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42)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42화
16장 세계수의 은인(3)
필리어스 제국에서는 검은 산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비밀리에 건축한 요새가 몇 곳 있다. 알빈 요새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이곳은 요새치고는 규모가 작았지만, 거점보다는 훨씬 많은 숫자인 칠백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었다.
요새의 위치가 검은 산맥이다 보니 주둔 부대는 자주 바뀌더라도 언제나 경계는 삼엄할 수밖에 없다. 오늘도 경계 근무를 맡은 이들이 요새 성벽의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자네, 그 소문 들었는가?”
지루함을 참기 힘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어두운 밤의 침묵과 적막이 싫었던 것일까? 앞서 걷고 있던 콧수염을 기른 기사가 뒤따르는 중년의 병사를 보며 질문을 던졌다.
“무슨 소문을 말하는 것입니까?”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중장 돌격대가 검은 산맥에 진입했다는 소문 말일세.”
기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소문이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중년의 병사는 기억을 더듬은 끝에 교대하며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헛소문이 아닐지…….”
헛소문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중장 돌격대가 전투를 벌일 생각으로 검은 산맥에 진입했다면 최전방의 위치에 있는 이곳, 알빈 요새가 표적이 될 확률이 가장 높았기 때문이었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정예로 유명한 중장 돌격대와의 전투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헛소문일 리가 없지. 벌써 거점 여러 곳이 공격당했다고 하던데…….”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산악 용병대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교전이 있었다는 소문은 들었다. 하지만 부정하고 싶었다.
“두려운가?”
기사가 물었다.
“예, 두렵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패주하지 않는다는 그 철갑 괴물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으면 겁이 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중년의 병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는 두렵지 않다네. 생각해 보게나, 이름 높은 중장 돌격대를 격퇴하면 유명해질 걸세.”
신이 나서 떠드는 기사를 보며 중년 병사는 고개를 저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상대는 작위를 가지고 있는 기사다. 뒷말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네도 필리어스 제국의 병사가 아닌가? 두려움을 버리고 용맹함을 배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걸세.”
허허허, 하고 웃으며 기사는 앞서갔다. 중년의 병사가 짧은 한숨을 내뱉으며 뒤따라 걷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피융!
뭔가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기사의 목에 꽂혔다.
“기, 기사님!”
그걸 확인도 하기 전에 기사의 몸이 무너지듯 쓰러졌다. 중년의 병사는 깜짝 놀라 요새 성벽에 몸을 숨겼다.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였다. 평소라면 병사들이 지키고 있어야 할 망루도 비어 있었다.
아니, 비어 있는 게 아니었다. 망루로 향하는 계단에 쓰러져 있는 병사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목에도 화살이 꽂혀 있었다.
“고, 공격?”
차오르는 두려움을 간신히 떨쳐내고 성벽 위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그는 시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대열을 갖춘 채 요새를 향해 진군하는 수백의 군세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대체 무슨…….”
철그럭, 철그럭.
쇠가 마찰하는 소리가 성벽 위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누군가 경종을 울렸고, 요새의 마법사가 하늘로 마법의 빛무리를 쏘아냈다. 어둠이 걷히고 진군하는 군세의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들 역시 기습이 실패했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감추고 있던 깃발을 들어 올렸다. 그걸 확인한 중년 병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 중장 돌격대…….”
그들이 왔다.
* * *
용병들의 수준은 높지 않았다. 약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세계수의 결계를 어떻게 뚫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이십의 용병 기마대가 무너지고 곧이어 돌진해 오는 수십의 용병들에게 잔혹한 바람의 칼날을 선사해 주었다.
상급 마법에 엘프 순찰대의 엄호 사격까지 더해지자 용병들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갔고, 그제야 레이먼은 이들이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하다는 걸 확신했다.
“곧 진짜가 온다. 다들 준비해라.”
레이먼은 차분한 목소리로 수하들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그의 말대로 곧 진짜가 모습을 드러냈다. 용병들의 대부분이 쓰러지자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밤하늘처럼 검은색의 옷을 입고 있었다.
가면이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들은 누군가의 신호에 맞춰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그리고 깃발 아래 모여 있는 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엘프 순찰대원들은 그들을 향해 사납게 화살을 쐈지만, 레이먼은 저들 역시 미끼라는 걸 알아챘다.
“주군!”
깃발 바로 아래, 어둠 속에서 그림자들이 허공을 찢고 내려와 춤을 추듯 부드럽게 착지했다. 데시아가 마법을 영창하기도 전에 게슈타인이 먼저 움직였다.
게슈타인의 마나 소드가 검은 그림자들을 향해 쇄도했다. 푸른 궤적을 그리며 휘둘러진 검은 감히 5황자를 노리던 이의 목을 쳤다.
“쿨럭!”
핏줄기가 솟구치고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가 힘없이 쓰러지자 다른 이들은 어둠에 숨었다.
“하사신입니다!”
어둠 속에 녹아드는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그들이 하사신이라는 걸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게슈타인은 모두에게 경고했다.
밤의 공포라고 불리는 하사신의 출현에 엘프 순찰대원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하사신들이 은신한 틈에 레이먼은 엘프 순찰대원 한 명을 붙잡고 입을 열었다.
“실비아는?”
“아, 아가씨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원하는 대답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레이먼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앞서 걷는 자’라는 위명을 가지게 되는 실비아 플라티에, 그녀의 능력이라면 아직은 무사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많은 건 아니다.’
레이먼의 눈동자가 빛났다. 어떻게 하면 어둠 속에 숨은 이들은 단번에 끄집어낼 수 있을까?
짧은 고민 끝에 그는 조금 위험한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데시아! 실드를 펼쳐!”
대답을 듣지도 않은 채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녀라면 분명 명령에 따를 테니까, 확인은 필요 없다.
“실드!”
“파이어 레인!”
하늘에서 쏟아진 불의 비가 데시아가 펼친 마나 실드를 두들겼다. 불길은 사방으로 퍼졌고, 은신해 있던 하사신들도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수가 수십이었다.
“이런, 맙소사…….”
생각보다 하사신의 수가 많았다. 게슈타인은 욕설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아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게슈타인.”
레이먼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발끝이 닿을 때마다 땅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것은 뜨거운 불길을 머금은 곳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이 마법은…….”
공간을 지배하기 시작한 절대적인 냉기를 읽은 데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건 지금 5황자의 경지로는 완성하기 힘든 마법일 터. 그런데 지금 5황자 레이먼은 완성된 마법을 자유롭게 부리고 있었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
손을 뻗자 백색의 기운이 뭉쳐 검의 형상이 되었다. 일천 기사의 원념이 서린 영혼검이었다.
레이먼이 영혼검을 휘두르자 벼락이 치는 것처럼 하늘에서 백색의 전격이 쏟아졌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전격은 다시 은신한 하사신들의 몸을 태웠다.
“크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완전 은신 상태가 해제된 하사신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5황자의 마법 경지가 이렇게 높았었나?”
“보고와는 다른 것 같습니다.”
황급히 뒤로 물러난 하사신들이 술렁거렸다. 보고와는 다를 수밖에. 지금 레이먼은 마검사의 고유 마법인 마나 폭주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1조는 나와 함께 5황자를 친다, 나머진 흩어져서 친위대와 순찰대를 압박한다.”
예상 밖이었지만 지휘관은 빠르게 결정을 내렸고 수십의 하사신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약 20명이 넘는 이들이 게슈타인과 데시아의 앞을 막아섰다.
“주, 주군!”
게슈타인이 고위 기사라고는 하지만 외팔검의 숙련이 완벽하지 않아서 과거만큼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데시아와 엘프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십 명이 넘는 하사신을 단숨에 돌파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의 안타까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으나 레이먼은 여전히 여유롭다. 그는 그저 게슈타인이 있는 곳을 향해 슬쩍 시선을 보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대가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속삭이듯 말했으니 들리지는 않을 테지. 하지만 입가에 번지는 이 여유로운 미소를 확인했을 테니, 조금은 안심했기를 바랄 수밖에.
“뭐가 그렇게 여유롭나? 5황자.”
여유를 부리는 레이먼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하사신들 중 하나가 진한 살기를 담아 질문했다.
“설마 필리어스 황가의 혈통이 너를 지켜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지금 이곳에서 너를 지켜줄 사람은 없어.”
사방이 적이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하사신의 수만 해도 열 명이 넘는다. 그것도 평범한 용병이 아니라, 에드리거 왕국의 하사신이다.
‘평범한 상급 마법사였다면 두려움에 떨었을 테지, 그래……. 평범한 상급 마법사였다면 말이지.’
레이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의 전신에서 은은하게 퍼지기 시작한 살기를 읽은 하사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잽싸게 단검을 뽑아 투척했다.
검은 마나를 머금은 수십 개의 단검이 레이먼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하늘에서는 푸른 전격이 레이먼이 있는 곳을 향해 내려꽂혔다.
콰아아아앙!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솟구쳤다.
“해, 해치웠나?”
“상급 마법인 라이트닝 스트라이크를 사용했습니다. 거기다가 마나를 머금은 수십 개의 단검을 투척했으니, 살아남기는 힘들 겁니다.”
“그런가?”
하지만 뭔가 불길하다. 에드리거 왕국의 상급 마법사 또한 불길함을 느낀 것인지 마나를 운용하여 바람을 일으켰다.
흙먼지가 날아가자 강렬한 마나를 머금은 실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앱솔루트 실드라고?”
“말도 안 돼! 저건 최상급 마법 중에서도……!”
모두가 경악했다. 그 감정의 동요가 가라앉기도 전에 앱솔루트 실드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그 틈으로 레이먼이 달려 나왔다.
“근접전을 할 생각인가?”
“겁먹지 마라! 최상급 마법을 사용했다고는 하지만 놈은 마법사다! 근접전으로 가면 우리가……. 컥……!”
선두에서 부하들을 독려하던 하사신 조장의 머리가 차가운 바닥에 굴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조, 조장님!”
“이럴 수가!”
“저건 마나 소드다!”
더 큰 동요가 일어났다. 어떻게 마법사가 마나 소드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레이먼의 주위로 화염구와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생성되기 시작했으니, 그것은 누가 봐도 고대 시대의 전장을 누볐던 마검사의 모습이었다.
“이, 이건 대체…….”
“왜 마검사가 강한지 알고 있나?”
질문에 대답은 없었다.
“단순히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어서 강한 게 아니야.”
마검사만 사용할 수 있는 고유 마법, 마나 폭주와 효율 높은 강화 마법. 레이먼은 육체 재구성을 통해 두 마법을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 축복이라서 그런지 데이리안의 기억 조각 또한 조금 섞여 있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이제 막 마검사가 되었음에도 모든 마법에 최고의 효율을 자랑하고 있었다.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문답 무용.
하사신들이 살기 어린 눈동자를 빛내며 달려왔다. 레이먼은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검술이 더 매끄러워졌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육체의 재구성과 데이리안의 기억을 소화하면서 일천 기사의 경험 또한 함께 녹아든 것 같았다.
“크아아악!”
“괴, 괴물…….”
폭주로 인한 마나 소모는 극심했지만 그만큼 전투력이 향상되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하사신들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지만, 주위를 맴돌고 있던 화염구들과 얼음 조각들의 추격을 받아야만 했다.
“크아악!”
뒤로 물러난 이들의 목이 얼음 조각에 관통당했고 복부에는 화염구가 날아와 터졌다.
몸은 불에 타오르고 목에서는 피를 줄줄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며 레이먼은 그저 싸늘한 눈빛을 흩뿌리며 계속해서 영혼검을 휘둘렀다.
“지, 지원을 요청…… 커헉!”
“제기랄! 우리가 간다!”
다급한 지원 요청에 엘프 순찰대 쪽을 상대하던 하사신들이 움직이려고 했지만, 게슈타인이 가만히 놔줄 리가 없었다.
“놓아줄 것 같으냐!”
분노한 외팔 고위 기사의 마나 소드가 하사신의 목을 베었다. 데시아가 완성한 얼음의 창이 또 다른 하사신의 흉부를 관통했다. 엘프 순찰대 역시 목숨을 버릴 기세로 달려들었다.
5황자, 레이먼의 활약으로 기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버렸다.
“소각하고 물러난다!”
2조의 조장이 레이먼의 영혼검을 받아내며 다급하게 지시를 내렸다.
하사신들은 쓰러진 동료들의 시신에 뭔가를 뿌렸고, 곧 그곳에서 뜨거운 불길이 일어났다. 증거를 멸하고 물러날 생각인 것 같았다.
용병들의 시신에는 장난질을 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들에게 모든 죄악을 떠넘길 생각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