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45)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45화
17장 중장 돌격대(3)
목책이 불타 쓰러지고 나무로 만들어진 막사들도 화염에 잡아먹힌 채 무너지고 있다. 중앙에 찢어지고 꺾인 필리어스 제국의 깃발은 이곳이 그들의 거점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철그럭.
무거운 철갑의 마찰음과 함께 어둠 속에서 중무장한 병사들이 나타났다.
기사 수준의 무장을 자랑하는 그들은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중장 돌격대였다. 그들의 소속을 상징하는 선봉기가 대열의 중심에서 세차게 펄럭였다.
“이걸로 이 거점도 전멸인가?”
지휘관 계급을 나타내는 흉장을 패용한 장교가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파괴된 거점을 훑던 그의 시선이 마침내 광장 중앙에 포박된 채 모여 있는 포로들에게 향했다.
“뭐지? 포로들인가?”
“예, 전투 중에 살아남은 이들입니다.”
“나는 분명 포로를 만들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이건 몰살을 뜻하는 명령이며,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뜻이기도 하다. 부사관, 자네의 이해력은 고작 이 정도였나?”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부사관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변명으로 들릴 게 분명했기에,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모든 것이 고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몰살의 명을 받고 전투를 수행하더라도 운이 좋아 살아남는 이들은 생길 수밖에 없다.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그들 모두를 처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적어도 제19중장 돌격대의 선임 부사관은 그렇게 생각했다.
“부사관, 지금 귀관은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살아남은 이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지?”
지휘관의 물음에 부사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간단한 문제의 해결책을 떠올리지 못하다니, 위대한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정예로 손꼽히는 중장 돌격대의 위명에 금이 가는 일이 분명하지만, 이번만은 특별히 알려주겠다.”
지휘관은 말을 마치며 포로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중갑을 입었다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으로 검을 뽑아 포로의 목을 베었다.
“커, 커흑!”
“이렇게 하면 된다.”
“지, 지휘관님……. 아무리 그래도 전투가 끝난 상황에서 죄 없는 포로를 처형하는 건…….”
“자네는 이틀 전에 보충된 병력이라서 잘 모르나 보군.”
다른 병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든 채 포로들을 향해 다가갔고, 지휘관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부사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는 검은 산맥에 진입한 이후, 계속 이렇게 해왔다네.”
그리고 처형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은 부대의 보충 명령을 받고 이틀 전에 합류한 부사관이 익숙해지기에는 너무나 잔혹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이들의 죄가 왜 없는가?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적국을 수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죄악이렸다.”
지휘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 * *
“5황자 전하를 다시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황군, 그리고 떨어져 있던 친위대와 합류했다.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가 그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예를 갖추었다.
“계획은 어떻게 됩니까?”
다음으로 다가온 이는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계획의 존재를 물었다. 레이먼은 씨익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일단 검은 산맥으로 가자.”
중장 돌격대가 알빈 요새를 파괴했다. 이제 그들의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이쯤에서 물러나는 것이고, 남은 하나는 다른 거점이나 요새를 추가로 공격하여 검은 산맥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검은 산맥에는 마물들이 많다는 특성 때문에 대규모 병력의 결집이 힘들다. 보급선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었다.
소수 정예인 중장 돌격대가 날뛰기 적합한 환경이다. 이왕 남하한 김에 최대한 뒤흔들고 물러날 가능성이 컸다.
지금까지 요새와 거점들을 파괴하는 양상만 봐도 그들의 속셈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점령의 의지는 없으며 철저하게 파괴에만 중점을 두었으니, 크게 피해를 입히고 나서야 물러날 생각이 분명했다.
“북동부 국경군의 사령관이 별동대 역할을 맡을 3백의 병력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말했다. 3백이면 제국의 황자가 이끌기에는 적다고 볼 수도 있는 숫자였지만, 중장 돌격대가 검은 산맥을 휩쓸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국경군이 레이먼에게 따로 붙여 줄 수 있는 한계 또한 3백이었다.
도합 5백을 넘는 병력이 갑자기 검은 산맥으로 북진한다면 자유 이시리아 왕국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외교적인 항의는 당연할 것이고, 최악의 경우 군사적인 무력 도발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모두 궁병으로 준비하라고 해.”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적탑주가 확인차 물었다. 필리어스 제국은 하이펠 제국이나 자유 이시리아 왕국과 달리 산악전에 능한 병과가 없었다.
하이펠 제국은 우수한 레인저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자유 이시리아 왕국은 경험 많은 산악 용병들을 고용하고 있다.
적탑주가 보기에 지원병 3백을 모두 궁병으로 채우는 건 좋지 않아 보였다.
궁병은 근접전에 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는데, 검은 산맥에서는 근접전이 벌어질 확률이 높았고 궁병의 최대 효율을 발휘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힘든 지형이 대부분이었다.
“적탑주, 경이 우려하는 일은 없을 걸세. 그러니까 궁병 3백을 준비하라고 해.”
“5황자 전하의 명을 전달하겠습니다.”
적탑주는 레이먼의 판단을 믿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몇 걸음 물러나 품속에서 연락용 수정구를 꺼내 북동부 국경군 지휘부와 마법 통신을 연결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5황자, 레이먼의 옆으로 복귀했다.
“5황자 전하의 명을 전달했습니다. 국경군에서 가장 뛰어난 궁병 3백을 준비해 놓겠답니다.”
지원 병력의 숫자를 늘려주고 싶었으나, 그건 사정상 불가능에 가깝다. 북동부 국경군 지휘부에서 해줄 수 있는 최선은 3백의 병력을 최대한 정예병으로 편성해 주는 것 정도였다.
“국경으로 간다.”
황군이 속력을 높였다. 다음날, 그들은 예정대로 국경에 도달했다.
북동부 국경군 지휘부의 장교들이 모두 나와 3백의 궁병들의 지휘권을 인도하면서 5황자, 레이먼을 배웅했다.
“5황자 전하! 믿고 있습니다!”
“부디 조심하셔야 합니다!”
지난 행적 덕분에 북동부 국경에서 레이먼에 대한 우호도는 깊었다. 그들과 관계가 깊은 크레이어 후작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은인 관계가 된 것도 큰 이유였다.
모든 지휘관과 장교들이 진심으로 레이먼의 무사 귀환을 빌었고, 그들의 기원을 받으며 5황자군은 검은 산맥으로 들어섰다.
“전방 1km 지점에 다수의 오크 무리가 보여요.”
바람의 정령들의 정찰 결과를 실비아가 전했다. 검은 산맥에 진입하면서 그녀의 진정한 가치가 개화했다.
바람의 정령을 이용한 정찰과 길 찾기는 모두를 놀라게 만들 정도였다.
궁병대의 장교들과 카시야스는 처음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정찰병들을 보내서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거듭 확인한 뒤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그녀의 선도에 따랐다.
“여기서 우회해야 할 것 같아요. 앞에 오우거 무리가 있습니다.”
그녀는 일족의 은인, 레이먼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기 위해 안색이 창백해질 정도로 바람의 정령을 활용한 정찰을 이어나갔다.
보다 못한 데시아가 휴식할 것을 권한 뒤에서야 그녀는 짧은 휴식을 취했다.
앞서 걷는 자, 실비아 덕분에 5황자군은 검은 산맥에 진입한 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물 무리와 단 한 번도 마주치지 않고 전투력을 보전했다.
“300m 정도 전방에 ‘인간’들이 있습니다. 정령들의 말을 들어보니 모두 5백 명 정도에 무거운 중갑으로 무장하고 있다고 하네요.”
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중장 돌격대의 뒤를 잡았다.
“기회입니다.”
“지금 당장 기습해야 합니다.”
황군과 국경군 궁병대의 장교들은 승산을 조금이라도 끌어 올리려면 지금 당장 대대적인 기습 공격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었다.
우수한 전력을 가진 적들을 상대로 승전하려면 기습 공격이 최적이다.
하지만 레이먼은 단순한 기습 공격만으로는 4백의 병력이 5백의 정예 중장 돌격대를 상대로 완전한 승전을 거두는 게 힘들다고 생각했다.
“단순 기습으로는 승산이 없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해.”
레이먼은 단호하게 말했다.
“다른 방법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궁병대의 지휘관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5황자를 보필한 두 탑주와, 그들보다는 적은 시간을 모셨지만 그동안 5황자의 활약을 지켜본 카시야스는 그 어떠한 것도 묻지 않았다.
5황자에 대한 깊은 신뢰와 강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굳이 질문하지 않은 것이다.
“간단한 설명 정도는 필요하겠지.”
레이먼은 짧은 혼잣말을 끝내고 중장 돌격대를 격파할 계획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짧은 설명이었고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레이먼에게 향하는 궁병대 지휘관과 장교들의 눈빛이 변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크레이어 후작 각하의 말씀이 사실이었나?’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유령 부대를 격퇴한 게 단순한 운은 아닌 모양이군.’
5황자, 레이먼이 검은 산맥에서 활약한 소문은 국경 지대에서도 무성했다.
국경군의 지휘관들과 장교들도 그 소문을 어느 정도 믿고는 있었지만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평가를 고칠 수밖에 없었다.
‘5황자에 대한 소문은 진짜다!’
과장하기 좋아하는 귀족들이 자신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퍼트리곤 하는 허황된 소문과는 달랐다.
‘이분은 뭔가 다르다.’
5황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어렴풋이 느끼기는 했지만, 그에게서는 일반적인 황족과 귀족들에게서 볼 수 있는 오만함과 같은 기분 나쁜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은은하게 주위를 지배해서, 지휘관들과 장교들은 자신도 모르게 동화되고는 했다.
“계획은 대강 숙지했나?”
“예! 확인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계획을 실행하도록 하겠다.”
이윽고 레이먼의 시선은 청탑주, 리세필드에게 향했다.
“노인장, 기후 마법 가능하지?”
기후 마법에 필요한 최소한의 경지는 최상급이다. 고위 마법사인 리세필드라면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가 있다면 극심한 마나 소모일 터였다.
“시전 범위에 따라 소모되는 마나의 차이가 큽니다. 어느 정도의 범위를 원하시는지요?”
아니나 다를까, 리세필드는 마나 소모를 문제로 삼았으며 범위에 대해 질문했다. 레이먼은 원하는 범위를 간단하게 설명했고 리세필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5황자 전하, 그 정도의 범위에 기후 마법을 사용하면…….”
“불가능한가?”
“가능은 합니다만, 제가 말라비틀어지겠지요.”
“나쁘지 않군. 이대로 진행하도록 하지.”
“5황자 전하!”
리세필드가 고음의 비명을 질렀지만, 레이먼은 씨익 웃으며 계획을 진행했다.
그날 밤, 베레누스가 실비아와 함께 제19중장 돌격대의 야영지로 향했다.
“어떤 마법이 적당할까…….”
제19중장 돌격대의 야영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서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섬뜩한 살기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레이먼은 그에게 중장 돌격대를 공격하여 도발하고 유인할 것을 주문했으니, 적당히 피해를 입히면서도 발각되기 전에 잽싸게 몸을 뺄 수 있는 마법이어야 한다.
고위 마법은 마나의 유동이 커서 주문 영창 과정에서 발각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기각. 그렇다면 상급이나 최상급 단계의 마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최상급 마법으로 한 방 먹이는 게 좋겠군.”
고민은 끝났고 그는 결정을 내렸다. 이제 ‘신호’인 비가 내리기를 기다리면 된다.
“적탑주님…….”
“나도 알아. 슬슬 시작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적탑주의 붉은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고 그의 오른손엔 어느새 유일 마도구, 화염 소나기가 들려 있었다.
“한 방 간다.”
주문을 영창하며 화염 소나기를 흔들자 순식간에 최상급 마법이 완성되었다.
“크아아악!”
“뭐, 뭐야!”
“적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한 하늘에서 갑자기 화염 세례가 쏟아지자 중장 돌격대 군사들의 당황한 목소리가 베레누스가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피해는 크지 않았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에서도 정예로 손꼽히는 이들답게 마법사들이 신속하게 나서서 실드를 전개했기 때문이었다.
“우리 위치를 눈치챈 것 같나?”
베레누스가 실비아를 향해 물었다. 유인을 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기척을 흘릴 필요가 있었다.
“지금 물러나면 될 것 같아요.”
적 마법사들의 탐색 마법의 마나가 뺨에 닿는 게 느껴졌다. 실비아의 말에 베레누스도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중장 돌격대의 추격대가 따라붙었지만 베레누스와 실비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날, 이번에는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 실비아와 함께 제19중장 돌격대의 야영지에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