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78)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78화
28장 위험한 초대(2)
벨피앙 공작령의 고위 마법사, 리카도 엔슬은 내성에 위치한 높은 첨탑에서 중심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쪽 성문을 통해 중심도시로 들어오는 황제와 로열 가드들의 모습을 보며 그는 살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동생, 안델 엔슬이 목숨을 잃은 뒤, 복수심에 미쳐 폐인처럼 살아왔다. 그리고 마침내 그 증오를 갚아줄 날이 다가왔으니, 그는 기쁜 마음으로 피로 물들 연회에 목숨을 바칠 것이다.
“리카도 경.”
등 뒤의 어둠 속에서 검은 제복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자신을 부르는 차가운 목소리에 리카도는 첨탑 아래로 보이는 광경에서 시선을 거두고서 뒤돌아섰다.
“왔는가?”
“영주님께서 연회에 참석할 준비를 서두르라 하셨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군.”
리카도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 * *
“황제 폐하께서 친히 방문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중을 나온 이조차 없다니…….”
블리자드 후작이 싸늘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환영 인사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설마 마중 나오는 이조차 한 명도 없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초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기는 적의 심장부다, 블리자드 후작. 친절한 안내를 기대했다면 접어두는 게 좋을 것이야.”
레이먼이 한마디 했다. 블리자드 후작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안내자를 보내기는 할 겁니다.”
차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게슈타인이었다. 이윽고 그의 말대로 귀족의 예복을 갖춰 입은 젊은 여성이 다가왔다.
“벨피앙 공작령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황제에 대한 예우를 찾아볼 수 없는 그 모습에 로열 가드들이 자극받았다.
“진정해라, 제군.”
블리자드 후작이 차가운 목소리로 로열 가드들을 진정시켰다. 그 모습을 보는 여성 귀족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처음부터 도발할 생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대는 어서 우리를 영주성으로 안내하라.”
“예, 안내하겠습니다.”
차분하게 안내를 요청했다. 여성 귀족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서 앞장서서 말을 몰았다. 그녀의 뒤를 따라 벨피앙 공작령의 영주성에 도착했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어느 로열 가드가 중얼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었던 모양인지 혼잣말이라고 하기에는 목소리가 제법 컸고 분노가 섞여 있었으나 그 누구도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산악 공작의 처사에 모두가 분개했기 때문이었다.
높게 솟은 영주성의 성벽에는 장궁을 든 궁병대가 가득 채우고 있었고 망루마다 로브를 입은 마법사들의 모습이 보였으며, 성문 앞에 마중 나온 이들은 무장한 기사단과 병사들이었다.
이곳은 적지였으며 그들의 기세가 흉흉하고 살기를 머금고 있으니 이건 분명한 위협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다.
“로열 가드, 진정해라. 아직은 때가 아니다.”
어느새 로열 가드들의 손이 하나같이 무기를 향하고 있었다. 레이먼은 잔뜩 흥분한 그들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앞으로 말을 몰았다.
황제가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단은 여전히 말에서 내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오히려 날카로운 기세를 일으켜 레이먼과 로열 가드들을 압박하고 도발했다.
“무례하군.”
레이먼은 무심한 듯 한마디 내뱉을 뿐었지만, 살기를 머금은 기세가 뾰족한 칼날이 되어 기사단의 기세를 찢어 놓았다.
“큭!”
“커헉!”
대놓고 발산하던 기세가 찢어지면서 반작용을 받은 기사들이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비틀거렸다.
“벨피앙 제1기사단은 고작 이 정도더냐?”
이번에는 레이먼이 도발했다. 짧지만 분명한 도발을 담은 한마디에 벨피앙 제1기사단원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차피 산악 공작의 목표는 황제를 죽이는 것이다. 이는 이곳에 동행한 로열 가드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도발을 직격으로 맞은 벨피앙 제1기사단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까 싶어 긴장했지만, 레이먼은 달랐다.
‘저들은 지금 검을 뽑을 수 없다.’
그의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가 번졌다. 영주성의 연회장, 그곳이 아니라면 기사들은 검을 뽑지 않을 것이라고 되니츠 백작이 말했었다.
되니츠 백작이 강하게 확신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설마 영주성 전체에 대규모 마나 봉쇄 마법진을 설치했을 줄이야.’
대규모 마법진을 설치하려면 천문학적인 비용과 노력이 소모된다. 공작위의 귀족이 아니라면 생각도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암살 위협을 겪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미친 짓을 할 줄이야.’
레이먼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림자 특임대를 보유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산악 공작이 자신만만하게 영주성으로 초대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대규모 마나 봉쇄 마법진이 설치된 곳으로 적들을 초대했으니, 이미 암살 성공을 확정 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안해서 어쩌나?’
레이먼은 대규모 마나 봉쇄 마법진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방법을 몰랐다면 초대에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벨피앙 제1기사단장, 체스터 자작. 기사들 틈에 섞인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그가 레이먼의 기세를 걷어내며 등장했다.
대면하기 무섭게 날카로운 기세부터 쏟아낸 벨피앙 제1기사단원들과는 다른 정중한 말투는 언뜻 예의를 차린 것처럼 보였지만, 체스터 자작 역시 황제를 앞에 두고 말에서조차 내리지 않았으며 직선으로 향하는 매서운 시선의 끝에는 살기가 묻어 나왔다.
“황제 폐하…….”
“아직은 때가 아니다.”
블리자드 후작의 목소리에서 짙은 분노가 섞여 나왔지만, 레이먼은 여전히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만약 검을 뽑게 된다면 산악 공작의 앞이어야 할 것이다.
“자네가 앞장서게나. 기사단장.”
“알겠습니다.”
체스터 자작이 먼저 움직였다. 그들은 말에 탄 채로 영주성의 성문을 넘어 저택이 있는 방향으로 이동했다. 아무 생각 없이 체스터 자작의 뒤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레이먼은 실비아와 함께 열심히 지리와 군사 배치를 눈에 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들은 영주의 저택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도보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모두 일제히 말에서 내려서 걷기 시작했다. 정원을 지나 저택 본채로 들어섰다.
“먼 길 오신 분들을 위한 환영 연회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환영 연회가 아니라, 참수식이겠지. 레이먼은 체스터 자작의 말을 정정해주고 싶었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여 보일 뿐이었다.
‘여독을 풀 시간도 주지 않고 연회장으로 안내한다……. 어지간히 내 목을 빨리 따고 싶었나 보네.’
산악 공작의 의중을 짐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벨피앙 공작의 호의를 받아들이겠네.”
“연회장은 이쪽입니다. 영주님께서 ‘특별히’ 호위의 동행도 허락하셨습니다.”
체스터 자작은 ‘특별히’라는 단어에 힘을 줘서 말했다.
호위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도 암살을 할 자신이 있다는 것일 테지. 레이먼은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윽고 레이먼은 오십의 로열 가드들과 함께 연회장에 도착했다. 높이가 2m는 될 것 같은 거대한 문이 열리고 안으로 들어서자, 노골적으로 살기를 머금은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말이 연회장이지 처형장이나 다름없었다.
“황제 폐하, 은신하고 있는 적들의 숫자가 백 명이 넘어요.”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보고했다. 그녀가 다루는 바람의 정령은 길을 안내할 뿐만 아니라 적의 기척을 잡아내는 데도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아직 ‘정령왕의 기록’을 흡수하기 전임에도 그녀의 탐색 능력은 웬만한 고위 마법사보다 우수한 수준이었다.
‘은신하고 있는 이들만 백 명이라…….’
처형장이라는 표현이 과한 게 아니었다. 은신하고 있는 백 명을 제외하더라도 연회장 안에는 가벼운 무장을 갖추고 있는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레이먼과 로열 가드들을 향해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다.
“연회장 밖에도 다수의 병력이 대기 중입니다. 그 수가 최소 수백이에요.”
“그림자 특임대는?”
레이먼이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데시아나 블리자드 후작과는 달리 탐색에 특화된 실비아라면 그들의 존재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굳은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있는 것 같습니다…….”
긴장한 것인지 실비아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탐색의 능력은 대상의 무력 수준까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정령을 통해 감지한 그림자 특임대의 수준이 결코 낮지 않았을 테니, 불안할 수밖에.
“숫자는?”
“20명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실비아가 여전히 떨리는 음성으로 보고했다. 다행히 생각보다 그림자 특임대의 수가 많지 않았으나, 안심할 정도는 아니다.
그림자 특임대, 그들은 산악 공작이 암살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비밀리에 만든 특수 조직으로 로열 가드처럼 기사와 마법사, 암살자가 혼재되어 있으며, 정예도가 높은 걸로 설정되어 있다.
비슷한 집단인 쉐이드보다는 약하다는 설정이 있지만 여기는 적진이다. 게다가 은밀하게 움직이느라 쉐이드들 역시 20명 정도밖에 동행하지 못했으니, 그림자 특임대의 존재는 어떤 식으로든 변수로 작용할 확률이 높았다.
“고위 기사는 산악 공작과 체스터 자작이 전부입니다. 고위 마법사로는 저기 리카도 엔슬이 있군요.”
이번에는 게슈타인이 보고했다. 산악 공작 또한 고위 기사의 경지에 오른 실력자다. 적진이라고는 하지만 제한된 공간에서 한정된 인원으로 전투를 벌이게 될 테니, 산악 공작 또한 전면에 나설 것이다.
고위 기사가 두 명에 고위 마법사가 한 명, 공작 가문의 전력으로는 조금 부족하다가 느낄 수도 있을 테지만, 그림자 특임대의 전력까지 더해지면 결코 얕볼 수 없다.
“리버스 벨피앙 공작 각하께서 입장하십니다!”
산악 공작의 이름이 울려 퍼지자 연회장에 모여 있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일제히 입구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기사들은 검례를 취했으며 마법사들은 스태프를 쥐고 있는 손을 심장 쪽으로 가져가며 예의를 갖추었으나, 레이먼과 로열 가드들은 그 어떤 예도 갖추지 않았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으셨소, 황제.”
산악 공작이 말했다. 예의가 많이 생략되어 있었지만 레이먼은 흔들림 없었다. 여기서 분개하면 산악 공작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먼저 검을 뽑는 이가 지는 것이다.
서로를 노리는 날카로운 도발의 행렬이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이길 자신이 있었다. 산악 공작 옆에는 분노를 간신히 집어 삼키고 있는 리카도 엔슬이 있었으니까.
“무례하군, 그대는 어전이라는 걸 망각한 모양이야!”
레이먼이 차분한 목소리로 응수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50m 이상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으며, 교전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호위들의 지원을 받으면 충분히 물러날 수 있는 거리였다.
“황제야말로 겁을 상실했군!”
“지금 누가 우위에 있는지 모르는 것 같군요.”
산악 공작의 말에 리카도 엔슬이 동조했다. 황제를 향한 강한 증오를 흘리는 그 모습에 레이먼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리카도 엔슬 경! 동생은 잘 있는가?”
그 한마디가 분노의 방아쇠를 당겼다. 산악 공작이 말리기도 전에 리카도가 먼저 반응했다. 그가 손을 내뻗자 수십 개의 마나 화살이 생성되어 레이먼을 노렸다.
“암습이다!”
“황가의 방패는 황제 폐하를 수호하라!”
로열 가드들이 반응했고 데시아가 가장 먼저 레이먼의 앞을 막아서면서 실드를 펼쳤다. 수십 개의 마나 화살이 쏟아졌으나, 데시아의 실드는 흔들림 없었다.
“제기랄! 리카도 엔슬 경! 자네는 경솔했어!”
산악 공작은 욕설을 내뱉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지금 상황에서 질책이 길어져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는 곧바로 연회장의 병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블리자드 후작! 입구를 막으시오!”
게슈타인이 외쳤다. 블리자드 후작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마법진을 그렸다. 이윽고 거대한 출입문이 완전히 얼어붙었다. 이걸로 적의 지원 병력이 1차적으로 차단되었다.
“벨피앙 제1기사단! 발검!”
체스터 자작의 외침에 연회장에 함께 들어온 벨피앙 제1기사단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몇몇의 검에서 날카로운 검명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푸른 마나가 서렸다.
연회장의 2층에서는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동시에 주문을 영창하기 시작하자 연회장 내부의 마나가 요동쳤다. 1층에는 기사들, 그리고 2층에는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천장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 일백이 낙하했다.
“요격하라!”
“저 간악한 악의 무리가 황제 폐하를 위협하게 둬서는 안 된다!”
“로열 가드! 총공세를 취하라!”
날카로운 외침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오고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블리자드 후작이 소환한 차가운 얼음의 창들이 암살자들을 꿰뚫는 게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