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3)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3화
2장 재능 있는 망나니(1)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3황자, 알로켄이 서 있었다.
그 뒤에 직속 친위대로 보이는 이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강대한 마나가 느껴지는 듯했다.
마탑 기사들과 마법사들이로군.
‘천재 마법사, 3황자.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네.’
레이먼은 스스로 생각하고서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실소가 터질 뻔했다. 소설 속 캐릭터니까 당연히 처음 보는 것이다.
3황자, 알로켄은 독사 같다는 소설 속 서술과는 달리 평범한 인상이었다. 오히려 선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였다. 설정을 모른 채 만났다면 쉽게 호감이 갈 정도의 외모였다.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형님.”
“그래, 유감스러운 일이지.”
알로켄이 한 걸음 다가오며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직속 수하들이 뒤로 물러났다.
“잠시 주위를 물려 주실까?”
아랫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태도. 이건 명령이 분명했다.
레이먼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손을 들어 알렉스와 황실 기사들에게 물러날 것을 지시했다. 여기서 3황자와 언쟁을 해봤자 이득 될 게 없다.
또한, 지금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둘이서 대화를 나눈다면 그의 음흉한 머릿속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동안 말을 지독하게도 안 듣더니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이냐?”
알로켄의 직설.
‘굳이 대답할 필요가 있을까?’
그저 씨익 웃어 보였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3황자, 알로켄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혹, 황위에 관심이 생긴 것이냐?”
노골적인 질문이다. 목소리에서는 미약한 살기마저 묻어나는 것 같았다.
대답에 따라 여차하면 저 뒤에 있는 알로켄의 수하들이 칼을 뽑고 달려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 살고 싶으면 황위에 대한 관심을 버리는 게 좋을 거다.”
“형님, 지금 저를 협박하시는 겁니까?”
레이먼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알로켄이 잠깐이나마 긴장할 정도였다.
“많이 변했구나.”
망나니였던 동생 놈이 달라졌다.
“하지만 내가 할 말은 하나뿐이다. 황위에 대한 생각을 버려라.”
황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던 3황비, 바이올렛이 병으로 급사하고 황제의 관심은 5황자에게로 옮겨갔다.
5황자, 레이먼이 5년간 두문불출하지 않았다면 강력한 경쟁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알로켄은 레이먼이 황위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황위 계승전에 참가하면 조금 귀찮아질 테니까.
“황위라…….”
“혹여나 착각은 하지 말거라. 너를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귀찮아지는 게 싫을 뿐이야.”
“그 말, 명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대답을 듣기 무섭게 알로켄은 몸을 돌려 수하들과 합류했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에 레이먼의 시선이 꽂혔다.
“형님 덕분에, 황위에 조금 관심이 생겼습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 하지만 분명한 다짐이다.
* * *
5년 만의 아침 만찬 이후, 며칠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5황자, 레이먼은 망나니라는 악명을 벗기 위해 조용히 지냈다. 그런데 그게 레이먼의 의도와는 달리 이상한 소문을 돌게 했다.
‘5황자가 망나니짓을 안 한다. 미친 게 분명하다.’
5황자궁에 몇 없는 시종들이 근원은 아니었다. 시녀들 사이에서 비밀스럽게 돌아다니는 소문이었는데 우연히 알게 된 알렉스가 조용히 알려준 것이다.
“제가 말했다는 건 비밀입니다, 5황자 전하.”
고자질을 끝낸 알렉스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며칠 동안 그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그런지 최근 알렉스는 레이먼에게 조금씩이나마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 비밀로 해주마.”
알렉스가 물러가고 레이먼은 창가에 앉아 생각을 정리했다.
3황자, 알로켄이 자신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황위에 관심이 없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을 게 분명했다. 1황자나 2황자도 마찬가지겠지.
‘나도 본격적으로 움직여야겠어.’
무시당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줄 생각이다. 황위? 원한다면 도전해 주마.
‘하지만 황위 경쟁에 뛰어들려면 지지세력이 필요하다.’
맨몸으로 뛰어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1황자의 뒤에는 군부와 기사들이 있다. 그리고 2황자는 암살단이 함께한다. 3황자에게는 마탑이 있다.’
세 사람은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레이먼은 뒤에 선 이들도 없고 본인도 너무나 약한 존재였다.
이렇게 되면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주인공의 기연을 뺏는다.’
적어도 3권까지 주인공의 행보와 그가 얻게 될 기연은 대충 알고 있다.
우연히 작가의 설정집을 본 적도 있으니, 필리어스 제국에 잠들어 있는 기연들 역시 조금은 알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 볼까……?”
앞으로의 행보를 정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참기 힘들었다. 입가에는 자연히 미소가 번졌다.
마침내 정상에 섰을 때 3황자, 알로켄이 지을 표정이 궁금했다.
“황실 7번 비고. 거기부터 시작할까?”
그곳에는 남부의 마법사들이 잃어버린 마법, ‘희생의 창’이 있다.
* * *
“황실 비고에 출입하고 싶다 하였느냐?”
황제, 로널드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늙고 병든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레이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예, 황제 폐하. 7번 비고에 자유로이 출입하고 싶습니다.”
“7번 비고라…….”
황실 비고에는 여러 보물과 귀중한 서적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7번 비고는 유난히 급이 떨어지는 것들만 모여 있었다.
그나마 희귀한 역사서들이 많아서 마법사들이나 학자들이 출입하고는 했지만, 황족이 관심을 가질 정도는 아니라고 로널드는 생각했다.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느냐?”
“망나니라고 불렸던 과거를 잊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습니다.”
로널드는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충분한 대답이었다.
“시종장.”
“예, 황제 폐하. 하명하시옵소서.”
“5황자에게 황실 7번 비고의 출입증을 발급해 주도록.”
시종장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레이먼도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용건이 끝났으니, 이제 출입증을 발급받고 황실 7번 비고로 향할 차례다.
“벌써 가려고 하느냐?”
로널드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레이먼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황제의 체면도 있지만, 황궁이 공격당한 이후 정치, 외교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급격하게 늘어난 탓이다.
“가끔 얼굴을 비춰야 한다.”
“예, 황제 폐하.”
그 말을 끝으로 레이먼은 알현실을 떠났다.
‘황제가 생각보다 많이 늙었다.’
그리고 병들었다. 알현할 때마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많이 없군.”
“예?”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알렉스가 자신에게 지시하는 줄 알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무것도 아니야.”
레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기억 속의 강인했던 황제는 5년 만에 눈에 띄게 약해졌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빙의되기 전, 과거의 레이먼은 황제와 사이가 안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황제의 비호가 없었다면 고대의 병기를 사용할 수 있는 황가의 혈통이라고 해도 좋은 꼴은 못 봤을 것이다.
“5황자 전하.”
어느새 시종장이 다가왔다. 그는 손에 들린 출입증을 레이먼에게 건네주었다.
공손한 태도였지만 레이먼은 짧은 순간 시종장의 눈에서 순간 혐오감이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인정받으려면 아직 멀었군.’
레이먼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들에게 좋은 감정을 기대하기에는 망나니라는 과거가 너무 강렬했다.
“황실 비고에서는 사고를 치시면 아니 됩니다, 5황자 전하.”
“시종장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이런 건 망나니랑은 어울리지 않는데…….’
힘없이 내뱉은 짧은 한숨만이 허공에 맴돌았다. 생각 정리를 끝내고 보니 시종장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다 날 무시하네.”
그의 평판은 아직 망나니니까,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다.
‘달라졌다는 걸 보여주마.’
출입증을 쥐고 황실 7번 비고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거침이 없었다.
“5황자 전하, 황실 7번 비고는…….”
“알아.”
“네?”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고.”
직접 가본 적은 없다. 소설 속에서도 짧게 서술되어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다. 왜 그럴까?
‘난 설정집을 봤거든.’
황실 7번 비고의 설정은 인상 깊었다. 그래서 기억에 남아 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실에서 관리하는 비고 중 일곱 번째 비고. 마도구나 마법서 등이 보관된 다른 비고들과 달리 역사서들밖에 없다.
그래서 출입하는 이들도 적지만 아주 먼 옛날, 황제 한센이 여기에 희생의 창을 숨겨 두었다는 설정이 있다.
“흐흐흐.”
원래는 주인공이 가져가야 할 기연. 그걸 뺏을 생각을 하니 사악한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본 시종, 알렉스는 트라우마를 떠올리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30분 정도 분주히 걸었을까. 그들은 7번 비고 앞에 도착했다.
출입문은 황실 기사 2명이 지키고 있었다. 레이먼은 그들에게 출입증을 보여주었다.
“수행원들은 출입할 수 없습니다.”
“너희들은 여기서 대기해라.”
알렉스와 황실 기사들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고 레이먼은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등이 켜져 있었지만 어두웠다. 하지만 앞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니었다.
레이먼은 비고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희생의 창 마법서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만, 대강의 위치는 알고 있다.
[황실 7번 비고에 들어간 순간, 우측에서 알 수 없는 무형의 기운이 느껴졌다. 정신없이 발걸음을 옮기고 나니, 눈앞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장치를 찾을 수 있었다. 마침내 한센이 남긴 비밀의 방을 찾은 것이다.]마력을 다루지 못하는데, 무형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유일한 단서는 비고의 우측이라는 것이다.
“어디 한번 해보자.”
그날 5시간을 날렸다.
* * *
망나니가 얌전해졌을 뿐만 역사서가 가득한 비고에 매일 출입하는 모습을 본 황궁 사람들 사이에서 재밌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5황자가 달라졌다.’
처음에는 미쳤다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먼은 관심이 없었다. 지금 그는 황실 7번 비고에 있는 ‘희생의 창’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렉스, 가자.”
“예, 5황자 전하.”
오늘도 황실 7번 비고에서 희생의 창 마법서를 찾기 위해 알렉스와 함께 5황자궁을 나섰다.
황실 기사 몇 명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비고 앞에 도착하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뒤로 물러났다.
레이먼은 굳게 닫힌 비고의 문을 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황실 기사를 부르기 전에 나오는 게 좋을 거다.”
어제와는 다른 풍경이다. 놓아둔 서적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하루 사이에 다른 누가 다녀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레이먼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제 은신을 간파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5황자 전하.”
어둠 속에서 갈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사로 보였지만 로브에는 그 어떤 마탑의 문장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내가 5황자라는 걸 알고 있군.”
“망토에 문장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가?”
노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걸음 걸어 거리를 좁혔다.
노인은 그저 미소를 지어 보일 뿐,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출입증은 가지고 있나?”
“없습니다. 5황자 전하.”
두 손을 펼쳐 보이는 노인. 손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궁내부에 알릴 생각이십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렇습니까?”
“나는 신경 쓰지 말고 용무를 보게나. 나 또한 자네를 신경 쓰지 않을 테니…….”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노인은 씨익 웃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진짜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노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레이먼은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마 희생의 창을 찾고 있었을 테지.’
하지만 소설 속에서 그는 결국 ‘희생의 창’을 찾지 못한다.
‘결국, 희생의 창은 주인공이 찾게 된다.’
그리고 노인은 주인공의 조력자가 된다.
‘저자의 이름은…….’
리세필드 디올. 마탑 연합에서 유일하게 3황자를 지지하지 않고 중립을 선언한.
‘청탑주.’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희생의 창을 찾으면 청탑이 내 뒤에 설 것이다.’
주인공의 기연 뺏기, 그 첫 번째가 시동을 걸었다.
* * *
찾고 있던 물건이 황실 7번 비고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출입증을 발급받으려고 했지만, 황궁이 공격당한 일 때문에 쉽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그는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상태였기 때문에, 경비가 허술한 황실 7번 비고에 몰래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한창 찾아다니다가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며칠 쉬었다.
“5황자가 출입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은신 마법을 사용하면 괜찮을 것 같았다. 고위 마법사 중에서도 대마법사의 경지에 가까웠으니까, 쉽게 들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5황자가 은신 마법을 간파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