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74)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74화
26장 호랑이 사냥(3)
“황제 폐하, 저는 찬성했지만 다른 귀족들은 반대할 겁니다.”
늦은 밤, 레이먼의 개인 막사를 찾아온 되니츠 백작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레이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황제가 사실상 사지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귀족들이 얌전히 찬성표를 던질 리가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선조치 후보고의 법칙을 따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먼저 행동하고 나중에 귀족들에게 설명하자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갑자기 황제 폐하와 다수의 로열 가드들이 모습을 감추면 귀족들이 의심하기는 하겠지만, 그건 제가 잘 둘러대겠습니다.”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오래 걸리면 안 됩니다. 제가 둘러대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되니츠 백작의 가벼운 엄살에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초대장을 보면 호위의 인원에도 제한을 두고 있습니다. 오십 명이군요. 인원 편성은 생각해두신 게 있으십니까?”
호위 인원을 오십 명으로 제한하겠다는 내용이 초대장에 명시되어 있었다. 대규모 군세를 이끌고 오는 것을 막기 위한 처사였다. 초대를 받은 황제가 중심도시까지 군을 이끌고 온다면, 황제의 암살에 성공하더라도 결국에는 중심도시가 잿더미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으니까.
“호위는 게슈타인과 데시아, 그리고 로열 가드로 편성할 생각이다.”
“청탑주님과 적탑주님은 동행하지 않는 건가요?”
소수의 호위만을 대동한 채 적진의 한가운데로 간다. 되니츠 백작은 당연히 고위 마법사 중에서도 경지가 높은 두 탑주를 데려갈 것이라 생각했었다.
“청탑주와 적탑주는 전선에 있어야 한다. 그 둘을 이번 초대에 동행시키는 것이야말로 산악 공작이 원하는 일이다.”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는 두 탑주가 전선을 비우게 된다면 마법 전력에 큰 공백이 생긴다. 청탑과 적탑의 마법사들이 있긴 하지만, 고위 마법사라는 거대한 전력의 공백을 채워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황제 폐하……. 고위 마법사들을 데려가지 않으면 그만큼 위험을 야기하게 됩니다.”
“이번 일로 인한 위험은 내가 감수하는 것이지, 전선이 부담해야 하는 게 아니다. 그대는 더 이상 이 일을 거론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은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황제의 고집을 잘 알기 때문에 그와 정면으로 대립하는 것보다는 협력을 선택한 것이다. 그게 황제의 생환율을 더 올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 벨피앙 공작령으로 가시는 걸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대신 제가 한 가지만 도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말하라.”
“벨피앙 공작령, 중심지도의 내부 지도를 그려드리겠습니다. 저는 그곳의 모든 비밀 통로를 알고 있습니다.”
“훌륭한 조력이다, 되니츠 백작.”
레이먼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되니츠 백작이 비밀 지도를 준비하려면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다. 레이먼은 사신에게 호위를 편성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산악 공작은 사신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줬기 때문에 며칠 정도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다.
한편, 레이먼은 며칠의 시간이 비게 되었다. 그동안 전투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벨피앙 공작령의 중심도시 방문 일정이 잡힌 상태에서 참전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했다.
레이먼이 결정을 내린 날, 로열 가드에게도 벨피앙 공작령에서 호위를 수행할 인원을 준비하라는 지령이 하달되었다.
“벨피앙 공작령은 너무 위험합니다. 적진의 중앙으로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로열 가드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황제의 안전을 걱정했다. 다른 로열 가드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게슈타인 경도 뭐라 말 좀 해보시게.”
누군가의 말에 로열 가드들의 시선이 기둥에 기대어 있는 게슈타인에게 향했다. 한참 전부터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결정하신 일이네. 내가 발언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게슈타인의 묵직한 말에 로열 가드들은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이었다. 그런데 가장 측근에서 황제를 모시는 로열 가드가 그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불충이었다.
“우리는 어떤 곳에서든 목숨을 걸고 황제 폐하를 지키면 된다네.”
깊은 충심이 느껴지는 게슈타인의 모습에 로열 가드들은 반성했다.
한편, 로열 가드들의 사이에서 작은 파란이 일어난 걸 꿈에도 모르는 레이먼은 홀로 고민 중이었다. 산악 공작을 만나러 가는 것은 이미 정해진 일이었으니,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과연 로열 가드 오십으로 산악 공작을 죽이고 중심도시를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냉정하게 생각하면 전력이 부족하다. 로열 가드는 우수한 정예 전투 집단이지만 산악 공작의 수하들 또한 만만한 상대가 아닐뿐더러 적진 깊숙이 침투하게 될 것이니, 수천의 적병과 싸워야 할 것이다.
“부족하다.”
고민 끝에 레이먼이 내린 결론이다. 현재 그의 무력과 로열 가드 오십의 전력으로는 설정상으로 드러난 산악 공작과 그의 수하들을 감당하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더군다나, 이 소설 속 세상에는 종말 협회와도 같은 미완성의 설정조차 모습을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 변수의 존재도 감안하고 움직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레이먼은 초조한 시선을 흩뿌리며 입술을 씹었다.
그가 갈등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리스크는 있지만, 단기간에 강해질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걸 사용해야 하나.’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은 무수히 많은 ‘비전’을 남겼다. 레이먼은 ‘검과 마법의 축복’을 받으면서 ‘비전’들 중 일부를 손에 넣었고 사용법은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대부분이 지금 수준에서 구사할 수 없을 정도로 비범한 것들이기 때문에 사용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비전’들 중 하나를 사용해야 할 시기가 왔으니, 망설일 때가 아니었다.
“로열 가드!”
막사의 문이 열리고 로열 가드 한 명이 들어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레이먼은 그를 보며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별도의 지시를 내리기 전까지 내 막사에 그 누구도 들여보내지 마라.”
“예, 알겠습니다.”
이유는 묻지 않았다.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었다.
로열 가드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나고 레이먼은 의자에서 일어나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이윽고 마법진이 완성되자 공간이 갈라지면서 짙은 어둠이 엿보이는 공허한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마, 수련의 방을 지금 사용하게 될 줄이야.”
레이먼은 실소를 흘리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수련의 방’은 마검사에게 전승되는 비전 중 하나였다.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다.
“망설여서는 아니 된다.”
그는 다시 한번 혼잣말을 흘리며 천천히 걸음을 뗐다. 갈라진 공간 속으로.
* * *
공허한 공간의 짙은 어둠이 레이먼을 집어삼켰다. 지독한 칠흑에 휘감겼고 레이먼은 곧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여전히 어두웠지만 조금 전처럼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검은 어둠이 지배하는 곳은 아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검은 밤하늘의 중심에 밝은 달이 떠 있었다.
“정신이 들었나? 후배.”
“시조를 뵙습니다.”
낯선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레이먼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곳이 수련의 방이 맞고 작가의 설정이 정확하다면, 눈앞에 삐딱하게 서 있는 보라색 제복에 백금발의 남자는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이 분명했다.
‘물론 본체는 아니지.’
마검사의 전승을 수호하기 위해 데이리안이 남긴 하나의 ‘의지’다.
예로부터 수련의 방을 열었던 마검사들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에서 초대 마검사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만큼 성장해서 돌아왔으나, 모든 마검사들이 수련의 방을 열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련의 방이라는 비전을 익히지 못한 마검사들도 있었지만, 방법과 수단을 알고 있더라도 일부러 열지 않았던 이들도 있었다.
‘위험하기 때문이지.’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의 가르침은 혹독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그의 생전에 제자 4명이 수련 도중에 목숨을 잃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마검사들 간에 수련의 방을 여는 것은 일종의 금기가 되었다. 빠르게 강해질 수는 있지만, 생환율이 너무 낮았다.
‘이곳은 시공을 초월한 공간, 하지만 내 본체가 넘어왔으니…….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니까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는 동요하는 마음을 차분하게 정돈하고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이 남긴 ‘의지’가 서 있었다.
섬광의 검후나 용암검과도 같은 훌륭한 마검사들을 수련의 방에서 키워낸 그 ‘의지’가 지금 레이먼의 눈앞에 서 있다.
그들처럼 강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레이먼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후배. 수련의 방을 열었다는 건 그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겠지?”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레이먼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 눈빛이 마음에 든 것일까? 데이리안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번졌다.
“눈빛이 나쁘지 않아. 간절함이 느껴져.”
“언제부터 시작합니까?”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레이먼은 조급한 마음을 떨쳐낼 수 없었다. 최대한 빨리 높은 경지에 오른 뒤, 귀환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절대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다.
“하! 벌써 그리 재촉하는 것이더냐?”
데이리안이 허리의 검집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급해 보이기도 하고, 각오도 충분한 것 같으니 바로 시작하겠지만…….”
조금 전까지 유쾌한 웃음을 흘리고 있던 데이리안의 눈빛이 별안간 싸늘하게 식었다.
“후배에게 충고 하나 하지. 생환하고 싶으면 조급한 마음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공기 중에 은은하게 퍼지는 날카로운 기세는 살기가 분명했다. 비록 ‘의지’에 불과하지만, 초대 마검사의 존재감이 서려 있으니, 살기가 깃든 위압감은 레이먼이라는 존재를 짓누르기에 충분했다.
“큭!”
위압감과 살기가 전신을 옭아맸다. 입 밖으로 거친 신음이 터져 나왔고 데이리안은 그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고작 이 정도에 신음을 흘리는 것이냐?”
“크, 크윽…….”
“보아하니, 상급 마검사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군.”
기세가 약해졌다. 레이먼은 호흡을 정돈하며 무너질 뻔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상급 마검사는 결코 낮은 경지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진정한 마검사의 ‘입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경지에 불과하다.”
데이리안이 차갑게 내뱉었다.
“스스로의 성취에 취해 감탄했겠지만, 미안하게도 이 세상에는 강자가 훨씬 많다.”
데이리안이 뽑아 든 검에 마나 소드가 깃들었다. ‘의지’에 불과하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는 몸인데도 불구하고 레이먼을 배려하여 마나 소드만 꺼내 든 것이다.
“검을 뽑아라, 후배.”
날카로운 목소리에 레이먼은 기운을 끌어 올렸다. 손끝에 맺힌 백색의 기운이 검의 형상이 되었다.
“영혼검이라……. 평범한 방법으로는 익힐 수 없는 ‘비전’인데, 제법이구나.”
데이리안의 목소리는 무덤덤했지만, 그는 지금 적지 않게 감탄한 상태였다. 무릇 영혼검은 최소 수백 이상의 영혼을 어떤 매개로 담금질야만 만들 수 있는 하나의 ‘비전’으로 굳이 분류하자면 형체는 있으나 물질적인 몸체가 없으니, 무형검에 가깝다고 정의되는 특이한 ‘비전’이었다.
그 경지가 높기도 하지만 사용 방법과 형성 과정이 까다롭기 때문에 구사할 수 있는 이들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흔치 않은 기술이기도 했다.
“그 칼날의 끝에서 차갑고 강한 원념이 느껴지는구나.”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잊혀진 일천 기사들의 영혼을 원한에 담금질했으니까. 그것으로 인해 탄생한 것이 레이먼의 손끝에 맺힌 영혼검이었다.
“어디서 얻은 건지는 묻지 않겠다, 후배. 하지만 그 힘을 사용함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원념의 힘은 다른 것들에 비해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했지만 그만큼 위험이 따랐다.
“뭐,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후배, 너도 그 힘의 부작용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모양이니까.”
데이리안의 검에 깃든 마나 소드가 더욱 선명해졌다. 짙은 청색의 마나가 춤을 추면서 날카로운 검명을 흩뿌렸다.
“와라, 너의 경지를 한번 보겠다.”
“전력을 다해도 됩니까?”
레이먼의 물음에 데이리안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너 또한 이 공간에서 생환할 수 없을 테니까. 오랜만에 찾아온 후배라고 해서 봐줄 생각은 없으니, 내게서 자비를 기대하지 마라.”
날카로운 칼날이 레이먼을 겨눴다. 살기를 머금은 싸늘한 시선이 닿은 순간이었다. 레이먼이 먼저 땅을 박찼다.
붉은 피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