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63)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63화
23장 산악 공작과 강철 후작, 그리고 전술 백작(2)
“저와 공작 각하 사이의 약속을 알고 계시는 겁니까?”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라, 되니츠 경.”
그 약속은 산악 공작과 되니츠만 알고 있었지만, 레이먼은 설정집을 봤으니 모를 리가 없었다.
“다시 한번 묻겠다, 되니츠 경. 산악 공작이 경과의 약속을 지킬 거라고 생각하는가?”
“변수가 없다면 지켜질 것입니다. 제 입은 무거우니까요.”
“변수가 발생했다면?”
레이먼의 말에 되니츠의 눈이 다시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을 본 레이먼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순수하게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구만.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니…….”
되니츠는 산악 공작의 참모 역할을 했던 귀족이었다. 당연히 독자적인 정보원들을 보유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위치였는데, 지금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걸 보면 산악 공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보원들을 모두 포기한 것 같았다.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성격이라는 설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기 때문에 레이먼은 이마를 부여잡았다.
“성소에서 불경스러운 일이 터졌다는 것까지는 들었습니다. 그것과 관련된 것입니까?”
전직 참모답게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산악 공작이 난을 준비한다. 엄밀히 말하면 성소에서 발생한 피의 장례식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혹은 내전일 가능성이 크군요. 그리고 황제 폐하께서 산악 공작 각하를 거론하셨으니, 최소한 그분이 관련된 게 분명하네요.”
“듣던 대로 날카롭군.”
“정보원들을 모두 잘라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제가 이걸로 먹고살았습니다. 최소한의 감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보셔도 됩니다.”
듣던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다. 오늘 레이먼이 되니츠를 찾아온 이유도 그를 등용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감이 완전히 죽었다면 쓸모가 없는 일이 되어 버린다.
“산악 공작이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하나?”
“진정 저를 생각하신다면 돌아가 주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절 찾아온 걸 공작 각하가 알게 되면 썩 유쾌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되니츠의 말도 옳았다. 그래서 레이먼은 더욱 강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그도 나름 생각이 있었고, 짧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호위들과 함께 낡은 도서관을 떠났다.
“괜찮을까요?”
데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암투와 공작에 대한 지식이 없는 그녀가 보기에도 되니츠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연히 괜찮지 않을 것이다.”
레이먼은 대답과 함께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어둠 속에서 쉐이드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 폐하, 저희를 부르셨나이까?”
“황명을 받들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명하시옵소서.”
쉐이드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을 한 차례 훑은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동원 가능한 최대 인력을 동원해서 도서관과 되니츠를 지켜라.”
“황제 폐하, 현재 산악 공작을 감시하고 있는 인원을 제외하면 동원할 수 있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도서관의 고아들을 전부, 완벽하게 보호하는 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조장급의 쉐이드가 조심스럽게 한 걸음 다가와 고개를 조아렸다. 피의 장례식에서 쉐이드의 일부를 잃은 상태였고, 남은 인원의 대다수가 산악 공작을 감시하고 그들의 공작을 차단하는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만 묻겠다. 되니츠 경은 확실히 지킬 수 있나?”
레이먼이 물었다. 만약 불가능하다는 대답이 들려온다면 산악 공작에게 노출될 각오를 하고서라도 중앙정보국의 요원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한 명이라면 확실하게 지킬 수 있나이다.”
대답한 쉐이드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충분한 대답이었다. 레이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되니츠 경을 우선으로 호위하되, 도서관의 아이들을 지키는 것 또한 최대한 노력을 하도록. 최악의 경우 중앙정보국에 지원을 요청하라. 요원들을 근처에 대기시켜 둘 테니까.”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되니츠를 직접 호위한다면 산악 공작이 눈치챌 확률도 있겠지만, 단순히 빈민가 주위에 배치되는 것 정도는 사소한 움직임이기 때문에 산악 공작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황명을 수행하겠습니다.”
쉐이드들이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이윽고 레이먼의 시선은 위로 향했다. 오늘따라 하늘이 맑았다.
“게슈타인,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
조용히 질문했다. 잊을 정도로 언급이 없었고 내색하지도 않았지만 게슈타인은 산악 공작의 휘하에 있었다.
“저와 달리 되니츠 경은 비밀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산악 공작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정녕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되니츠 경을 제거할 겁니다.”
게슈타인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레이먼도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산악 공작은 반드시 움직일 겁니다, 황제 폐하.”
딱딱하게 굳은 게슈타인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흩어졌다.
* * *
산악 공작은 반드시 움직일 것이라는 게슈타인의 말대로였다.
그는 황제 레이먼이 되니츠를 방문했다는 사실을 몰랐지만, 내전을 앞두고 많은 비밀을 알고 있는 되니츠를 제거하기 위해 수도로 암살자들을 보냈다.
성소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수도의 경계가 강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이 내성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악 공작이 보낸 암살자들이 빈민가가 있는 외성의 성벽을 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늦은 밤이었다. 낡은 도서관에는 갈 곳조차 없는 아이들 몇 명이 지내고 있었는데, 되니츠는 불안한 마음에 그들의 옆을 떠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난 공작 각하를 믿는다…….”
스스로에게 최면을 거는 것처럼 조용히 중얼거리는 되니츠의 모습은 섬뜩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두 눈을 질끈 감고 침대 위에 몸을 눕히려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불어온 스산한 바람이 낡은 창문을 열어젖혔다.
되니츠는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비밀스럽게 설치해두었던 경계 마법진이 반응했다.
“제기랄!”
두 손에서 푸른 마나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전력을 다해 탐색 마법을 펼쳤다.
도서관 주위에서 불온한 기척이 다수 느껴졌다. 경계 마법진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기척들도 적지 않았다.
“도대체 누구냐!”
지금 당장은 특정할 수 없다. 아이들을 지키는 게 먼저였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4명의 아이를 깨웠고 서둘러 도서관에서 나왔다. 조금 전까지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 날카로운 암기가 후두둑 떨어져 꽂혔다.
“윈드 커터!”
외침과 함께 날카로운 바람의 칼날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는 참모이면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상급 마법사이기도 했다. 기척을 정확하게 감지하고 사용한 윈드 커터는 암살자 셋의 팔과 다리를 절단했다.
“아악!”
“커헉!”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은신이 해제된 암살자들이 피를 흩뿌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그에 따른 반격이라도 하듯, 허공에서 검게 칠해진 암기들이 다시 쏟아졌다.
목표는 되니츠가 아니었다. 그의 오른편에 있는 작은 꼬마들이었다.
“이 비겁한 새끼들아!”
악을 쓰듯이 외쳤다. 황급히 완성한 실드가 암기 세례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냈지만,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했다. 전후좌우에서 포위가 좁혀진다. 은신한 암살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기척이 느껴졌다.
실드는 말 그대로 방패의 형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전후좌우에서 이렇게 포위를 해오면 모두를 지킬 수 없다.
“쇼크!”
지면이 흔들렸다. 몇몇 암살자의 은신이 풀렸다. 하지만 그들은 개의치 않고 힘없는 꼬마들을 향해 단검을 뻗었다. 그 잔혹한 술수를 막기 위해 되니츠는 노력했지만, 모두를 차단하지 못했고 암살자 하나가 가장 어린아이의 뒤에서 그의 턱을 붙잡아 올리고 단검을 꽂으려는 순간이었다.
“위, 윈드……. 커헉!”
저지하려 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틈에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이 되니츠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마나를 머금고 있었던 단검이었는지, 상처가 깊었다. 출혈이 심했다. 하지만 그걸 상관할 여유가 없었다. 눈앞에서 소중한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으니까.
“안 돼!”
절규.
“제, 제발…….”
그는 신에게 기도했다. 제발 눈앞의 어린 영혼을 데려가지 마소서, 그리고 악마에게는 제안했다. 저들에게 지옥을 보여줄 수 있다면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
“끄르르륵!”
간절한 바람이 닿았을까? 어린아이의 목을 붙잡고 있던 암살자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리고 동시에 검은 옷을 입은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암살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필리어스 제국의 문장이 새겨진 제복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 당신들은……?”
“황제 폐하께서 명하셨으니.”
“우리는 그대들을 지킨다.”
쉐이드,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황실과 제국을 수호하는 충직한 그림자. 그들이 나타났다. 감히 황제를 거역하는 이들에 향한 서슬 퍼런 살기를 풍기며.
“황제 폐하께 해가 되는 자들이다. 모두 죽여라.”
쉐이드 조장이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림자들이 행동했다. 되니츠와 아이들을 지켜야 할 소수 인원을 제외하고 모두, 다른 암살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움직였다.
“으아아악!”
“커헉!”
비명이 난무했다. 피바람이 불었다. 검은 그림자들의 폭풍이 지나친 곳에는 시체들만이 남았다.
“대, 대체 무슨…….”
암살자들은 쉐이드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십이 넘는 이들이 여섯 명의 쉐이드들에게 순식간에 살해당했다.
“이, 이럴 수가…….”
암살자들의 조장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되니츠를 확실하게 추살하기 위해 뽑힌 정예들의 3분의 2가 눈 깜짝할 사이에 쓰러지는 광경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었다.
이제 남은 암살자는 일곱에 불과했는데, 쉐이드들은 한 명도 쓰러지지 않았으니, 이제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도주를 고민할 여유도 없었다. 쉐이드들이 폭풍처럼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부하들에게 물러나라고 명령할 짧은 틈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 쉐이드들이 앞을 막는 암살자들의 목을 쳐냈다.
하사신만큼은 아니지만, 그들 또한 정예에 속하는 암살자들이었다. 그러나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앞에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자, 최후까지 살아남은 셋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도주를 선택했다.
“황제 폐하께서 모두 죽이라고 명하셨다.”
“추살하라.”
감히 황제에게 반기를 든 이들을 살려둘 수는 없다. 조장의 명령에 쉐이드 셋이 즉각 추격 행동을 시작했고 남은 이들은 되니츠의 주위를 지켰다.
“당신들은 누구입니까?”
“황제 폐하께서 보내셨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되니츠는 안도했다. 조금 전에 암살자들이 보여준 전술은 산악 공작 휘하에 있던 시절의 되니츠가 만든 진형 전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도서관을 습격한 암살자들의 배후에 산악 공작이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저를 보호하라고 보내신 겁니까?”
대답은 없었다. 쉐이드 조장은 말없이 신호탄을 꺼내서 하늘로 쏘아 올렸다. 황금빛의 불꽃이 어둠을 꿰뚫었다.
이윽고 어둠 속에서 또 다른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적의나 살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쉐이드들도 무기를 뽑지 않았으니, 되니츠는 안심하고 아이들을 다독였다.
“중앙정보국에서 나왔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되니츠 경을 찾으십니다.”
“혼자 가지는 않을 겁니다.”
“그 문제는 걱정 마시길. 아이들도 황성까지 동행해도 됩니다. 그리고 추가 병력이 이곳으로 오고 있으니, 그들이 다른 아이들을 지킬 것입니다.”
과묵한 쉐이드들과 달리 중앙정보국의 요원은 차분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우선 황성으로 가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요원의 말에 되니츠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선도하겠습니다.”
중앙정보국 소속의 무장한 요원들이 앞서나갔다. 넓은 도로로 나오자 칠흑의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타시죠.”
요원의 안내에 되니츠는 말없이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는 쉬지 않고 달렸다. 황성 경비대와는 미리 이야기가 끝난 것인지 황성의 성문을 활짝 열려 있었다.
황성을 지나 황궁으로 들어섰다. 웅장한 건물 앞에 마차가 멈춰 서자 황궁 기사들이 나타났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황궁 기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종과 시녀 두 명이 아이들을 조용한 곳으로 데려갔다.
상대는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이고 이곳은 황궁이니 아이들의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기에, 되니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앞서가는 황궁 기사를 뒤따랐다.
늦은 시간이었다. 황궁 기사는 알현실이 아닌 황제의 집무실로 되니츠를 안내했다.
황금 가면을 쓴 이들이 집무실의 출입문을 지키고 있었다.
“문을 열겠습니다.”
집무실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보고서를 내려다보고 있던 황제, 레이먼이 고개를 들었다.
“지금도 산악 공작을 믿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