대충 털어낸 뒤, 펠튼을 향해 몸을 돌렸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레이먼은 영혼검을 취하고 지금까지 그걸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게슈타인과 함께 검술 수련에 몰두하느라 황실 기사들이 병력을 이끌고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