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76)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76화
27장 마지막 생환자(2)
늦은 밤, 로열 가드의 블리자드 후작이 은밀하게 청탑주의 개인 막사를 찾았다.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 그는 적탑의 수장을 맡고 있는 베레누스 카일, 그리고 전술 백작이라고 불리는 에르빈 되니츠와 함께 약초를 달인 차를 마시며 전투의 피로를 풀고 마나 소모를 회복하는 중이었다.
“블리자드 후작……. 자네가 어쩐 일인가?”
“황제 폐하께서 실종되셨습니다.”
“뭐라고?”
충격적인 소식에 리세필드는 들고 있던 찻잔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유리 깨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묵직한 소리에 반쯤 졸고 있던 되니츠 백작이 깨어났다.
“황제 폐하께서 실종되셨다는 말인가? 아이고, 이걸 어찌해야 좋단 말인가!”
“자세한 상황을 설명해보게.”
야단이 난 리세필드와 다르게 베레누스는 침착하게 질문을 던졌다. 전장에서 황제가 증발해 버린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블리자드 후작은 차분하게 당시의 정황을 설명했다.
막사의 출입을 통제하라는 황명을 받은 직후, 수상한 마나의 유동이 느껴져서 들어가 보니 황제의 모습이 없었다는 게 당시 호위를 맡았던 로열 가드의 설명이었다.
“하여, 속히 청탑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블리자드 후작이 여전히 진정되지 않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역시 고위 마법사였지만 리세필드의 경지가 훨씬 더 높았고 마탑의 탑주를 맡고 있는 만큼 그 지식 또한 깊었다.
“이 일은 다른 이에게 보고하지는 않았겠지?”
“물론입니다, 되니츠 백작.”
“우선 황제 폐하의 막사로 안내하게.”
“알겠습니다.”
블리자드 후작과 로열 가드들이 앞장섰고 두 탑주와 되니츠 백작이 뒤따랐다.
이윽고 그들은 황제의 개인 막사에 도착했다. 게슈타인과 데시아, 그리고 실비아가 굳은 얼굴로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청탑주님…….”
“걱정 말게, 데시아 양. 황제 폐하께서는 무탈하실 걸세.”
게슈타인은 말이 없었다. 리세필드는 불안에 떠는 데시아를 다독인 뒤, 일행들과 함께 막사의 문을 열어젖혔다. 안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풍기는 진한 마나의 냄새에 리세필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마법의 발현은 확실하군.”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고 베레누스는 말없이 탐색 마법으로 막사 내부를 훑었다. 그는 차분하게 마나의 흔적을 분석했다. 불평하듯 혼잣말을 흘리던 리세필드 또한 곧 진지한 얼굴로 분석에 가담했다.
“청탑주, 아무래도 이건 ‘잊혀진 마법’ 같다.”
베레누스가 말했다. ‘잊혀진 마법’은 고대에 존재했으나, 현재는 사용자가 없는 마법을 뜻하기도 했다.
“조금 더 분석을 해봐야 알겠는데…….”
리세필드가 흘린 마나가 막사 내부를 훑었다. 이윽고, 그는 마법의 정체를 깨달았다.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아무래도 마검사의 비전 마법, ‘수련의 방’인 것 같군. 이거 제대로 난리가 난 것 같네.”
마나의 흔적만으로 이렇게 빨리 마법의 정체를 알아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레이먼이 마검사를 전승받았다는 걸 알고 난 뒤, 그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본 리세필드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수련의 방이라고요? 이거 큰일 났군요.”
되니츠 백작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법사는 아니었지만, 전술가이기 전에 학자였고 고대를 호령했던 마검사에 대한 자료도 많이 읽어봤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 금기로 전해지는 ‘수련의 방’의 위험성 또한 알고 있었다.
베레누스 또한 굳은 얼굴로 할 말을 잃었고, 리세필드는 발을 동동 굴리며 초조하게 서성였다.
“수련의 방이 무슨 마법이길래, 이토록 불안해하시는 겁니까?”
뒤늦게 따라 들어온 게슈타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질문했다.
되니츠 백작과 두 탑주는 시선을 교환했다. 누가 설명하는 게 좋을까? 짧은 의견의 교환이었다. 이윽고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게슈타인을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진입한 마검사 100명 중 1명만이 생환할 정도로 위험한 곳이야.”
간단하게 설명해서 1%의 생환율이다. 설명을 들은 게슈타인은 마른침을 삼켰다.
“저희가 도울 방법은 없습니까?”
그는 레이먼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그가 돌아올 것이라 믿고 싶었지만, 생환율이 1% 정도라는 베레누스의 설명을 듣자 좀처럼 흔들리지 않던 마음이 동요했다.
간절한 기대를 담아 질문했지만 베레누스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수련의 방은 초대 마검사 데이리안이 고안한 비전 마법으로, 밖에서는 간섭이 불가능하다.
“제기랄.”
결국 게슈타인은 무력감을 이기지 못하고 조용히 욕설을 내뱉었다.
“이 사실을 군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데시아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가, 곧 되니츠 백작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그러면 혼란이 가중될 겁니다. 당분간은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죄송해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괜찮습니다.”
짧은 대화가 끝나고 또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가 한숨을 쉬며 포기하려는 찰나였다. 두 탑주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마나 반응?”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이 가장 먼저 스태프 ‘화염 소나기’를 소환했다. 리세필드 또한 ‘바다 심장’을 꺼내 들었다.
“이곳이 다른 차원과 연결된 것 같군.”
리세필드의 말은 모두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두 탑주 또한 갑작스러운 마나 반응에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는 했지만, 적의보다는 반가운 감정이 더 선명했다. 지금 상황에서 차원이 새로이 연결되었으니, 레이먼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적인 기대를 걸어볼 수 있었다.
“설마, 마족이 찾아오지는 않겠지요?”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로열 가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마족일 수도 있겠지만, 정황상 레이먼이 돌아오고 있을 확률이 더 높았다.
“관문이 열리고 있네.”
청탑주, 리세필드가 고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윽고 공간이 갈라지면서 드러난 칠흑 속에서 ‘뭔가’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리며 걸어 나왔다.
“황제 폐하!”
일순간 모두가 물러났지만, 게슈타인과 데시아는 그가 황제 레이먼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고서 주변인들을 밀치고 달려가 부축했다.
그는 피투성이였다. 제복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찢어진 옷 사이로 깊은 상처가 보였다.
“황제 폐하……!”
“나는 괜찮다, 데시아. 그러니까…… 회복 마법을 부탁한다.”
“아!”
전신을 피로 적신 레이먼의 모습에 당황하던 데시아는 곧 평정을 되찾고 회복 마법을 영창했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재생의 기운을 담은 마나가 상처에 깃들었다.
“황제 폐하, 축하드립니다.”
생환하기는 했지만, 피투성이가 되어 다 죽어가는 이를 보며 축하한다고? 뜬금없는 축하에 실비아가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으나, 베레누스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특유의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고위 마검사의 경지에 오르셔서 생환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피 냄새와 붉게 물든 제복 때문에 바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레이먼이 품고 있는 마나가 달라졌다.
베레누스가 말한 뒤에야 범상치 않은 마나의 기류를 느낀 것인지, 청탑주 리시필드 디올 또한 떨리는 시선을 갈무리하지 못한 채 혼란을 삼켜야만 했다.
“수련의 방을 금기로 삼았으면서도 마검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를 알 것 같군요.”
베레누스의 말에 레이먼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 명 중 한 명 정도만 돌아올 수 있다고 전해지며, 그 극악의 생환율 때문에 마검사들 사이에서는 금기로 전해지는 게 수련의 방이다. 하지만 리스크가 큰 만큼 얻는 것 또한 많았다.
레이먼은 수련의 방에서 목숨을 걸었고 그만큼 지옥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에는 최상급의 경지를 넘어 고위 마검사의 경지에 닿았으니, 시간과 노력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 정말 괜찮으신 거죠?”
맑은 목소리와 함께 상쾌한 풀 내음이 확 하고 다가왔다. 얼굴의 피를 닦아내는 손길이 느껴졌다.
실비아였다.
“듣고 싶은 게 많겠지만 천천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우선은 조금 쉬고 싶군.”
“황제 폐하께서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응급처치할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가는 게 좋겠습니다.”
되니츠 백작이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게슈타인, 그리고 블리자드 후작을 포함한 로열 가드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호위들은 물러갔고 데시아와 두 탑주만 남았다. 회복 분야를 전문적으로 익힌 마법사들이 오기 전까지 응급처치를 하기 위해서였다.
“황제 폐하, 숨이 안 끊어진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태가 심각합니다.”
레이먼의 상태를 살핀 베레누스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서 고개를 저었다. 질책에 가까운 말투였지만 걱정이 묻어 나왔다.
“이대로 가시면 아니 되옵니다.”
“청탑주는 멀쩡한 사람을 죽이는 버릇이 있나? 호들갑 떨지 말게.”
“예, 알겠습니다.”
베레누스는 심각해 보였지만 레이먼은 오히려 리세필드와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무거운 분위기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보며 붉은 로브를 입은 고위 마법사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여전히 회복 마법에 집중하고 있는 데시아의 어깨를 서너 번 두드렸다.
“데시아 경, 고생이 많군.”
그녀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힌 게 보였다. 품고 있는 마나가 바닥을 보이기 직전, 문이 열리고 의무대의 마법사들이 달려 들어왔다.
그들을 보며 레이먼은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황제 폐하! 의식을 잃으시면 아니 되옵니다!”
혹여, 황제의 숨이 끊어질까 싶어 호들갑을 떠는 리세필드를 향해 레이먼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짜증이 잔뜩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 안 죽으니까, 호들갑은 자제하게나.”
레이먼 한숨과 함께 두 눈을 감았다.
‘이젠 진짜 쉬고 싶다.’
* * *
“자유 이시리아 왕국을 위하여!”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산악 용병대의 깃발이 힘차게 펄럭였다. 중무장한 일천의 용병들이 우렁찬 함성을 내뱉으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 필리어스 제국군이 있다. 묵직하게 돌진하는 산악 용병들의 모습에, 필리어스 제국군은 이를 꽉 악문 채 덜덜 떨었다.
격동하는 전장에서 그들을 지배하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앞을 향해 겨누고 있는 창대가 공포에 떨렸다.
본능이 도망치라고 소리친다. 용병들이 점차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은 증폭되고 결국 하나둘씩 뒷걸음질 치면서 필리어스 제국군의 대열이 무너지기 시작하려는 찰나, 누군가 찬란하게 빛나는 마나 소드를 치켜들며 앞으로 나섰다.
“황제 폐하와 필리어스 제국을 위하여! 그대들은 물러서지 말라!”
“크레이어 후작 각하다!”
“영주님!”
고위 기사의 출현이다. 조금씩 물러나던 병사들이 대열에 복귀하는 걸 본 크레이어 후작은 굳은 얼굴로 전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한발 늦게 영지의 기사들이 합류했다. 그는 높게 들어 올린 검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마나 소드가 더욱 선명해졌다.
하늘을 관통할 것처럼 선명하게 빛나는 마나 소드와 울부짖는 검명에 병사들은 함성을 토해냈다.
크레이어 후작은 병사들을 다룰 줄 아는 이다. 그는 전장에서 고위 기사가 가지는 파급력을 알고 있었고, 그 존재감을 이용해 아군의 사기를 올린 것이다.
“황제 폐하와 필리어스 제국을 위하여! 용맹하게 싸워라!”
어느새 용병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저 멀리서 마법의 불꽃이 솟구치는 게 보였다. 아군의 후방을 노린 용병 마법사들의 공격일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
“필리어스 제국을 위하여!”
충돌 직전, 두려움을 잊기 위해 함성을 내지르는 크레이어 후작과 필리어스 제국군을 향해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산악 용병대가 무기를 휘둘렀다.
“크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레이어 후작은 마나를 머금은 검을 휘두르며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영지에서부터 따라온 기사들도 함께였다.
“고위 기사다!”
“강철 후작이 여기 있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 소속 용병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강철 후작, 그것은 크레이어 후작이 이곳 검은 산맥에서 삼국 동맹을 상대하면서 얻은 별명이었다.
수천의 군세가 몰려들어도 강철처럼 그 자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고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용병들이 붙인 이름이었으니, 지금 이렇게 굳건하게 버티는 모습을 보면 단순한 허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쏟아지는 마법 공격은 영지의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으로 막아냈으나, 몰려오는 용병들을 상대하는 건 크레이어 후작과 휘하 기사들의 부담이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피로도가 깊어졌으니, 강철 후작이라는 위명이 있더라도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버텨라!”
“적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일천이 전부가 아니었다. 높은 언덕 너머로 새로운 깃발이 보였다. 그걸 본 크레이어 후작의 표정이 굳었다.
무수히 많은 깃발 중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하나의 깃발.
깃발에는 철갑의 문장 중앙에 숫자 8이 적혀 있다.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최정예, 중장 돌격대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