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77)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77화
28장 위험한 초대(1)
레이먼은 소수 귀족과 고위 지휘관들에게, 산악 공작이 휴전 협정을 빌미로 벨피앙 공작령에서 열리는 연회에 초대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황제 폐하, 너무 위험합니다.”
중년의 고위 지휘관이 굳은 얼굴로 진언했다. 지휘부 막사에 모인 다른 고위 인사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의견에 동조했다.
레이먼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반대 의견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그 수가 많았다.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일 수도 있겠지만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어젯밤 되니츠 백작과 의논했을 때도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설득을 시도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었다.
레이먼은 지원을 요청하는 듯한 시선을 보냈고, 결국 뒤에 시립해 있던 되니츠 백작이 앞으로 한 걸음 걸어 나오며 입을 열었다.
“전선의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산악 공작의 군세는 조금씩 약세를 보이고 있지 않소? 시간만 충분하다면 제국군이 필히 이길 것이오.”
백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어떤 귀족이 말했다. 마치 자신들이 뛰어나서 승기를 잡았다는 오만한 표정으로 말하는 모습에, 침묵을 지키고 있던 단치히 백작이 눈살을 찌푸렸다.
되니츠 백작은 터져 나오려는 한숨을 간신히 억누르며 억지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우리에겐 시간이 없습니다. 검은 산맥이 위태롭습니다.”
“검은 산맥에는 크레이어 후작께서 버티고 있지 않소이까? 그분이라면 삼국 동맹의 군세를 능히 막아낼 수 있을 터!”
다른 전선의 사정이라고 생각 없이 말하는 모습이 답답했지만, 되니츠 백작은 애써 차분한 모습을 유지했다.
산악 공작의 휘하에 있을 때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어리석은 귀족들을 설득하는 건 그의 전문이었다.
“어제까지 크레이어 영지군 병력 이천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국경군 또한 이천 오백의 병력이 전사했지요.”
검은 산맥에서만 필리어스 제국군은 도합 사천 오백의 병력을 잃었다.
“더군다나, 제8중장 돌격대까지 출현했다고 하더군요.”
자유 이시리아 왕국이 자랑하는 중장 돌격대의 위명을 모르는 이들은 대륙에서 드물었으니, 당연히 이곳에 모인 지휘관들과 제국의 귀족씩이나 되는 인사들은 그 무서움을 잘 알고 있었다.
“크레이어 후작께서는 분명 버텨낼 수 있을 것이야.”
그러나 처음 망발을 시작했던 백작은 멈추지 않았고, 결국 되니츠 백작의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크레이어 후작께서는 분명 높은 경지에 오른 기사이면서, 동시에 뛰어난 지휘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앙의 지원 없이 삼국 동맹의 주력군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저는 오래 버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지원군을 보내면 되지 않겠는가?”
‘설마 이 정도로 답답한 귀족이 있을 줄이야.’
되니츠 백작은 한숨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얼마 전에 검은 산맥으로 지원군을 보낼 수 없는 필리어스 제국군의 사정을 설명했었는데, 아무래도 그 때 제대로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현재 필리어스 제국은 검은 산맥으로 충분한 수의 지원군을 보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백작과 휘하 영지군을 검은 산맥으로 보내드릴 수는 있습니다.”
다시 긴 설명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되니츠 백작은 간단하게 요약해서 말하고는 넌지시 약한 협박을 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계속 그러면 검은 산맥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협박, 그게 효과가 있는 것인지 계속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던 백작의 입이 굳게 닫혔다.
“좋습니다, 이제 조용해졌군요.”
어수선하던 지휘부 막사 안이 조용해지자 되니츠 백작은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검은 산맥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이제 다들 인지하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 말이 맞지요?”
되니츠 백작의 말에 귀족들과 고위 지휘관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검은 산맥으로 보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인지, 그들의 태도가 협조적이었다.
그들은 적어도 필리어스 제국군이 우세를 보이고 있는 벨피앙 전선에 남기를 원했다. 낮에는 자유 이시리아 왕국의 군세와 맞서고 밤에는 에드리거 왕국의 암살자들을 상대하며, 시도 때도 없이 습격해오는 마물들을 감당해야 하는 검은 산맥으로 향하는 건 원치 않았다.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이 고개를 숙이며 다시 뒤로 물러섰다. 분위기를 적당히 주물러 놨으니, 이제는 황제인 레이먼이 나설 차례였다.
“되니츠 백작이 설명을 잘해주었어.”
레이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되니츠 백작이 넌지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검은 산맥의 상황을 설명한 덕분에 무능한 귀족들은 입을 다물었고, 벨피앙 전선에만 집중했던 유능한 지휘관들도 검은 산맥의 상황을 잠시 살펴볼 계기가 되었다.
“검은 산맥의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다는 걸 이제 알겠는가?”
“죄송합니다, 황제 폐하.”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질책이 섞인 한마디에 귀족들과 지휘관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모습을 보며 레이먼은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크레이어 후작은 현재 필리어스 제국의 사정을 알고 있었다.
발렌시아 황실 직할령에서 물자는 보급받았지만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서부의 군사 지원은 거의 없었고 남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1황자를 지지했던 군부 세력 역시도 산악 공작의 영향력이 닿은 귀족들과 눈치싸움을 하고 있었으니, 사실상 제국의 전선을 유지하는 건 북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크레이어 후작은 지원군을 요청하지 않고 홀로 적들과 맞섰다.
지원군을 요청하는 전령이나 마법 통신도 전무했기 때문에, 중앙과 벨피앙 전선의 귀족들과 지휘관들은 검은 산맥의 전황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레이먼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이제 벨피앙 영주성에서 열릴 연회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였다.
* * *
짙은 어둠 너머에서 다가오는 은밀한 기척에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눌러 쓴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시딩턴 남작이냐?”
“리처드 경, 제 기척을 읽으신 겁니까?”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아뇨,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보여도 저는 ‘어두운 귀족회’의 일원이니까요.”
시딩턴 남작은 고개를 저으며 리처드의 앞에 앉았다.
‘어두운 귀족회’에 소속된 이들은 모두 고귀한 혈통을 가졌으며, 하사신보다 정예화되어 있기로 유명하다. 시딩턴 남작은 ‘어두운 귀족회’에서도 그 위치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자신의 은신을 읽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일 줄이야…….’
종말 협회는 점조직에 가까웠다. 서로 연결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연계가 깊지 않다. 그렇기에 시딩턴 남작 또한 종언의 전도사, 리처드의 이름과 이명은 많이 들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거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보고드릴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시딩턴 남작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그의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리처드를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같은 종말 협회 소속이라고는 하지만 눈앞의 전도사에게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듯했다. 어쩌면 리처드가 산악 공작의 일에 갑자기 끼어들어서 본능적으로 좋지 않은 감정이 생긴 것일 수도 있겠지만, 시딩턴 남작은 자신의 직감을 믿었다.
본능이 경고했다. 종언의 전도사는 위험한 인물이다.
“보고라……. 일단 말해 봐라.”
“황제가 이곳으로 온다고 합니다.”
“호위는 몇 명이나 대동한다고 하던가?”
“약 오십 명 정도라고 합니다. 전원 로열 가드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가 로열가드를 충원했다는 건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로열 가드로 충원할 만한 뛰어난 실력자들을 어디서 구했는지는 에드리거 왕국의 ‘어두운 귀족회’와 하사신들조차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어.”
호위로 로열 가드 오십이 따라붙는다는 시딩턴 남작의 보고에 리처드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호위가 만만치 않았다.
적진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감안한다면 50명이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그들이 필리어스 제국의 최정예로 유명한 로열 가드라는 게 문제였다.
“로열 가드가 있다고는 하지만 산악 공작 또한 이번에 ‘위험한 초대’를 습득하지 않았습니까? 그 유물을 적절하게 사용한다면 황제는 목숨을 잃을 것입니다. 물론 벨피앙 공작령이 뒷감당을 하지 못하겠지만 그건 저나 리처드 경이나, 협회가 신경 쓸 문제는 아니지요.”
시딩턴 남작의 말에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리어스 제국의 현 황제는 종말 협회의 무수히 많은 표적 중 하나였다. 그리고 산악 공작은 단순한 장기 말에 불과했다.
표적의 목숨을 빼앗을 수만 있다면 산악 공작과 벨피앙 공작령은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는 뜻이다.
“벨피앙 공작령의 전력으로 황제와 로열 가드를 상대할 수 있겠나?”
“산악 공작 또한 고위급의 경지에 오른 기사입니다. 황제는 마검사라고는 하지만 고작 상급의 경지에 불과하죠. ‘위험한 초대’를 사용하기만 한다면, 황제는 확실히 죽일 수 있습니다.”
“황제의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았군.”
리처드는 씨익 웃었다.
* * *
벨피앙 전선.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 레이먼이 일천의 황군과 함께 전선의 진지를 벗어났다. 전선을 떠나 공작령으로 진입하자 벨피앙 영지군 소속의 기마대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벨피앙 영지군 소속 제15기마대입니다! 약속된 바에 따라, 황군은 여기서 물러가 줘야겠습니다! 황제 폐하는 우리 제15기마대가 중심도시까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제15기마대의 책임 지휘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황제에 대한 예우를 조금이라도 찾아볼 수 없는 그 모습에 로열 가드와 카시야스는 분노했다. 로열 가드 같은 경우에는 가면을 쓰고 있어서 표정을 읽기 힘들었지만, 카시야스는 그 감정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카시야스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 제15기마대의 책임 지휘관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황군 지휘관께서는 언짢은 일이라도 있나 봅니다?”
황제를 앞에 두고 황제의 신하를 비꼬는 모습에 레이먼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를 향해 강한 살기를 방출했다.
“커, 커헉!”
일개 지휘관이 받아내기에 고위 마검사의 기세는 너무 강했다. 일순간이지만 그는 심장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고 말도 크게 놀라 그만 낙마하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 모습을 본 카시야스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제15기마대의 책임 지휘관께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제기랄!”
책임 지휘관은 욕설과 함께 다시 말에 올라탔다. 레이먼은 카시야스를 불러 가까이 오게 했다.
“카시야스 경.”
“예, 황제 폐하.”
“내가 벨피앙 영주성까지 가는 이유를 자네도 알고 있지?”
레이먼의 물음에 카시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제 폐하. 병졸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직접 산악 공작의 목을 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맞다. 필시 전투가 있을 것이니 이 근처에서 군을 숨긴 채 대기하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레이먼은 되니츠 백작이 그려준 중심도시의 비밀 지도를 품속에 갈무리해서 넣으며 말했다. 되니츠 백작은 유사시에 필리어스 제국군을 최대한 빨리 투입하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지만, 벨피앙 영지군이 앞을 막고 있으니 빠른 지원을 바라기는 힘들다.
그러나 지금 카시야스가 지휘하는 일천의 황군은 이미 그들의 공작령에 진입한 상태이니,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 은신하고 있으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었다.
“황제 폐하,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반드시 가장 먼저 달려와야 할 것이야.”
“예!”
힘차게 대답하는 카시야스를 뒤로 한 채 레이먼은 벨피앙 영지군 소속의 제15기마대와 합류했다.
제국의 황제를 호위한다고 하기에는 오백의 병력은 부족하다고 여긴 것인지, 중심도시를 향하는 와중에 기마대 2개가 추가로 합류했다.
“로열 가드는 경계를 늦추지 마라.”
블리자드 후작이 냉기가 느껴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호위를 명목으로 다가왔지만, 저들을 믿어서는 안 될 것이다.
초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벨피앙 공작령과는 내전 중이고 저들은 공작령의 군대다. 애초에 호위가 아니라 감시 목적으로 산악 공작에게 따로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야영할 때도 로열 가드의 경계는 철저했다. 그렇게 며칠을 달려 중심도시에 도달했다. 제국에 2개밖에 없는 공작령의 중심도시답게, 수도와 비교해도 될 정도로 웅장한 모습이었다.
“공작령이라서 그런지 중심도시가 크긴 하네요.”
데시아가 말했다. 그녀는 적의보다는 신기함에 두 눈을 빛내며 주위를 살폈으나, 산악 공작의 휘하에 있다가 배신당했던 게슈타인의 눈에는 증오가 가득했다.
레이먼은 차분한 표정으로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었다.
“게슈타인, 네 증오는 내가 갚아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는 실비아를 보며 입을 열었다.
“실비아.”
“예,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이 비밀 지도를 줬다고는 하지만 퇴로를 이끄는 건 너다. 지리를 확실히 외워.”
“걱정 마세요.”
실비아가 엘프 특유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며 레이먼은 씨익 웃어 보였다. 사실 처음부터 걱정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