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96)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96화
33장 밤의 집행관(1)
어둠이 깊게 내린 밤.
어느 한적한 마을의 길목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들어서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어둡게 물든 하늘처럼 검은 로브를 입고 있었다. 깊게 눌러 쓴 후드 아래로 검은 가면이 엿보였다.
그는 종언의 전도사, 리처드 팔라어였다.
“전도사,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골목의 끝에 도달하자 검은 로브를 입은 이들 다섯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셋이 주위를 경계하는 동안 남은 둘이 리처드를 지하로 안내했다.
“통신 시설은 준비되어 있겠지?”
“물론입니다. 최상급 마법사 또한 대기 중입니다. 전도사께서 마법 통신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끝냈습니다.”
“좋아, 만족스럽군.”
안내인의 대답에 리처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단을 따라 얼마나 한참을 내려가자 끝에 도달했다.
낡은 나무문을 열자 마치 지하 감옥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공간에는 쇠창살과 고문 기구들이 가득했다. 누가 봐도 지하 감옥이었다.
“협회에서 사용했던 지하 감옥입니다. 지금은 원래 용도를 폐기하여, 임시 연락 거점으로 사용 중입니다.”
안내인이 설명했다.
이윽고 그들은 지하 감옥 깊숙한 곳에 있는 밀실로 들어섰다. 안에는 연락용 수정구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리고 최상급 마법사로 보이는 이가 벽에 기댄 채 단검을 만지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최상급 마법사 정도 되면 몸값도 비싸고 어딜 가든 대우받는 위치였기 때문에, 콧대가 높은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지정된 좌표로 마법 통신을 연결해라.”
“알겠습니다, 전도사.”
리처드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하자 최상급 마법사도 언행을 다스렸다. 종언의 전도사가 얼마나 잔혹한 성정을 가졌는지 잘 알고 있기에 고개를 숙인 것이다.
그는 연락용 수정구에 좌표를 입력한 뒤, 마나를 주입하고는 출입구 쪽으로 물러났다.
“해당 좌표와 마법 통신 연결은 끝났습니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수고했다.”
최상급 마법사가 밀실을 떠났고, 리처드는 연락용 수정구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후드를 깊게 눌러 쓴 이들 다섯이 수정구에 나타났다. 모두 종말 협회의 고위 간부들이었다.
-뭐야? 엘피스가 왜 여기 있어? 자격이 없을 텐데?
통신이 연결되기 무섭게 고위 간부 중 한 명이 엘피스의 존재를 지적했다. 그러자 엘피스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어라? 저도 얼마 전에 고위 간부로 승격되었어요. 밤의 집행관께서는 전달받지 못하신 건가?
엘피스가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자격이라……. 이건 내가 나중에 최고 회의에 이의를 제기해야 할 문제인 것 같군.
-혼잣말을 참 크게도 하시네요. 마음대로 하세요.
잠시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심화되지는 않았다. 리처드가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연락용 수정구가 내비치는 작은 환영에 불과하다. 하지만 종언의 전도사, 리처드 팔라어의 무서움을 익히 들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경험하기도 했기 때문에 둘은 경솔한 행동을 계속하지 못했다.
“거기 둘, 고위 회의는 장난이 아니다.”
말다툼은 멈췄지만, 리처드는 다시 한번 날카로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밤의 집행관이라고 불린 이와 엘피스의 실루엣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분위기가 진중해졌다.
-그런데, 리처드 경. 갑자기 고위 회의를 소집한 이유가 궁금한데…….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작은 실루엣의 남자가 정중하게 물었다. 나이를 의심하게 만드는 왜소한 체격이었지만 고위 회의에 소집된 걸 보면 외관과는 달리 종말 협회의 고위 간부인 것이 확실했다.
“우리가 찾고 있던 물건 중 하나의 행방을 확인했다.”
-어떤 겁니까?
작은 실루엣의 남자가 재차 질문했다. 리처드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정령왕의 기록.”
-위치는?
밤의 집행관이라고 불린 남자의 실루엣이 관심을 보였다.
“필리어스 제국의 남부 중앙 숲이다.”
-내가 간다. 지금 근처야.
“로딘 경, 감당할 수 있겠나? 얼마 전에 데스 나이트 기사단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기억하는데…….”
-피해는 어느 정도 복구했다. 그리고 지금 나보다 남부 중앙 숲에 가까운 사람은 없을걸?
로딘의 말에 리처드는 고개를 연락용 수정구에 모습을 비춘 실루엣들을 한 차례 훑었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필리어스 제국 인근의 고위 간부들만 마법 통신으로 소집했지만, 로딘의 말대로 남부 중앙 숲 근처에 있는 자는 없는 모양이다.
-로딘 경이라면 맡겨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는 언데드 군세가 있으니, 협회의 전투대를 소집할 필요 없이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을 테니까요.
또 다른 실루엣이 의견을 말했다.
“그럼 로딘 경에게 맡기도록 하지.”
짧은 고민 끝에 리처드는 결정을 내렸다.
-크흐흐, 좋아. 내 언데드 군대가 엘프들한테 종말을 선사할 거다.
협회에서 가장 사악한 네크로맨서가 황금초 일족의 도시로 향한다.
* * *
사냥제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황명이 떨어지고 자금을 지원받은 궁내부가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일주일 만에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다.
초대를 받은 귀족들이 모여들었고, 사냥제에 동원될 기사들과 병사들이 집결했다.
필리어스 제국이 건재하다는 걸 사신단에게 과시하기 위한 사냥제이다 보니 동원된 군사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드디어, 내일입니까?
연락용 수정구에 얼굴을 비춘 이는 되니츠 백작이었다. 사냥제가 코앞이었지만, 그는 미약한 반란의 불씨를 완전히 토벌하기 위해 벨피앙 황실 직할령을 지키고 있었다.
실제로 그는 뛰어난 참모였고, 잔당들이 하나둘씩 토벌되면서 벨피앙 황실 직할령은 빠른 속도로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군의 준비는 끝났습니까?
되니츠 백작의 물음에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 황군과 기사 여단이 사냥단의 수행을 맡기로 했다.”
-황군과 기사 여단이라면 사신단에게 필리어스 제국의 군사력을 제대로 과시할 수 있을 겁니다.
남부 중앙 숲에는 마물들이 많다. 대규모 인원이 이동한다고는 하지만 사냥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물들과 조우할 수밖에 없는 장소였다. 그때가 되면 황군과 기사 여단이 활약할 것이다.
사냥제라는 명칭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마물 토벌을 통해 황군과 기사 여단의 무력 과시를 위한 하나의 무대나 다름없었다.
사신단에게 군사력을 과시하여 전쟁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게 레이먼과 되니츠 백작의 계획이었다. 당장 전쟁을 일으키기에는 필리어스 제국에는 부족한 게 많았다.
그렇다고 해서 리스본 해상 왕국이 극동 제도에서 고용한 용병단이 도착한 후에 선전포고하는 것은 너무 늦을지도 모른다.
“그래, 필리어스 제국의 군사력을 어느 정도 보여줄 필요가 있지.”
전쟁을 미루기로 결정했으니, 최대한 전화의 불씨가 타오르는 것을 연기해야만 했다.
적어도 필리어스 제국이 완벽한 준비를 끝냈을 때 전면전이 터져야만 했다.
물론 삼국 동맹 또한 가만히 있지는 않겠지만, 레이먼은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그들을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어느 정도 장악했나?”
레이먼이 두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물었다. 산악 공작의 암살 시도 이후, 측근이 된 되니츠 백작을 벨피앙 황실 직할령에 임시로 보내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가 아니었다면 다른 인물을 보내도 되었을 것이다.
-제국선전부가 활약하고 있습니다. 벨피앙 황실 직할령 내에서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되니츠 백작이 맡은 작업은 바로 산악 공작의 술수로 인해 벨피앙 황실 직할령에서 바닥에 떨어진 황실과 제국에 대한 백성들과 사병들의 충성심을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는 전투와 전법뿐만 아니라, 선전과 선동 쪽에도 전문가였다. 산악 공작의 휘하에 있을 때 영지 내부에서 황실과 제국의 권위를 낮추는 선동 작전을 지휘했던 것도 본인이었으니, 이제 잘못된 길을 바로잡고 있는 것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군.”
-민심 장악은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기존의 벨피앙 영지군 출신의 병사들 같은 경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되니츠 백작이 솔직하게 말했다. 과거 산악 공작과 되니츠 백작이 정신 교육을 할 때 가장 신경 썼던 이들이 영지군 소속의 병사들이었다.
이들이 강한 정신 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면, 산악 공작이 살아 있었더라도 황제와 필리어스 제국군을 상대할 때 탈영 확률이 낮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을 다시 황제의 깃발 아래에서 외세와 싸우게 하려면, 그동안 정신 교육의 흔적을 지워낼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쪽에서 시간을 최대한 끌어 보겠다. 그러니 백작은 벨피앙 영지군을 전령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라.”
내전과 산악 공작의 죽음으로 인한 대규모 탈영으로 엉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벨피앙 영지군은 여전히 2개 군단, 약 1만 2천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들은 현재 반란을 막기 위하여 벨피앙 황실 직할령 곳곳에 여단 단위로 흩어져 북부 중앙군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정신 교육의 흔적을 지운다면 그들을 집결시켜 삼국 동맹과의 전쟁에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황제 폐하.
되니츠 백작이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레이먼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통신을 종료했다.
* * *
사냥제를 위해 수도에서 출발한 행렬이 남부 중앙 숲이 있는 하이트 백작령에 도착했다.
기사 여단 병력 중 1천, 황군 3천이 동원된 데다, 참여한 귀족들의 사병들 1천까지 합하면 전투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의 숫자만 5천에 이르렀다.
얼핏 보면 사냥제를 위한 행렬이 아닌 남부 중앙 숲의 마물들을 쓸어버리기 위한 토벌대의 모습으로 보일 정도였다. 선봉을 자처한 기사 여단이 품은 기세는 특히나 날카로웠다.
남부 중앙 숲 인근에 도달하자 하이트 백작의 깃발이 보였다. 백작이 직접 5백의 영지군을 이끌고 마중 나온 것이었다.
그들 역시 황제의 깃발을 발견한 것인지 말을 탄 사내 몇 명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이쪽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그들은 황제 앞에 말을 멈춰 세우고 말에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 하이트 백작령에 방문하신 것을 환영하옵니다!”
“반갑다, 하이트 백작. 이렇게 만나는 건 처음이군.”
“영광이옵니다!”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이트 백작의 설정을 떠올렸다. 그는 남부 중앙 숲의 마물들이 날뛰는 바람에 선황의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귀족으로, 황실과 제국에 대한 충성심은 보통 정도라고 설정에 기록되어 있다.
단치히 백작만큼 충성심이 깊은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충심이 깊었다면 레이먼이 산악 공작과 싸우고 있을 때, 다른 남부 귀족들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이트 백작을 책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죄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그런 상황에서 다른 이의 눈치를 과하게 살핀 게 서운할 뿐이었다.
“우선 숙영지로 가서 여독을 푸시지요.”
하이트 백작이 앞장섰다. 그가 말한 숙영지는 마물들로 가득한 남부 중앙 숲에서도 가장 안전한, 초입에 있었다.
숙영지로는 알맞은 장소였다. 넓을 뿐만 아니라 숲답지 않게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보초들이 마물의 접근을 알아차리기에 수월했다.
숲의 초입이라서 마물들의 공격이 있을 확률도 낮아서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심지어 임시로 사용할 천막들까지 모두 만들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사냥단은 그야말로 들어가서 몸만 눕히면 될 정도였다.
“훌륭하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레이먼의 칭찬에 하이트 백작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산악 공작과의 전선에 함께하지 않아서 황제의 눈 밖에 날까 싶은 마음에,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며칠 전부터 영지의 마법사들과 인부들을 대거 동원하여 사냥단의 숙영지를 만들었다.
그 노력이 빛을 본 것 같아서 하이트 백작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야간 경계는 저희 영지군이 맡겠사옵니다.”
수도에서부터 시작된 짧지 않은 여정을 치른 사냥단이 쉴 수 있도록 야간 경계까지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은 맡기도록 하지.”
레이먼은 하이트 백작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약속대로 야간 경계는 하이트 영지군이 맡게 되었고, 덕분에 사냥단은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아직 본격적인 사냥제가 시작되기 전이었다. 푸른 로브를 펄럭이며 황제의 천막으로 다가오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청탑주, 리세필드 디올이었다.
늘 옆에 단짝처럼 따라다니는 적탑주, 베레누스 카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수도에서 연구해야 할 게 남은 탓에 사냥단에 합류하지 못했다.
“황제 폐하! 청탑주가 찾아왔습니다!”
“들라 하라.”
로열 가드가 청탑주의 방문을 알렸다. 곧바로 황제의 허가가 떨어졌고 리세필드는 천막의 문을 힘차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중앙의 의자에 레이먼이 앉아있었고, 그 옆에 게슈타인과 데시아가 시립해 있었다. 리세필드는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 들어가서는 황제 레이먼을 보며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이곳에 사냥만 하러 오신 것은 아니지요?”
날카로웠다. 게슈타인은 말이 없었고 데시아는 리세필드의 시선을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