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82)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82화
29장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2)
“마나 폭주? 죽음을 각오한 것입니까, 마법사여…….”
“황제 폐하를 위하여.”
“필리어스 제국의 신하들이 광신으로 유명하다고는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시딩턴 남작이 두 눈을 빛내며 허리에서 단검을 뽑아 들었다.
날카로운 적의를 드러내는 음험한 암살자에게 데시아의 시선이 닿은 순간,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이며 전격의 창 수십이 비처럼 쏟아졌다.
콰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흙먼지가 솟구쳤다. 상급 마법의 다중 영창이 작렬했음에도 불구하고 데시아는 시딩턴 남작의 생존을 감지했다.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데시아……. 무리하지 마라…….”
레이먼이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 또한 마나 폭주를 사용한 마법사의 최후를 알고 있었다.
검과 마법, 두 가지 속성으로 마나 로드가 단련된 마검사와 달리 마법사의 마나 로드는 생각보다 나약했고 마나 폭주를 견딜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마검사와 달리 마법사들 사이에서, 마나 폭주의 사용은 마나 탈진으로 이어지면서 높은 확률로 목숨을 잃는 금기로 분류되었다.
“후!”
내뱉는 숨결에서 푸른 기운이 묻어났다. 폭주한 마나가 전신에서 요동치고 있었고 그녀의 시선은 흙먼지 속에 꽂힌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레이먼의 걱정 섞인 목소리를 들었을 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은 기분에 마음이 아찔했지만, 어쩌겠는가?
그녀가 모든 것을 바치기로 맹세한 황제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데시아…….”
레이먼이 힘겹게 말했다. 그러나 미약한 목소리는 그녀에게 닿지 못했다. 몸에 점점 힘이 빠졌다.
중독된 상태에서 추격을 따돌리려는 강행군을 이어온 탓이었다. 지금은 로열가드 준남작의 부축을 받으며 서 있는 게 고작이었다.
“큭…….”
마나를 운용하려 했지만 푸른 기운 대신 흘러나온 것은 고통에 찬 신음이었다.
데시아가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는 걸 지켜보고 싶었다. 이곳에서 그녀를 잃을 수는 없었지만 지금 그는 무력했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린 시선의 끝에서, 데시아는 푸른 마나를 폭풍처럼 쏟아내며 수십 개의 마법진을 한 번에 그리고 있었다.
이중 영창도 아니고 최상급 마법의 다중 영창이다. 마나 폭주가 있다고는 하지만 재능이 없으면 행할 수 없는 기술이었다.
레이먼은 감탄하면서도 안타까워했고, 그런 그의 시선을 뒤로한 채 데시아는 다중 영창을 끝냈다.
“청염의 심판!”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함께 완성된 마법진들이 푸른 화염을 토해냈다.
“최상급 마법의 다중 영창이라고? 이런 말도 안 되는!”
최상급 마법사의 마나 폭주에도 불구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유지하던 시딩턴 남작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눈앞을 가득 채우는 푸른 화염의 폭풍에 평정을 잃고 말았다.
“이건 조금 버거울지도 모르겠군요.”
검은 그림자가 시딩턴 남작의 몸을 뒤덮었고, 그는 짧은 한숨과 함께 청염을 돌파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피투성이가 되어 청염을 꿰뚫고 나온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데시아가 준비한 또 다른 마법진이었다.
기하학적인 문양이 가득한 마법진은 마법에 대한 지식이 얕은 암살자가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였다.
“서, 설마 고위 마법?”
시딩턴 남작의 당혹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데시아는 씨익 웃었다.
“블리자드.”
고위 마법이 작렬했다. 칼날을 머금은 냉기가 시딩턴 남작뿐만 아니라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협회 전투원들까지 휩쓸었다.
차가운 냉기는 닿는 모든 걸 얼려 버렸고, 칼날을 머금은 바람은 앞을 막는 것들을 절단했으며, 하늘에서 쏟아지는 얼음 송곳은 육신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열 명이 넘는 협회 전투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시딩턴 남작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만신창이었다.
“쿨럭!”
시딩턴 남작이 붉은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블리자드에 휩쓸려 그는 왼팔을 잃었고 하반신은 얼어붙었다. 상체도 예복의 하얀 셔츠가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설마 목숨을 담보로 마나 폭주까지…… 사용할 줄이야……. 이건 광신을 넘어섰군요…….”
예상하지 못했다는 투로 말하는 시딩턴 남작을 보며 데시아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처음 레이먼이 대마법사의 가능성을 열어줬을 때만 해도 그를 위해 충성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지만 설마 목숨까지 바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처음 입가에 머금었던 쓴웃음은 이내 희미한 미소로 바뀌었다. 대마법사의 경지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위해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황제 폐하, 만세.”
슬슬 마나 폭주의 여파가 오기 시작했다. 데시아는 힘겹게 왼손을 들어 올려 시딩턴 남작을 겨눴다. 손끝에 생성된 마법진이 얼음의 창을 쏘았다.
푹!
“큭!”
시딩턴 남작이 짧은 신음을 흘렸다. 뾰족한 얼음의 창이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차가운 북풍에 맞아 다리가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었다. 그의 고개가 힘없이 꺾였다.
선 채로 죽었다.
“이걸로 끝난 걸까요?”
데시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블리자드의 북풍이 전장을 휩쓸면서 후방의 협회 전투원들을 전멸시킨 덕분에 전투는 아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유가 생긴 것인지 블리자드 후작이 로열 가드 셋과 함께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데시아는 그제야 안심하고 긴장을 풀었다.
그녀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마나 폭주로 마나 로드는 물론이고 신체 내부가 엉망이 되었다. 지금까지 힘겹게 버텼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소중한 황제님을 도와줄 로열 가드들이 달려오고 있었으니, 더 이상 버틸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쉬고 싶었다.
“데시아!”
로열 가드의 부축마저 팽개치고, 쓰러지는 데시아를 향해 달려갔다. 레이먼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차가운 땅 위에 누워 입 밖으로 붉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황제 폐하! 실비아 경이 길을 열었습니다! 적의 추격이 더 붙기 전에 속히 이 지역을 탈출해야 합니다!”
뒤늦게 달려온 블리자드 후작이 다급한 목소리로 탈출을 진언했지만, 레이먼은 대답이 없었다. 그는 말없이 마나를 움직여 데시아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살릴 수 있다.’
레이먼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녀는 마나 로드가 망가지면서 심각한 내상을 입었지만, 최악은 면했다.
아직 소생의 가능성이 있었다. 낮은 확률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마나 로드를 복구하면서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도 있었다.
이를 마법사들은 ‘마나 회생’이라고 불렀다. 폭주로 인해 마나 로드가 망가졌다고 하더라도 최악의 경우만 아니면, 드높은 경지에 오른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회복할 가능성이 분명 존재했다. 그리고 레이먼은 반쪽짜리 마법사이긴 하지만 분명 고위급이라는 드높은 경지였으니, 마나 로드를 복구할 수만 있다면.
‘데시아를 살릴 뿐만 아니라, 그녀를 고위 마법사로 만들 수도 있다.’
레이먼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데시아를 안아 들고 말에 올라탔다.
“로열 가드는 길을 열라!”
황제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로열 가드들은 황명을 수행했다. 종말 협회의 전투원들이 휘두르는 칼날과 쏟아지는 마법에 하나둘씩 쓰러지면서도 황제 레이먼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
고위 마법이 휩쓸고 지나간 터라, 종말 협회 전투원들이 위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수도 많았고 정예들이었다.
결국 10명이 넘는 로열 가드가 피를 흩뿌리며 쓰러진 뒤에야 퇴로가 열렸다.
“어전이다! 감히 앞을 막지 말지어다!”
검성 게슈타인 또한 고위 기사와 상급 기사 등으로 이루어진 종말 협회의 정예 다섯을 쓰러뜨리고 합류했다.
“최대한 빨리 카시야스 경의 황군과 합류해야 한다!”
“적의 전열은 이미 무너지지 않았습니까?”
레이먼의 다급한 목소리에 어느 로열가드가 의문을 표했다.
앞을 막아섰던 의문의 복면인들, 종말 협회 전투원들의 수준은 높았지만 검성 게슈타인과 마나 폭주로 일시적이지만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데시아의 활약으로 물리쳤다.
적들의 전열은 완전히 무너졌으며 포위는 풀렸다. 당장 추격을 계속해 올 의사조차 잃은 듯 보였기에, 로열 가드는 독에 중독되었음에도 과하게 서두르는 황제의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어디선가 강한 실력자가 이곳을 주시하고 있다.”
뺨에 섬뜩한 살기가 닿는 게 느껴졌다. 최소 고위 이상의 경지에 오른 지 상당히 오래된 실력자가 근처에 있다.
레이먼은 떨리는 시선을 흩뿌렸다.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여 주변을 살폈다. 그 실체는 보이지 않았으나, 분명 근처에 있다.
“안전한 길로 인도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실비아, 잘 부탁한다.”
실비아가 게슈타인과 함께 앞으로 달려갔고, 안전한 후방에 남은 레이먼은 자신이 안고 있는 데시아의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마나를 불어 넣었다.
“으윽……. 화, 황제 폐하……?”
몸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청령한 마나가 멈추기 직전의 심장을 다시 뛰게 만들었다.
사경을 헤매던 데시아가 의식을 되찾고 힘겹게 눈을 떴다. 그녀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그토록 모든 것을 바쳐서 지키고자 했던 황제였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내가 너를 이끌어 줄 테니.”
“헤헤…….”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마나 회로를 복구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타인의 마나를 받아들이면서 찾아온 고통이 극심할 텐데, 그녀는 레이먼이 걱정할까 봐 힘없는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참아라, 데시아.”
대부분의 마나 로드가 엉망이 되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붕괴가 일어난 위치를 찾았으니, 이 부분만 복원하면 일단 생명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레이먼은 다시 한번 마나를 불어 넣었다.
“흐끄으윽!”
데시아가 터져 나오려는 신음을 집어삼켰다. 고통이 심한지 온몸을 뒤트는 모습에, 레이먼은 피가 터져 나올 정도로 입술을 깨물었다.
“마나의 흐름에 몸을 맡겨라.”
“네……. 흐윽!”
잠시 멈췄던 마나 주입이 재개되었다. 데시아의 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관절이 꺾였지만, 그럴수록 레이먼의 기운이 내부의 마나 로드를 복원하면서 엉망이 된 마나의 흐름을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하아…….”
“이제 한숨 돌린 건가?”
미친 듯이 날뛰던 기운이 마나 로드가 복원되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조금 전과는 달리 편안한 표정으로 잠든 데시아를 보며 레이먼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안도했다.
“황제 폐하, 더는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레이먼에게 회복 마법을 사용하고 있던 로열 가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으니, 그대는 걱정하지 말라.”
데시아가 생명의 고비를 넘겼다.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 * *
앞서 걷는 자. 그녀의 발길이 닿는 곳에 위험은 존재하지 않으니, 그 인도를 믿어도 될 지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이럴 수는 없어…….”
“실비아 경. 무슨 일인가?”
실비아의 동요를 가장 먼저 눈치챈 게슈타인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안전한 길을…… 찾을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실비아 경.”
“말 그대로예요.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하고 경로를 잡으면 언제나 그 앞에 검은 기운이…….”
실비아는 설명을 끝맺지 못했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떨리는 어깨는 그녀가 패닉 상태라는 걸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황제 폐하께 보고하게나.”
“알겠습니다. 게슈타인 경.”
곁을 지키고 있던 로열 가드가 황제가 있는 후방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만신창이가 된 로열 가드들의 사이로 들어가 황제의 앞에 도달한 그는 차분하게 고개를 숙여 예의를 갖춘 뒤, 전방의 상황을 전달했다.
“누군가 있다는 건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전방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절제된 살기가 닿는 느낌이 드는가 싶었는데, 그게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앞으로 가겠다.”
“황제 폐하, 위험합니다.”
“일단 상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후작은 로열 가드와 함께 나를 수행하라.”
“알겠습니다, 황제 폐하.”
옆에 바짝 붙어 있던 블리자드 후작이 반대 의견을 말했지만, 레이먼의 태도는 강경했다.
결국 블리자드 후작이 뜻을 접었고, 레이먼은 5명의 로열 가드와 함께 실비아가 있는 선두로 잠시 이동했다.
“황제 폐하! 뒤로 물러나셔야 합니다!”
레이먼이 선두에 합류하자 반가운 표정을 짓던 실비아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서는 다가오는 레이먼을 말렸다. 게슈타인 또한 심상치 않은 기류를 읽고 검을 뽑아 들었다.
그의 검에서 짙은 청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선명하게 빛났다. 뒤늦게 레이먼 또한 스산한 살기가 퍼지기 시작한 걸 느끼고 두 눈을 차갑게 빛냈다.
“황가의 방패는 황제 폐하를 수호하라!”
로열 가드가 모여들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레이먼이 싸늘한 목소리로 내뱉기 무섭게 정면의 나무 아래 그림자에서 검은 로브를 입고 백색의 가면을 쓴 누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반갑다, 황제여.”
“종말 협회인가?”
“그렇다.”
직설적인 물음에 검은 로브의 남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가면을 살짝 벗었다. 그러자 화상을 입은 얼굴이 나타났다.
“내 이름은 리처드 팔라어. 네게 모든 것을 빼앗긴 남자다.”
소설 속 주인공과의 만남은 갑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