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50)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50화
19장 제국이여, 준비하라(1)
로널드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가 독에 중독되어 목숨을 잃었다. 본래라면 혼란이 없어야 정상이거늘, 후계를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황제가 목숨을 잃은 게 혼란의 가장 큰 이유였다.
독에 중독되고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시간은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늙은 황제는 후계를 결정할 정도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후계의 결정을 망설였다.
‘황제는 자신을 중독시킨 배후에 황자 중 한 명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황제는 늙고 병들었지만, 이성만큼은 날카로웠다. 중독되어 정신이 온전치 못한 상태에서도 최대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후계를 미뤘다.
“대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5황자궁의 정원을 산책하고 있던 레이먼은 답답한 마음에 한숨 섞인 혼잣말을 뱉어냈다.
설정집과 소설 속 서술에서 피의 장례식은 큰 분기점인 게 분명했다.
하지만 주인공 리처드의 시점으로 소설이 진행되기 때문에 그가 완전히 몰락하고 분열되기 시작한 필리어스 제국에 진입하기 전의 이야기, 즉 피의 장례식에 대한 자세한 서술은 없었다.
설정조차도 대강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 정도만 언급할 뿐, 이 치열한 암투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주군, 뭔가 이상합니다.”
공기가 유난히 스산하다. 게슈타인은 심상치 않은 흐름을 읽고 검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그의 눈동자가 어두운 정원을 빠르게 훑었다.
“친위대원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는군.”
게슈타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레이먼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느새 그의 오른손에도 백색의 기운이 맺혀 검의 형상을 보이고 있었다.
“적의를 품고 온 게 아니니, 검은 거둬주시길.”
어둠을 찢고 갈라진 공간에서 붉은 제복을 갖춰 입고 콧수염을 기른 중년의 남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궁정 회의에서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그는 남부의 망나니로 유명한 포타스 백작일 터.
“포타스 백작?”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군요. 영광입니다, 5황자 전하.”
“다른 이름으로 불러줄까?”
설정집을 봤으니, 그의 비밀스러운 정체도 알고 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포타스 백작의 입꼬리가 살짝 꿈틀거렸다.
“그냥 추측일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중앙정보국장이라는 자네의 위치가 노출된 건 아니니까.”
“시작부터 제 약점을 하나 잡으셨군요.”
“굳이 약점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레이먼은 피식 웃었다. 그나저나 포타스 백작이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온 이유가 궁금했다.
은신을 해제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나타낸 걸 보면 처음부터 중앙정보국장이라는 직책을 드러낼 생각이었다고 봐도 좋았다.
“황명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
황명.
현재 황좌는 비어 있다. 그렇다는 것은 선대 황제, 로널드가 죽기 전에 남긴 명이겠지.
“말해보라.”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순간 포타스 백작의 시선이 게슈타인에게 잠시 머물렀다.
“내 직속 친위대장이다. 괜한 의심은 삼가라.”
“그렇다면 이것을 전하겠습니다.”
포타스 백작이 품속에서 뭔가를 꺼내 건넸다. 화려한 금빛 문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봉투였다. 붉은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는데, 단순히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마법의 존재도 느껴졌다.
그 시선을 눈치챈 것인지 포타스 백작은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5황자 전하만 열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저 역시도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 모릅니다.”
봉투를 받아든 레이먼의 눈동자가 빛났다. 붉은 밀랍의 봉인을 깨고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작은 물체가 레이먼의 손바닥 위에 떨어진 순간, 그것을 알아본 포타스 백작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그 내용물이란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를 상징하며 황제의 모든 권력을 담은 ‘고요한 절대자’였으니까.
필리어스 제국에 유일하게 남은 전설 마도구이기도 한 ‘고요한 절대자’에는 여러 기능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특별한 하나는.
‘후계 지정.’
다음 주인을 지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슈타인과 포타스 백작의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황제가 이걸 자신에게 남긴 순간부터 이미 전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확정 절차가 필요했다.
레이먼은 ‘고요한 절대자’에 마나를 주입했고 그 순간 반지가 반응하며 황금빛 마나를 흘렸다.
두 빛깔의 마나는 허공에서 춤을 추더니 이내 반지에 흡수되었다. 마나의 춤에 현혹된 시선을 다시 내렸을 땐 어느새 오른손 중지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
“필리어스 제국의 새로운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포타스 백작과 게슈타인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각인 절차를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레이먼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설마 황제가 나를 후계로 지정했을 줄이야.’
원래대로라면 ‘피의 장례식’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었어야 할 레이먼. 그의 몸에 빙의하고 주인공의 기연을 하나씩 뺏으면서 시작된 작은 변화가 나비효과가 되어, 결국에는 레이먼을 황제로 만들었다.
“당장 로열가드를 호출하겠습니다. 그리고 즉위식 준비도 서두르겠나이다!”
“잠깐!”
홀린 사람처럼 움직이는 포타스 백작을 레이먼이 멈춰 세웠다. 아직은 새로운 황제의 등장을 알릴 때가 아니다. 레이먼이 새 황제가 된 상태에서 장례식에 참석했다가는 피의 장례식을 거행하는 적들의 보기 좋은 표적이 될 것이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포타스 백작.”
“으음, 알겠습니다.”
중앙정보국의 수장을 맡고 있는 포타스 백작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그는 아직 때가 아니라는 레이먼의 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포타스 백작, 우선 즉위식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문제가 있다네.”
“역적들을 찾는 것이옵니까?”
“그렇지. 아주 잘 알고 있어.”
1황자나 2황자, 혹은 3황자를 후계로 지정하지 않은 것만 봐도 황제와 중앙정보국은 최소한의 정보는 가지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물론 그게 어느 정도인지는 현재 레이먼의 시점으로는 알 수 없지만, 그거야 보고를 받으면 되는 일이다.
“중앙정보국이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말하라.”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응접실로 들어가지. 게슈타인이 주변을 잘 단속할 것이야.”
“고위 기사의 경계라면 믿을 만하지요. 그리 하겠습니다.”
이윽고 응접실에 도착하자 포타스 백작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레이먼에게 보고했다.
불과 30분 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지금 레이먼은 필리어스 제국의 황위를 정당하게 계승한 황제였다.
그의 명령은 곧 황명이요, 필리어스 제국에 충성을 바치기로 맹세한 포타스 백작에게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1황자 전하께는 의심이 될 만한 정황이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3황자 전하는 에드리거 왕국과의 연결점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데네브 형님은?”
“2황자 전하도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심증뿐이었지요. 저희는 물증을 잡지 못했습니다.”
에드리거 왕국과의 연결은 2황자가 메인이다. 그런데도 중앙정보국이 물증을 찾지 못했다는 걸 보면, 2황자 데네브가 얼마나 용의주도한 인물인지 알 수 있다.
심증조차 없었다면 황위를 이어받는 건 2황자가 되었겠지.
1황자 같은 경우에는 본인은 타국과의 연결이 없었지만, 그의 휘하의 귀족 중 하나가 관계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1황자에게 황위가 계승되었을 테니까.
포타스 백작의 설명은 계속되었고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1시간 만에 모든 보고가 끝났지만, 레이먼은 전혀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설정집을 본 덕분에 절반 이상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필리어스 제국 중앙정보국이 황제 폐하의 명을 기다립니다.”
포타스 백작의 말에 레이먼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어떻게 하면 피의 장례식을 피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 봤지만,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3황자를 칠 수는 있겠지만 2황자를 함께 도모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3황자만 쳐내면 2황자는 더 깊은 어둠으로 숨겠지.’
그건 바라는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은 깊어졌다.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다.
“포타스 백작.”
“예, 황제 폐하. 저와 중앙정보국은 황명을 받들 준비가 끝났습니다.”
오직 황제만을 위해 움직이는 중앙정보국, 그 수장의 태도를 보고 있으면 당장은 비공식적이지만 정말 황제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감시를 계속 유지하며 내게 보고하되, 개입하지는 말라.”
전 황제의 장례식은 피할 수 없다. 그곳에서 일이 터지는 걸 막을 수 없다면 2황자와 3황자를 감시하여 그들의 움직임을 사전에 파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5황자 시절이었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게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비록 쇠락했다고는 하나 필리어스 제국의 정보를 담당하는 중앙정보국이 황명에 따르고 있다. 그러니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 확보하는 건 가능할 것이다.
“중앙정보국이 지엄한 황명을 받듭니다.”
의문의 여지가 있을 만한 명령이었다. 하지만 필리어스 제국과 황실에 충성을 맹세한 포타스 백작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그 어떤 의문을 품지도 않았으며, 그저 고개를 숙이며 황명을 받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그리고 지금 당장 현 로열가드의 수장을 맡고 있는 블리자드 후작을 불러오라.”
피의 장례식 이전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된 건 긍정적인 변수였다. 당장 세울 수 있는 대책의 폭이 훨씬 넓어졌으니까.
“로열가드는 황제 폐하의 부름에 기쁜 마음으로 응할 것이옵니다.”
“최대한 빨리 불러와.”
“예, 황제 폐하!”
그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옆에는 서리 칼날과도 같은 차가운 분위기를 흘리는 로열가드의 블리자드 후작도 함께였다.
로열가드를 상징하는 황금의 가면과 금색의 제복을 입은 그는 레이먼을 향해 떨리는 발걸음을 옮겼다.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요청하겠나이다. ‘고요한 절대자’를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포타스 백작이 도끼눈을 뜨고서 블리자드 후작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상대가 로열가드 후작이 아니었다면 불충이라고 크게 한 소리 했을 표정이었지만, 레이먼은 블리자드 후작의 마음을 이해했다.
황제를 최측근에서 모시는 로열가드를 이끄는 수장이었으니, 확인을 철저히 할 이유는 충분했다.
“확실하게 보여주지.”
‘고요한 절대자’에 마나를 주입하며 손을 들어 올렸다. 황금빛 기운이 뭉치더니 하나의 깃발이 되었다. 그것은 황제의 깃발이요, 필리어스 제국을 통솔하는 절대자의 상징이며 증명이니, 이것보다 확실한 확인은 없을 것이다.
“황제 폐하!”
블리자드 후작이 무릎을 꿇었다.
“감히 황제 폐하의 진실함을 불신한 못난 신하의 불충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황제의 깃발을 소환 해제하고 블리자드 후작을 일으켜 세웠다.
레이먼이 느끼기에는 불충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제국을 넘어서 황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바치는 블리자드 후작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그는 쉽게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블리자드 후작.”
진중한 목소리로 말하자 블리자드 후작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가면의 시야 구멍으로 보이는 눈동자에서는 광신의 충성이 느껴졌다. 적으로 만나면 실로 무서웠을 것이다.
“포타스 백작, 블리자드 후작은 지금 제국의 사정을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황실의 일원이 외세와 내통하여 제국을 뒤흔들려고 하고 있으니, 선대 황제 폐하들께서 격노할 일이옵니다.”
블리자드 후작이 통곡했다. 목소리에서 절절한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길게 말하지는 않겠네. 제국 재건 계획에 대해 알고 있나?”
“선대 황제 폐하들께서 제국이 쇠락하고 몰락하여 힘을 잃었을 때를 대비하여 남겨둔 안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 기록이 고대 시대 이후로 유실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겠군?”
“물론입니다. 황제 폐하, 선대 황제 폐하들께서도 제국 재건 계획의 기록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큰 성과가 없어서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제국 재건 계획. 필리어스 제국이 가장 찬란하게 빛났던 고대 시대의 황제들이 남겨둔 안배. 쇠락과 몰락이 시작되고 지금까지, 제국 재건 계획을 발동하지 않은 게 아니라 기록이 유실된 탓에 그 봉인을 해제하지 못한 것이다.
설정집에 기록이 유실되어 있다는 걸 보긴 했지만, 설마 모든 기록이 잊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좋아, 그렇다면 어떻게 서론을 시작해야 할까? 짧은 고민이 이어졌지만, 정면 돌파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완성되었다.
“제국 재건 계획의 흔적을 알고 있네.”
“정말이십니까?”
포타스 백작이 먼저 반응했다. 예상대로 이유는 묻지 않았다. 블리자드 후작도 눈동자를 빛내며 시선을 보내왔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유산이 이곳, 황성의 지하에 잠들어 있다네.”
“첫 번째 유산 말입니까?”
블리자드 후작이 물었다. 마치 그 존재에 대해 묻는 것 같았다.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제국이 가장 찬란하게 빛날 때, 스스로 명예를 버리고 어둠 속에서 제국을 지킨 수호자들.”
필리어스 제국 역사상 가장 뛰어나며 잔혹했던 암살단.
“그들이 황성 지하에 잠들어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