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56)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56화
20장 피의 장례식(4)
기세가 변했다. 암황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기세 싸움에서 밀릴 생각은 없었으나, 젊은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걸음을 물리고 있었다.
‘저 강대한 기운은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암황, 하일슨의 붉은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다섯 살 때부터 훈련을 받고 열다섯부터 이십 년간 암살자로 살아왔지만, 이 정도로 공포스러운 살기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놀란 건 친위대와 로열가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레이먼의 모습에 그들이 품고 있던 불안감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젊은 황제, 도대체 네놈의 정체는 뭐냐?”
지금까지와는 달리 얕보는 게 아니었다. 낮게 깔리는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글쎄다.”
레이먼은 하일슨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입꼬리를 끌어 올려 싸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섬뜩한지 하일슨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다. 뒤늦게 결계의 존재를 깨닫고 발걸음을 멈췄지만, 이미 추한 꼴은 제대로 보여준 뒤였다.
“제기랄…….”
하일슨은 분한 마음에 욕설을 흘렸다. 단순 기세 싸움에서 이 정도로 두려움에 떨어본 적은 없었다. 덜덜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려 해봤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계를 풀고 도망쳐야 한다는 본능의 외침을 외면한 채 하일슨은 천천히 레이먼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거리를 좁힐수록 강해지는 살기에 짓눌려 공포는 더욱 커졌다. 이 감정을 떨쳐내기 위해서는 맞서는 수밖에 없다.
은둔 칼날, 하일슨은 자신이 자랑하는 보이지 않는 단검을 양손에 든 채 땅을 박찼다. 레이먼과의 거리가 단숨에 좁혀졌다.
레이먼은 그 모든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잔상조차 보지 못했겠지만 일천 기사가 온전히 함께하는 지금은 달랐다.
‘보인다!’
레이먼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뒤로 물러서며 모아둔 마나를 터뜨렸다.
콰아앙!
순수한 마나의 폭발이 잠시나마 하일슨의 시야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틈에 레이먼은 다시 마나를 끌어 올려 마법을 완성했다.
그는 전방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손끝에 생성된 붉은 마법진이 뜨거운 화염을 쏟아냈다. ‘광염의 폭풍’이라는 최상급 마법이었다. 경지를 한 단계 올려주는 마나 폭주 덕분에 사용할 수 있었다.
“돌파할 생각인가?”
레이먼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전방을 주시했다. ‘광염의 폭풍’이 전방을 완전히 장악했다. 우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피하려면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일슨은 조금 전부터 계속 뒷걸음질을 친 탓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
공포를 꿰뚫고 간신히 거리를 좁혔으니, 다시 뒤로 물러날 리가 없었다.
“크아아아!”
그림자 장막이 없어도 암황 정도의 실력자라면 기운이나 마나를 다스려 갑옷을 만드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다. 검은 기운의 갑옷을 입은 하일슨이 광염의 폭풍을 뚫고 레이먼을 향해 양팔을 휘둘렀다.
철저하게 모습을 감춘 수십의 참격이 팔과 다리, 그리고 심장과 목을 노렸다. 그 속도가 빠르고 기세가 매서웠지만, 레이먼의 입가에서는 여유로운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런 모습이 하일슨을 더 자극했다.
“제기랄!”
하일슨은 욕설을 내뱉으며 미친 듯이 단검을 휘둘렀다. 보이지 않는 참격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레이먼은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가볍되, 흔들림 없이.”
주문을 읊조리듯 앞으로 발걸음을 뗐다. 가벼우면서도 흔들림 없이 앞으로 쭈욱 뻗어 나가며 손에 쥐고 있는 백색의 영혼검을 휘둘렀다.
한 번의 폭풍, 그것은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의 바람을 일으켰다.
일순간이었다. 그저 단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백색의 섬광이 번쩍이더니 거센 폭풍이 일어나 하일슨의 참격을 모두 걷어냈다.
“무, 무슨……!”
방어가 끝이 아니었다. 폭풍의 중심에서 백색의 날카로운 마나 소드가 불쑥 튀어나와 하일슨의 목을 노렸다.
하일슨은 황급히 기형적으로 꺾인 단검을 들어 올려 방어했지만, 레이먼은 마나 소드를 회수하는 것과 동시에 연계 공격을 펼쳤다.
레이먼의 연계 공격은 신속했고 검격은 날카로웠으며, 전후좌우의 빈틈을 노리는 형형색색의 마법구들 때문에 시야는 혼란스러웠다.
암황의 경지에 오른 암살자라고는 하지만 집중력에 한계는 있는 법이다. 결국, 하일슨은 레이먼을 보조하는 마법구의 공격에 왼쪽 허벅지를 허용하고 말았다.
“크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옷을 입은 데다가 검은 기운으로 보호하고 있었지만, 레이먼의 마법구 또한 절대 약하지 않다. 허벅지가 불타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고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리고 레이먼은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가볍게 걸음을 밟으며 접근한 레이먼이 일순간에 영혼검을 휘둘러 하일슨의 왼팔을 잘라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하일슨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아니, 비명을 지를 여유조차 없었다.
잘린 팔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레이먼이 연계 공격을 펼쳤으니까.
그의 좌우에 생성된 마법구가 일제히 하일슨을 노렸다.
“내가 이대로 당할 것 같으냐!”
“고작 그게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일시적이지만 일천 기사의 경험을 완전히 소화했으니, 그의 보법과 검술은 완벽에 가까웠다. 마법구는 모두 막아냈으나 영혼검이 하일슨의 복부에 꽂혔다.
“커헉!”
고통이 심했다. 하일슨이 입 밖으로 붉은 피를 쏟아냈다. 왼팔을 잃고 복부를 관통당한 것만 해도 치명상이었지만 레이먼은 멈추지 않았다.
자비 없이 뽑아낸 마나 소드가 하일슨의 목을 노렸다.
‘느, 늦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백색의 마나 소드를 머금은 영혼검에 깊게 베인 하일슨의 목이 힘없이 꺾이면서, 그의 몸뚱이마저 끈이 잘린 꼭두각시 인형처럼 풀썩 주저앉았다.
“끝났다…….”
기운의 운용을 멈추자 영혼검을 이루고 있는 백색의 빛무리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레이먼은 거칠어진 호흡을 정돈했다. 마나 폭주와 강화 마법까지 사용했지만, 일천 기사의 모든 기술을 사용하기에는 신체의 한계가 분명했다.
‘이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해주겠지.’
기사의 경지가 오르면서 신체가 활성화되거나 마법사의 경지가 오르면서 강화 마법의 효율이 더욱 좋아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건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황제 폐하!”
은둔 칼날, 하일슨의 숨통이 끊어지면서 결계가 무너지자 게슈타인과 로열가드들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들은 힘없이 쓰러지려 하는 황제를 부축했다.
“어서 황제 폐하의 상태를!”
게슈타인과 로열가드들보다는 한발 늦게 다가온 데시아가 황급히 레이먼의 상태를 살폈다.
레이먼은 피투성이였지만 심한 부상을 입지는 않은 상태였다. 뒤이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청탑주 또한 합류하여 호들갑을 떨었다.
“호들갑 떨 필요 없다.”
레이먼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전투에 집중하라. 아직 끝나지 않았다.”
레이먼은 손을 휘젓는 것으로 로열가드의 부축을 사양하며 말했다. 당장에라도 지쳐 쓰러질 것 같았지만 그는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다.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
그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다행히 제황낙인은 계속 유지되고 있었다.
“성소 안의 모든 황군과 제국군은 적들을 단 한 명도 살려 보내서는 안 될 것이다!”
마나를 담아 외쳤다. 날카로운 울림은 성소 안에서 분투하고 있는 모든 황군과 제국군에게 울려 퍼졌다.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전장은 혼란스러웠지만 분명하게 들려왔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더 지났을까? 로열가드의 호위를 받으며 제황낙인을 유지하고 있던 레이먼은 성소 안의 모든 암살자를 격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진짜 끝났나…….”
안심하는 것과 동시에 잊고 있었던 피로가 몰려왔다. 제황낙인이 해제되고 레이먼은 힘겹게 유지하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았다.
“황제 폐하!”
힘없이 쓰러지는 레이먼을 게슈타인이 부축했으나, 이미 의식을 잃고 축 늘어진 뒤였다.
“로열가드는 황제 폐하를 모셔라!”
블리자드 후작의 외침에 로열가드들이 몰려 왔다. 황금의 가면을 쓰고 망토를 둘러쓴 이들이 황제를 보호하듯 에워쌌다.
“게슈타인 경! 성소 내의 적들을 토벌했다고는 하지만 다른 곳에 잔당들이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그러니 황제 폐하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하네.”
어느 로열가드 자작의 말에 게슈타인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막 크레이어 후작이 합류하여 말하길, 성소 밖에서도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였으니 안전한 곳으로 레이먼을 옮기는 게 급선무였다.
“제가 길을 안내하겠습니다.”
실비아가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로열가드들은 그녀의 능력을 의심하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지만, 게슈타인은 달랐다. 그는 레이먼이 언제나 실비아에게 길 안내를 맡기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앞서 걷는 자. 모든 위험을 먼저 알고 경고하며, 피해간다. 지금 그녀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었다.
“부탁하겠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녀는 단치히 백작령의 중심도시까지 레이먼과 호위들을 안전하게 안내했다. 혹여 적과 조우할까 싶은 마음에 신경에 곤두서 있던 호위들은, 중심도시의 성문이 열리는 걸 확인한 뒤에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단치히 백작령의 중심도시에 도착한 레이먼은 곧바로 영주성으로 모셔졌다. 중심도시에서 가장 뛰어난 신관과 치료사, 그리고 마법사가 달라붙어 레이먼의 몸 상태를 살피고 치료했다.
“황제 폐하께서는 어떠하신가?”
레이먼의 침소에서 우르르 몰려나오는 신관과 치료사, 그리고 회복 마법사들에게 다가간 리세필드가 물었다. 그들 중 가장 직급이 높아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외상은 모두 회복했으나, 기력을 너무 많이 소진하셨습니다. 당분간은 안정을 취하셔야 할 것입니다.”
복도에 모여 있던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불과 얼마 전에 황제를 잃었으니, 그 아픔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황제를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성소의 상황이 급박한 건 알고 있으나, 황제 폐하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으셔야 할 것입니다.”
고위 신관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황제 폐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최소한의 인원만 입실하라 전하셨습니다.”
5황자 시절부터 레이먼을 모셔온 시종, 알렉스 티링거가 창백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와 황제의 말을 전했다.
기력을 많이 소모하여 지쳐 있는 와중에도 최소한의 인원을 입실하라 한 것은, 성소의 상황을 보고 받기 위함이 분명했다. 호위들과 수행원들은 그런 황제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보고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인원을 추려서 입실했다.
데시아가 앞장서서 조심스럽게 침소의 문을 열었다. 천천히 문이 열리고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레이먼은 창가의 넓은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안색이 너무 창백하여 데시아는 안타까움을 이기지 못하고 낮은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
“황제 폐하…….”
걱정스러운 시선이 닿는 걸 느낀 것일까? 창가를 보고 있던 레이먼이 데시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라.”
안색은 창백했으나, 목소리에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실려 있었다. 수행원들이 다가오자 그는 몸을 조금 일으켜 침대에 비스듬히 앉았다.
“성소의 상황을 보고하라.”
“성소 내부의 적은 모두 토벌했으나, 황군과 제국군의 피해도 심각합니다.”
블리자드 후작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자세한 피해를 보고했다. 레이먼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제황낙인을 발동했기에 그나마 이 정도였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적들을 맞이했다면 필패였을 것이다.
“형님들은?”
레이먼의 물음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암황의 일격에 당한 1황자와 4황녀의 생사를 묻는 것과 동시에 배신자로 확정이 난 2황자와 3황자의 추살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게슈타인 경, 자네가 보고하게.”
블리자드 후작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나고 게슈타인이 앞으로 다가왔다.
“4황녀 전하는 현장에서 즉사하셨습니다. 1황자 전하께서는 이곳 중심도시의 영주성으로 옮겨지셨으나, 생명이 위독한 상황입니다. 2황자, 아니…… 데네브와 알로켄은 현재 쉐이드들이 추격하고 있습니다.”
간략하면서도 요점을 잘 정리했다. 2황자와 3황자라는 호칭을 사용한 걸 제외하면 보고는 무난했다. 게슈타인의 보고에 레이먼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황족들의 생사 여부라는 가장 중요한 정보를 얻어냈으니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급박한 상황이었으나, 안정이 중요하다는 신관의 말도 있었기 때문에 다들 말없이 조용히 침소를 떠났다.
모두가 떠나고 레이먼은 말없이 오른손을 응시했다. 기력은 없었으나, 또 다른 어떤 기운이 충만하게 모여드는 게 느껴졌다.
‘지배력이 회복되고 있다.’
암황을 죽여서 그런 것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지배력이 비정상적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건 분명했다.
“이 정도면 깨울 수 있으려나?”
선대 황제들의 무덤, 그 지하에 함께 동면 중인 로열가드들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