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32)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32화
13장 먼저 나팔을 불어라(1)
“파이어 블래스트!”
레이먼의 입에서 상급 마법의 시동어가 튀어나왔다.
영창이 끝나면서 주위의 마나가 요동쳤다. 거대한 바위가 있는 곳에 마나를 머금은 불씨가 생성되더니 이내, 화악! 하고 사방으로 퍼지면서 폭발했다.
콰아앙!
요란한 굉음이 터져 나왔지만, 바위는 조금 균열이 갔을 뿐이었다.
상급 마법이라고 하기에는 한참 부족한 화력이었지만 레이먼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적탑주에게 향했다.
“적탑주. 이 정도면 충분한가?”
레이먼의 말에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은 바위로 다가가 마나 흔적을 살폈다.
분명 상급 마법에는 부족한 마나였지만.
“이 정도면 화염 마법에 대한 재능은 충분할 것 같군요. 적탑의 비전을 이어받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베레누스가 말했다. 청탑과 다르게 적탑의 비전에는 전수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있었다. 그게 바로 화염 마법에 대한 저항력과 재능이었다.
[자격이 없는 자가 탐한다면, 불의 세례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망자들의 제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적탑의 비전에 대한 묘사였다.
3황자도 그게 두려웠던 것인지 적탑의 비전을 전수받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청탑은 애초에 그의 뒤에 서지 않았으니, 3황자가 손에 넣은 비전은 황탑의 것밖에 없다.
“정말 적탑의 비전을 나한테 줄 생각인가?”
“어차피 누군가에게는 전수해야 할 비전입니다. 이왕이면 5황자 전하께 드리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베레누스가 말했다. 그는 3황자의 대열에서 이탈하여 5황자의 뒤에 서기로 했으니, 스스로의 생명을 지키고 적탑을 오래 보전하기 위해서는 5황자가 황위를 이어받아야만 했다.
그러니, 자격을 갖춘 레이먼에게 적탑의 비전을 전수하고자 마음먹은 게 이상한 건 아니었다.
“적탑주가 적극적으로 나서주니까 든든하군.”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지요. 제 목숨은 5황자 전하께 달려 있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잖습니까?”
“그것도 그렇군.”
레이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5황자 전하. 적탑의 비전은 전수한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오늘따라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의 목소리가 섬뜩했다. 레이먼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해 마른 침을 삼켜야만 했다.
그리고 지옥 수련이 시작되었다.
* * *
“청탑주님. 저를 찾으셨나요?”
문이 열렸다. 맑은 목소리와 함께 푸른 눈동자의 데시아가 응접실 안으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빨리 왔구나.”
“윗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요. 그런데 청탑주님께서 더 일찍 오셨네요.”
“크레이어 후작께서 괜찮은 찻잎을 내어주더구나.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
“여유로우시네요.”
짧은 대화를 마치며 데시아는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의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할 만한가?”
리세필드가 데시아의 앞에 놓인 찻잔을 채워주며 부드럽게 물었다.
청탑의 장로 필리드가 파문당한 이후, 그녀는 공식적으로 청탑주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마나 연공법이나 수련법을 제공하고 있는 이는 5황자였다.
그녀가 대마법사로 향하는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게 레이먼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5황자 전하께서 알려 주신 마나 연공법을 사용하니까 생각보다 빨리 경지를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아요.”
주연급에 해당하는 데시아 헬리의 설정은 다른 캐릭터들보다 자세했다. 그래서 레이먼은 그녀가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
설정을 알고 있는 이가 곁에서 돕고 있으니, 데시아의 성장 속도는 빠를 수밖에 없었다.
“허허, 벌써 최상급 마법사의 경지를 말할 수 있을 정도라니…….”
리세필드는 그저 놀랄 뿐이었다. 그는 데시아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헛된 희망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성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마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4년이 되지 않았는데, 최상급의 경지가 보일 정도라니……. 마탑 연합에 알려지면 황탑주가 자네를 해부하려고 할지도 몰라.”
“살벌한 농담이네요. 물론 5황자 전하와 청탑주님께서 막아주실 거죠?”
“물론이지. 황탑보다 청탑의 위세가 강하니, 그들은 네게 손 하나 대지 못할 것이야.”
“그리고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3년 6개월이랍니다.”
짧은 농담이 오가던 마지막을 장식한 데시아의 한마디에 리세필드는 허허, 하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상급 마법사도 천재가 5년 이상 걸린다는 경지다. 그런데 그녀는 아직 4년이 안 된 시점에서 최상급의 경지를 바라보고 있으니, 소문이 퍼진다면 다른 마법사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일이다.
“5황자 전하께서는?”
“적탑주님과 함께 계신다고 알고 있어요.”
리세필드의 물음에 데시아가 대답했다. 굳이 더 캐묻지 않더라도 적탑의 비전을 전수 중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을 만났을 때 그는 적탑의 비전 전수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5황자 전하께서도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금방 오르시겠군.”
천재조차 5년 이상 걸린다는 그 경지를 마나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1년이 안 된 5황자가 노리고 있으니, 그의 재능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5황자 전하의 가르침은 어떠하던가?”
“제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청탑주님께서 5황자 전하의 재능에 대해 더 잘 알고 계실 것 같네요.”
은근한 물음에 데시아는 싱긋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흐음, 그래. 내가 5황자 전하와 각별한 사이이기는 하지.”
리세필드는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황실 7번 비고에서 처음 만났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만큼 흘렀다.
리세필드는 불과 얼마 전에 스쳐 지나간 일들을 기억하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슬슬 일어나 봐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 있나?”
“5황자 전하께서 오늘의 수련을 끝낼 시간이죠.”
설마 레이먼의 수련이 끝나는 시간까지 꿰고 있을 줄은 몰랐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의 리세필드를 뒤로한 채 데시아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응접실을 나섰다.
“나, 나도 같이 가세……!”
레이먼과 베레누스가 수련하고 있는 연무장은 본관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분주히 발걸음을 옮긴 끝에 도착한 연무장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파여 있는 구덩이들에서 검붉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중앙에 레이먼이 있었고 5m 정도 떨어진 곳에 적탑주, 베레누스가 있었다.
연무장에 발을 들인 순간, 리세필드는 마나의 기운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서, 설마 벌써…….”
5황자가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다.
* * *
운이 좋았다.
적탑과 청탑의 비전을 모두 익히면 상호 작용이 있다고 설정집에 적혀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5황자 전하,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것을 축하드립니다.”
생각 정리를 끝마칠 때 즈음, 리세필드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기쁜 일이었지만 들뜨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은 바다처럼 고요하고 차분했다. 앞으로 상대해야 할 적들의 수준에 비하면 큰 성과가 아니기에 그럴 수도 있다.
“5황자 전하, 상급의 경지에 오른 걸 축하드려요.”
이번에는 데시아였다. 적탑주는 신뢰 가득한 시선을 보낼 뿐, 입을 열지 않았다.
레이먼은 데시아가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을 대충 닦고서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데시아, 이러다 추월당하는 거 아닌가?”
가벼운 농담에 그녀의 입가에 맑은 미소가 번졌다.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저도 조금 속도를 올리기로 했거든요.”
긴 설명 없는 짧은 대답. 하지만 레이먼은 그녀가 최상급의 경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빠르군.”
소설 속 주인공, 리처드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에게 맞는 마법서와 마나 연공법을 추천해 주고 몇 가지 조언을 했을 뿐이다.
그런데 벌써 최상급의 경지 앞두고 있을 정도라니, 놀라운 성장 속도였다.
“5황자 전하에 비하면 부족하죠.”
“그런가?”
“네에. 식전이시죠? 크론 경이 저녁 만찬에 초대했어요. 환복하고 참석하셔야죠.”
데시아의 말에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크레이어 후작가의 정식 후계자인 크론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만찬 참석은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느샌가 옆에 나타난 게슈타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뭔가 일이 터진 게 분명하다.
“무슨 일인가?”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중장 돌격대가 남하했습니다. 국경군 소속 보병대 3개가 몰살당하고 거점 2개를 잃었습니다.”
중장 돌격대의 행동은 곧 자유 이시리아 왕국에서 선봉의 나팔을 부는 것과 같다.
그들은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적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가장 먼저 움직인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가볍게 움직이지 않는다.
엉덩이가 무거운 중장 돌격대를 움직이게 하려면 조금 더 강도 높은 도발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이건 예상외다.
“곧 군사 회의가 열린다고 합니다. 크레이어 후작께서는 5황자 전하께서도 참석해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검은 산맥, 그리고 국경과 붙어 있는 영지였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영지의 군사 회의에 참석을 부탁할 정도면 레이먼에 대한 크레이어 후작의 신뢰가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참석한다고 전해.”
“그리하겠나이다.”
이윽고 시간이 되었다. 당장 대책을 의논하기 위한 군사 회의라고 하기보다는 검은 산맥의 상황과 정보를 전달받는 시간에 가까웠다.
국경군에서 내려온 전령은 국경과 검은 산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30분 동안 자세히 설명했다.
“검은 산맥의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군요.”
국경군 전령이 전달을 끝내자 회의장에 모인 이들은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이는 크레이어 후작가의 기사단장 중 한 명이었다.
이름은 들어본 것 같은데도 정확한 정보가 기억나지 않는 걸 보니, 엑스트라 중에서도 비중이 낮은 인물이 분명했다.
“국경에 지원군을 보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번에는 크레이어 후작가와 함께하기를 맹세한 ‘기수 가문’들 중 하나를 이끄는 귀족이었다.
국경군에서 검은 산맥의 손실을 보충하기 위해서 일천의 병력을 추가로 올려보냈다고 하니, 국경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의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군의 지휘는 누구에게 맡기는 게 좋겠는가?”
크레이어 후작이 말했다. 그는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남은 건 기수 가문들에서 대표자를 뽑는 것이었다.
엄중한 분위기 속에서 논의가 시작되려는 찰나, 레이먼이 한 걸음 앞으로 걸어나가며 입을 열었다.
“나도 가겠다.”
“아니 되옵니다! 5황자 전하!”
“지금 검은 산맥에는 중장 돌격대가 있사옵니다!"아니나 다를까, 크레이어 후작이 기겁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영지군의 지휘권을 달라는 게 아니니 걱정 마라. 나는 어디까지나 동행일 뿐, 지휘권은 기수 가문에서 뽑으면 될 것이다.”
혹여 크레이어 영지군의 지휘권을 욕심내는 모습으로 보일까 봐 서둘러 덧붙였지만, 크레이어 후작과 기수 가문들의 반응을 보면 그럴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지휘권을 양보할 수 없다는 말 대신 지금의 검은 산맥은 너무 위험하다고 말하며 5황자의 안위를 먼저 걱정했으니까.
“혹여나, 검은 산맥으로 가신다는 이유가 선봉기 때문이라면 부디 말씀을 거두어주십시오!”
크레이어 후작이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목에 핏대를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에서 진심으로 걱정하는 기색이 느껴졌기 때문에 레이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선봉기 때문에 수도의 귀족들이 질책한다면 제가 방패가 되겠나이다!”
레이먼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선명해졌다. 가문의 은인이라고는 하지만 방패를 자처할 정도로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누군가 걱정해 준다는 건 생각보다 기분이 좋은 일이었구나…….’
피식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는 레이먼의 모습이 답답했던 것인지 크레이어 후작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쉬어도 소용없다네, 후작. 내 뜻은 변함없어.”
“5황자 전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젊은 시절을 황제 폐하와 함께 북방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젊었던 황제 폐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지요.”
조금은 뜬금없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레이먼은 딴지를 걸지 않고 조용히 크레이어 후작을 보며 경청했다.
“5황자 전하를 보면 젊은 시절 황제 폐하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읽은 레이먼, 이제 다음으로 이어질 말은 뻔했다. 소설의 설정을 알고 있었기에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크레이어 후작이 말을 잇기 위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