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81)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81화
29장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1)
차원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칠흑빛의 사슬이 산악 공작의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휘감고 뒤로 잡아끌었다.
-그아아아아!
한때 명예로운 고위 기사였지만 지금은 광인이 되어버린 이의 허탈한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허우적거리며 발악했지만, 신격마저 봉인한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다. 점차 그의 몸은 뒤로 끌려갔고 손끝은 검에 닿지 않았다.
-그아아앗!
그는 분노하여 울부짖었지만, 그것조차도 무력한 발버둥에 불과했다. 충분한 거리가 확보되자 레이먼은 허벅지에 꽂힌 검을 단숨에 뽑아냈다.
고통 외에도 과다 출혈을 일으키는 저주까지 섞여 있었던 것인지 검이 빠져나오기 무섭게 솟구치는 피의 양이 많았으나, 그는 침착하게 마법으로 출혈을 진정시키고 상처를 회복했다.
“사슬을 끊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그건 타락의 신격, 아스타르조차 봉인한 것이니……. 네가 어찌해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레이먼이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하지만 광인이 된 산악 공작의 귀에는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들리지 않는 것인지, 그는 무의미한 발버둥을 멈추지 않고 발악했다.
조용히 검을 들어 올리며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명한 마나를 머금은 칼날이 날카롭게 빛난 순간, 레이먼은 힘차게 검을 휘둘러 산악 공작의 목을 쳤다.
-끄르르르륵!
드높은 경지에 오른 마나 소드로 처형을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일격이 목이 떨어져 나가지 않아서, 검을 회수한 뒤 두 번째 참수를 시도해야만 했다.
“이게 마물화라는 건가?”
종말 협회와 달리 마물화에 대한 설정은 꽤 자세하게 존재한다. 그래서 마물화로 인한 신체 강화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겪으니 목숨줄이 참으로 질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검은 땅 위에 나뒹구는 산악 공작의 머리통에 레이먼의 차가운 시선이 닿았다. 반쯤 인간성을 상실한 형태의 잘린 머리를 보며 레이먼은 눈살을 찌푸렸다.
“최후가 비참하구나, 산악 공작…….”
반역을 일으켰다고는 하지만 제국에서 이름 높은 고위 기사였다. 그런 그에게 인간의 형태를 잃은 최후는 비참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지만, 유감이라는 감정은 없었다.
레이먼은 무심한 시선을 거두며 착검했다. 그것을 일종의 신호로 받아들인 것일까? 산악 공작의 죽음에 ‘위험한 초대’가 레이먼을 승자로 인식하면서 검은 결투 공간이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건 지배력……?”
화려하게 무너지기 시작한 공간에 신경을 쓸 겨를조차 없었다. 거의 바닥을 보였던 지배력이 상당량 회복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대충은 알 것 같군.’
레이먼의 입가에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아무래도 위명 높은 인물이나 강적의 목숨을 취함으로써 세계관에 영향을 끼치면 이 특수한 ‘자원’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나쁘지 않았어.”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다. 두 기사만의 조용한 결투의 세계는 레이먼의 중얼거림을 끝으로 종언을 고했다.
* * *
“황제 폐하!”
섬광이 번쩍하는가 싶더니 공간이 갈라지며, 피투성이가 된 황제가 비틀거리며 쓰러지듯 빠져나왔다. 적들을 향해 냉기를 흩뿌리고 있던 블리자드 후작이 블링크 마법으로 단숨에 레이먼에게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나는 괜찮으니, 자네는 로열 가드들을 소집하여 퇴로를 확보하라.”
“이대로 물러나도 되겠습니까?”
블리자드 후작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산악 공작이 죽임을 당했다는 걸 아직 모르는 듯했다. 레이먼은 그런 그를 보며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산악 공작은 죽었다. 저길 봐라.”
손가락 끝으로 가리킨 곳에는 반쯤 마물이 된 시체가 있었다. 기형적인 외관이었지만 산악 공작 생전의 모습이 남아 있었다.
“대, 대체 무슨 일이…….”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황제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산악 공작은 기괴한 시체가 되었다.
뭔가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블리자드 후작 본인의 능력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산악 공작이 죽었다!”
바로 그것이다. 가장 앞에서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며 적들을 베어 넘기던 게슈타인이 마나를 담은 목소리로 산악 공작의 죽음을 전파했다.
“공작 각하!”
“영주님!”
검성의 날카로운 기세와 선명한 오러 블레이드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는 공세를 퍼붓던 벨피앙 제1기사단이 흔들렸다.
평생 충성을 바친 주군의 죽음은 벨피앙 제1기사단으로 하여금 검을 놓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엉망이 된 산악 공작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물러났지만, 리처드 그리고 시딩턴 남작과 종말 협회의 전투조는 달랐다.
“리처드 경! 산악 공작이 죽었습니다!”
벨피앙 제1기사단이 전의를 상실했고 영지의 마법사 부대 또한 화력 공세를 중단했다.
황제는 그들의 공세가 약해진 틈을 타 퇴로를 준비하고 있었다. 시딩턴 남작은 굳이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지만, 리처드도 전장을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악 공작의 죽음으로 전황이 급격하게 반전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설마, 산악 공작이 질 줄이야.”
리처드의 떨리는 시선이 산악 공작의 시체에 닿았다. 참수를 당했으니, 생명이 끊어진 게 확실하다.
믿기 힘든 점이 있다면 드높은 고위 기사의 경지에 오른 산악 공작을 레이먼이 어떻게 꺾었으냐, 이것이다. 그가 알고 있는 레이먼의 경지는 고작 ‘상급’이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정보가 잘못되었다. 산악 공작이 죽임을 당한 걸 보면 황제는 결코 상급의 경지가 아니다.’
리처드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힘을 숨기고 있었구나, 황제여.”
자신도 모르게 품고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산악 공작은 종말의 은총을 받았습니다. 인간의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힘을 얻었으니, 적어도 드높은 경지에 올라야만 그와 대적할 수 있을 겁니다.”
시딩턴 남작이 설명을 덧붙였다. 적어도 그는 레이먼이 드높은 경지, 고위급의 벽을 넘었다고 확신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종말의 은총을 받은 고위 기사를 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고위 마검사에 검성까지 있습니다. 협회에서 예상한 것보다 과한 전력입니다. 당장 물러나야 합니다.”
“시딩턴 남작. 이런 기회가 자주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나?”
“산악 공작의 수하들도 물러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협회 전투조를 투입해서 추격하라. 황제는 지금 중상을 입었고, 검성 또한 벨피앙 제1기사단을 상대하느라 지쳤을 것이다.”
거듭 진언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리처드는 강경한 태도를 유지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레이먼은 중상이었지만 예상치 못한 검성의 활약 때문에 로열 가드가 건재했다. 산악 공작마저 목숨을 잃은 지금, 협회의 전투조를 투입한다고 해도 추살에 성공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레이먼이 보유한 전력이 종말 협회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한 전투조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세상에. 검성과 고위 마검사라니, 누가 예상했겠는가!
“다시 한번 명령한다, 시딩턴 남작. 협회의 전투조를 투입해라.”
“알겠습니다……. 즉시 움직이겠습니다.”
리처드의 목소리에서 깊은 증오가 느껴졌다. 상급자가 강하게 의견을 계속 밀어붙이니, 시딩턴 남작도 결국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수신호에 맞춰 은신해 있던 종말 협회의 전투원들이 앞으로 나섰다.
* * *
“황제 폐하! 은신해 있던 병력이 움직였습니다!”
실비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바람의 정령으로 전장을 감시하고 있던 그녀는 은신한 적들의 움직임을 가장 먼저 알아챘다.
“게슈타인! 어서 돌아오게!”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적진을 휩쓸고 있던 외팔의 검성이 돌아왔다. 주군을 잃고 전의를 상실한 벨피앙 제1기사단은 그를 저지 하지 않았다.
“로열 가드! 집결하라!”
황제의 의도를 눈치챈 블리자드 후작이 다시 한번 로열 가드에 집결령을 내렸다. 또다시 흩어지기 시작한 로열 가드가 황제의 깃발 아래 일제히 모여들었다.
“게슈타인! 선두에서 퇴로를 확보해라!”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레이먼이 지친 목소리로 지시했다. 그의 부상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챈 게슈타인은 황제의 곁에 붙어 있겠다는 고집조차 버리고 선봉에 섰다.
“로열 가드는 선봉을 지원하여 길을 열어라!”
블리자드 후작이 기민하게 전술을 펼쳤다.
“실비아!”
“네! 제가 앞으로 갈게요!”
엘프와는 어울리지 않는 흑색의 망토를 휘날리며 실비아가 날렵하게 앞으로 달려갔다. 혼란스러운 전장에 향긋한 풀 내음이 퍼졌다.
그녀는 지난 며칠 동안 되니츠 백작이 그려준 비밀 지도를 암기했다. 길잡이 역할을 하는 바람의 정령까지 힘을 보탠다면, 은신한 적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해도 벨피앙 공작령을 능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리라.
“게슈타인! 무슨 일이 있어도 실비아를 지켜야 한다!”
레이먼이 외쳤다. 멀쩡한 몸이었다면 그가 직접 나서서 실비아와 함께 행동했겠지만, 산악 공작이 ‘마물화’라는 간악한 변수를 쓰는 바람에 얻은 부상은 생각보다 가볍지 않았다.
“황명이 있으니, 저들은 그녀에게 접근조차 하지 못할 것입니다!”
“검성의 수호라, 과분할 정도네요.”
전방에서 게슈타인이 오러를 흩뿌리며 대답했고, 데시아는 방어 마법을 준비하며 두 눈을 빛냈다. 그리고 탈출이 시작되었다.
“이쪽이에요!”
실비아는 바람의 정령이 전해주는 속삭임을 듣고 적들의 포위가 약한 곳을 찾아 게슈타인을 안내했다. 외팔의 검성이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자 협회의 전투원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되니츠 백작의 비밀 지도를 암기한 실비아 덕분에 단숨에 영주성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종말 협회는 추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집요하게 쫓아왔다. 실비아는 일행들을 지름길로 안내했지만, 종말 협회의 전투원들이 너무 바짝 추격해 와서 큰 의미가 없었다.
“요격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로열 가드의 일루전 자작이 블리자드 후작을 보며 물었으나, 대답은 곧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짧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위독하시다. 어서 빨리 카시야스 경의 황군과 합류해야 한다.”
블리자드 후작의 말에 일루전 자작은 황제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레이먼의 안색이 창백했다. 피는 멎은 것 같았지만 조금 전부터 계속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었다.
“황제 폐하, 아무래도 독에 중독된 것 같습니다.”
“제기랄!”
치료를 맡은 로열 가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갑작스럽게 몰려오는 짜증에 레이먼은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설마 독까지 품고 있을 줄이야.’
레이먼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극독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속히 안정을 취하면서 회복에 전념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로열 가드는 휴식을 권했으나 종말 협회의 전투원들이 추격을 해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잠시라도 멈추기는 힘들었다.
“앞에 뭔가 있어요!”
계속 박차를 가하며 말을 재촉하고 있을 때였다. 실비아가 전방에 적의 존재를 사전에 감지하고서 경고했다. 검성 게슈타인이 날카로운 기세를 흘리며 다시 검을 뽑아 들었다.
“와라! 네놈들은 나를 넘지 못할 것이다!”
전방을 향해 오러가 폭발하듯 쏟아졌다.
“크아악!”
“으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종말 협회 전투원들의 몸이 터져 나가면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내지른 단말마였다.
“황제 폐하의 이름으로!”
로열 가드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기뻐했으나, 적들 모두가 쓰러진 것은 아니었다. 솟구친 흙먼지를 뚫고 검은 복면인 다섯이 게슈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와라!”
게슈타인이 호기롭게 외치며 검을 회수했다. 협회의 정예 전투원 다섯이 검성의 발목을 묶어두는 사이, 하늘에서 우르르 낙하한 또 다른 전투원들이 로열 가드와 교전을 시작했다.
“황제 폐하!”
맑지만 날카롭고 다급한 목소리, 그 주인은 실비아였다. 그녀는 발이 묶인 검성과 혼란스러운 로열 가드 진형을 뚫고 레이먼에게 접근하는 음험한 그림자의 존재를 감지한 것이다.
그 경고 덕분에 레이먼은 황급히 영혼검을 뽑아 들었고 데시아는 방어 마법을 펼칠 수 있었다.
데시아가 펼친 마나 실드에 검은 기운을 머금은 수십 개의 암기가 꽂혔다.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 거다, 암살자.”
“독에 중독되어선 다 죽어가고 있는데, 입은 살아 있는 것 같군요, 황제…….”
높게 솟은 나무 밑의 그림자에서 천천히 걸어 나온 이는 시딩턴 남작이었다.
“협회에서 당신의 종말을 선고했습니다. 아쉽지만 이쯤에서 퇴장해 주셔야겠습니다.”
“로열 가드! 황제 폐하를 수호하라!”
일루전 자작의 지시에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던 로열 가드 둘이 시딩턴 남작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컥!”
“으아악!”
로열 가드 둘이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데시아조차 시딩턴 남작의 움직임을 읽지 못할 정도였다.
“제기랄! 블리자드 후작 각하!”
일루전 자작은 블리자드 후작을 불러봤지만, 일백이 넘는 협회의 전투원들과 교전 중인 로열 가드와 검성은 레이먼을 도울 수 없었다. 상황은 혼란스러운 난전이었으니, 로열 가드의 완벽에 가까웠던 호위는 이미 허점을 드러냈다.
“종말 협회 소속이더냐?”
“그렇다고 해두죠. 어차피 여기서 당신과 수하들은 살아나가지 못할 테니…….”
섬뜩한 살기가 목을 조여 오는 듯했다.
“데시아 경! 황제 폐하와 함께 물러나게! 내가 시간을 벌겠어!”
일루전 자작이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시딩턴 남작이 손을 살짝 휘젓자 어디선가 날아온 단검들이 그의 전신을 꿰뚫었다.
“커, 커헉!”
힘없이 쓰러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데시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는 마나 실드를 유지한 채 레이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강인했던 황제는 독에 중독되어 지쳐 있었다.
“황제 폐하…….”
도와줄 사람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지킬 수밖에 없어…….”
다가오는 어두운 그림자, 살기를 잔뜩 머금은 시딩턴 남작의 칼날을 보며 데시아는 금기를 해제했다.
강한 육체를 가진 마검사에게는 허용되었으나, 마법사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금기.
마나 폭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