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86)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86화
30장 완전한 제국(3)
청탑주로부터 데시아가 깨어났다는 걸 보고 받은 레이먼은 의무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윽고 그녀가 있는 의료용 막사 앞에 도착했을 때, 레이먼은 짧게 호흡을 정돈하고서 힘차게 문을 열어젖혔다.
“황제 폐하?”
“누워 있어.”
인기척을 느낀 데시아가 고개를 들었다. 시선이 닿는 게 느껴졌다. 황제의 방문을 한발 늦게 알아차리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는 그녀를 레이먼이 다시 눕혔다.
“지엄한 황명을 거역할 수는 없지요.”
데시아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의식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기운이 없는 것인지,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사실은 그의 앞이라 조금 과하게 엄살을 피우고 있는 것이었지만 레이먼은 알지 못했다.
오히려 그를 뒤따라온 실비아가 그 기색을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대놓고 아니꼽다는 눈빛을 보냈으나 데시아는 오히려 도발하듯 그녀를 보며 씨익 웃어 보였다.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군.”
마나를 담은 시선으로 데시아의 기운을 읽었다. 그녀는 고위 마법사의 마나를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칭찬을 바라는 듯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 기운을 드러냈다.
“장하다, 데시아.”
“헤헤.”
레이먼이 조용한 목소리로 가볍게 칭찬하자 데시아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실비아는 그런 데시아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지만, 레이먼이 바로 앞에 있으니 내색할 수는 없었다.
벨피앙 공작령의 중심도시 탈출 과정에서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던 자신과 달리, 데시아는 스스로의 생명을 포기할 각오로 마나 폭주까지 일으켜가면서 레이먼의 방패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의 입지부터가 달랐다.
‘나도 더 강해져야 해.’
실비아는 분한 마음에 피가 살짝 새어 나올 정도로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녀는 아주 뛰어난 길잡이였지만, 그 능력이 크게 활약할 수 있는 환경은 전투계 능력에 비해 제한적이다.
‘이대로는 안 돼.’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 레이먼에게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 그것은 일족과 스스로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제 방패는 더욱 견고해졌어요. 이제 저도 황제 폐하께 조금 더 도움이 되겠죠?”
데시아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쓸모를 어필했다.
상급 마법사의 경지에 있을 때도 절대 방어 마법, 앱솔루트 실드를 펼칠 정도로 재능이 있었던 그녀였다. 이제 드높은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올랐으니, 방패의 수호는 더욱 단단해졌다.
“든든하구나.”
대마법사의 경지를 향해 성큼 전진한 그녀를 보며 레이먼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약속할게요. 다시는 황제 폐하를 지키는 방패가 뚫릴 일은 없을 거예요.”
레이먼에게 향하는 그녀의 시선은 반드시 황제 폐하를 지킬게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 * *
“재편성이 끝났습니다. 준비가 끝났으니, 황제 폐하께서는 당장이라도 군을 이끌고 간악한 산악 공작의 잔당을 정벌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이른 아침, 지휘부의 막사를 찾아온 되니츠 백작이 보고했다. 정돈된 제복 차림으로 재편성이 끝났다는 사실을 보고하는 그의 얼굴은 잔뜩 굳어 있었다.
산악 공작이 목숨을 잃었고 벨피앙 공작가의 기수 가문을 맡고 있는 귀족들의 이탈이 시작되었다고는 하지만, 잔당들을 토벌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벨피앙 영지군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적지 않은 인명이 전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에 굳은 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했다.
“카시야스 경.”
“예! 황제 폐하! 소신, 카시야스! 삼천의 황군과 함께 대기 중입니다!”
조용한 부름에 반짝이는 갑옷을 갖춰 입은 황군의 지휘관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동부의 발게츠 후작이 이끄는 군대가 합류하기 직전에 삼천으로 충원된 황군 덕분에 그의 걸음걸이에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황군을 준비하라, 친정할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
카시야스가 만세를 외치며 막사를 떠났다.
“되니츠 백작.”
“예, 황제 폐하. 하명하시옵소서.”
“우리는 벨피앙 공작령의 중심도시로 진군한다. 북부 중앙군에 대기 명령을 내리고 귀족들에게 사병을 준비하라 이르라.”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번에는 되니츠 백작이 움직였다. 그는 곧장 지휘부 막사를 떠나 군을 준비시키기 위해 전령들을 불러 모았다. 되니츠 백작이 전파한 황명을 가지고 전령들이 행동에 나서는 순간, 레이먼이 막사 안에 남아 있던 귀족들, 그리고 지휘관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전령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저마다 향하는 곳의 끝에는 각 군의 지휘관들이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진군의 깃발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군을 준비하라 하셨나이다!”
전령들이 황명을 전파했다. 2만이 넘는 군세가 황명을 받들고 진지를 나섰다. 그들은 곧장 벨피앙 중심도시를 향해 진군했다.
병사들이 탈영하기 시작하고 귀족들이 투항할 기회를 잡기 위해 눈치를 살핀다고는 하지만, 벨피앙 영지군의 방어선은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상태였다.
중심도시로 진군하려면 필연적으로 벨피앙 영지군의 방어선을 넘어야만 했다.
* * *
“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높은 언덕 위에 설치된 지휘부 막사 앞에서 적진을 살피고 있던 레이먼에게 되니츠 백작이 다가와 보고했다.
레이먼은 적진에서 시선을 거두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2만의 군세가 준비되었으니, 이제 적을 쓸어버릴 일만 남았다.
저들의 숫자 또한 2만에 가까운 숫자였지만 산악 공작의 죽음으로 사기는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 패전할 것이라는 걱정은 없었다.
오직 승리할 것이라는 강한 확신뿐이었다.
“친정하실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그리해야지.”
씨익 웃으며 대답하는 레이먼을 보며 백작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본래는 말릴 생각이었지만 황제의 단호한 태도를 보면 소용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황제가 한번 내린 결정을 웬만해서는 번복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제국의 미래이자 희망입니다. 부디, 안전에 신경 써주시길…….”
드높은 경지에 오른 이를 걱정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것도 없다고는 하지만, 상대는 평범한 고위 마검사가 아니라 황제였다.
살아남은 유일한 황손인 그가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면 필리어스 제국의 모든 게 무너진다. 그러니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로열 가드가 나를 지킬 것이니라, 그러니 안심해도 좋다.”
황가의 방패가 수호하고 있으니 평소라면 안심할 수 있겠지만, 지금 황제는 전투의 선봉에 선다고 했으니 되니츠 백작의 입장에서는 걱정을 쉽게 떨쳐낼 수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레이먼은 되니츠 백작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게슈타인, 그리고 로열 가드들과 함께 전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황제 폐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봉의 황군과 합류하자 카시야스가 반가운 목소리로 맞이해 주었다. 레이먼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방으로 시선을 옮겼다. 벨피앙 영지군이 집결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2만에 가까운 숫자였다. 벨피앙 공작가와 그 휘하에 모인 기수 가문의 깃발들이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산악 공작이 목숨을 잃고 기수 귀족들이 동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귀족 가문의 깃발들이 보였다.
“산악 공작이 죽었다고는 하지만 벨피앙 영지군은 여전히 강대하군.”
“거대한 군세를 자랑하고 있지만 속은 썩어 뒤틀리고 있습니다, 황제 폐하.”
레이먼의 말에 대답한 이는 단치히 백작이었다. 그는 성소가 공격받기 전부터 레이먼의 지시에 따라 함께 해 온 황실의 충신이었다.
“선봉은 황군이 맡습니까?”
단치히 백작이 물었다.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황군이 아니면 누가 선봉에 선다는 말인가?”
“단치히 영지군이 황제 폐하와 황군을 지원할 것입니다.”
고귀하며, 중요한 위치에 있는 황제가 가장 위험한 선봉에 선다? 이건 전술적으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고, 되니츠 백작도 처음에는 많이 반대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레이먼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았고, 부디 로열 가드를 곁에 가까이 두고 몸조심해 달라는 말만 남기고 후방으로 이동했다.
“황제 폐하! 어디 가십니까?”
“전투를 앞둔 황군의 사기를 끌어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
“수행하겠습니다.”
게슈타인과 로열 가드들이 재빠르게 따라붙었다. 벨피앙 공작령 중심도시에서 많은 로열 가드가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 30여 명 정도는 남아 있었다.
위험한 전투가 다가오고 있으며, 눈앞에는 2만의 적들이 보였으니, 로열 가드는 황군의 대열 앞으로 나서는 황제를 엄중히 호위했다.
황금빛 제복과 망토를 갖춰 입은 수십의 인원이 고귀한 한 명을 에워싸고 보호하는 모습을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로열 가드의 호위를 받으며 삼천 황군의 선봉 대열에 도착한 레이먼은 오른손을 위로 치켜들었다. 선명한 백색의 기운이 뭉쳐 마나 소드가 되었다.
그 빛은 드높은 경지에 오른 검객의 상징이었다. 레이먼의 오른손에 뭉친 백색의 마나 소드는 그 화려한 빛을 더욱 뽐냈고, 그의 앞에 도열한 황군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저건 마나 소드?”
“평범한 마나 소드가 아니다! 드높은 경지에 오른 검객만이 저렇게 선명한 빛의 마나를 검으로 형체화시킬 수 있다.”
“고위의 경지에 오르신 건가!?”
황군 기사들이 두 눈을 반짝이며 기대에 찬 시선을 보냈다. 레이먼이 마검사라는 건 널리 알려졌지만, 고위급이라는 드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걸 알고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으니, 황군 기사들의 기대 어린 시선을 받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황군이여!”
레이먼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부름에 황군의 군사들은 일제히 무기를 뽑아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산악 공작은 죽었다! 그대들은 벨피앙 영지군이 여전히 강대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굳건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벨피앙 영지군은 공작가의 후계 다툼이 터지면서 내부에서부터 천천히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굳건히 뒤를 지킬 것이라 생각했던 기수 가문의 귀족들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방어선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이 동요하고 있다는 걸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벨피앙 영지군은 무너지기 직전이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저들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치고 있다. 그에 비해 황군의 사기는 연이은 승전과 눈부신 활약을 펼친 황제, 레이먼의 합류로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이빨과 발톱을 잃은 맹수에 불과할 테니! 이번만은 황군에게 패배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적진을 향해 말머리를 돌렸다. 백색으로 빛나는 마나 소드의 끝이 적들에게 향했다.
“황군이여! 전진하라! 그대들의 앞에 패배는 허락되지 않았으니! 오직 약속된 승전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나를 담아 외쳤다. 동시에 말에 박차를 가했다. 레이먼을 태운 군마가 앞으로 적진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곧바로 게슈타인이 뒤따랐고, 로열 가드들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황가의 방패는 황제 폐하를 수호하라!”
황금색 망토들이 바람에 펄럭였다.
“황군은 황제 폐하를 따르라!”
찬란한 금빛의 질주에 카시야스가 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삼천의 황군이 벨피앙 영지군을 향해 일제히 돌진을 감행했다.
“황제 폐하 만세!”
“필리어스 제국 만세!”
만세를 외치며 달려오는 황군의 기세는 벨피앙 영지군의 선봉으로 나선 기사단을 압도했다.
“으, 으아아…….”
선봉에서 말을 달리던 벨피앙 영지군의 기사들의 입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파이어 레인!”
레이먼이 왼손을 뻗으며 외쳤다. 하늘에 생성된 마법진이 붉은 화염을 토해냈다.
근거리에서 완성된 마법이라, 후방의 마법사들이 지원을 위해 방어 마법을 영창하기도 전에 붉은 화염의 비가 벨피앙 영지군 기사단을 덮쳤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상급 광역 마법의 영향권에 있던 수십의 기사가 일순간에 불길에 휩싸여 쓰러져 뒹굴었다.
고위 마법이 괜히 전장의 공포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수십의 기사가 목숨을 잃었으니, 공포라는 이름이 절대 부족하지 않다.
벨피앙 영지군의 마법사들이 마법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황군의 마법사들이 전방에서 일차적으로 공격을 차단하고 후방에 위치한 제국군 마법사 부대에서 이차적으로 공격 마법을 봉쇄했다.
“대체 무슨 일이!”
눈앞을 뒤덮은 화염의 벽에 벨피앙 영지군의 기사들이 속도를 줄였다. 하나, 그것은 실수였다. 곧 붉은 벽이 열리고 황군의 기사들이 매서운 기세를 품은 채 달려들었으니, 속도를 잃은 벨피앙 영지군의 기사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황제 폐하께 승리의 영광을!”
“필리어스 제국 만세!”
황제와 제국을 연호하며 달려오는 황군의 모습은 광신도와 다를 바 없었다.
황제교가 존재한다면 바로 이곳에 있을 것이리라.
광신의 물결이 벨피앙 영지군 기사들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