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70)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70화
25장 미친 황제(3)
짙은 어둠이 내린 밤, 벨피앙 영지군의 진영에서 빠져나온 일단의 무리가 라티엘 백작령의 최종 방어선을 향해 은밀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카소 자작 휘하의 척후대 소속이었다. 최종 방어선을 표적으로 한 야간 정찰을 위해 은밀히 이동 중이었는데, 그 숫자가 이십 명 정도였다.
“오늘 같은 날에 야간 정찰이라니, 카소 자작님께서도 너무 조심성이 많은 거 아닙니까?”
척후병 중 한 명이 조용히 불평을 털어놓았다. 정면을 응시하며 걷고 있던 조장은 잠시 고개를 돌려 뒤의 부하들을 힐끗 보더니 차분히 입을 열었다.
“상부의 명령이다.”
“누가 그걸 모릅니까?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같이 시야가 어두운 날에는 야습이 힘들 거라는 말이죠. 제가 국경에서만 20년을 병사로 근무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네가 20년 동안 부사관이나 장교로 진급하지 못한 거다.”
날카로운 지적에 불평을 늘어놓던 척후병이 입을 닫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계속 정찰한다.”
조장이 수신호를 보냈다. 어두운 하늘에 달빛조차 없으니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야가 어두웠다. 바로 앞에서 허공에 대고 수신호를 보내는 척후조장의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확실히 야습은 힘들겠어…….”
척후조장 또한 깊은 어둠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20년씩의 경험은 없었으나, 사관학교를 졸업하여 척후병과 장교로 몇 년을 복무하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의 짙은 어둠이다.
이 어두운 시야를 뚫고 기습을 가하는 건 힘들 것으로 보였다.
“제가 봐도 야습은 없을 것 같습니다. 이만 귀환하면 안 되겠습니까?”
휘하 척후병이 투덜거렸다. 야간 정찰은 부담되는 피로도가 배가 된다. 특히 오늘처럼 짙은 어둠이 깔린 밤은 더욱 그렇다.
척후조장 또한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부하들이 불평을 늘어놓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카소 자작의 병적인 철저함 때문에 가장 먼저 희생되고 있는 건 척후병들이었다. 이미 그들의 피로도는 깊었다.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할 정도였다.
“이만 돌아간다.”
야간 정찰조차 힘들 정도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다. 멀리 보이는 필리어스 제국군의 진지만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 검은 어둠을 뚫고 기사단 규모의 야습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조장님! 뭔가 이상합니다!”
척후병 중 한 명이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다른 척후병들 또한 곧 어떤 소리를 들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든 소리가 멈춘 것을 들었다.
척후조장은 전신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예전에 우연히 만난 상급 기사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자연의 소리가 멈춘다면 그건 은신한 이들이 주위에 있다는 말도 되니까, 주의해라.’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척후조장은 허리에 걸린 검으로 손을 가져갔다. 손가락이 검 자루에 닿은 순간, 척후조장이 입을 열었다.
“전원, 검을 뽑…….”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투명한 칼날이 그의 목을 관통했으니, 차오르는 핏물과 함께 남은 목소리가 삼켜졌다.
“꺼, 꺼억……. 끄르르륵!”
다른 척후병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둠을 관통한 칼날이 그들의 심장과 목을 꿰뚫었다. 스물이 넘는 척후병들이 어둠에 물든 허공에 피를 흩뿌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어둠의 그늘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들은 야습하는 중임에도 불구하고 찬란하게 빛나는 황의 가면과 금빛 망토를 입고 있었다.
그들은 로열 가드였다.
“쉐이드와 중앙정보국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다른 척후조들을 모두 제거했다고 합니다.”
황가의 방패가 야밤에 기습을 준비하고 있다? 생소한 모습이었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그림자에서 솟구친 인영의 주인이 황제였으니까.
로열 가드의 적극적인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황제인 레이먼이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로열 가드들은 이 위험한 계획에 반대하면서도, 황제가 직접 나서니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광적인 충심으로 무장한 황군 지휘관 카시야스 또한 동행하려고 했지만, 그는 이런 깊은 어둠 속에서 숙련된 암살 행동을 펼칠 정도로 경지가 높지 않았다.
냉정하지만 사실이었기 때문에 카시야스도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이 지휘하는 기마대를 대기시켜 놓았고, 신호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밝게 물들이는 순간 즉시 개입하겠다고 선언했다.
실로 든든하지 않을 수가 없다.
“친정하실 예정이십니까?”
블리자드 후작이 다가와 물었다. 레이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어스 제국에서도 최정예로 유명한 로열 가드가 함께한다고는 하지만 수십에 불과하다.
수백의 기사단이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개입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터, 그동안 레이먼은 수십의 로열 가드와 함께 수천의 적의가 득실거리는 적진에서 뒹굴어야 한다.
긴장되지 않는다고 하면 그것은 분명한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레이먼과 달리 로열 가드들에게서는 미약한 두려움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모시는 황제의 곁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쁠 뿐이었다.
수천의 적병이 몰려온다고 해도 황제를 안전하게 지킬 자신이 있으니, 걱정과 망설임이 없을 수밖에.
“황제 폐하께서 가시는 길을 로열 가드가 안전하게 호위할 것입니다.”
“적진을 관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처음 계획을 입안할 때만 해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던 그들이었지만, 이제는 황제와 같은 전장을 누빌 수 있다는 영광에 취해 누구보다 들떠 있었다.
“너무 들뜨지 마라. 우리는 어디까지나 전방 방진만 무너뜨리면 된다. 나머지는 기사단이 해결해 줄 것이니, 우리는 더 전진하지 않는다.”
“예! 황제 폐하!”
“좋아, 행동한다.”
레이먼이 먼저 움직였고 로열 가드가 뒤따랐다. 그들은 밤의 어둠에 몸을 숨긴 채 기척을 죽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벨피앙 영지군의 전방 방진, 그중에서도 최선봉을 지키고 있는 경계병들의 날카로운 시선조차 레이먼과 로열 가드의 접근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기척을 죽인 채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벨피앙 영지군의 경계병들이 나누는 대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들과 가깝게 접근했다.
“쉐이드, 집결하라.”
이십여 명의 쉐이드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바로 머리 위에 목책과 망루가 보였다. 목책은 높지 않았다. 마나를 사용하여 신체를 강화하면 순식간에 뛰어넘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무너진 황권을 다시 세우겠다. 위대한 진격의 나팔을 불어라.”
레이먼이 말했다.
“경계병들을 제거하겠습니다.”
“목책을 파괴하겠습니다.”
“저희는 기병 장애물을 철거하겠습니다.”
일단의 쉐이드들이 망루를 향해 솟구치는 것을 시작으로 남은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어둠을 관통한 검은 암기들이 경계병들의 목에 꽂혔다.
“컥!”
“큭!”
망루 위의 경계병들이 힘없이 고꾸라졌다. 경종을 울릴 여유조차 없었다. 경계병들이 제거당하는 동안 다른 쉐이드들이 기병 장애물을 철거했다.
벨피앙 영지군 지휘부에서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때는 이미 망루가 전멸하고 대문으로 향하는 기병 장애물들이 모조리 철거된 뒤였다.
“황제의 깃발을 들어 올려라.”
벨피앙 영지군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경종이 울리지는 않았으나, 기습의 존재를 눈치챈 게 분명하다.
레이먼은 차분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고, 로열 가드 중 하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황제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바로 옆에 있던 게슈타인이 신호탄을 쏘아 올리자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황명이다!”
기사단 다섯과 함께 대기하고 있던 카시야스가 하늘을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황제 폐하께서 홀로 싸우고 계신다! 모든 기사단은 출진하라!”
우렁찬 함성과 함께 수백의 기사단이 말을 내달렸다. 달빛 하나 없는 깊은 어둠은 황금빛의 신호탄이 거둬냈고, 대낮처럼 훤히 밝아진 평원을 관통한 그들은 벨피앙 영지군의 진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고 있었다.
벨피앙 영지군 또한 황급히 방진을 갖추기 시작했다
“문을 봉쇄하라!”
“마법사들은 어디에 있나!”
벨피앙 영지군 진영이 소란스럽다. 목책 바로 아래 있는 황제와 로열 가드의 존재에 대비하여 목책의 대문을 방어하기 위해 지휘관들은 마법사들을 찾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야간 경계에 나섰던 마법사들은 모두 쉐이드들이 사냥한 뒤였다.
“무방비 상태입니다.”
게슈타인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나를 끌어모았다. 마검사의 손끝에 집결한 마나를 해방하자 목책의 대문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단순한 마나의 물리작용이었지만, 마법사들의 지원이 없는 목재 대문 하나를 파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황제 폐하, 이제는 물러나시지요.”
블리자드 후작이 말했다. 그의 모습에 레이먼은 피식 웃었다. 과묵한 타입의 게슈타인과 달리 후작은 언제나 걱정이 넘쳤다. 그런 그의 모습은 호들갑이 많은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과 비슷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기병 장애물과 목책의 대문을 제거했을 뿐이다. 전방 방진은 건재한데, 물러나자는 말인가?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는 적을 앞에 두고 물러나지 않는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황제 폐하.”
블리자드 후작이 고개를 숙였고 데시아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 폐하께서 지나가기에는 저 문은 너무 좁군요. 이걸 지켜보는 건 신하 된 자로서 불경이자 불충이니, 황제 폐하께 걸맞은 길을 열게요.”
어느새 데시아의 오른손에는 청색의 스태프가 들려 있었다.
“몰아쳐라.”
얼음의 폭풍이 불어 닥쳤다. 눈앞의 목책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전방 방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늦은 밤이었지만 방진을 이루고 있는 군사들의 정신은 선명하게 깨어 있었고, 황금빛 신호탄이 어두운 밤하늘을 꿰뚫은 순간부터 그들은 자신들의 적들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과연, 정예로 이름 높은 벨피앙 영지군인가?”
로열 가드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적병들의 모습에 레이먼은 작게 감탄하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천천히, 하지만 묵직했다. 이윽고 별안간 땅을 박차고 방진을 향해 몸을 던졌다.
“화, 황제 폐하!”
“로열 가드는 황제 폐하를 수행하라!”
로열 가드가 호들갑을 떨기도 전에 먼저 황제의 뒤를 따르는 이가 두 명 있었으니, 바로 외팔의 기사 게슈타인과 절대 방어를 자랑하는 최상급 마법사 데시아 헬리였다.
손을 뻗자 백색의 기운이 뭉쳐 마나 소드가 되었다. 레이먼은 단숨에 적들에게 파고들며 영혼검을 휘둘렀다. 벨피앙 영지군의 병사들이 피를 흩뿌리며 힘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방진은 무너지지 않았다. 병사 수십이 목숨을 잃었지만 방진은 멀쩡했다. 되니츠 백작의 말대로 아주 튼튼한 방진이었다.
그럼에도 레이먼은 기죽지 않았다.
‘마검사가 진정한 전장의 공포라고 불린 이유를 알게 해주마.’
고대 시대를 호령했던 마검사의 전설이 다시 시작될 것이니, 이제 필리어스 제국의 적들은 나의 이름을 듣는 것만으로도 벌벌 떨게 될 것이다.
“블레이드 템페스트.”
마검사의 고유 마법이 발동되었다. 주위에 마나를 베이스로 만들어진 수십의 칼날이 천천히 회전했다.
“최소 상급 마법이다! 물러나라!”
“우리 마법사들은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요격해!”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졌으나 데시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등 뒤에서 서늘한 기척이 느껴졌지만, 쉐이드와 로열 가드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감히 황제의 뒤를 노린 하사신 다섯이 쉐이드들이 휘두른 검에 당해 피를 쏟으며 고꾸라졌다.
“가라.”
레이먼이 차갑게 내뱉었다. 그것은 사형 선고였다.
위이이이잉!
소름끼치는 파공성과 함께 마나를 머금은 수십 개의 회전 칼날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 마나의 힘에 의해 독자적인 의지를 부여 받은 것들이며, 마검사인 레이먼이 직접 조종할 수도 있는 ‘칼날’의 ‘신하’들이었다.
“커헉!”
“으아악!”
비명이 난무하고 피 바람이 불었다. 기사단의 돌격에도 거뜬히 버틸 것 같던 방진이었으나, 마검사의 고유 상급 마법에 크게 흔들렸다.
“선봉 대열이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우리 편 마법사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제기랄! 망할 방어 마법은!”
선두 대열에 배치된 기사들이 욕설을 내뱉으며 마법사들을 찾았다.
“빌어먹을 마법사들은 어디에 있냐는 말입니다!”
“저, 전멸했습니다!”
부관의 보고에 전방의 책임 지휘관은 일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전방 방진에 배치된 마법사 26명이 모두 전사했습니다!”
하지만 거듭 들려온 보고는 의심하기 힘들 정도로 분명했다.
“도대체 누가…….”
책임 지휘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서 부관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쓰러지고 있었고, 그의 뒤로 검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하하, 암살 부대인가…….”
지휘부와 마법사 부대는 에드리거 왕국의 하사신들이 보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보다 뛰어난 암살자 전력을 제국군이 보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황제 폐하께서 귀하의 참수를 명하셨다. 황명이니 받아들이거라.”
그 냉정한 목소리가 생전에 들은 마지막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