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25)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25화
10장 국경의 영웅(2)
“설마 유령들을 보낼 줄이야…….”
모두가 겁에 질려 차마 언급하지 못한 ‘정체’를 누군가 중얼거렸다.
그렇다. 그 정체는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유령 부대.
하사신이 밤의 공포라면 유령 부대는 전장의 소리 없는 죽음이다.
그들은 정찰 활동과 지휘부 저격을 주로 맡는다. 언제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전장에서 유령을 봤다면 도망쳐라’라는 소문이 떠돌 정도였다.
“5황자 전하, 즉시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유령 부대가 내려온 게 확실하다면 검은 산맥과 국경은 피바다가 될 것이옵니다.”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가 진언했다.
“황군 지휘관은 진정하도록. 우려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5황자 전하…….”
“그대와 용맹한 일백의 황군이 내 곁을 지키고 있지 않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실을 지키는 것은 황군의 명예! 제가 반드시 지켜드리겠습니다!”
카시야스의 대답에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황군은 단순해서 다루기 편했다. 이제 문제는 국경군과 크레이어 영지군의 지휘관들이었다.
“유령이 나타났다면 가볍게 볼 일이 아닙니다. 북부 중앙군의 아콘 백작 각하께 특수 전력의 파병을 요청해야 합니다.”
누군가 말했다. 중년의 외모에 제복에 달린 계급장과 휘장을 보면 그가 고위 지휘관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경이 더 잘 알고 있지 않나?”
레이먼이 날카롭게 말했다. 필리어스 제국의 특수 전력 대부분은 하이펠 제국의 레인저 군단을 막기 위해 마물 숲과 북서부 국경에 배치되어 있다.
현재 필리어스 제국은 검은 산맥에 주 전력을 배치할 정도의 여유가 없다.
발언을 한 고위 지휘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불쑥 내뱉었을 뿐이었다.
“생각보다 서론이 길어졌으니, 나머지는 자르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다.”
이제 대안을 내어놓을 차례였다. 자신만만한 레이먼의 태도에 지휘관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크레이어 후작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는 유령 부대를 유인할 필요가 있다. 그건 알고 있겠지?”
레이먼은 작가의 설정집도 봤기 때문에 크레이어 후작이 어떤 장소에서 목숨을 잃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난 단서 하나 없이 위치를 특정하면 오히려 신뢰를 잃고 의심만 살 수도 있다.
“유령 부대를 유인할 방법을 알고 계신 것이옵니까?”
고위 지휘관 한 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5황자, 레이먼은 장난기 많은 악동처럼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주 맛있어 보이는 먹잇감이 여기 있지 않은가?”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가 벌떡 일어났다.
“위험합니다!”
황실과 황족을 지키는 황군의 입장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발언이었다.
기겁하는 카시야스와 달리 게슈타인은 레이먼의 뒤에 시립한 채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카시야스보다 조금 더 오래 레이먼을 봐온 덕분에 신뢰도가 높아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카시야스 경.”
“예, 5황자 전하……. 당장 물러나셔야 합니다.”
“지금 내가 물러나면 국경군의 사기에 별로 좋지 않아.”
국경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온 황족이 적의 출현에 뒤로 물러난다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망나니라는 소문과 다르게 깊게 생각하는 레이먼의 모습에 국경군의 지휘관들은 머릿속에 여러 생각을 담았으나, 대부분 5황자에 대해 긍정적인 것들이었다.
“하지만, 5황자 전하…….”
“필리어스 제국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이 한목숨 아깝지 않아, 그리고 내 위로 뛰어난 형님이 세 분이나 계시니까 나 하나 정도는 없어도 제국은 잘 돌아갈 거다.”
“5황자 전하…….”
‘이 정도면 뜻이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까?’
적당히 말하려고 노력했지만,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는 눈시울을 붉히고 있었다.
‘아! 이토록 제국을 위해 헌신하는 황자 전하라니, 나는 반드시 이분을 지켜야 한다!’
카시야스는 결의를 다졌고 다른 지휘관들도 적지 않은 감동을 받거나 5황자의 망나니 소문을 부정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족이 소수의 인원만 대동한 채 검은 산맥으로 진입한다면 유령 부대가 어떻게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나?”
카시야스가 진정된 모습을 보이자 레이먼은 차분한 표정으로 파급력이 큰 발언을 했다.
필리어스 제국에서 황족의 위치는 하늘처럼 높다. 그건 유령 부대뿐만 아니라, 대륙의 모든 국가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당연히 납치 혹은 암살을 시도해 올 것입니다.”
고위 지휘관 중 한 명이 냉정하게 대답했다.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계획은 간단하다. 내가 미끼가 되어서 유령 부대를 유인한다. 그리고 나를 암살하기 위해 찾아온 유령 부대를 격퇴하고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를 생포한다. 어때?”
계획의 설명이 끝났지만,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아직 20대 초반이 되지 않은 어린 황자가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도 무거운 내용이었고, 그가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진 것에 대한 책임감 또한 느끼고 있었다.
“국경군의 최정예 기사들이 5황자 전하를 참여할 것입니다.”
“소리 없는 죽음들에게서 5황자 전하를 지켜드리겠습니다.”
사지로 나아가는 5황자를 향해 해줄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작은 응원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레이먼에게는 크게 와닿았다.
“그럼 자세한 계획을 의논해 볼까?”
* * *
5황자, 레이먼은 소수의 친위대만 대동한 채 검은 산맥에 다시 진입했고, 국경군에서는 그 정보를 흘리는 것과 동시에 유령 부대로부터 5황자를 지킬 소수의 최정예 기사단을 출병시켰다.
지휘관들은 마음 같아서는 많은 병력을 동원하고 싶었지만, 유령 부대의 이목을 피하려면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의 한계가 분명했다.
유령 부대 앞에서는 매복도 무의미하다. 그저 가장 가까운 곳에 지원군을 두고 있다가 그들을 부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니, 일단 공격을 받으면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5황자를 보필하는 친위대의 어깨가 무거웠다. 하지만 다소 긴장한 친위대원들과 다르게 5황자, 레이먼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노인장, 마나는 잘 숨겨두고 있겠지?”
늘상 하는 것처럼 청탑주를 친근한 호칭으로 부르며 앞장서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긴장 속에서 갑작스러운 질문을 받은 리세필드는 당황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5황자 전하, 제가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탑주입니다. 마나를 숨기는 것 정도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리세필드의 대답에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수 인원이긴 하지만 이쪽에 고위 마법사가 2명이나 있다는 게 드러나면 유령 부대는 기습을 하지 않거나 더 많은 인원을 동원할 게 분명했는데, 어느 쪽이 되었든 간에 레이먼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된다.
“날파리들이 꼬인 것 같습니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차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 *
“필리어스 제국의 5황자가 검은 산맥에 진입했다고 합니다.”
“5황자가?”
“예. 그 망나니 5황자가 맞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유령 부대의 장교는 턱을 긁적이며 생각을 정리했다. 얼마 전에 5황자의 깃발을 본 적이 있다는 산악 용병대의 보고를 받은 게 기억났다.
“5황자라면 산악 용병대와 교전 후, 오래 가지 않아서 검은 산맥을 벗어나지 않았나?”
“예, 그런데 저희가 보낸 정찰 요원이 이틀 전에 검은 산맥 초입에서 5황자의 깃발을 발견했습니다.”
필리어스 제국에서 황족의 깃발은 다른 이가 사용할 수 없다. 그 부대 안에 황족이 있어야만 들 수 있는 깃발이다.
“5황자가 다시 검은 산맥에 들어왔다라…….”
장교는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중얼거리다 별안간 고개를 들었다.
“군을 얼마나 이끌고 왔나?”
크레이어 후작을 사로잡았다고는 하지만 다다익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도발할 수단은 많을수록 좋았다.
더군다나, 황족을 신성하게 여기는 필리어스 제국의 5황자다. 그를 토막 내서 시체를 황성으로 보낸다면 크레이어 후작을 해하는 것보다 도발 효과가 확실할 것이다.
“친위대로 보이는 이들, 오십 정도가 전부입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족이 움직이는 것치고는 호위 부대가 너무 적은데? 국경군 쪽의 첩보는 확인해 봤나?”
“물론입니다. 국경군에 심어둔 첩자들이 ‘비밀리’에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5황자가 검은 산맥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모양입니다.”
거짓된 정보다.
이번만은 5황자가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국경군의 정보원들이 영혼을 갈아 넣고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모든 자원을 총동원했고, 국경군에 침투한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정보원들은 이상한 점을 감지하지 못했다.
물론 이건 유령 부대 직속의 요원이 첩보를 펼쳤다면 조금 달라졌을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유령 부대는 검은 산맥으로 남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국경군에 요원을 잠입시켜두지 않은 상태였다.
“친위대 오십이라…….”
“마법사가 다수 섞여 있는 걸 제외하면 특이한 점은 없었습니다. 마물들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도 지켜봤는데 수준이 크게 높지 않았습니다.”
적탑주와 청탑주가 마나를 숨기고 있다는 걸 부관은 알 길이 없었다.
그가 우수한 유령 요원이라고는 하지만 작정하고 마나를 숨긴 고위 마법사의 정체를 간파할 능력은 없었다.
“요원들을 준비시키고 근처 부대에 지원을 요청하도록.”
“제7산악 보병대 소속의 백인대 하나가 준비된 상태입니다. 당장 동원이 가능합니다.”
부관의 보고에 장교는 생각을 정리했다. 그가 지휘하는 소대에는 27명의 유령 요원이 소속되어 있었다.
산악 용병 백인대에서 협력해 준다면 이렇다 할 전력이 드러나지 않은 5황자의 친위대를 처리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산악 용병대와 크론의 보병대 간의 전투에서 살아남은 ‘마법사’가 있었다면 고위 마법사의 존재를 진술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당시 전투에서 마법사들은 살아나오지 못했었다.
“좋다, 출진한다.”
마침내 유령 부대의 장교가 결정을 내렸고, 그의 휘하에 있는 요원들이 무장을 갖추고 5황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회색 제복을 입은 채 마물들 가득한 검은 산맥을 뚫고 질주하는 그 모습은 마치 유령과도 같았다.
뒤이어 산악 용병 백인대가 움직였지만 먼저 도착한 이들은 유령 부대였다.
포위를 끝냈을 땐 하늘이 어둠에 물들고 있었다.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이었다.
“하늘의 뜻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군.”
깊은 어둠을 뿌리는 하늘을 보며 유령 부대의 소대장이 중얼거렸다.
유령 부대의 악명은 높지만 진정한 공포라고 불리는 하사신에 비하면 실력이 부족했다.
격차를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완전 은신’의 사용 여부였다.
하사신과 달리 유령들은 어둠 속에서만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제한 은신’의 사용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을 침식하는 이 깊은 어둠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환영 인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분명 상급 마법사가 한 명 있다고 했지?”
데시아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황족의 친위대인데, 너무 숨기기만 해서는 되레 의심을 살 수도 있기 때문에 데시아는 본연의 힘을 모두 드러낸 상황이었다.
“예, 분명 그렇습니다.”
부관의 대답에 소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야영지의 경계도는 높지 않았다.
절반 이상이 숙면을 취하고 있는 듯했고 10여 명 정도가 불침번을 서고 있었다.
“내가 상급 마법사를 처리하겠다.”
적은 이쪽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으니, 기습에 성공한다면 설령 상급 마법사라고 하더라도 단숨에 단검을 목에 꽂아 넣어 입을 영원히 다물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자신감이 흘러나왔다.
마침 상급 마법사는 모닥불을 쬐고 있었다.
“너희들은 5황자와 근접한 친위대원들을 죽여라. 그리고 산악 용병 백인대가 도착하면 상황이 혼잡해진 틈을 타서 물러난다.”
“따르겠습니다.”
“좋다, 내가 먼저 간다.”
그의 몸이 어둠 속에 녹아들었다. ‘제한 은신’이기는 하지만 마나를 운용하지 않으면 모습이 드러날 일이 없다.
기척 역시도 완벽에 가깝게 지웠다고 자신했기 때문에 들킬 염려는 없을 터였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는데…….
“커, 커헉…….”
정신을 차려 보니 목에 얼음 송곳이 꽂혀 있었다.
“미안하지만 뒤를 잡히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붉은 핏줄기를 뿜어내는 소대장을 보며 데시아가 차갑게 내뱉었다.
“친위대는 검을 뽑아라!”
막사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던 5황자가 달려 나오며 외쳤다.
‘하, 함정…….’
소대장은 부하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입을 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니 외친다고 하더라도 이미 늦었다.
이미 제한 은신 상태인 유령 요원들이 임시 방책을 넘고 있었으니까, 전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