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87)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87화
30장 완전한 제국(4)
기사 여단.
1황자를 지지했던 군부의 최정예 전투 집단이다. 전원 최정예 기사들로 이루어진 여단급 전투 부대로 쇠락한 필리어스 제국이 보유한 최후의 칼날이나 다름없었다.
성소가 공격당한 ‘피의 장례식’ 날, 그곳에서 여단장이 목숨을 잃었다.
치명상을 입은 1황자 또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지지층인 군부에게 레이먼을 도울 것을 지시하고 사망했지만, 유언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일부는 기민하게 움직였지만, 대부분이 서로의 눈치를 보고 상황을 지켜보며 줄타기를 하느라 레이먼은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절대 황권을 자랑하는 필리어스 제국도 고대 시대의 이야기. 지금은 쇠락한 제국과 함께 황권 역시 힘을 많이 잃었으니, 산악 공작의 반란 사건만 봐도 완전한 제국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다.
하지만 기사 여단도 상황을 계속 관망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가장 먼저 레이먼을 돕기 위해 출정한 라티엘 백작 휘하이자 기사 여단 소속의 상급 기사인 디크 자작의 보고가 수도 본부에 닿았고, 장로들부터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심한 시간에 이렇게 암살자처럼 은밀하게 찾아오는 법이 어디 있나?”
“아이반 경, 아니, 이제는 여단장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테라스 뒤편의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낸 붉은 제복의 기사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이반은 짧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어디까지나 임시직일 뿐일세, 빌리앙 경.”
고위 기사이면서 황성 경비대장이기도 한 아이반은 기사 여단 소속의 장로이기도 했다. 그는 장로 중에서 가장 1황자와 가까우며 충심이 깊었으며 그 경지 또한 높다 보니, 기사 여단장이 성소에서 목숨을 잃은 뒤로 현재까지 그가 여단을 이끌어 오고 있었다.
다만 임시직의 성향이 강해서, 예전처럼 기사 여단장의 직권이 강하지 않았으며 장로들의 권한이 강해진 상태였다.
“임시직이면 어떠합니까? 저를 포함해 의결권을 가진 장로들 또한 대다수가 아이반 경의 뒤에 있으니, 여단은 아직 분열되지 않았습니다.”
“여단의 의지는 하나가 아니라네. 장로들이 나를 지지한다고는 하지만 황제 폐하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지금 반대표를 던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제가 아이반 경께서 좋아하실 만한 정보를 하나 가져왔지요.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아이반은 말없이 술잔을 하나 더 꺼내서 술을 채웠다. 누가 봐도 분명한 허락이었다. 빌리앙은 씨익 웃으며 아이반의 앞에 앉아서 술잔을 받았다.
“내가 좋아할 만한 소식이라는 게 뭔지 궁금하군. 어서 말해보게나.”
“라티엘 백작 휘하 기수 가문의 귀족이자 상급 기사인 디크 자작을 기억하십니까?”
“우리 여단 소속의 기사가 아닌가?”
기사 여단에 소속된 이들의 수가 2천 명이 넘었으니,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더라도 주요 인물들과 간부들은 알고 있었다.
“황제 폐하를 돕기 위해 가장 먼저 검을 뽑아 들었다고 알고 있다네.”
기사 여단의 모든 자가 황제의 곁에서 서는 걸 망설인 것은 아니었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디크 자작처럼 누구보다 먼저 최전선으로 달려간 이들도 분명 있었다.
“황제 폐하께서 벨피앙 중심도시까지 가셔서 산악 공작의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벨피앙 중심도시까지 직접 행차하셨다는 말인가?”
“정확한 상황은 전달받지 못했지만, 산악 공작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확인되었습니다.”
빌리앙의 설명에 아이반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곧 중앙정보국이 행동할 겁니다. 되니츠 백작의 지휘하에 새로 편성된 제국선전부에서 황제 폐하의 활약상을 널리 알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좋은 소식이군.”
“이제 엉덩이 무거운 장로들이 움직일 겁니다.”
기사 여단의 장로들은 벨피앙 영지군의 승리를 예상했기 때문에 훗날 더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하여 1황자의 유언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으나, 산악 공작이 황제에 목숨을 잃으면서 상황이 변했다.
기사 여단 내부에서도 산악 공작과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던 족속들과 감히 황제의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뒤로 물러나 있던 자들이 이제는 움직일 때가 되었다.
“빌리앙 경.”
“하명하시지요. 아이반 경.”
“여단장 직권으로 최고 회의를 소집하겠네. 마법 통신과 전령들을 동원하여 장로들을 집결시키게나.”
“필리어스 제국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명을 받들겠습니다.”
기사 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황제와 제국을 위하여.
* * *
“기사단이 전멸했습니다!”
“전열이 무너졌습니다!”
절망적인 보고의 연속에 벨피앙 영지군의 사령관은 이를 악물었다.
영지군의 주력을 담당하는 기수 가문의 귀족들이 휘하의 군대를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았으니, 삼천의 황군에게 유린당하는 일천의 기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나선 이들은 벨피앙 공작가 직속의 사병들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이 필리어스 제국 삼천 황군의 돌진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열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진형 깊숙이 침투한 황군이 날뛰기 시작하자 혼란 속에 뒤엉켜 난전이 펼쳐졌다.
“황제 폐하! 너무 깊숙이 들어왔습니다! 아군 기사단과 합류해야 합니다!”
블리자드 후작이 가까이 다가와 외쳤다. 전투의 소음이 컸으나, 마나를 담은 목소리를 분명히 전달되었다. 레이먼은 후방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너무 멀리 왔군.”
벨피앙 영지군의 전열이 예상보다 쉽게 무너지는 바람에 승리에 취해 깊숙이 파고들고 말았다.
“카시야스 경! 황군을 재집결시킬 수 있겠나?”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시간이 걸립니다!”
적의 사령관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승리에 취한 황군을 유인하고 자극하여 그들이 산개하게 만들었고, 그 빈틈을 중무장한 중보병들과 기사들로 채워 넣어서 재집결과 퇴각을 쉽지 못하게 했다.
“황제 폐하! 적들이 퇴로를 차단했습니다!”
아군 기사단이 도착하기 전에 벨피앙 영지군의 중보병대가 먼저 움직였다.
“고립되었습니다! 적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황군은 방진을 구축하라!”
“황가의 방패는 목숨을 걸고 황제 폐하를 수호하라!”
황군과 로열 가드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레이먼은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하늘을 향해 왼손을 뻗었다.
필리어스 제국의 황제들이 친히 전장으로 행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중 하나를 다시 한번 발휘할 생각이었다.
“황제의 이름으로! 이 땅에 승리를 약속하고 각인하니, 제국은 패주하지 않을 것이다!”
왼손에서 시작된 황금빛의 기운이 하늘을 꿰뚫었고 황제의 문장이 넓은 창공을 물들였다.
필리어스 제국과 황실에 충성하는 황군의 눈동자가 금빛으로 빛났고 전신에서 찬란한 황금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황제 폐하 만세!”
퇴로를 차단당하고 고립되면서 천천히 저하되고 있던 황군의 사기가 다시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다.
제황낙인의 발동과 함께 상황이 반전되었다. 황제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위험한 최전방에서 싸웠으며, 그에 자극받은 황군은 우수한 버프의 효과에 힘입어 벨피앙 영지군 전방 방진을 양단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전방 방진이 양단되면서 지휘부가 있는 중앙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 그걸 본 되니츠 백작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필리어스 제국군 지휘부의 기수들이 하나같이 깃발을 흔들었고, 그 신호를 확인한 기사단장은 기사단에 적 지휘부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파할 것을 지시했다.
“기사단! 전속력으로!”
기사단이 속력을 올리는 것을 보며, 되니츠 백작은 쉬지 않고 다음 지시를 생각했다.
“후방군을 제외한 전방과 중심의 군은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속보로 적진을 향해 전진한다!”
지휘부가 열렸으니 본격적인 공세를 취할 때였다. 적진과의 간격을 좁힌다는 되니츠 백작의 선택은 현명했다.
필리어스 제국군이 앞으로 전진하면서 벨피앙 영지군을 압박했다. 거리가 좁혀지면서 청탑과 적탑의 마법사들이 완성한 수십 개의 거대한 마법진이 뜨거운 화염과 혹한의 냉기를 쏟아냈다.
벨피앙 영지군의 마법 전력 또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으나, 청탑주나 적탑주가 직접 전선에 나선 필리어스 제국군과 달리 엔슬 형제가 모두 죽어버리면서 제대로 된 고위 마법사가 없는 상황이었다.
고위 마법사 전력의 부재는 전선의 마법전에서 고스란히 위기가 드러났다. 적탑주와 청탑주가 완성한 마법이 연이어 벨피앙 영지군 진영을 두들겼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하늘이 붉게 물들고 지상에서는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한 극한의 냉기가 군사들을 휩쓸었으니, 쓰러지는 군사들만큼이나 사기는 바닥을 쳤다.
영지군 마법사들이 방어를 시도했지만, 그들로서는 고위 마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적탑주와 청탑주, 그리고 필리어스 제국군의 우수한 마법사들이 마법 화력전을 압도했다.
“후, 후퇴! 후퇴하라!”
후방이 엉망이 되고 전방이 무너졌다. 지휘부를 지키고 있던 기수 귀족은 황금빛 기운을 흘리며 맹렬히 돌진해 오는 황군의 모습을 보고서 겁에 질려 버렸다. 그는 휘하의 사병 부대에게 후퇴 명령을 내리고 가장 먼저 도주를 선택했다.
“적의 지휘부가 보인다! 황군은 힘을 내라! 영광스러운 승전이 코앞이다!”
레이먼이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외쳤다. 제황낙인의 버프를 받은 황군은 벨피앙 영지군 중보병대를 격퇴하고 재집결하여 돌격을 준비했다.
이윽고, 기사단이 합류하여 적진을 휩쓸었다. 되니츠 백작의 빠른 판단으로 필리어스 제국군의 중보병대 바로 뒤에 따라붙었다.
맹렬한 공세를 유지하는 필리어스 제국군과 달리, 벨피앙 영지군은 기수 귀족 중 일부가 사병들과 함께 무단으로 진영을 이탈하면서 3천 명 이상의 공백이 생겨 버렸다.
“황제의 깃발이다! 황제가 저기 있다!”
“황제만 죽이면 끝난다! 쳐라!”
지휘부 수호를 약속했던 기수 가문의 귀족이 사병들과 함께 후퇴하고 얼마 남지 않은 호위부대는 결사의 각오를 다지며 황제를 노렸다. 지금 상황에서 반전을 꾀하려면 수장을 치는 수밖에 없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황제의 곁에는 검성이 있었다.
“무엄하다! 어전이니라!”
날카로운 검명과 함께 휘둘러진 오러 블레이드가 기사들의 몸을 갈랐다. 게슈타인의 앞에 붉은 피가 흩뿌려지고 기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
“황제 폐하! 제가 길을 열겠나이다!”
황군의 지휘관, 카시야스가 기사단과 함께 앞으로 나섰다. 게슈타인의 활약을 보고 자극받은 모양이었다. 들어 올린 검에 깃든 마나가 선명하게 빛났다.
“황군 기사단! 돌격하라! 황제 폐하를 위하여!”
몇몇 마법사의 엄호를 받으며 황군 기사단이 돌진했다. 지휘부 호위부대는 얼마 남지 않은 숫자였고, 제황낙인의 영향까지 받은 황군 기사단을 저지하지 못했다.
“적장이 죽었다!”
카시야스가 벨피앙 영지군 사령관의 목을 베었다. 그는 지휘부에 고집스럽게 버티고 있다가 수행원들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기수 가문의 귀족들이 하나둘씩 깃발을 접고 후퇴하기 시작하는 상황에서 영지군 사령관까지 전사하고 지휘부가 전멸했으니, 강군이라고 평가받았던 벨피앙 영지군이라고 해도 더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벨피앙 영지군이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벌써 절반 이상의 부대가 와해하여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전령이 달려와 보고했다. 승기를 완전히 잡았다고는 하지만 아직 전투 중이다. 혼잡한 전장을 횡단한 전령의 모습은 성치 않았다.
레이먼은 수하를 시켜 그에게 차가운 물을 가져다주게 했다.
“되니츠 백작 각하께서 와해한 병력의 추격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유리병에 담긴 냉수의 절반을 단번에 비운 뒤, 호흡을 정돈하고서 다시 되니츠 백작의 말을 전달했다.
“추격이라…….”
레이먼은 짧은 고민 끝에 다시 입을 열었다.
“되니츠 백작에게 전하라, 추격은 하지 않는다.”
굳이 와해한 병력을 치기 위해 전투력을 소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저들은 이미 산악 공작의 죽음과 이번 전투의 패전으로 사기가 바닥을 치고 있었다. 투항하면 했지, 다시 벨피앙 영지군의 깃발 아래 합류할 걱정은 없었다.
“예! 황제 폐하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겠습니다!”
전령은 힘찬 목소리와 함께 군례를 갖추고서는 다시 말에 올라탔다. 그는 이제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호위를 받으며 대기 중인 최상급 마법사를 찾아가거나 직접 되니츠 백작에게 황명을 전달할 것이다.
곧 황명이 전달된 것인지 지휘부에서 집결 깃발이 올라가고 나팔수들이 같은 의미를 품은 뿔 나팔을 힘차게 불었다.
흩어지는 적병들을 추격하던 지휘관들은 일제히 군을 본군의 진형으로 되돌렸다. 길었던 준비 기간과 달리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지만, 결과는 분명했다.
강군이라고 평가받았던 벨피앙 영지군의 패전. 산악 공작의 자리가 공백이었다고는 하지만 처참한 결과였으니, 이제 기수 가문을 이끄는 귀족들의 이탈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황제 폐하! 승전을 축하드리옵니다!”
카시야스가 곁에 다가와 축하를 건넸다. 레이먼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하면서도 씁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건 엄밀히 말해 내전이었기 때문에, 이겼다고는 하지만 제국의 국력을 깎아 먹는 상처뿐인 승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