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88)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88화
30장 완전한 제국(5)
벨피앙 영지군의 주력은 처참하게 패전했고 방어선은 무너졌다. 황제의 군대에 맞서기 위해 집결한 공작령의 전 병력이 와해할 정도의 치명적인 패배였다.
패전 이후, 벨피앙 공작 가문의 기수 귀족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둘씩 황제에게 투항을 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관대한 대우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처벌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생명과 가문의 보전을 황제의 이름으로 약속했으니 투항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벨피앙 영지군은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중심도시에 일부 병력이 재집결하고는 있지만, 그 숫자가 2천이 채 되지 않습니다.”
포타스 백작이 보고했다. 벨피앙 영지군의 주력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중앙정보국은 여전히 공작령을 주시하고 있었다.
“기존에 중심도시에 남아 있던 수비 병력까지 합치면 3천 정도 됩니다.”
벨피앙 중심도시의 성벽은 견고하고 3천의 수비 병력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현재 필리어스 제국군은 그들을 압도할 정도의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재집결한 병력과 기존의 중심도시 수비대는 오합지졸입니다. 정보원의 보고에 의하면 최상급 마법사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마법사와 기사 전력의 질이 크게 떨어지는 거로 확인되었습니다.”
발렌시아 황실 직할령에서 확보한 대량의 황금은 북부 중앙군을 재무장시키는 데만 쓰인 것은 아니었다. 발렌시아 후작 가문은 쇠락한 제국 중앙의 눈을 피해 영지민을 착취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막대한 양의 황금을 모았다.
북부 중앙군을 재무장시키고도 상당한 양의 황금이 남자, 레이먼은 되니츠 백작과 포타스 백작에게 남은 황금 일부를 사용하여 중앙정보국의 강화를 지시했었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 있다. 막대한 양의 황금을 동원한 덕분에 중앙정보국은 과거의 영광을 온전하게 되찾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할 수 있었다.
“자세한 전력을 보고드리겠습니다.”
포타스 백작이 품속에서 종이로 된 서류 몇 장을 꺼내서 레이먼에게 건넸다. 중앙정보국에서 확보한 자료들로, 벨피앙 중심도시의 지도와 군사 배치도였다.
“이건 확실한 자료인가?”
“예, 황제 폐하. 중앙정보국에서 세 번에 걸쳐 확인한 자료들입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예전이었다면 불신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중앙정보국은 정보력이 크게 강화되었으니 이전과는 달랐다.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확답하는 포타스 백작의 모습에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료들을 자세히 살폈다.
“형편없군.”
솔직한 감상이었다. 벨피앙 영지군이 지난 전투에서 많은 것을 잃었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재집결 병력 2천과 중심도시 수비대 1천을 포함하여 도합 3천의 병력 중에서 기사의 숫자가 오십이 되지 않았으며, 마법사도 10명을 넘지 않았다. 당연히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이는 없었으며, 그나마 경지가 가장 높은 이가 상급 마법사에 불과했다.
“총공격 명령을 내리실 예정이라면 지금이 적기입니다.”
포타스 백작이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집결한 병력의 재정비조차 끝나지 않았으니, 지금 중심도시를 공격한다면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레이먼은 고개를 저었다. 그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다.
“굳이 제국군이 피를 흘릴 필요는 없을 것이야, 백작.”
“혹, 다른 계획이 있으신 겁니까?”
“되니츠 백작의 제국선전부가 벨피앙 중심도시에 공작을 펼치고 있다.”
“후계 다툼이 있다고는 하지만 벨피앙 공작 가문이 여전히 버티고 있습니다. 선동 공작이 효과가 없지는 않겠지만 내부 분열과 반란을 조장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것도 내일 아침이면 달라질 것이다.”
쉐이드를 보냈으니까, 레이먼은 뒷말을 삼켰지만 포타스 백작은 그의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나는 것을 보고는 뛰어난 암살자의 파견을 추측했다.
백작은 쉐이드의 존재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황제의 측근 중 한 명이었다.
* * *
이른 아침, 벨피앙 영주성에서는 난리가 났다. 산악 공작이 목숨을 잃은 직후부터 영주의 자리를 두고 후계 다툼을 벌이고 있던 이들을 포함하여 벨피앙 공작 가문의 모든 구성원이 시체가 되어 발견된 것이었다.
“야밤에 암살자가 다녀간 모양입니다.”
“살아남은 분은 안 계시는가?”
“모두 죽었습니다. 생존자는 없습니다.”
긴 세월을 벨피앙 공작 가문에 충성을 바쳐온 노기사들의 대화였다. 그들은 갑작스러운 변고에 충격받은 정신을 수습하지 못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쉐이드들의 소행이었고 배후에는 황제가 있었다.
그림자 특임대가 산악 공작의 죽음으로 이탈하면서 벨피앙 공작 가문을 수호하는 그림자가 사라졌으니, 쉐이드들이 미쳐 날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영주님께서 목숨을 잃으셨습니다. 그리고 가문 또한 멸문하였으니, 이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합니까?”
중년의 기사가 물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었다. 공작 가문의 모든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니, 기사들이 충성이 닿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의를 상실할 수밖에 없었다.
* * *
쉐이드로부터 벨피앙 공작 가문이 전멸했다는 보고를 받고 3일의 시간이 흘렀다.
필리어스 제국군은 중심도시에 대한 포위를 유지하되, 공격 행동을 전개하지는 않았다.
높은 성벽을 두고 양 진영 간에서는 고요한 긴장의 기류가 흘렀다.
“공격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요?”
지휘부 막사 앞에 앉아서 중심도시를 향해 조용히 시선을 보내고 있는 레이먼의 뒤로 실비아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물었다.
“굳이 공격할 필요가 있을까?”
레이먼은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벨피앙 영지군은 충성을 바칠 군주가 목숨을 잃으면서 명분을 잃었다.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야.”
“하지만 황제 폐하, 검은 산맥의 상황도 좋지 않다고 압니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다. 빠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 성문이 열릴 테니까. 내기해도 좋아.”
확신 가득한 레이먼의 목소리에 실비아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찌 황제 폐하와 내기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기다려 보거라. 내 말대로 될 테니까.”
레이먼은 말을 마치며 술잔을 비웠다. 차갑고 독한 술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 남아 있던 졸음이 단번에 물러갔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장담컨대, 긴 시간은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은데요?”
바람의 정령들이 실비아에게 도시의 변고를 전했다. 그녀의 시선이 전방의 중심도시로 향했다.
“도시 안에서 전투가 일어난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벨피앙 중심도시 곳곳에서 검붉은 연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벨피앙 공작 가문이 전멸하면서 영지군의 내부가 분열되어 전투가 벌어진 것이었다.
전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투항파와 항전파 간의 싸움에서 투항파가 이겼고, 영주성에서 가장 높은 탑에 새하얀 백기가 올라갔다.
처음부터 뻔한 싸움이었다. 산악 공작이 목숨을 잃었고 가문조차 쉐이드들에게 전멸했으니 투항을 주장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 했지요?”
되니츠 백작이었다. 어느샌가 뒤편에서 나타나 레이먼의 옆에 다가와 섰다. 그는 활짝 열린 중심도시의 성문을 보며 씨익 웃었다.
“머리를 잃었다고는 하지만 벨피앙 영지군에서는 항전을 주장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고 하더군요. 제국선전부의 활약이 컸습니다.”
제국선전부는 중앙정보국 산하에 새롭게 만들어진 기관으로 되니츠 백작이 지휘를 맡았다. 그들은 이번에 전술적인 선동과 여론 공작으로 벨피앙 영지군의 사기를 꺾어 놓는 데 큰 활약을 했다.
처음 제국선전부를 만들 때만 해도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었다. 이 정도로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수고가 많았다, 백작.”
“과찬이십니다,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고 레이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왼손을 들어 로열 가드를 호출했다.
“황제 폐하, 하명하시지요.”
가장 먼저 달려온 로열 가드는 일루전 자작이었다. 그는 얼마 전에 있었던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지만, 운이 좋게도 간신히 회복하여 다시 황제의 곁을 지키는 방패로 복귀할 수 있었다.
“북부 중앙군 사령관, 아콘 백작에게 군을 준비하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일루전 자작이 레이먼의 명을 수행하기 위해 모습을 감췄다. 이윽고 황명을 전달받은 윌리앙 아콘 백작이 북부 중앙군에 대기 명령을 내렸고 레이먼은 카시야스가 지휘하는 황군과 함께 먼저 중심도시로 진입했다.
저항은 없었다. 투항파는 백기를 흔들며 황군을 환영했다. 그들은 항전파 기사들과 귀족들의 잘린 머리를 바치며 황제에게 자비를 청했다.
“감히 황제 폐하께 검을 겨눈 저들의 죄가 절대 가볍지 않으나, 투항하였으니 그 점을 어느 정도 생각하셔서 처벌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되니츠 백작이 말했다. 레이먼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반역을 일으킨 이들에 대한 처벌은 이미 생각해두었다.
“그대들은 고개를 들라.”
레이먼이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릎을 꿇고 있던 귀족들과 기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원칙대로라면 그대들을 즉참해야 할 테지만 짐이 자비를 약속하기도 했으니, 그대들의 목숨과 가문은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
“황제 폐하 만세!”
귀족들과 기사들이 만세를 외쳤다. 가문까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그 기쁨이 컸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레이먼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공짜는 아니다.”
이제 결론을 말할 차례였다.
“내일 북부 중앙군의 일부가 검은 산맥으로 이동할 것이다.”
귀족들과 기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흐름이 심상치 않았다.
“가문을 보전하고 싶나? 그렇다면 북부 중앙군과 함께 검은 산맥으로 가서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라.”
“화, 황제 폐하…….”
감히 황실과 제국에 반기를 들었던 이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가문을 보전했다는 안도도 일순간에 불과했다.
그들도 검은 산맥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다. 그곳에서 살아 돌아오는 게 힘들다는 걸 모를 리가 없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는 잠시였고 곧 분노가 고개를 들었다.
“황제 폐하! 이러시면 아니 되옵……. 커헉!”
늙은 귀족 하나가 벌떡 일어나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모습을 본 레이먼이 손을 뻗자 날카로운 얼음 송곳이 날아가 노귀족의 목을 꿰뚫었다.
“끅, 끄르르륵!”
“또 불만 있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나오라.”
고요했다. 황군 병사들이 앞으로 나와 시체를 치우는 동안 레이먼은 두려움에 떠는 귀족들과 기사들을 보며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원래 죽은 목숨이었다.”
먼저 투항한 기수 가문의 귀족들과 달리 이곳에 모인 이들은 최후까지 저항했다가 마지막에서야 태세를 바꿨으니, 실로 자비가 필요 없는 박쥐 같은 이들이다.
“당장 모두를 즉참할 수도 있다.”
궁내부와 사군부, 내무부조차 반대의 뜻은 없을 것이다.
“목숨과 가문을 보전할 마지막 기회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이 자리에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다.”
날카로운 검명이 울렸다. 로열 가드들이 서슬 퍼런 기세를 끌어 올리고 황군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황제가 명령한다면 당장이라도 귀족들을 참살할 기세였다.
“화,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온몸을 옭아매는 섬뜩한 살기에 귀족들은 뜻을 굽힐 수밖에 없었다. 두려움에 떠는 그들의 모습에 레이먼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사병을 동원하는 걸 특별히 허락해 주겠다.”
제대로 된 군사 훈련도 받지 않은 귀족들이 위험한 검은 산맥에서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레이먼이 처음부터 노리고 있던 건 그들의 사병이었다.
사병 동원을 허락했으니, 귀족들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정예들을 뽑아서 군을 편성할 것이다.
저들이 한곳에 모이게 하지 않고 쉐이드를 감시로 붙인다면 반란의 가능성도 크게 낮아진다. 주인을 잃은 칼날을 통제할 수만 있다면 적에게 사용하는 게 제일 좋지 않겠는가?
레이먼은 벌써 되니츠 백작, 그리고 포타스 백작과 함께 저 반역자들의 군대를 이용할 계획을 세부적으로 짜놓았다.
“허튼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검은 산맥에서는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집중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나이다!”
레이먼이 차갑게 내뱉었다. 귀족들은 그의 서슬 퍼런 기세에 억눌려 벌벌 떨었다. 이윽고 레이먼이 수신호를 보내자 무장한 황군 기사들이 귀족들에게 다가갔다.
“모시겠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정중해 보이는 말투였지만 강제나 다름없었다. 중심도시에 남아 끝까지 저항했던 귀족들은 그렇게 황군 기사들에게 의해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퇴장했다.
“이제 끝난 건가?”
산악 공작과의 내전이 이것으로 끝난 것이다. 승전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같은 필리어스 제국의 피를 많이 쏟아냈기에 기쁘지 않았다.
“황제 폐하.”
감상에 젖어 있을 때였다. 중앙 홀 기둥 옆의 그림자에서 포타스 백작의 몸이 솟구쳤다.
“무슨 일이더냐?”
“기사 여단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관망하고 있던 기사 여단에서 손님이 찾아왔다고? 레이먼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반가운 손님이다. 응접실로 모시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