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7)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7화
3장 망나니는 이제 없다(2)
“노인장은 내 재능을 알고 있을 텐데……?”
잠시 말을 멈췄다. ‘재능’이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리세필드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씨익 웃으며 다시 말을 이어가기 위해 입을 열었다.
“최연소 대마법사를 만들어 볼 생각 없나?”
너무나 달콤한 제안일 것이다. 청탑주의 시선이 흔들렸다. 5황자의 재능에 ‘비밀 전승’까지 더해진다면?
어차피 전승과 관련된 권한은 그에게 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그리고 이천 년의 약속도 이행해야지.”
순간 5황자를 높게 평가했던 청탑주는 이어지는 말에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거, 제대로 족쇄가 잡히고 말았다.
* * *
1일째, 청탑의 ‘비밀 전승’ 중에서 마나 연공법 등 수련과 성장에 필요한 몇 가지를 전수하기로 결정했다.
5황자 전하는 망나니라는 소문과는 달리 이해력이 뛰어났다.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알 뿐만 아니라, 그걸 응용했다.
2일째, 5황자 전하께서 ‘청탑 비밀 전승’의 마나 연공법을 완전히 이해하셨다.
본격적인 수력이 시작되었다. 마나 로드를 무리하게 개척을 시도한 탓에 5황자 전하께서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5황자 전하께서는 황제 폐하께 이를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3일째, 불완전했던 마나 로드가 완벽한 모습을 갖췄다.
이건 천재라고 해도 6개월 이상 걸리는 일이다.
나는 처음과 달리 생각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5황자 전하께서 내보였던 자신감은 과신이 아니었다.
근거 없는 게 아니었다.
4일째, 믿을 수 없다.
5황자 전하께서 하급 마법사의 경지를 앞두고 계신다.
5일째, 청탑 장로, 필리드가 ‘비밀 전승’을 5황자에게 가르쳐준 것을 알아버렸다.
일이 귀찮아졌다.
* * *
4일간 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식사도 하루에 1끼를 겨우 먹었을 정도로 쉬지 않고 수련에 몰두했다.
각 마탑에는 고유의 비밀 전승을 가지고 있다. 탑주 직계 제자 한 명이나 그가 인정한 한 명에게만 전수되는 게 비밀 전승이다.
비밀리에 전수되는 것들인 만큼, 하나같이 알려지면 큰 파급을 일으킬 만한 것들이다.
청탑주는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저 비밀 전승의 마나 연공법과 기초 몇 가지를 가르쳐줬을 뿐이다.
하지만,
‘왜 비밀 전승이라고 부르는지 알 것 같네.’
비밀 전승 마나 연공법이 레이먼의 몸에 깃든 재능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벌써 하급 마법사의 경지가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이런 좋은 걸 남이랑 공유할 수는 없지, 그래서 비밀 전승일 것이다.
‘좋은 건 혼자 써야지.’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좋다, 살아남을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
“5황자 전하.”
마나 연공법을 한창 수련하고 있을 때였다. 인기척과 함께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련을 잠시 중단하고 기척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노인장, 무슨 일이야?”
수련을 방해받은 거로 보였지만, 전혀 아니었다.
리세필드는 3시간 전부터 기다리고 있다가 레이먼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마나 연공이 부진해지려는 시점에 말을 걸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큰 방해는 아니었다.
“벌써 며칠째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으시고 계십니다. 혹, 또 쓰러지기라도 하신다면 제가 곤란해집니다.”
청탑주는 솔직하게 말했다. 5황자의 건강이 악화한다면 그는 황제를 볼 면목이 없었다.
또한, 진심으로 5황자의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다.
하루에 수면 시간이 2시간이 안 된다. 그리고 하루 한 끼 간신히 먹는 식사조차 빵 한 조각으로 겨우 해결하고는 했다.
남은 시간은 모두 수련에 매진. 한때 대마법사가 되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생활을 했던 청탑주, 리세필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의 수련 강도였다.
“벌써 점심시간인가?”
“예, 5황자 전하.”
“오늘은 제대로 된 걸 먹어야겠네. 식당으로 안내해 주게.”
오늘이 5일째다. 하급 마법사의 경지도 코앞에 보이고 있으니 한 끼 정도는 제대로 된 식사를 즐겨도 될 것 같았다.
“탑주와 장로들을 위한 식당이 상층 쪽에 있습니다. 거기로 모시겠습니다.”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청탑주를 뒤따라갔다.
최상층에서 상층 구역으로 넘어가니 청탑의 장로들이나 경지 높은 마법사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다들 최소 상급에서 최상급의 경지였고, 장로급에서는 고위 마법사도 극소수 보였다.
식사는 훌륭했다. 5황자궁 수준은 아니었지만, 꽤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가벼운 후식을 즐기고 식당에서 나와 다시 수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수련장 앞을 지키고 있는 이가 있었다.
“청탑주 왔소?”
그는 5황자인 레이먼보다 청탑주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음에 안 드네.’
눈살을 찌푸렸다. 보다 못한 알렉스가 나서려는 찰나, 노인의 시선이 레이먼에게 향했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5황자 전하께서도 계셨군요.”
“자기소개가 먼저 아닐까?”
“이런, 실례가 많았습니다. 저는 청탑의 장로이자 고위 마법사인 필리드라고 합니다.”
과장된 예의를 갖추며 자신을 소개하는 필리드. 그 몸짓에서 비꼬는 듯한 느낌이 묻어 나왔다.
“무슨 일인가?”
“적탑과 황탑이 3황자 전하의 뒤에 설 때는 움직이지 않으셨던 분께서 갑자기 5황자 전하와 함께 청탑에 오셨으니 궁금해서 이렇게 찾아왔소.”
“5황자 전하께서 앞에 계십니다!”
3황자의 뒤에 서지도 않았는데, 왜 5황자와 함께 행동하느냐?
이런 뜻이다. 명백하게 비꼬는 것이었고 그걸 알아챈 알렉스가 나섰다.
황실 기사들은 3황자의 수족일 가능성이 커서 청탑에서는 억지로 떼어놓고 다녔기 때문에 곁에 없었다.
“어허, 시종 주제에 건방지구나.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끼어드느냐! 5황자 전하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느냐!”
필리드가 마나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 날카로운 기세가 압박해 오자 알렉스가 짧은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렸다.
보다 못한 레이먼이 희생의 창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조금 해방했다. 비밀 전승의 기술 중 하나를 활용하여 평소에는 숨기고 다니던 기운이었다.
“음?”
알렉스의 표정이 편해졌지만, 일순간 드러난 무형의 기운을 읽은 필리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 모습을 본 리세필드는 일이 복잡해질 것을 예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5황자 전하께서 설마 이 정도 기운을 갈무리할 정도의 경지에 오른 건 아닐 테고……. 청탑주, 설마 탑의 비밀 전승을 5황자 전하께 전수한 것이오?”
“만약 그렇다면 어쩔 건데?”
리세필드 대신 대답했다. 하지만 필리드의 시선은 레이먼에게 잠깐 향했을 뿐, 다시 청탑주에게 고정되었다.
망나니라고 하지만 황실 기사들이 옆에 없다고 해서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다니, 짜증이 나는군.
“비밀 전승에 대한 권한이 청탑주에게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상의도 없이 진행하면 어쩌자는 것이오? 약이라도 하셨소?”
점점 막말이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5황자 전하한테 헛된 희망을 걸지 마시오.’라고 하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으니, 청탑주에게 약이라도 집어 먹었냐고 막말을 쏟아내는 필리드였다.
“5황자 전하에게서 가능성이라도 본 것이오? 만약 그렇다면 마법 천재라고 불리는 3황자 전하를 등질 만한 가치가 있는 가능성이어야 될 것이오.”
거친 공격이 쏟아졌다. 청탑주가 입을 열려는 순간, 레이먼이 조금 더 빨랐다.
“어려운 것도 아니군.”
“예? 실례지만, 5황자 전하……. 다시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필리드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이건 못들은 게 아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말해주마.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했다. 필리드 장로.”
“3황자 전하께서는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르셨습니다만? 제가 알기로 5황자 전하께서는 아직 검이나 마법에 어떠한 재능도 없으실 텐데요.”
들을수록 가관이다. 황족에 대한 예의는 조금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3황자의 줄을 잡고 싶었나 보네.’
적탑과 황탑이 3황자의 뒤에 서 있다. 필리드는 그곳에 청탑도 함께하길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5황자가 튀어나와서 비밀 전승을 집어 먹었으니 눈에 가시 같은 게 들어간 기분이겠지.
“내가 ‘비밀 전승’을 전수받기에는 재능이 부족하다는 건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능글맞게 웃는다. 옆에서 알렉스가 부들부들 떠는 게 보였다.
조용히 손을 살짝 들어 올리는 것으로 알렉스가 나서지 못하게 막으며 입을 열었다.
“그 재능이라는 걸 증명하기만 하면 되는 건가?”
“증명해 보시렵니까?”
“직속 제자 중에 하급 마법사가 있나?”
오래전 설정집을 본 기억이 정확하다면 한 명 있을 것이다.
“한 명 있긴 합니다.”
“이틀 뒤에 데려와. 대련으로 증명해 주지.”
“괜찮으시겠습니까?”
“상관없으니까 이틀 뒤에 데려와.”
“예, 그리 하겠습니다.”
공식적으로 5황자를 엿 먹일 수 있다는 생각에 필리드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 수련해야 해.”
축객령.
“예, 5황자 전하. 행운을 빌겠습니다.”
기분 나쁜 시선을 슬쩍 보낸 뒤, 필리드가 고개를 숙이며 멀어졌다. 그의 뒷모습을 향했던 시선을 거두고 수련장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5황자 전하, 필리드 장로는 3번 제자를 내보낼 것입니다. 하급 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중급 마법사의 경지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가?”
“이길 수 없습니다. 어쩌자고 그런…….”
“그만.”
리세필드의 말을 잘랐다. 답답해서 더는 듣고 있기 힘들었다.
“불가능이란 없다.”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시선은 여전히 리세필드에게 닿아 있다.
“난 약속은 지킨다. 대련 날까지 반드시 하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를 거다. 그러니까 이만 나가봐.”
축객령에 청탑주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레이먼은 자는 시간까지 아끼면서 수련에 몰두했다. 마나가 바닥나면 영약을 섭취하여 회복했다.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서 마나를 다뤘다.
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 속에서도 마나 운용을 멈추지 않았다.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시간도 아까웠으니까.
그리고 그 고통의 시간 속에서 마침내.
하급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다.
* * *
이틀이 지나고 청탑에 온 지 7일째 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밤을 새워서 수련을 끝낸 레이먼은 알렉스의 도움을 받아 환복을 끝마치고 수련장에서 나와 대련장으로 향했다.
복도로 나오기 무섭게 청탑주, 리세필드가 따라붙었다.
황실 기사들은 너무 달라붙지 말라고 말해둔 탓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천천히 뒤따랐다.
하지만 여전히 감시하는 듯한 그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하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걸 축하드립니다.”
리세필드가 작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먼은 입가에 선명한 미소를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밤새 수련장 앞을 지킨 것인가?”
“예.”
“하여간,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불평하듯 말했지만, 기분은 좋았다.
“조금만 기다려. 내가 필리드 장로의 제자를 박살 내고 노인장의 체면을 살려줄 테니까.”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대화를 나누며 걷다 보니 어느새 대련장에 도착했다.
“5황자 전하, 이번만은 저희도 동행해야 합니다.”
뒤따라오던 황실 기사 넷 중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말했다. 낯이 익어서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알로켄 형님의 휘하에 있는 놈이군.’
예전에 3황자를 만났을 때 뒤로 물러났던 황실 기사 중 한 명이다. 앞장서서 동행을 요청하는 걸 보면 이미 대련에 대한 소문은 3황자에게까지 퍼진 게 분명했다.
‘나에 대해 조사하라고 했을 테지.’
황실 기사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차갑게 식었다.
“동행하도록.”
“저희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련 내용이 3황자에게 다 흘러 들어가겠지만 상관없다. 옛날부터 마법을 수련했다고 둘러대면 된다.
마법을 배우지 않은 이가 일주일 만에 하급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다는 건 황실 기사가 보고해도 3황자가 믿지 않을 것이다.
‘희생의 창만 꺼내지 않으면 된다.’
이번에도 청탑에 구멍을 뚫어버리면 리세필드가 복원 비용으로 뭘 청구할지 벌써 두렵다.
“문을 열라.”
청탑주, 리세필드가 근엄한 표정으로 말하자 출입문을 지키고 있던 마탑 기사 둘이 대련장의 문을 열었다. 마탑 기사는 고용된 자유 기사들로 마탑에서 최소한의 물리적인 무력을 담당한다.
“들어가자.”
차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문턱을 넘었다. 대련장 안에는 필리드와 그 제자를 제외하면 증인 역할을 할 마탑의 장로 몇 명이 있을 뿐이었다.
“5황자 전하이십니다.”
알렉스가 레이먼의 존재를 알리자 마법사들이 일어나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가벼운 예의를 갖췄다.
필리드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여전히 입가에는 싸늘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의 옆에 금발에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젊은 여마법사가 서 있었다.
‘3번 제자인가?’
시선이 닿는 걸 느낀 것일까? 여마법사는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데시아 헬리예요, 잘 부탁해요.”
데시아 헬리?
‘여기에 있을 줄이야.’
설마 주인공의 동료를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이야.
그녀는 소설 속 주인공의 동료다. 그리고 3권 마지막에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는 천재 마법사. 그리고 주인공에게서 반드시 빼앗아야 하는 기연 중 하나다.
‘그래, 청탑 출신이라고 적혀 있었지.’
소설 속에서 그녀의 과거에 관한 서술이 거의 없어서 잊고 있었던 설정이 뒤늦게 떠올렸다.
자세한 설정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녀 또한 마법을 배운 지 3년이 안 된 거로 알고 있다. 그런데 벌써 중급 마법사의 경지를 눈앞에 두고 있다니.
어찌 보면 당연히 기억하고 있어야 할 기연 중 하나였지만, 이상하게도 떠올리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마법사의 혈통다워.’
레이먼은 짧은 감탄과 함께 중앙으로 가서 섰다.
“잘 부탁한다.”
심판은 청탑의 장로 중 한 명이 맡았다.
레이먼과 데시아는 장로 앞에서 대련의 규칙을 한 번 더 숙지하고 정정당당한 방법을 사용할 것을 맹세한 뒤, 거리를 벌렸다.
“5황자 전하께서는 수련용 검과 방패를 사용하셔도 됩니다.”
심판을 맡은 장로가 말했다. 레이먼이 하급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걸 몰랐기에 당연히 검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 제안한 것이다.
하긴, 비밀 전승의 기술로 마나를 갈무리하고 있으니까 알 턱이 없다.
“필요 없다.”
“후회하실 텐데요.”
비꼬는 듯한 필리드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하고 마나를 끌어 올리자, 관중석에 모여 있던 장로들이 눈동자를 반짝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호오? 5황자 전하께서 마나의 길을 걷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예상과는 다르군요. 그렇게 안 좋은 소문이 많았는데 말이죠.”
“하급 마법사 초입의 경지로 보이지만, 데시아의 경지는 중급의 수준에 근접하니……. 결과는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장로들의 대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흥미롭다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 누구도 5황자가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레이먼은 마나를 변형시켜 기다란 창을 만들었다.
데시아는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레이먼을 주시했다.
그녀의 주위로 마나의 파장이 느껴졌다. 공격과 방어,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겠지만 레이먼은 그녀가 공격보다는 방어를 선택할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했다.
‘그게 데시아가 제일 잘하는 거니까.’
절대 방어라는 별명이 얻을 정도로 누군가를 지키는 데 특화되어 있는 마법사가 데시아 헬리다.
그녀는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고, 또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 당장 공격 마법을 퍼부어도 그녀는 늘 해오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다.
습관은 무서운 법이거든.
“후우!”
긴장감 속에 공기가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둘은 5분간 말없이 서로를 노려보았다. 레이먼은 마나의 창을 들고 있었고, 데시아는 당장에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마나를 일으킨 채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지금부터 5황자 전하께 비밀 전승 중에서도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공격 마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천천히 데시아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리세필드의 말을 떠올렸다.
‘그나마 쉽다고는 하지만 비밀 전승입니다. 이틀 안에 배울 수 있다고는 장담할 수 없겠군요.’
리세필드는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게 말할 때만 해도 조금 긴장했었다.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해냈다.
완벽하게 익혔다고는 못하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데시아 헬리, 너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누군가의 기대를 배신하는 걸 정말 싫어해서 말이야.”
땅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치는 그의 몸에서 푸른 마나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앉아 있던 장로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설마, 망나니 5황자가 저걸?”
“저, 저건…….”
“설마!”
모두가 경악한 가운데, 푸른 마나가 춤을 췄다.
‘오늘이 시작이다.’
차갑게 식은 눈동자는 데시아를 주시한다.
‘망나니는 이제 없다.’
오명을 벗고 찬란하게 빛날 차례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