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24)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24화
10장 국경의 영웅(1)
이곳의 전반적인 지휘를 맡고 있는 크론이 몇 번이나 보고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레이먼은 검술 연마에 엄청난 집중을 보이고 있었기 ㅤㄸㅒㅤ문에 방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황실 기사, 펠튼이라고 합니다. 황제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예, 5황자 전하.”
레이먼의 물음에 펠튼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3황비와 관련된 5황자가 검은 산맥에서 실종되었으니, 외교적인 문제 때문에 대규모 군을 움직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정예로 이름난 황실 기사들을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적어도 일주일은 더 걸릴 것이라 생각했는데, 황실 기사들이 이리 빨리 움직인 걸 보면 그동안 황성이나 북부에 변고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크론 경이 있는 곳에서 바로 말씀을 올리려 했습니다만…….”
펠튼이 고개를 들었다. 밝은 태양 아래, 그의 낯빛이 어두웠다. 이런, 지레짐작이 맞았던 모양이다.
“이렇게 된 이상, 미리 말씀드릴 수밖에 없겠네요. 5황자 전하의 짐작이 맞습니다. 북부에 변고가 있습니다.”
“말해보라.”
“크레이어 후작 각하께서 검은 산맥을 순찰하던 중에 실종되셨습니다.”
크레이어 후작령의 영주들은 대대로 검은 산맥을 지켜왔다. 그들에게 있어서 검은 산맥 순찰은 지켜야 할 의무이며, 명예였다.
최근 검은 산맥에서 5황자가 실종되고 소규모 교전이 잦아지면서 크레이어 후작은 다시 한번 지방군을 이끌고 대규모 순찰에 나섰고, 그 과정에서 실종된 것이다.
‘유령 부대의 작전이 벌써 시작된 건가?’
레이먼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마도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유령 부대와 에드리거 왕국의 암살자들이 벌인 합작이겠지. 목적은 국경 도발일 테고.’
삼국 동맹에서는 세 왕국 중, 가장 군사력이 강력한 자유 이시리아 왕국을 정면에 내세워서 필리어스 제국의 무력을 시험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들의 군대를 먼저 검은 산맥으로 불러들이는 거였다.
그래서 도발할 목적으로 북부의 명문 기사 가문인 크레이어 후작을 납치하여 죽이고, 훼손한 시체를 보내려 했던 것이다.
검은 산맥은 여전히 마물들의 땅이니, 시체를 고의로 훼손한다고 해도 마물들의 소행이라고 변명하면 된다. 그래 봤자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증거는 남지 않는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시작될 줄이야…….’
5황자 깃발을 휘날리면서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산악 용병들을 격퇴한 탓에 유령 부대가 예정보다 빨리 움직이게 되었다.
당연히 목표는 5황자, 레이먼으로 수정되었지만, 임시 거점에 틀어박혀 있는 그를 찾을 수가 없어서 기존의 계획대로 ‘크레이어 후작’을 납치한 것이다.
“우선, 크론 경을 만나보도록 하지.”
“예, 5황자 전하.”
펠튼은 레이먼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게슈타인!”
“예, 주군!”
“오늘 검술 수련은 여기까지 해야 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가죽 갑옷을 벗어 던진 레이먼은 알렉스가 가져온 외투를 입고 망토를 걸쳤다. 속에 입었던 옷은 여전히 흙먼지가 가득했지만, 망토에 가려져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다.
수련용 목검을 거치대에 던져 놓는 5황자를 보며 펠튼은 호기심이 생겼다.
연회장에서의 활약도 그렇고, 중급 마법사라고 알려진 5황자가 검술을 수련한다고? 하마터면 이 심각한 상황에서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질 뻔했다.
“어서 가지.”
레이먼이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펠튼은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병사들이 지키고 있는 지휘부 막사에 도달했다.
“앗, 5황자 전하!”
경비를 책임지고 있던 장교가 레이먼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깜짝 놀라 군례를 갖췄다. 레이먼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받았다.
“수련 시간 아니셨습니까?”
“손님이 있어서 말이야, 크론 경은 안에 있나?”
“예! 기별하겠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조금 피곤한 표정의 크론이 걸어 나왔다. 미리 간단한 연락을 받은 덕분에 그는 황실 기사의 출현에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인사를 주고받고서 크레이어 후작의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땐 레이먼의 부축을 받을 정도로 크게 휘청거렸다.
“속히 5황자 전하와 크론 경을 모시고 국경으로 물러나라는 황명을 받고 왔습니다.”
“그, 그러면 이 거점은…….”
크레이어 후작이 납치된 상황이었지만 크론은 거점의 방어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펠튼에게는 대안이 있었다.
“제가 이끌고 온 특수대가 임시 거점을 사수할 것이니, 크론 경은 5황자 전하와 함께 국경으로 물러나셔야 합니다.”
결국, 그날 레이먼은 크론과 함께 국경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 * *
“영주님! 조금만 더 버티셔야 합니다!”
수하 기사의 목소리가 희미해져 가던 크레이어 후작의 의식을 일깨웠다.
그는 비명과도 같은 숨결을 토해내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기사의 부축을 받으며 정신없이 주변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산맥을 가득 채우고 있던 적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저, 적들은…….”
“후작가의 용맹한 기사들과 영지군이 그들을 몰아냈습니다!”
“다행이군…….”
크레이어 후작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포위에서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크레이어 후작가의 용맹한 기사 스무 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장은 그 사실을 영주, 크레이어 후작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적들의 맹공에 당해 지금 반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조금만 버티십시오! 이제 이틀 정도만 더 가면 거점이 있습니다!”
기사는 애써 희망을 찾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물들로 가득한 검은 산맥에서 버티기에는 곁을 지키고 있는 이들의 수가 너무 적었다.
병사 열다섯에 기사 일곱, 그리고 중급 마법사 1명이 전부다. 멀쩡한 상태라면 모를까, 추격자들을 피해 일주일 동안 도망치면서 다들 너무 지쳤다.
‘제발…….’
변고를 알아차린 필리어스 제국의 순찰대와 조우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기사의 염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커, 커헉!”
검은 창이 중급 마법사의 가슴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것은 신호탄이었다. 기사들이 황급히 크레이어 후작의 곁으로 모여들었고 병사들도 무기를 들어 올렸다.
“필리어스 제국을 위하여!”
“크레이어 후작가 만세!”
무너진 전의를 끌어올리기 위해 함성을 내지르는 것도 잠깐이다. 곧 그들의 눈동자는 절망으로 물들었다.
“크아아악!”
“커, 커헉!”
검은 그림자, 그 하나가 진형을 누빌 때마다 병사들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열다섯이 목숨을 잃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5초.
“제기랄!”
누군가 욕설을 내뱉었다. 순식간에 마법사와 병사들이 전멸했고 이제 남은 건 후작과 그의 곁을 지키는 소수의 기사뿐.
적은 분명 하나다. 기사의 직감이 말해줬다.
하지만 그 하나가, 최악의 상대다. 5초 만에 병사 15명을 즉사시키는 실력을 가진 암살자는 많지 않다.
“하, 하사신…….”
누군가 추격자의 정체를 입에 담았다. 밤의 왕국, 에드리거에서 가장 잔혹하고 뛰어난 암살자들의 집단이자 그 구성원들을 칭하는 단어.
하사신.
죽음의 그림자가 검은 산맥을 넘어 찾아왔다.
* * *
국경으로 물러났다고 해서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황명을 거역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두 걸음 전진하기 위해 잠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난 것이다.
황명에는 우선 검은 산맥에서 벗어나 물러나라는 말만 적혀 있었고, 국경에서 계속 대기하라는 내용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레이먼은 그걸 노렸다.
크레이어 후작은 북부에서도 이름난 명문가로, 오랜 세월 동안 삼국 동맹과 검은 산맥의 마물들로부터 필리어스 제국을 지켜온 충직한 방패다.
현재 대륙의 정세 때문에 대규모 수색 작전을 펼치는 것은 무리겠지만, 2개에서 3개 정도의 수색대를 추가 파견하는 건 어렵지 않을 터. 문제는 그걸 누가 맡느냐, 그것이다.
“주군, 국경군 지휘부에서 사람을 보내왔습니다.”
홀로 연무장에서 검술 수련 중이었다. 별안간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게슈타인이 서 있었다. 그는 짧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했다.
“국경군 지휘부에서?”
“예, 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주시길 요청했습니다.”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빠르다. 크레이어 후작의 납치에 관련해서는 설정집에 적혀 있긴 하지만 소설 속 본문에 서술되어 있는 내용은 간략했기 때문에 레이먼으로서도 대략적인 흐름만 알 뿐,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다.
우선은 지휘관 회의에 참석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움직일 생각이다.
유령 부대의 방식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게다가 설정충인 작가는 크론과 달리 주인공 앞에 등장하지도 않는 샌드 크레이어 후작이 최후를 맞이하는 곳까지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그를 구출하는 일은 어렵지 않아 보였다.
“지금 가도록 하지.”
레이먼은 환복을 끝내고 소수의 친위대를 대동한 채, 지휘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막사 안에는 이미 국경군 소속의 고위 지휘관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그들 중에는 창백한 안색의 크론도 보였다.
용맹한 기사 가문의 장남이었지만 이제 20대를 넘긴 젊은 나이로, 거대한 가문을 이어받기엔 아직 젊었다.
그는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면 발생할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벌써 부담을 받고 있었다.
“5황자 전하께서 입실하셨습니다.”
게슈타인을 대신해 친위대원 한 명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자 지휘부 회의실에 모인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일어날 필요 없다. 바로 진행하지.”
“예!”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는 만큼 불필요한 절차는 최대한 생략하는 게 옳았다.
레이먼이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지휘관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현 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참모부의 장교가 벽면에 검은 산맥의 군사 지도를 붙이고 단검으로 고정했다. 그리고 빨간 핀과 파란 핀을 여기저기 꽂았다.
“빨간 핀이 교전 지역이고 파란 핀이 아군의 임시 거점입니다.”
임시 거점의 수가 생각보다 작았다. 작가의 설정집에도 적혀 있었지만 검은 산맥에서 필리어스 제국은 삼국 동맹에게 열세였다.
“크레이어 후작 각하께서 실종되신 직후, 수색대 3개를 추가 편성하여 검은 산맥으로 올려보냈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참모부 장교의 보고에 레이먼은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티 나지 않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이 자랑하는 특수 전력 중 하나인 유령 부대가 나섰다면 일개 수색대의 병사들로는 그들의 흔적을 찾는 건 무리다.
최소한 중앙정보국의 지원이 필요한데, 그들은 언제나 하이펠 제국과 삼국 동맹의 공작을 막느라 바쁜 이들이다. 지원을 보낼 여력이 없다.
“산악 공작님께 이 사실을 알리고 지원을 요청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누군가 말했다. 이거야말로 어리석은 소리다.
산악 공작, 리버스 벨피앙. 그는 하이펠 제국과 마물 숲이라는 거대한 위협으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방패다.
그리고 검은 산맥을 담당하는 크레이어 후작과는 사이가 좋지 않기도 했다.
하이펠 제국과 긴장 상태인 지금 그가 크레이어 후작을 돕기 위해 지원군을 보내줄까?
대답은 ‘아니오’다. 레이먼은 이 참신한 말을 한 이가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깔끔한 제복을 입은 젊은 지휘관이 앉아 있었다. 아마 귀족 가문의 차남이나 막내 정도 되는 위치겠지. 국경에 배속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을 훑어보니 다른 이들도 레이먼처럼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원군은 없을 거다. 이건 이곳, 북동부 국경군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레이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악 공작을 언급했던 젊은 지휘관의 표정이 죽었고, 다른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5황자 전하께서는 방책이 있으신 겁니까?”
젊은 귀족 지휘관이 애써 표정을 관리하며 질문을 던져왔다. 비꼬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다.
실제로 옆에 앉아 있던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는 그렇게 알아들은 것인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레이먼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려 그를 제지했다.
“만약 방책이 있다면?”
5황자, 레이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젊은 귀족 지휘관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당황했고 다른 이들의 시선도 집중되었다.
한때 망나니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연회장에서 황제를 구하고 ‘잊혀진 자들의 길’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탈출한 5황자다.
곧 이어질 다음 말에 그들은 미약한 기대를 걸었다.
‘5황자 전하께서 방책을……? 믿어도 되는 것인가?’
‘소문이 사실이었나?’
‘과연, 어떤 대안을 꺼내 놓으실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으나 시선에 담긴 생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상반된 반응과 여러 감정이 섞인 눈동자, 그 중앙에 망나니였던 5황자, 레이먼이 있다.
“경들은 내가 ‘잊혀진 자들의 길’에서 탈출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레이먼이 말에 지휘관 회의에 참석한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물론입니다. 5황자 전하.”
“예, 보고서는 받아두었습니다.”
‘잊혀진 자들의 길’에 대해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기사들과 병사들의 보고서가 일관된 내용이었고 진술 또한 일치했기 때문에 의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유령의 옷을 입은 시체를 보았다.”
충격적인 선언에 좌중은 술렁였다. 그들은 5황자가 말한 ‘유령’이 ‘망자’를 뜻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