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39)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39화
15장 앞서 걷는 자(3)
“아이반 경이 황성 경비대 이십과 수도 경비군 오십을 소집했습니다. 하이 엘프 혈통의 말대로 감시자들이 다섯에 불과하다면 제압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말했다. 막사 안에 모여든 모두가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그들 중에는 레이먼의 수하들과 두 탑주 외에도 실비아와 시아딘도 포함되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5황자 전하.”
실비아가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분위기를 읽고 적절한 대사를 말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아직 구출도 끝나지 않았고 세계수를 정화하기도 전이다. 그러니, 감사 인사를 받기에는 이르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맑은 녹색의 눈동자를 반짝이며 고마움을 입에 담는 하이 엘프 혈통의 모습에 레이먼은 짧은 순간 평정심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저 모습 또한 날 이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허상에 불과하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마음과 달리 머리는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먼은 이성을 더욱 차갑게 유지하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감사하다는 말을 올리고 싶었습니다.”
2황자의 밑에서 해왔던 것과 달리 하이 엘프 혈통 특유의 매력을 쏟아내는 실비아를 보며 레이먼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5황자 전하, 정녕 푸른 숲까지 직접 가셔야겠습니까?”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었다.
“이미 결정된 문제다.”
레이먼은 단호하게 말했다.
“호위로는 데시아와 게슈타인 경이 함께한다고 들었습니다.”
실비아와 시아딘도 함께 갈 예정이었지만 두 엘프는 처음부터 리세필드의 기준으로는 호위 분류에 들어가지 못한 모양이다.
레이먼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리세필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차라리 저나 적탑주를 보내고 5황자 전하께서는 이곳에 남아 황군을 지휘하시지요.”
지극히 정상적인 제안이었지만 레이먼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안 돼. 노인장이나 적탑주가 푸른 숲에 가면 엘프들과 마찰이 생길 확률이 높아.”
엘프들은 불의 마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적탑에 대한 ‘혐오’가 있다. 게다가 그들은 2황자의 수하들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으니, 필리어스 제국의 적탑주라고 소개한다면 그 증오의 감정이 깊어질 게 분명하다.
물과 얼음의 마법을 익힌 청탑주를 보낸다는 선택지도 있지만, 그 또한 필리어스 제국의 마탑을 이끄는 수장이었기 때문에 적탑주만큼은 아니라도 엘프들이 증오를 품기에는 충분했다.
“그걸 아시는 분이 지금 호위 2명만 데리고 ‘푸른 숲’에 가겠다고 하시는 겁니까?”
“그걸 알기 때문에 가는 것이다.”
레이먼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사지로 떠난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먼은 특유의 여유를 잃지 않았다. 청탑주는 그런 레이먼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답답했다.
“5황자 전하…….”
“저들은 아직 필리어스 제국 황손의 피를 감당할 수 없다.”
* * *
암살 시도 이후, 레이먼은 황군 지휘관을 맡고 있는 카시야스에게 군사를 뒤로 물릴 것을 지시했다. 일백의 황군과 마탑의 전투 병력 수십으로 구성된 5황자의 군사들은 국경 후방으로 물러났다.
2차 공격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후방 국경군의 요새에서 재정비하려는 생각이었다.
“황성 경비대장, 아이반 로우스 경으로부터 전언입니다. 감시자들을 처단하고 엘프 한 명을 안전하게 확보하여 보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의 보고를 받은 레이먼은 그 즉시 행동했다. 준비는 끝났다.
“이동한다.”
레이먼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데시아와 게슈타인, 그리고 두 엘프가 작은 마법 배낭을 하나씩 멘 채 모습을 드러냈다.
황군이 야영을 준비하는 동안 어둠 속에서 그림자 다섯이 오래된 국경군 요새를 빠져나왔다. 카시야스가 미리 준비해 놓은 군마를 타고 3시간 정도 달리자 국경군 요새와 꽤 멀어졌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실비아가 뒤를 향해 고개를 돌린 채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바람의 가호를 사용하겠습니다.”
정령의 가호는 엘프 중에서도 일부만 사용 가능한 기술이다. 특히 몸을 가볍게 하고 바람의 저항을 줄여주는 바람의 가호는 어딘가로 이동할 때 유용하게 사용되고는 했다.
“바람이여…….”
실비아가 허공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바람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설정집에서 읽은 적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레이먼도 처음이었다. 모여드는 바람의 기운을 주시하는 레이먼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들 일행에게 바람이 완전히 깃들자 군마가 달리는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렇게 그들은 푸른 숲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3일 만에 푸른 숲의 초입에 진입하게 되었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의 주인은 실비아였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하얗다 못해 창백한 수준이었다.
출발하고 3일 동안 쉬지 않고 바람의 가호를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마나의 소모가 극심했다.
실비아의 바로 뒤에서 말을 달리고 있던 레이먼은 위태롭게 흔들리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몇 번이나 쉬어갈 것을 제안했지만.
“일족이 위험해요, 서둘러야 해요.”
실비아는 혼이 없는 인형처럼 계속해서 그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2황자는 바보가 아니었으니까.
실비아의 여동생 아리아가 구출된 것 정도는 보고를 받았을 테고, 그에 따라 보복을 위해 푸른 숲으로 수하들을 보냈을 가능성이 컸다.
‘백금초 일족 장로들의 눈치가 빠르기를 기도해야 하나.’
세계수의 결계가 엘프의 마을을 지키고 있다. 2황자가 압박을 시작하면서 그의 수하들이 왕래하기 쉽도록 결계를 약화시키고 있었던 모양이지만, 뒤늦게나마 상황이 반전되었다는 걸 깨닫고 결계를 강화했기를 바랄 수밖에.
“잠깐만요.”
실비아가 손을 들어 올리며 정지 신호를 보내는 것과 동시에 군마를 멈춰 세웠다.
“무슨 일이지?”
“1km 앞에 누군가 있어요.”
“아직 마나의 기운은…….”
“교묘하게 기척을 지우고 있어요. 마나로 감지하는 건 힘들 겁니다.”
실비아가 데시아의 말을 잘랐다. 데시아는 순간 도끼눈을 뜨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으나, 5황자의 앞이라는 걸 깨닫고 빠르게 표정을 수습했다.
“강자들이 많아요. 가까이 다가가면 눈치챌 겁니다. 우회하려면 지금이 기회에요.”
지나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니 엘프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레이먼은 잠시나마 ‘요격’하지 않아도 되냐고 질문하려 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1km 앞에 몇 명이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먼저 요격을 언급하지 않은 걸 보면 수가 적은 건 아닌 모양이다.
“게슈타인.”
“무리입니다.”
혹시나 싶어 게슈타인을 향해 시선을 옮겼지만,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고위 기사라고는 하지만 1km 밖에 있는 이들의 기척을 정확하게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실비아가 비정상적으로 이쪽 분야에 뛰어난 것이었다.
‘앞서 걷는 자…….’
누구보다 앞서 걸으며, 누구보다 먼저 위험을 판정하고 경고한다. 그것이 《망자들의 제국》이라는 소설 속에서 실비아의 역할이었다.
“실비아, 네 결정을 믿겠다. 우회로를 찾아서 안내하도록.”
레이먼이 말했다. 작가의 설정대로라면 지금 시기의 실비아는 ‘정령왕의 일기’를 손에 넣기 전이다.
그래도 그녀의 길잡이 능력은 필리어스 제국령에서는 최고 수준이었으니, 지금 이 자리에서 그녀를 불신한다면 누구를 믿겠는가?
“안전한 길로 안내하겠습니다.”
일족을 지키는 세계수의 운명이 레이먼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기에, 실비아는 마나를 쥐어 짜내서 소환한 바람의 정령들을 사방에 퍼뜨려 안전한 길을 찾아냈다.
“이쪽으로.”
우회는 성공했다. 놈들은 눈치채지 못했고 실비아는 푸른 숲의 깊숙한 곳으로 레이먼 일행을 안내했다.
“여기부터 백금초 일족의 영역입니다.”
실비아가 말했다. 경고에 가까운 어조였다. 엘프들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조금 섞여 있었다.
“동족들이 왔나 봐요.”
실비아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머무르는 것도 잠시, 곧 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안 돼…….”
피융!
말릴 틈도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십의 화살이 레이먼 일행을 노리고 쏟아진 것이다.
“어느 안전이라고 무기를 겨누는 것이더냐! 필리어스 제국, 5황자 전하의 앞이니라!”
화살촉은 데시아가 펼친 마나 실드를 꿰뚫지 못했지만 게슈타인은 마치 레이먼이 치명상을 입은 것처럼 흥분하여 분노를 토해냈다.
그가 뽑아 든 검에 마나 소드가 깃들었다.
“네 이놈들! 필리어스 제국의 분노를 감당하고 싶지 않거든, 당장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숲의 높은 나무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날카로운 일갈에 겁을 집어먹고 술렁이는 것 같았다.
넓은 하늘을 향해 솟구친 나무 위, 엘프들의 불안한 눈동자를 본 레이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들도 설마 자신들이 공격한 이가 필리어스 제국의 5황자일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쇠퇴하여 고대의 영광을 아직 되찾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고 있는 ‘제국’이다. 종족 연합의 시선이 닿지 않는 서대륙의 엘프 일족 하나를 쓸어버리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짓을! 모두 내려오세요!”
실비아가 꾸짖음은 망설이던 엘프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했다. 그들은 하이 엘프 혈통의 명령에 따랐으니, 그것은 결코 두려움에 굴복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리라.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나무 위에서 몸을 던진 십여 명의 엘프들이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순순히 모습을 드러냈지만 긴장된 분위기는 여전했다. 엘프들의 눈동자는 불안하게 이곳저곳을 훑고 있었고 검을 뽑지는 않았지만, 활시위와 검자루에서 손을 떼지도 않았다.
레이먼의 수하들 또한 마찬가지다. 데시아는 마나 실드를 유지했고 게슈타인은 흉흉한 살기를 흩뿌렸다.
평생 북부에서 필리어스 제국을 지켜온 고위 기사의 위압적인 살기는 엘프들로서는 쉽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몇몇 호흡이 불규칙해졌다.
“친위대장. 살기를 거두게.”
“예, 주군.”
게슈타인이 살기를 거두자 엘프들의 안색이 나아졌다. 하지만 레이먼의 표정은 여전히 편치 않았다. 그는 대놓고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실비아. 내가 친히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를 설명해라.”
“예……. 5황자 전하.”
설명은 5분 만에 끝났다. 최소한의 설명이었지만 엘프들이 실비아와 레이먼의 사정과 거래에 대해 이해하는 데 문제는 없었다.
“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엘프들이 고개를 숙였다. 사죄를 받았지만, 레이먼과 달리 데시아와 게슈타인의 눈초리는 여전히 차가웠다.
“자, 그럼 나를 공격한 이유를 들어볼까?”
고저가 없는 차분한 음성이었으나,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는 듯하다. 엘프들은 절제된 고요한 살기를 느끼고서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 중 한 명이 호흡을 정돈하고 한 걸음 다가왔다. 가슴에는 분대장의 직책을 상징하는 흉장이 붙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시선을 아래로 향한 채 입을 열었다.
“아가씨로부터 저희 일족의 사정을 들으셨으니 아시겠지만, 2황자의 수하들이 마을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들이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장로님을 인질로 잡으려고 하더군요.”
황성 경비대장, 아이반 로우스가 아리아를 구출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2황자의 수하들을 모두 척살했으나, 일족의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잠시나마 5황자 전하를 간사한 악의 무리로 오해하고 무기를 겨눈 점, 깊이 사죄드리겠습니다.”
다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엘프 분대장의 모습에 데시아의 표정은 조금 풀렸으나, 레이먼에 대한 깊은 충심을 가진 게슈타인은 여전히 얼굴이 굳어 있다. 살기를 흘리지는 않았으나 기세가 살벌하다.
“게슈타인. 과한 건 좋지 않다.”
“죄송합니다, 주군.”
충심이 깊은 건 좋지만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레이먼의 지적에 게슈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의를 감췄다. 적의를 해소한 게 아니라, 티가 나지 않게 감춘 것이다.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 하나, 다시는 내게 무기를 겨누지 마라.”
레이먼이 슬며시 기운을 끌어 올렸다. 일천의 기사들이 쌓아 올린 기세가 분출되었다.
“내가 자비로운 모습을 보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두 번은 없으니, 명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