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41)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41화
16장 세계수의 은인(2)
검과 마법의 축복. 조연 학살로 유명한 《망자들의 제국》 소설 속에서 리처드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기연이다. 그리고 레이먼은 지금 그 기연을 리처드로부터 빼앗으려 하고 있다.
축복을 내리는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의 석상은 세계수가 있는 심층 결계 안에 잠들어 있다고 실비아는 설명했다.
“바로 안내해드릴까요?”
“아니, 그전에 구해줘야 할 약초가 있다.”
축복을 받기 전에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다. 레이먼은 필요한 약초의 목록을 불러주었다.
‘초승달의 눈물’이나 ‘밤의 별’처럼 근처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종류는 아니었지만, 다행히 재고가 있는 것인지 실비아는 약초들을 금방 구해왔다.
굳이 물약으로 제조할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입에 넣고 씹었다. 쓴맛이 밀려 왔지만 못 참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지.”
섭취를 끝냈다. 이걸로 축복의 반발이 많이 줄어들 것이다. 레이먼은 실비아를 뒤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그녀가 심층 결계를 열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세계수를 지나쳐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서자 땅에 꽂힌 검 형태의 석상이 보였다.
레이먼은 이질적인 마나를 머금은 저 석상이 작가가 설정집에서 언급한 ‘검과 마법의 축복’을 내려주는 기연의 존재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게슈타인, 그리고 데시아.”
“주군의 명을 기다립니다.”
“하명하시지요.”
두 수하가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축복이 끝날 때까지, 그 누구도 나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해.”
이곳은 다른 엘프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심층 결계 속이다. 하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최소한의 대비는 해두는 게 좋았다.
“주군의 명을 받들겠나이다.”
“방패는 언제나 5황자 전하의 곁에 있을 거예요.”
게슈타인과 데시아의 답을 들은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석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석상과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요동쳤다. 리처드가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게 바로 눈앞에 있다.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의 마지막 축복, 이건 내가 가져간다.’
걸음을 멈추고 석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 거다.’
손이 닿는 순간 석상이 강렬한 기운을 쏟아냈다. 폭포처럼 쏟아져 나온 기운은 고스란히 레이먼의 몸속으로 흡수되었다.
‘시작됐다.’
레이먼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마나 소드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도록 축복에 의한 ‘강제적인’ 마나 로드의 개조가 시작된 것이다.
시작은 가벼웠다. 배탈이 난 것처럼 위장이 뻐근한 약한 통증이 시작이었지만 이내 통증은 심장으로 번졌다.
혈관이 막힌 것과 같은 답답함이 올라오는 것과 동시에 수백 개의 바늘이 심장을 난도질하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큭!”
그 고통이 전신으로 번지자 레이먼은 짧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검과 마법의 축복’은 축복이라는 고상한 이름과 달리 마나 로드와 육체의 재구성이었기 때문에 고통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5황자 전하!”
“친위대장님! 지금 가면 안 돼요!”
레이먼의 불안한 모습에 게슈타인이 깜짝 놀라서 달려가려 했지만 데시아가 막아섰다. 최상급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는 마법사답게 레이먼의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눈치챈 것이다.
그녀는 두 눈을 반짝이며 레이먼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살폈다.
고대의 방식으로 이뤄지는 육체의 재구성은 그녀에게도 큰 깨달음을 주었다.
시간이 남을 때 이걸 조금 더 분석한다면 꽉 막혀 있던 최상급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크윽!”
고통은 점점 심해져서 두 발로 서 있기 힘들 정도가 되었고, 레이먼은 비틀거리다 힘없이 쓰러졌다.
게슈타인은 당장에라도 달려가 부축하고 싶었지만 지금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데시아로부터 들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참을 수밖에 없었다.
“허억, 헉!”
쓰러져 거친 숨결을 토해낸다. 극심한 고통에 몸이 뒤틀리고 내장이 엉망이 되어 피를 토해냈다.
설정을 알고 있기에 미리 반발을 최소한으로 하고 고통을 억제해 주는 약초까지 섭취했음에도 이 정도였다. ‘맨몸으로 축복을 받은 리처드는 도대체 어떻게?’라는 생각이 문득 지나쳤다.
주인공 타이틀을 딴 게 단순히 작가의 사랑을 받아서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데시아 경. 도대체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가?”
게슈타인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벌써 3시간의 시간이 흘렀다.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는 데시아, 그리고 실비아와 달리 게슈타인은 안절부절못했다.
레이먼이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자 과묵했던 평소와 달리 과민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도 알 수 없어요.”
“도대체 확실한 게 뭔가?”
“하나 있지요. 지금 친위대장님이 5황자 전하께 가까이 가면 오히려 방해된다는 것 정도?”
데시아의 대답에 게슈타인은 불만족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그 모습을 보며 데시아는 이 자리에 청탑주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과묵하고 평소에는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게슈타인조차 이 정도인데, 호들갑스러운 청탑주가 있었다면?
상상만 해도 절로 한숨이 나온다.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어요.”
지금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호위를 서는 것뿐이다.
* * *
첫날, 하루 종일 고통에 시달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통은 더욱 심해졌고 온몸이 뒤틀리는 게 멈추지 않았다.
이틀째, 육체 재구성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설정집을 보기는 했지만, 그 이론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3일째 되는 날, 이제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괴로운 듯 숨넘어가는 소리만 계속해서 들릴 뿐이었다.
게슈타인은 입술을 계속해서 씹었고, 데시아도 초조한 듯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기만 했다.
실비아가 식사를 가져왔지만, 충성스러운 두 수하는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고 레이먼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레이먼이 축복을 받은 지 4일째 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함께 자리를 지키던 실비아가 갑자기 안색이 창백해져서는 심층 결계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30분 정도 있다가 돌아왔고 게슈타인과 데시아에게 어떤 소식을 전했다.
“지금 당장 도망쳐야 합니다.”
창백한 얼굴로 소식을 전하며, 실비아는 도망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데시아와 게슈타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친위대는 도망치지 않는다.”
“저도 5황자 전하의 곁을 끝까지 지키겠어요.”
충심 깊은 모습에 실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들에게는 설득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녀는 다시 모습을 감췄고 충직한 기사와 마법사의 수호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허억!”
비명에 가까운 외침을 내지르며 레이먼이 의식을 되찾았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뼈가 어긋날 정도로 수십, 수백 번 몸을 뒤틀었고 구토를 했지만, 지금은 새로 태어난 것처럼 개운했다.
“주군!”
“5황자 전하!”
육체 재구성이 끝났다는 걸 알아차린 게슈타인과 데시아가 달려왔다. 그들은 레이먼이 지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부축하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레이먼은 그들의 손길을 사양하고 단숨에 몸을 일으켰다.
전신에서 힘이 넘쳤다. 4일간 고통 속에서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숙면을 취한 것처럼 상쾌했다.
“주군, 신속히 푸른 숲을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방금 막 축복이 끝났는데 무슨 소리지? 레이먼이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자 이번에는 데시아가 입을 열었다.
“마을이 공격받고 있어요.”
“적의 소속과 규모는?”
“용병들로 추정되고 규모는 삼백 이상이에요.”
평범한 용병 삼백이라면 백금초 일족의 엘프 순찰대가 감당할 수 있는 전력이다. 하지만 결계를 뚫고 들어온 이들이다.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세계수의 결계다. 그걸 파괴한 이들인데, 과연 평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일단 심층 결계 밖으로 나간다.”
레이먼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백금초 일족의 마을에서 벗어나려면 일단 세계수가 있는 심층 결계 안에서 나와야 했다.
“제가 선도하겠습니다.”
“맡기겠다, 게슈타인.”
검을 뽑아 든 게슈타인이 앞장섰다. 심층 결계를 벗어나기 무섭게 보인 광경은 ‘지옥’이었다.
마을이 불타는 중이었고 엘프들이 용병들의 거친 손아귀에 잡혀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몇몇은 심한 꼴을 당하고 있기도 했다. 저들은 아직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도망갈 수 있을 테지만, 레이먼은 일순간 게슈타인의 뒷모습에서 망설이는 기색을 읽었다. 그가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이 살짝 떨리고 있다.
불의를 보면 참지 않겠다는 기사의 맹세와 목숨을 걸고 주군을 수호하기로 한 친위대장의 맹세 사이에서 짧은 순간 갈등하는 모양.
“주군, 제가 안전한 길로…….”
“친위대장 게슈타인.”
그는 곧 결정을 내렸지만, 레이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여기에 나의 깃발을 꽂아라.”
“주군, 적은 삼백 명이옵니다…….”
깃발을 드러낸다는 건 ‘참전’을 의미한다.
“하지만 백금초 일족의 엘프 순찰대와의 교전으로 그 수가 줄어들었을 터.”
“주군, 위험합니다.”
“필리어스 제국의 고위 기사는 일당백이라고 하였는데, 그건 잘못된 말이었나?”
이렇게 실비아를 잃을 수는 없다. 레이먼은 게슈타인을 가볍게 자극했고 그는 곧 결의를 다졌다.
“위험하면 바로 물러날 겁니다.”
게슈타인의 말에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가 되면 내가 친위대장의 말을 따르도록 하지.”
말을 마치며 레이먼이 피식 웃자 게슈타인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깃대를 바닥에 꽂고 깃발을 펼쳤다.
그제야 용병들의 시선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저거 황가의 깃발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제아무리 막 나가는 용병들이라고는 해도 황족은 두려운 존재였다. 보기 흉한 패악질이 일순간이지만 멈췄다.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와 신음을 제외하면 시간이 정지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요했다.
“그런데, 황군은 어디에 있지?”
“황군이 없으면 죽여도 되지 않을까?”
“대장, 어떻게 하죠?”
황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용병대장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 모든 게 함정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고민이 깊어지는 동안, 먼저 움직이는 이들이 있었다.
어둠 속에 숨어 날카로운 단검을 뽑아 드는 그들은 용병 따위가 아니었다. 검은 그림자에 속해 암흑의 길을 걷는 이들.
암살자.
“실드!”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데시아가 앞으로 손을 뻗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마나 실드가 날카로운 단검의 세례를 막아냈다. 동시에 레이먼이 두 손을 뻗어 마법진을 완성했다.
“아이스 레인!”
하늘에서 얼음이 쏟아져 내렸다. 상급 마법의 강력한 위력 앞에 열 명이 넘는 용병들이 저항조차 못 하고 쓰러졌다.
“누, 누가 공격한 것이냐!”
용병대장이 물었지만, 당연히 대답은 없었다.
그의 부하들이 아닌 2황자의 직속 수하들이 공격을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이제 일이 꼬였으니 그들도 살아남으려면 5황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죽여 버려!”
용병들의 살기가 레이먼에게 향했다. 먼저 움직인 이들은 용병 기마대였다.
용병대장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십의 기마대가 레이먼을 향해 창을 겨눴다.
“어디라고 창을 겨누는 걸까요?”
뒤편에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데시아가 마법 영창을 시작한 것이다.
용병 기마대가 속력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완성된 마법이 그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날카로운 얼음 파편의 습격에 말이 고꾸라지고 기마병들이 낙마했다.
“경지가 높은 마법사가 있다!”
“최소 둘 이상이다!”
용병들이 바쁘게 움직였으나, 레이먼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백금초 일족의 순찰대는 이 깃발 아래 집결하라!”
저항의 불씨를 키웠다. 근방에서 저항하고 있던 엘프 순찰대원들이 모여들었다. 그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남은 용병들과 한번 해볼 만한 숫자였다.
“놈들의 수는 많지 않다! 산개해서 돌격해라!”
기마대는 전멸했지만, 아직 용병들의 숫자는 많았다. 그들 중에서는 궁수들도 있었고 극소수에 중급이나 하급 정도에 불과하지만, 마법사들도 섞여 있었다.
“발사!”
하늘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용병 마법사들이 완성한 공격 마법이 허공을 꿰뚫었다.
데시아가 마나 실드를 펼쳤고, 5황자의 깃발 아래에서 재집결한 엘프 순찰대도 쉬지 않고 화살을 발사했다.
용병들 역시 엘프 순찰대와의 교전으로 남아 있는 수가 많지 않았다. 레이먼과 데시아의 마법에 그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끝이 아니었으니, 용병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새로운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