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54)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54화
20장 피의 장례식(2)
하늘로 붉은 신호탄이 솟구쳤다. 성소 주변에서 마물 토벌을 위해 일대를 순찰하고 있던 삼백 기의 단치히 백작령 소속 기사들은 말을 잠시 멈추고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보냈다.
“단장님, 저기는 성소가 있는 방향이 아닙니까?”
“오늘 선대 황제 폐하의 장례식이 있다고 들었는데, 혹 변고라도 있는 걸까요?”
기사들이 술렁였다. 몇몇은 붉은 신호탄의 존재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이 별일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설마 제국의 영토에서 큰일이라도 있을까?
선대 황제의 영혼을 기리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치히 백작으로부터 장례식에 변고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던 기사단장은 붉은 신호탄을 목격한 순간 얼굴이 급격하게 굳었다.
그는 검을 뽑아 들었다.
“성소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기사단은 성소로 향한다!”
기사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삼백의 기사들이 성소를 향해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이런 광경은 성소 인근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마물 토벌 및 지역 순찰을 명분으로 움직인 일백에서 오백 단위의 중소 규모 부대들은 신호탄이 ‘지배자의 성소’의 하늘을 붉게 물들인 것을 보고 모두 그곳으로 향했다.
그 수가 도합 이천 오백이 넘는 숫자였다.
의심받지 않을 만한 명분이 있다 해도 삼국 동맹의 감시자들이 위협을 느낄 만한 숫자였다. 하지만 쉐이드들의 지원을 받은 중앙정보국의 방해 공작으로 그들의 정보 교류는 엉망이 되었고, 덕분에 분산된 병력의 존재는 축소되어 보고되었다.
“붉은 신호탄이 발사된 걸 적탑의 최상급 마법사가 확인했다고 합니다.”
성소의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는 소식은 단치히 백작령의 경계에 은신해 있던 크레이어 후작령 소속 일천의 최정예 병력에게도 닿았다.
후작가의 장남, 크론이 굳은 얼굴로 보고하는 걸 듣고 있던 크레이어 후작은 짧은 심호흡으로 호흡을 정리했다.
‘황제 폐하의 말씀이 옳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리해서 기사들만 오백을 준비했다. 남은 오백도 영지군 소속에서도 손에 꼽는 정예 기병들이었다.
크레이어 후작은 새로운 황제, 레이먼의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조용히 검을 뽑아 들었다.
“때가 되었다! 성소까지 쉬지 않고 달린다!”
마나를 담아 외치자 기사들과 병사들이 함성과 함께 무기를 들어 올리며 호응했다.
성소는 단치히 백작령에서도 북쪽에 위치해 있으니, 전력을 다해 달린다면 시간에 맞춰서 도착할 수 있을 것이리라.
“이럇!”
크레이어 후작이 말에 박차를 가했다. 부디 제시간에 도착할 수 있기를 바라며 전력을 다해 말을 몰았다.
* * *
“성소를 더럽혔으니, 네놈들은 그 피로 이곳을 정화하게 될 것이니라!”
레이먼이 마나를 담아 외치며 황제의 깃발을 흔들었다.
귀족들은 갑작스러운 암살자들과 황제의 출현에 놀랐으며, 암살자들은 배후에 모습을 드러낸 쉐이드들과 중앙정보국의 요원들 때문에 돌처럼 굳었다.
모두가 당황한 나머지 고요한 침묵마저 감도는 가운데, 마나를 담아 외치며 힘차게 황제의 깃발을 흔드는 레이먼이 있었다.
0.1초, 반 박자 늦게 반응한 카시야스가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황명이다! 저들의 피로 성소를 정화하라!”
황명이라는 단어가 성소에 모인 모든 필리어스 제국민들의 가슴을 세차게 뒤흔들었다.
기사들과 병사들인 무기를 들어 올렸고 마법사들은 마나를 일으켰다. 귀족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대동한 수행원들에게 하여금 적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게 했다.
“대, 대체 어떻게…… 알고 있었던 것이냐?”
3황자, 알로켄이 레이먼을 향해 삿대질하며 말을 더듬었다.
언제 거리를 벌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2황자와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검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일이 틀어진 순간 재빨리 뒤로 물러난 게 분명했다.
분노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알로켄과 달리 2황자, 데네브는 그저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꼬리를 뒤틀며 수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움직여라.”
2황자, 데네브가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하자 잠깐의 고요했던 침묵이 깨지고 암살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귀족들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으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 귀족들의 곁에는 하나같이 ‘그림자’가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명하셨으니, 실패는 없어야 할 것이다.”
귀족들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쉐이드들이 하사신들의 일격을 막아냈다. 그 모습을 본 데네브의 무표정에 균열이 갔다.
습격과 동시에 필리어스 제국의 주요 귀족들의 목을 친다는 첫 번째 계획이 무산되었으니, 화가 나는 게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절망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황자 전하, 삼국 동맹의 특수 부대가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뭐라고?”
“본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도착해서 성소를 포위해야 하는데…….”
2황자의 친위대장이 말끝을 흐렸다. 곧 말발굽 소리가 들렸으나, 기대와는 다르게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든 깃발은 단치히 백작령 소속 영지군의 것이었다.
“시딩턴 남작! 삼국 동맹의 군대는 어디에 있는 것이냐!”
데네브가 어울리지 않게 언성을 높였다. 어둠 속에서 시딩턴 남작이 모습을 드러냈다.
방금까지 전투를 벌인 것인지 그가 들고 있는 단검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옷도 피로 흠뻑 젖어 있을 게 분명했다.
“2황자 전하, 조금 전에 보고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단치히 영지군과 교전 중인 것 같습니다.”
뭐가 재밌는 것일까? 시딩턴 남작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마치 흥미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의 순수한 표정 같았다. 하지만 시딩턴 남작과는 달리 데네브는 답답한 심정이었다.
비전 마법을 다루는 최상급 마법사의 힘을 빌려 검은 산맥을 통해 칠백의 정예군이 내려왔지만, 유감스럽게도 원래 성소를 포위했어야 할 그들은 이천 오백을 넘는 단치히 영지군과 교전 중이었다.
“제기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시딩턴 남작! 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냐!”
3황자, 알로켄이 울부짖었다. 그 모습에서 시딩턴 남작은 참을 수 없는 한심함을 느꼈으나, 그 감정을 갈무리한 채 입을 열었다.
“5황자, 아니, 지금의 황제가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단치히 백작에게 황명을 내려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시딩턴 남작은 솔직하게 말했다. 예측하고 대비하지 않았다면 이천 오백이 넘는 단치히 영지군이 갑작스럽게 튀어나와 앞을 막을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하사신들보다 한 수 위의 실력을 지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살수들까지 동원된 데다 중앙정보국의 요원들도 매복하고 있어서 애당초 계획했던 귀족들에 대한 암살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았다.
“이대로 우리가 지는 것이냐?”
3황자가 물었다. 2황자는 그의 경솔한 입을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 들었지만 간신히 참아냈다. 시딩턴 남작은 3황자의 물음에 씨익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일이 조금 꼬이긴 했지만, 우리가 승리할 것입니다. 지금 막, 그분께서 오셨으니까요.”
장막이 열리고 칠흑 같은 안개와 함께 일단의 하사신들을 이끌고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유일 등급의 마도구, 그림자 장막이 파괴된 이후로 특유의 검은 잔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여전히 손에 들고 있는 불투명한 단검들은 그가 다섯 암황 중의 한 명인 은둔 칼날, 하일슨이라는 걸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으, 은둔 칼날…….”
연회장에서 희생의 창에 찔려 치명상을 입었던 하일슨이 복수를 위하여 필리어스 제국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잔상이 사라지면서 드러난 붉은 눈동자는 가장 가까이 있는 1황자, 세라크에게 먼저 향했다.
그가 시선을 거두는 순간.
“커, 커헉!”
“끄아아악!”
세라크와 친위대장의 몸에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을 꿰뚫고 몸에서 피를 줄줄 흘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황제 폐하, 제 뒤에 서 계셔야 합니다.”
게슈타인이 긴장한 탓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1황자 세라크는 상급 기사의 실력자였으며, 그의 친위대장 역시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고위 기사였다.
그런데 일격에 무력하게 쓰러지고 말았으니, 지금의 은둔 칼날은 연회장에서와는 달리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두 번은 없다.’
처음은 방심해서 당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은둔 칼날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윽고 그가 휘두른 보이자 않는 칼날은 1황자 다음으로 가까운 곳에 있던 4황녀의 복부를 갈랐다.
“꺄아아아악!”
“4황녀 전하!”
뒤이어 4황녀의 친위대장도 보이지 않는 칼날에 목이 꿰뚫린 채 풀썩 쓰러졌다.
황제의 관 쪽에 로열가드가 모여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보는 앞에서 황족이 두 명이나 당했다.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로열가드는 집결하라! 황제 폐하를 최우선으로 호위한다!”
블리자드 후작이 차가운 북풍을 몰고 왔다. 소름 끼치는 냉기가 공기를 차갑게 물들였다. 흩어져 있던 로열가드들이 일사불란하게 집결했고, 암황이자 은둔 칼날이라고 불리는 하일슨의 시선은 레이먼에게 향했다.
“너구나.”
그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복면을 벗어 던졌다. 그는 암황이다. 서대륙의 암살자 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다섯 명의 암살자 중 한 명이다. 굳이 얼굴을 가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걸로 배후에 있는 삼국 동맹의 존재가 드러나도 상관없다. 어차피 성소에 대한 공격 계획을 짜고 암황을 동원할 때부터 삼국 동맹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널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 유명한 망나니 5황자가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가 될 줄이야, 그 누가 예상을 했을까?”
하일슨이 기운을 끌어 올렸다. 무형의 살기가 피어올랐다. 블리자드 후작이 기세를 끌어 올리는 것으로 맞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황제 폐하의 앞이다! 무엄하다!”
카시야스가 마나를 담아 외쳤다. 암황, 하일슨의 살기가 그에게 집중되었다.
“크, 크윽……!”
상급의 경지에 오른 기사라고는 하지만 암황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발산하는 살기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수고했다, 카시야스 경.”
더 이상 암황이 설치는 걸 지켜볼 수만은 없다. 그를 방치하면 아군의 사기가 바닥을 칠 테니, 슬슬 나설 때가 되었다.
레이먼은 영혼검에 잠들어 있는 일천 기사의 기운을 끌어 올리며 앞으로 나섰다. 암황이 자비 없이 흩뿌린 살기와 일천 기사의 기운이 부딪쳐 서로를 상쇄했다.
“시작부터 거물이 등장하실 줄이야.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차갑게 내뱉으며 레이먼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호위를 위해 은신해 있던 쉐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로열가드들 또한 암황에 대한 공포를 떨쳐내고 황제의 뒤를 따랐다.
그들에게 있어서 황제에 대한 충성심은 절대적이었기 때문에 생명을 위협하는 두려움마저 그 충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나도 이렇게 빨리 나서게 될 줄은 몰랐다, 어린 황제여.”
하일슨이 말했다. 날카로운 시선은 여전히 레이먼에게 고정되어 있다. 다른 방향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온 신경을 레이먼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고 여긴 것일까? 아니면 이번에는 만전을 기해 ‘희생의 창’에 당하지 않겠다는 결의일까? 그 속내는 오직 하일슨만이 알고 있겠지.
‘지금은 안 돼.’
희생의 창을 사용할까? 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만전을 기하고 있는 암황의 빈틈을 찌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희생의 창은 일격필살의 기술이나 다름없다. 모든 생명력을 쏟아붓는다면 일격에 암황을 죽일 수도 있겠지만, 빗나가면 큰 반작용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게 된다.
최악의 경우 높은 확률로 의식을 잃게 되기 때문에, 시작부터 희생의 창을 던지는 미친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레이먼은 황제의 깃발을 집어넣고 영혼검을 뽑아 들었다. 백색의 기운이 뭉쳐 검의 형상이 되었다. 그걸 본 하일슨이 두 눈을 반짝였다.
“백색의 마나 소드? 신기한 기술을 많이 알고 있나 보군.”
하일슨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로열가드는 나를 따르라!”
게슈타인과 데시아, 그리고 로열가드들이 함께 걸음을 옮겼다. 칠흑과도 같은 그림자를 머금은 쉐이드들이 암황을 포위했다.
눈동자는 빠르게 움직여 주위를 살핀다. 적탑주와 청탑주가 각자 자리를 잡고 마법 지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 먼저 신호했고, 레이먼이 땅을 박찼다. 형형색색의 마법구가 주위에 피어올랐고 땅에서는 나무줄기가 솟구쳐 하일슨을 노렸다.
“황가의 방패는 앞으로! 황제 폐하를 지원하라!”
블리자드 후작이 마법을 완성하며 외쳤다. 냉기를 지배하는 비전 마법이 완성되고 공기가 얼어붙었다. 호흡마저 냉혹하게 물드는 잔혹한 비전 마법이 작렬하자 암황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동시에 레이먼이 가지고 있던 마나를 모조리 폭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