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89)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89화
31장 기사 여단(1)
빌리앙은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점령된 중심도시의 정문을 통해 황제 알현 의사를 밝혔다.
은밀히 움직이는 것보다는 기사 여단의 행보를 공개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에 기사 여단의 장로가 공개적으로 황제를 알현한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었다. 이는 관망하던 기사 여단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그 여정의 끝은 황제와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걸 말없이 표현하는 증표였다.
“황제 폐하께서는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황군 기사와 함께 영주성에 들어서자 황금 가면을 쓴 로열 가드가 다가왔다. 전신에서 풍기는 차가운 기운은 그가 로열 가드의 수장을 맡고 있는 북풍, 블리자드 후작이라는 걸 알 수 있게 했다.
‘블리자드 후작, 현 황제의 최측근…….’
빌리앙은 블리자드 후작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되새기며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블리자드 후작께서 직접 나오신 겁니까? 황제 폐하의 곁에 계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심도시와 영주성을 점령했다고는 하지만 잔당들이 남아있을 수도 있다. 빌리앙은 순수하게 그 위협을 걱정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저보다 더 뛰어난 이가 지금 황제 폐하의 곁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블리자드 후작 각하보다 뛰어난 이라는 말씀이십니까?”
빌리앙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블리자드 후작은 드높은 경지에 오른 마법사다.
그보다 뛰어나다는 건 검성이나 대마법사를 말하는 건데, 빌리앙이 알기로는 현재 그 초월의 경지에 오른 이는 필리어스 제국에 없었다.
“그를 봐도 놀라지 마시길.”
빌리앙의 반응을 본 블리자드 후작은 차가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 여단의 장로, 빌리앙은 미심쩍은 시선을 흘리면서도 블리자드 후작을 뒤따라 걸었다.
‘허세는 간파할 수 있다.’
그 역시 드높은 고위에 오른 기사였으니, 경지를 속이는 허세를 부린다면 그걸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안에 황제 폐하께서 계십니다.”
응접실 앞에 도착하자 블리자드 후작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호화로운 문양이 각인된 문이 열리고 넓은 응접실 내부가 드러났다.
중앙의 대리석 탁자 옆에 황제가 앉아 있었다.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서 고개를 들었고, 빌리앙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웃었다.
젊은 황제라고 하여 무시를 한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저 눈빛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치 수천의 실전을 겪은 노장의 것과 같은 날카로운 기세를 품고 있었으니, 그러나 그 눈빛은 탁하지 않았다.
“황제 폐하께 예의를 갖추시오.”
맑지만 위험한 기세를 품은 눈빛에 단번에 기선이 제압당했다.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에 누군가 강한 기운을 머금은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 날카로운 고함에 빌리앙은 고위 기사의 기운을 끌어 올렸지만, 피부가 저릿하게 울릴 정도였다.
“이, 이 기운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선이 닿은 곳에 검은 제복을 입은 외팔의 기사가 서 있었다.
왼팔이 보이지 않았으나 정돈된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눈빛과 기세는 명검보다 날카로웠다.
허전한 왼팔 소매를 본 빌리앙은 단번에 그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외팔검 게슈타인…….’
그는 고위 기사로 여단에 추천을 받은 적도 있었으나, 왼팔을 잃고서 입단이 반려되었던 적이 있다.
‘고위 기사가 아니었던 건가?’
이 날카로운 기세는 분명 초월의 경지인 검성의 것이다.
“기사 여단의 장로, 빌리안 경은 어서 황제 폐하께 대한 예의를 갖추시오!”
게슈타인이 거듭 재촉했다. 뒤늦게 자신의 결례를 깨달은 빌리앙은 레이먼을 향해 정중히 예의를 갖췄다.
“고의는 아닌 듯하니, 친위대장은 너무 흥분하지 말라.”
“예, 황제 폐하.”
게슈타인이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나자 젊은 황제가 소파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황제의 위신을 살리면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가벼운 예법이었다.
쇠락했다고는 하지만 제국의 황제 정도라면 귀족이나 기사에게 예법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젊은 황제, 레이먼은 달랐다. 황제의 위신이 깎이지 않는 선에서 과하지 않은 예법을 지켰다.
그 모습에 빌리앙은 작게 감탄했다.
‘나이답지 않게 겸손하고 현명하시군.’
현재까지 레이먼에 대해 알려진 내용은 전장에서 언제나 선봉에 선다는 것 정도였다.
그것만 보면 황제가 저돌적인 성격에 예법과 격식은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빌리앙 또한 그렇게 생각했으나, 이렇게 직접 대면하고 나니 많은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 기사 여단 장로회의 고위 기사, 빌리앙이라고 합니다.”
“경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다시 소파에 앉으며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그의 방문을 예상했다는 것처럼 가벼운 허세를 부렸다.
그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포타스 백작으로부터 전달받았기 때문에 이토록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레이먼의 차분한 시선이 빌리앙의 전신을 날카롭게 훑었다.
“수도에서 머나먼 이곳, 북부까지 그대는 무슨 일로 찾아 왔는가?”
목소리가 차갑다. 그럴 수밖에 없다. 레이먼이 산악 공작을 진압하기 위해 황군을 이끌고 북부로 향했을 때 기사 여단은 함께하지 않았으니까.
1황자가 완전한 제국을 위해 협력하라는 유언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저울질하느라 황제의 곁에 서지 않았다.
“설마 지금 와서 짐의 뒤에 서겠다는 뻔뻔한 말을 입에 담지는 않겠지?”
레이먼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기사 여단의 조력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절박한 모습을 보일 필요까지는 없었다.
예상과는 다른 황제의 모습에 빌리앙은 조금 당황한 듯 잠시 표정의 변화가 있었지만, 곧바로 수습했다.
“황제 폐하. 기사 여단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빌리앙이 기사 여단에게 부디 기회를 줄 것을 간청했다.
“황제 폐하의 말씀처럼, 지금 저희가 뻔뻔하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부디 황제 폐하……. 저희가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십시오.”
빌리앙이 고개를 숙였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정치할 때는 자신의 속내를 적당히 숨길 필요가 있었다. 지금 기사 여단은 산악 공작의 반란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황제를 강자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장로인 빌리앙이 저자세를 보였으며, 기사 여단 전체가 자존심을 굽히고 합류하려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흠.”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수도로 돌아가면 대답하도록 하지.”
대답을 미뤘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으니, 어디까지나 기사 여단을 안달 나게 만들 목적이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이만 물러가 보아라.”
빌리앙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물러났다. 그가 응접실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밖을 지키고 있는 로열 가드가 되니츠 백작의 방문을 알렸다.
“들라 하라.”
차분한 목소리로 입실을 허락하자 문이 열리고 붉은 제복을 갖춰 입은 되니츠 백작이 천천히 걸어 들어와 예법에 맞게 인사를 올렸다.
“황제 폐하.”
“보고 받았겠지만 기사 여단의 빌리앙 경이 다녀갔다.”
“빌리앙 경이라면 기사 여단의 장로군요. 일전에 연회에서 만난 기억이 있습니다.”
“일단 앉지.”
“감사합니다.”
레이먼의 권유에 되니츠 백작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서 레이먼의 앞에 앉았다. 푹신한 소파였지만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황제를 대할 때의 예법에 맞는 자세였다.
“어떻게 생각하나?”
“빌리앙 경은 기사 여단의 장로 중에서도 영향력이 큰 고위 기사입니다. 그가 직접 움직였다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사 여단이 함께하고 싶다고 하더군.”
“장로가 직접 전달할 정도면 이미 기사 여단 내부에서 조율이 끝났을 겁니다.”
되니츠 백작이 잠시 말을 멈췄다. 그는 목이 타는 것인지 옆에 놓인 냉수를 벌컥 들이켰다. 이윽고 그는 말을 이어가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아시겠지만 ‘피의 장례식’이 있었던 날, 여단장이 1황자 전하의 곁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이후, 수도 본부의 장로 중 한 명이었던 황성 경비대장, 아이반 로우스 경이 임시 여단장을 맡게 되었죠.”
장로회의 추천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정식 직위는 아니었다.
“임시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현 여단장의 직권은 강력하지 않습니다. 자연히 장로회의 권한은 강해졌지요. 만약 아이반 경이 정식 여단장이었다면 기사 여단은 진작에 황제 폐하와 함께했을 겁니다.”
황성 경비대장, 아이반 로우스는 황실과 제국에 대한 충심이 깊은 이였다. 그가 비록 1황자를 지지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레이먼이 황제가 되었으니 정식 여단장이었다면 진작에 행동했을 테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기사 여단 장로회의 권한이 너무 강했다.
“내가 산악 공작과의 내전에서 승전하면서 상황이 바뀐 것이군.”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 이제 기사 여단 말고도 모든 귀족과 세력들이 황제 폐하의 깃발 아래에 뭉쳐 완전한 제국을 형성할 것이옵니다.”
완전한 제국, 고대 시대에 필리어스 제국이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한 일보 전진이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되니츠 백작은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완전한 제국이라…….”
“고대 시대 이후로, 완전한 제국을 이뤘던 선대들께서는 얼마 안 계십니다. 황제 폐하께서는 그 힘든 업적을 달성하신 겁니다.”
찬란했던 영광을 되찾을 날이 머지않았다. 적어도 되니츠 백작은 그렇게 생각했다. 레이먼이 황좌에 오르고 그는 고대 이후로 가장 쇠락한 제국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눈앞의 젊은 황제는 어쩌면 필리어스 제국이 고대의 영광을 되찾게 해줄지도 모른다.
“너무 호들갑 떨지 말게, 백작. 나는 방금 순간적으로 자네가 청탑주라고 착각이 들 정도였다네.”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 들으면 섭섭해할 농담이었지만 그가 호들갑 장인이라는 건 적탑주뿐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들떴군요.”
헛기침과 함께 감정을 다스리는 되니츠 백작을 보는 레이먼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필리어스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영광의 시절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자란다. 그러니 되니츠 백작이 저리 들뜬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되니츠 백작. 사족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넘어갔으면 한다.”
“경청하겠습니다.”
“벨피앙 공작령을 황실 직할령으로 만들 생각이다.”
서론이 긴 건 질색이다. 그래서 바로 본론을 꺼냈지만, 되니츠 백작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벨피앙 공작 가문이 전멸하였으니 그들의 영지를 황실 직할령으로 만드는 건 당연한 절차였고, 황실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이미 궁내부와 내무부에 관련 내용을 전달했네. 하지만 발렌시아 공작령을 황실 직할령으로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절차를 밟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다고 하더군.”
“그동안 벨피앙 공작령을 안정화할 인원이 필요한 것이군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츠 백작은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레이먼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반란이 일어났던 땅이다. 공작 가문을 몰살하고 주동자들을 검은 산맥으로 보냈다고는 하지만 역모의 씨앗은 분명 남아 있을 터.”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목소리였다. 레이먼의 눈동자가 싸늘하게 빛났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따뜻하고 현명한 군주였지만, 감히 무기를 겨누는 적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차갑고 냉정한 철혈의 악마였다.
“청소하면 되는 것입니까?”
“중앙정보국의 요원들을 남겨두고 갈 것이다. 정보전에 능한 그들이라면 필히 도움이 될 것이야.”
“제국선전부의 요원들도 추가 배치를 요청합니다. 이참에 완전히 갈아엎고 세뇌 교육을 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되니츠 백작의 두 눈이 반짝였다.
“쉐이드도 몇 명 남겨두고 갈 생각이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부터 필리어스 제국을 지키는 검은 그림자들. 그들을 몇 명 벨피앙 공작령에 남겨둔다면 되니츠 백작의 호위로는 충분할 것이다.
“제게는 과분한 호위입니다.”
“되니츠 백작. 자네는 쉐이드의 호위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황제 폐하…….”
“호의를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법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겠지?”
엄한 표정으로 가벼운 농담을 던지는 레이먼의 모습이 되니츠 백작은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예, 황제 폐하. 쉐이드의 호위를 받아들이겠습니다.”
쉐이드는 암살에 특화된 이들인 만큼 암살자들의 심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실력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그들이 호위를 맡기로 한 만큼 이제 당분간 되니츠 백작의 안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황제 폐하께 완전한 제국을 바치겠나이다.”
되니츠 백작, 그가 본격적으로 움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