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49)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49화
18장 승전 귀환자(3)
기분 나쁜 악몽이었다. 끔찍한 촉감의 촉수들에게 이끌려 깊은 어둠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악몽이었다.
빙의 전에도 그랬지만 악몽에서 깨면 처음 드는 감정은 꿈이 현실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이어진다.
“단순한 악몽에 불과한 것일까…….”
소설 속 엑스트라, 레이먼의 몸에 빙의하고 난 이후 촉이 좋아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자주 있었다.
이런 소름 끼치는 악몽은 처음이었으나,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는 불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불길함을 쉽게 놓을 수 없었다. 여기는 아직 국경의 최전방 요새다.
어제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용병 기마대와의 마찰도 있었으니, 갑자기 그들이 미친 척하고 군세를 이끌고 와 요새를 공격한다는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가봐야겠다.’
황급히 제복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섰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친위대원의 시선이 닿았다.
“5황자 전하?”
“잠이 안 와서 말이지. 잠시 산책이나 할 생각이다.”
“수행하겠습니다.”
친위대원이 신호를 보내자 복도에 있던 다른 친위대원 둘이 뒤따라 붙었다.
국경의 최전방 요새다 보니 게슈타인은 경호에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늦은 밤에도 레이먼의 침소 주변에는 적지 않은 수의 친위대원들의 배치되어 있었다.
건물을 나와 성벽 위로 올라갔다. 망루에서 성벽 너머를 경계하고 있던 병사들이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보였다.
레이먼은 성벽을 따라 차분히 발걸음을 옮겼다. 친위대원들은 말없이 뒤따르며 호위를 수행했다.
찬바람이 불길한 기운을 걷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처음 악몽에서 깼을 때만 해도 개운치 않았지만, 성벽로를 따라 걸으며 차가운 공기를 쐬니 기분이 나아졌다.
“슬슬 돌아갈까?”
혼잣말에 가까운 작은 음성이었지만 친위대원들은 용케 알아듣고서 먼저 움직였다. 침소로 돌아가는 길, 하늘에서 푸른 로브 자락을 휘날리며 데시아가 천천히 내려왔다.
“5황자 전하, 여기 계셨습니까? 찾고 있었어요.”
데시아의 다급한 목소리와 표정은 잠시나마 옆에 치워두었던 불안감을 다시 키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수하들 앞에서 그런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조심스럽게 감춘 채 입을 뗐다.
“이 새벽에 무슨 일이야?”
“황성에서 긴급 호출이에요.”
“황성에서?”
불길한 예감이 어느 정도 들어맞는 것 같다.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예, 황성에서 긴급히 5황자 전하를 찾고 있어요. 지금 즉시 요새의 밀실로 이동하여 통신 마법에 응하셔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인지는 모르고?”
“전달받은 게 없어요. 제가 질문을 해도 황성의 최상급 마법사는 오직 5황자 전하만 찾고 있어요.”
데시아의 반응만 봐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레이먼은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는 잠들어 있던 요새 지휘관을 깨워서 밀실로 안내받았다.
친위대원 셋이 밖에서 엄중하게 입구를 지켰고 데시아는 연락용 수정구를 꺼내 설치했다.
“연결할게요.”
고개를 끄덕이자 데시아가 연락용 수정구에 천천히 마나를 불어 넣었다. 장거리 통신이라 그런지 꽤 많은 마나를 주입해야만 했다.
이윽고 충분한 마나를 먹어치운 연락용 수정구에 붉은 로브를 입은 황성의 최상급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속을 밝히시오.
“5황자, 레이먼 필리어스다.”
대답과 함께 오른손에 끼고 있는 필리어스 제국 황가의 반지를 보여 주었다.
-5황자 전하를 뵙습니다.
황성 마법사가 고개를 숙였다. 정중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서두르는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불안감이 다시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긴급한 사항이라고 들었다. 어서 말해보라.”
목소리가 떨렸다.
‘변수가 작용한 것일까? 모르고 있던 사건이 하나 있었나? 지금 이 시기에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뭐가 있었을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의 정리를 힘겹게 끝났을 때, 황성의 최상급 마법사가 천천히 입을 열고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위독하십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황성의 최상급 마법사가 긴급 연락을 요청할 정도라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시기에 황제가 위독하다는 건 암황, 은둔 칼날과 목숨을 건 결전까지 벌이면서 늦추려고 했던 ‘피의 장례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의미했다.
‘과연 나는 준비되어 있는가?’
소설 속의 커다란 분기점을 가져오는 ‘피의 장례식’에서 레이먼 필리어스는 목숨을 잃을 운명이었다.
그 운명을 거부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세력을 모았다.
본래대로라면 주인공과 함께해야 할 3명의 인재. 외팔의 게슈타인, 절대 방어의 데시아, 그리고 앞서 걷는 실비아를 손에 넣었으며 편성한 친위대 또한 결코 무력의 수준이 낮지 않았지만 ‘피의 장례식’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북부에 계속 있을 수는 없다.’
긴급 연락이 왔다는 건 황제의 부름을 뜻했고, 그걸 거부하고 북부에 남아 있다가는 후에 황위를 이어받을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또한, 피의 장례식의 칼날이 비켜 간 유일한 황족이 될 테니, 최악의 경우에는 내통자로 찍힐 가능성도 있다.
-황제 폐하께서 마지막으로 5황자 전하를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이것은 필리어스 제국의 마법과 의술, 그리고 연금술로는 더 이상 시간을 벌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는 걸 의미했다.
“시간은 얼마나 있지?”
-5황자 전하께서 북부에서 돌아오실 때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 이상은 힘듭니다.
“최대한 빨리 출발하겠다.”
-지금 즉시 행동하셔야 합니다. 최소 인원으로 출발하셔야 합니다. 각 지방에 주둔한 중앙군이 교대로 5황자 전하를 호위할 예정이니, 안전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다.”
마법 통신이 끝나고 밀실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5황자 전하…….”
“데시아, 모두를 깨워라. 지금 즉시 수도로 간다.”
* * *
최소 인원으로 출발했지만, 황성의 마법사가 약속한 대로 중간 지점에서 합류한 중앙군이 호위를 맡았다.
합류한 호위들의 군용마들이 지칠 때 즈음이면 그들은 이탈하고 다른 지역의 중앙군이 새로이 합류하여 호위를 맡았다.
군용마를 교체하면서 쉬지 않고 말을 달렸다. 하루에 4시간, 부족한 잠을 자는 시간이 아니면 말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식사도 수도로 향하는 말 위에서 육포와 마른 과일을 씹으며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수도에 도달했다.
“황성 경비대의 깃발입니다.”
청탑주, 리세필드가 말했다. 이곳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 일백의 기마대는 그의 말대로 황성 경비대가 분명했다. 그들을 상징하는 깃발이 세찬 바람에 부딪혀 펄럭이고 있었다.
“황성 경비대장, 아이반 로우스입니다. 5황자 전하를 황성까지 신속하고 안전하게 모시라는 황명이 있었습니다.”
아이반과 합류한 레이먼은 곧장 황성으로 향했다. 수도의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내성과 황성으로 향하는 도로 또한 통제하는 것인지 그 어떤 방해 없이 황성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모시겠습니다.”
차분한 음성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이는 일루전 자작이었다.
“황궁으로 모시겠습니다.”
말에서 내려 쉬지 않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레이먼은 황제가 머무르는 황궁에 도착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일루전 자작이 재촉했다.
“친위대분들은 이곳에 남으셔야 합니다!”
뒤따르려는 게슈타인과 친위대원들을 황궁 기사들이 막아섰다. 본래라면 친위대장인 게슈타인 정도는 동행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황제의 생명이 위태로운 특수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게슈타인은 항의를 하려 했고, 레이먼은 그를 보며 고개를 살짝 젓는 것으로 그 행동을 막았다.
황궁은 넓었다. 황제의 침소 또한 먼 곳에 있었다. 최대한 서두르고 있었지만 마음속은 깊게 타들어 가고 있었으며, 급한 마음에 몇 번이나 넘어질 뻔했다.
“저는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황제 폐하를 알현하시지요.”
일루전 자작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세 걸음 뒤로 물러났다. 레이먼은 침소가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과 5m 앞에 황제의 침소가 있었고, 로열가드 두 명이 굳게 닫혀 있는 문을 엄중히 지키고 있다.
바닥에 붙어 있던 발걸음을 뗐다. 침소의 앞에 다가가 서자 로열가드 둘이 천천히 문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로열가드의 착잡한 음성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소 안으로 들어갔다.
깨끗하고 절제된 화려함이 느껴지는 침소에 들어서기 무섭게 악취가 코끝을 찔렀다. 눈살이 찌푸려지기보다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건 죽음의 냄새다. 사신이 다가왔다는 것을 알리는 기척이며 끝을 고하는 안식으로 향하는 길이다.
“왔느냐…….”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침상에 누워 있는 황제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 입고 다니는 금색의 화려한 제복이 아니라 잠옷에 가까운 백색의 편안한 옷차림이었다. 조금 전에 환복을 한 듯 깔끔했지만, 여기저기가 조금씩 붉게 물들고 있었다.
황제는 죽어가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예의를 갖추었다.
“가까이 오거라.”
황제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냈다. 처음 북부로 출발할 때만 해도 늙기는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은 살아 있는 해골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말랐다.
“예, 황제 폐하.”
“앞이 잘 보이지 않는구나.”
시력마저 기능을 거의 상실한 모양이다. 레이먼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울컥 올라오려는 것을 참아냈다.
“황제 폐하, 제가 선봉기를 가져왔나이다.”
품속에 접어 넣어두었던 자유 이시리아 왕국, 중장 돌격대의 선봉기를 꺼냈다.
본능적으로 그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꼈으니, 조금이라도 기운이 나게 해주고 싶었다.
황제는 선봉기를 향해 시선을 가져갔다. 하지만 보이지 않았다.
희뿌옇게 깃발의 형체만 간신히 보일 뿐이었다. 그건 막내아들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에 힘을 줘도 시야는 회복되지 않았다.
“장하다, 장해.”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레이먼, 나한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다.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고개를 저었지만.
“거짓말에 서툴구나.”
“황제 폐하…….”
“시간이 많이 없다, 레이먼……. 그러니 내 말을 들어주렴.”
“경청하고 있습니다.”
황제의 말을 조금이라도 더 새기기 위해 한 걸음 더 앞으로 다가갔다. 황제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네 어미, 3황비 바이올렛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느냐?”
설마 황제의 입에서 3황비의 일이 언급될 줄은 몰랐다.
“병으로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작가의 설정집을 본 탓에 모든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황제가 직접 말할 수 있도록 애써 모르는 척했다.
여러 복잡한 감정이 혼잡하게 얽힌 상태라 표정 관리가 힘들었지만, 다행히 지금 황제는 시력을 대부분 잃었으니, 레이먼의 표정을 자세히 살필 수 없었다.
“바이올렛은 병으로 죽은 게 아니란다, 레이먼…….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 때문에 죽은 것이야.”
황제의 설명이 시작되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온 탓에 횡설수설에 가까웠지만, 듣고 정리하는 게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3황비 바이올렛 필리어스는 현 황제를 대신해 독에 중독되었고 끝내는 목숨을 잃게 되었다. 짧게 정리한 내용이었다.
설정집을 봤기 때문에 모든 걸 알고 있어서 특별히 놀라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황제가 속죄를 말할 시간을 주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미안하다, 레이먼……. 모든 게 다 내 잘못이다. 네가 5년 동안 5황자궁에만 있었던 것도 모두 내 탓이다. 네가 잘못한 건 없다. 나는 바이올렛 덕분에 새 생명을 얻었지만 너는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었구나…….”
황제는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복잡한 설정집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망자들의 제국》 소설 속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건 주인공, 리처드의 이야기다.
그래서 피의 장례식 이전의 필리어스 제국의 일은 비중이 크지 않았고, 소설 속에서 서술되는 내용도 거의 없다.
‘아니, 어쩌면 이것 또한 변수인가?’
빙의를 하게 되면서 5황자 레이먼은 더 이상 망나니가 아니게 되었으니, 그로 인해 황제의 감정 또한 변했을 수도 있다.
“레이먼, 내가 미안하구나. 너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빼앗았어…….”
황제가 다시 한번 사죄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늙고 병들긴 했지만, 위엄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황제는 죽음을 앞에 두고 약해진 ‘아버지’에 불과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이미 아버지를 용서했습니다.”
“아버지라……. 몇 년 만인지 모르겠구나……. 정말 고…… 맙……다…….”
황제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힘없이 감긴 두 눈을 그는 다시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