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91)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91화
31장 기사 여단(3)
“한다면 할 수 있었던 건가?”
테라스에 앉아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레이먼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기사 여단의 충성 맹세를 예상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몰랐다. 1황자의 유언이 있었음에도 그들은 황제의 전쟁에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들을 움직이게 한 요인이 있다면 승전과 검성인가……?’
기사 여단은 산악 공작의 승리를 예상했었다. 황제의 깃발 아래 집결한 병력의 수가 많지 않았으니, 강력한 황권을 자랑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몇몇 장로들은 기사 여단의 병력이 황제의 전쟁에 동참하는 걸 격렬하게 반대했었다.
황제의 깃발 아래 집결했다가 산악 공작이 승리하게 된다면 실로 곤란해지기 때문이었다.
잔혹한 성정으로 유명한 산악 공작과 달리 황제의 경우, 조금 늦게 합류해도 자비를 베풀어 줄 것이라는 어리석은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지금 레이먼은 그들 ‘모두’에게 자비를 베풀어 줄 생각이 없었다.
“아이반 경. 왔는가?”
“예, 황제 폐하.”
조용히 다가오는 기척에 레이먼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윽고 기척의 주인이 테라스로 들어서며 대답했다.
테라스를 비추는 달빛이 붉은 제복을 입은 기사의 얼굴을 감춘 그림자를 걷어냈다. 기척의 주인은 금발의 황성 경비대장, 아이반 로우스였다. 그는 레이먼의 옆으로 천천히 다가와 시립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레이먼이 의도한 침묵이었고, 그의 의중을 아직 파악하지 못한 아이반은 섣불리 입을 열지 못했다.
“아이반 경, 자네가 기사 여단의 수장이 되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네.”
피의 장례식을 뒷수습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산악 공작이 반란을 일으켰다. 황위에 즉위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황권을 제대로 강화하기 전에 벌어진 일들이라 레이먼은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만 했다.
“저 또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또한, 임시직에 불과한 자리이니, 황제 폐하와 장로회의 뜻이 있다면 제가 아닌 다른 이가 기사 여단장의 자리에 오를 것이옵니다.”
“장로회의 뜻도 필요하다, 이건가…….”
레이먼은 조용히 혼잣말을 흘렸다.
고대 시대의 강력했던 황권은 제국이 쇠락하면서 함께 약해졌다. 기사 여단의 수장을 교체하는 데 있어서 황제 외에 장로회의 의견도 필요하다는 부분에서 알 수 있었다.
선대 황제인 로널드가 그나마 황권을 강화한 덕분에 지금 레이먼의 이 정도 수하들을 움직일 수 있었다. 로널드 이전에는 그야말로 황권이 바닥으로 추락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황제라고 해도 운신의 폭이 좁았다고 한다.
모두 설정집에 나와 있는 내용이었다. 소설의 설정을 알고 있다는 건 여러 의미에서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황제 폐하…….”
고뇌 가득한 황제의 옆모습에 아이반 또한 침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었다. 어찌나 세게 깨물었던지 피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아무래도 기사 여단은 정리가 필요할 것 같군.”
“정리라 하심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아이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는 짐짓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으나, 실은 황제가 언급한 ‘정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경이라면 잘 알고 있을 텐데?”
“황제 폐하.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게 맞다면, 그건 너무 급진적이옵니다.”
“급진적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걸 보니, 아이반 경이 생각하고 있는 것 또한 나와 크게 다를 바 없나 보군.”
레이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테라스 난간에 다가가 몸을 기댔다.
“아이반 경. 이대로는 위험하다는 생각이 안 드나?”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아이반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으니, 레이먼은 그를 보며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황권을 강화하고 완전한 제국을 다시 일으킬 의무가 있어.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제국의 부흥을 갉아먹는 악의 무리가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그들을 토벌하고 제국의 근간을 바로잡으시옵소서.”
“잘 말해주었다, 아이반 경.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서는 경의 도움이 필요하다.”
레이먼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아이반의 앞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와 펜이 들려 있었다. 그는 그것을 아이반 앞의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름을 적게.”
“어떤…… 이름을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기사 여단에서 산악 공작과 관련이 깊은 장로들의 이름을 적으라는 말이지.”
이건 아이반의 충성심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이미 발렌시아 황실 직할령에서 확보한 자금으로 강화된 중앙정보국이 명단을 입수했으니, 아이반이 진정 황실과 제국에 충성하는 기사라면 그 명단에 속해 있는 이름들을 적어 올릴 것이다.
아이반이 적은 이름들이 명단에 속하지 않거나, 그 숫자의 차이가 심하다면 그를 신뢰하는 건 피해야 한다.
“다 적었습니다.”
깊은 고민 끝에 아이반에 펜을 들고 작성한 명단을 레이먼에게 건넸다. 그걸 확인한 레이먼의 입가에는 선명한 미소가 번졌다.
중앙정보국에서 확보한 명단과 아이반이 직접 작성한 이름들이 9할 이상 일치했으니, 이건 아이반을 신뢰해도 된다는 일종의 증표였다.
“황성 경비대장, 동시에 기사 여단장을 맡은 아이반 로우스 경. 이걸로 그대의 충심이 증명되었다네.”
레이먼은 아이반이 자필로 적은 명단을 옆에 테라스 구석에 시립해 있던 로열 가드에게 넘겼다. 그러고는 아이반에게 다시 다가가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얹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경이 할 일을 말해주겠네.”
* * *
“갑자기 여단장의 호출이라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고위 기사이자 여단의 장로인 아로크가 동료 기사이자 마찬가지로 여단의 장로를 맡은 시안을 보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러게 말이에요, 난 아이반 경이 조금 더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닌가 봐요. 임시직인 걸 망각하고 장로들을 호출이나 하니 말이죠.”
시안도 앵두 같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만을 말했다. 두 장로는 기사 여단의 수장, 아이반 로우스의 긴급 호출을 받고 황제의 알현실로 이동 중이었다.
임시직이라고는 하지만 여단장의 호출이다. 장로라는 높은 직위에 있지만 수장의 호출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 무거운 엉덩이를 들고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그러나 짜증 섞인 불평이 함께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소집 장소가 알현실입니다. 혹시 황제 폐하께서 관여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같은 장로, 하지만 고위가 아닌 상급 기사의 작위를 가진 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러자 시안은 입 꼬리를 뒤틀어 썩은 미소를 자아내며 고개를 저었다.
“황제가 관여했다고 해서 뭐 어쩌겠어요? 산악 공작을 꺾었다고는 하지만 여단에는 고위 기사가 꽤 많답니다. 황제 폐하도 우리 눈치를 살펴야 할 거예요.”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시안의 말에 아로크는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동조했다. 함께 걷고 있던 상급 기사 작위의 다른 장로들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 필리어스 제국이었으며 황궁이었지만, 지엄한 황권은 아직 다 회복되지 못했으니, 천하를 호령했던 과거는 지나간 영광에 불과하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슬슬 알현실이 코앞입니다. 로열 가드가 지키고 있을 테니, 목소리를 낮추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작은 키의 장로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말했다. 다행히 이 정도 조언도 거부할 정도로 두려움을 상실한 것은 아닌지, 시안과 아로크를 비롯한 장로들은 목소리를 낮춰 시시덕거리다가 알현실의 인근에 도달했을 땐 황제에 대한 험담을 중지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감히 황제를 모욕하는 대화를 듣고 있는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소리 없는 그림자가 따라붙었다는 건 꿈에도 모른 채, 그들은 알현실의 문 앞으로 다가섰다.
“황제 폐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현실 앞을 지키고 있는 로열 가드가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가 왔음을 황제 폐하와 여단장께 알리게.”
장로 중 한 명이 말하자 로열 가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힘차게 문을 열었다.
제국은 쇠락했지만, 알현실은 여전히 웅장하고 화려했다.
가장 끝의 황좌에는 젊은 황제 레이먼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기사 여단의 임시 수장을 맡고 있는 아이반 로우스가 시립해 있었다.
알현실에 내려앉은 공기가 무겁다. 불길한 기운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았다.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을 따라 걸으며 시안은 마른침을 삼켰다.
알현실 통로를 따라 시립한 로열 가드들의 기세 또한 흉흉하기 그지없으니, 자신만만했던 시안조차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 폐하께 예를 갖추시오.”
게슈타인이 호통치자 장로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몇몇은 게슈타인에 대해 알고 있었으나, 그러지 못한 이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황제의 앞이니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불만 가득한 시선이 집중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게슈타인의 표정은 굳건한 바위처럼 흔들림 없었다. 검집을 잡고 있는 손아귀 또한 미동이 없다.
“기사 여단의 장로회가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아로크가 장로들을 대표해 앞으로 나섰다. 그가 먼저 고개를 숙이자 시안을 비롯한 다른 장로들도 함께 고개를 숙여 황제에 대한 예를 갖췄다.
하나, 예법을 갖추는 것도 잠깐이었다. 그들은 곧 황제가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사 여단의 임시 수장을 향해 반항적인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여단장께서는 어찌 우릴 부른 것입니까?”
어전이다. 감히 황제를 앞에 병풍처럼 세워놓고 아이반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기사 여단의 장로이자 고위 기사인 아로크는 황제의 차가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반을 압박했다.
다른 장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기사 여단에서 아이반이 얼마나 약한 힘을 쥐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황제 폐하께서 그대들에게 묻고자 하는 게 있으니 부른 것이오.”
“허어, 거참. 아무리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부르는 건 어느 나라 예법이오?”
아이반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아로크는 피식 웃으며 빈정거렸다. 앞에 황제가 있으나 크게 상관치 않은 듯했다. 오직 시안과 소수의 장로만이 긴장한 표정으로 로열 가드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내가 그대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다고 하지 않았는가? 가엾은 여단장을 압박하는 건 그만두게.”
보다 못한 레이먼이 나섰다. 아이반의 여단장 직위가 임시직이었으며, 현재 장로들의 권세가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러나 이건 레이먼에게 있어서 다행이었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으니, 오히려 망설임이 사라지고 결심이 굳건해졌다. 이제 거사가 머지않았다.
“황제 폐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이쯤 해두겠습니다.”
대단한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행동하는 아로크의 모습에 레이먼의 입가가 뒤틀렸다. 그는 짧은 한숨을 내뱉더니 황좌에서 몸을 일으켰다.
“경들의 태도를 보니, 직설하는 게 좋을 것 같군.”
레이먼의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 곁을 지키고 있던 데시아와 게슈타인이 일제히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어찌하여 산악 공작의 편에 붙었는가?”
“화, 황제 폐하?”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제야 장로들 또한 심상치 않은 흐름을 깨달았다. 알현실의 어두운 곳마다 그림자들이 솟구쳤으니 그들은 바로 쉐이드들, 거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쏘는 자들이었다.
“내가 모를 줄 알았더냐? 그대들이 산악 공작에게서 금괴를 얻어먹고 기사 여단이 움직이지 못하게 입김을 불어넣은 것을!”
어느새 황제의 오른손에는 영혼검이 들려 있었다. 그 선명한 마나의 빛을 본 장로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입이 있다면 변명해보라!”
“황제 폐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기사 여단의 장로입니다! 이런 협박은 통하지 않습니다!”
장로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기사 여단 소속에서도 직위가 높은 이들이었기 때문에 알현실에서도 검을 패용할 수 있었다.
그들의 검에서 마나 소드가 일제히 솟구쳤다. 상급 기사 이상의 경지에서도 수준 높은 이들에게만 기사 여단의 장로직이 부여된다.
그렇기에 하나 같이 위협적인 기세의 마나를 품고 있었으나, 레이먼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게슈타인, 앞으로 나서라.”
황제의 편에는 검성이 있었으니까.
“가서 저들을 심판하고 썩어 빠진 필리어스 제국의 부흥을 알리는 깃발을 들어 올리거라.”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게슈타인이 들어 올린 검에서 검성의 상징,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