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Extra in History RAW novel - Chapter (98)
사상 최강의 엑스트라 98화
33장 밤의 집행관(3)
푸른 소용돌이가 오크들의 후방을 강타했다. 청탑주, 리세필드가 완성한 고위 마법이었다.
뒤이어 데시아가 고위 마법을 시전했다. 연이은 두 번의 고위 마법에 수백의 오크가 목숨을 잃었다.
“전진하라! 적들을 밀어붙여라!”
카시야스의 외침에 중무장한 필리어스 제국의 황군이 창과 검을 휘두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오크들은 공포에 질린 얼굴로 필사적으로 맞섰다. 그들을 지배하는 짙은 두려움의 기운은 눈앞의 황군 때문이 아니었다.
“저 너머에 무언가가 있습니다…….”
실비아의 안색도 창백해졌다.
“무언가? 마물이더냐?”
레이먼의 질문에 실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알 수 없어요. 바람의 정령을 정찰 보냈는데, 요격 당했습니다.”
“바람의 정령이 당했다고?”
“네, 실체화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당했어요.”
실체화하지 않은 정령을 공격하는 방법은 사실상 불가능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실체화하지 않은 정령을 공격할 수단이 있다는 건가? 대체 뭐지?’
레이먼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오크들의 뒤로 시선을 던졌다. 아직 어둠이 찾아오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저 너머에는 희미한 어둠이 보였다.
‘심상치 않다.’
저기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날카롭게 벼린 고위 마검사의 기감으로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짙은 어둠이었다.
“마법사 부대는 화력 엄호를 중단하라!”
레이먼이 왼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마법사 부대의 지휘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황제의 명령을 따라 부대에 엄호 중단 명령을 전파했다.
“황제 폐하, 마법 공세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곁을 지키고 있는 황군 지휘관 한 명이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어차피 오크들의 후열은 완전히 무너졌다. 계속해서 마법 화력을 퍼붓는 것보다는 마법사들의 마나를 보전하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오크들의 지원군을 염두하시는 것이옵니까?”
“아니.”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크들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너머에 뭔가가 있다. 본능이 경고했고 고위 마검사의 기감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검성, 게슈타인의 개입한 이상, 오크 무리는 위협이 되지 못했다. 오크 중에서도 고위 기사급의 무위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대전사가 소수 있었지만 검성의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키에에엑!”
“크아아악!”
게슈타인이 검을 휘두를 때마다 오크들이 추악한 비명이 내지르며 붉은 피를 쏟아냈다.
이내 오크들의 방진은 완전히 붕괴했고, 무너진 진형 깊숙한 곳으로 파고든 검성이 오러 블레이드를 흩뿌릴 때마다 적들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이쯤 되면 호전적인 오크들이라고 해도 전의를 상실하고 후퇴할 정도였다. 그런데 이들은 끝까지 검성과 맞서 싸웠다.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았으나, 그들의 얼굴에 깃든 건 결사 항전의 의지가 아닌 저 너머의 어떤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결국 그들은 최후의 단 하나까지 황군에게 맞서 싸우다가 끝내는 몰살당하고 말았다.
오크들의 시체가 쌓인 작은 언덕 위에 게슈타인이 올라섰다. 숲의 저 너머로 향하는 시선의 끝에 뭔가가 닿았다.
“맙소사…….”
좀처럼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 게슈타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탄식을 내뱉었다. 그는 무언가에 자극받아 동요하고 있었다.
“전군! 전열을 재정비하라!”
게슈타인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오러 블레이드를 유지한 채로 황군의 선봉에 섰다.
무엇이 태산과도 같은 그를 요동치게 만들었는가?
레이먼은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곧 그의 시선은 실비아에게 향했다.
“바람의 정령을 다시 보낼게요.”
뺨에 닿는 시선의 의미를 알아차린 실비아가 다시 바람의 정령을 소환하여 점차 다가오는 어둠을 향해 보냈다.
“실비아…….”
“응답이 없어요. 또 역소환 되었습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바람의 정령은 또다시 요격당했고, 실비아는 분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오늘만큼 그녀가 이렇게 무력해 보인 적은 없었다.
레이먼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마나를 끌어 올렸다. 단숨에 일어난 강력한 마법의 바람이 오크들의 시체로 만들어진 언덕을 무너뜨려 시야를 확보했다.
그리고 저 멀리 검은 어둠의 정체가 드러났다.
“이런, 제기랄…….”
검은 어둠 아래서 이곳을 향해 천천히 진군하는 군세를 목격한 레이먼은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 말았다.
그의 눈에 훤히 들어온 군세를 이루는 병사들은 살아 있는 생명이 아닌 망자들이었으니까.
언데드.
네크로맨서에 의해 약속된 안식을 거절당하고, 살아 있는 자들을 향한 원념으로 검을 든 죽은 자들의 군대였다.
“전원 방진 유지!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한발 늦게 저들의 정체를 알아챈 카시야스가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선두의 방진을 누볐다.
“저기 황제 폐하께서 계신다! 황군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될지어다!”
언데드 군세의 출현에 군사들은 동요했지만, 카시야스는 그들을 적절하게 다독이고 사기를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레이먼은 조용히 말을 몰아 방진의 선두로 이동했다. 그러자 로열 가드들이 날렵하게 따라붙었다.
“황제 폐하. 참전하실 생각이십니까?”
블리자드 후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이먼은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상대는 언데드 군세다. 네크로맨서를 죽이지 않으면 놈의 마나가 바닥 날 때까지 전투가 끝나지 않을 거다.”
옳은 말이었다. 블리자드 후작 또한 언데드에 대한 상식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로열 가드가 수행하겠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잘 부탁한다.”
변함없이 충직한 블리자드 후작을 보며 레이먼은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실비아를 불러 네크로맨서의 위치를 물었다.
“바람의 정령은 계속 요격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불길한 마나가 느껴지는 방향은 알 것 같아요.”
엘프는 마나의 향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실비아의 대답은 레이먼은 충분히 만족시켰다. 그는 다가오는 언데드 군대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안내하라.”
“예, 황제 폐하.”
백금발의 하이 엘프 혈통이 다가오는 언데드 군대를 향해 당당히 나아간다. 레이먼은 그녀가 혼자 가게 하지 않았다.
“로열 가드는 길을 열라!”
전장에 황명이 울려 퍼졌다. 로열 가드, 그들 중에서도 뛰어난 무위를 가지고 있는 후작 두 명이 앞으로 나섰다.
블리자드 후작과 템페스트 후작이었다.
“엄호하겠습니다, 템페스트 후작.”
블리자드 후작이 손을 뻗자 살벌한 냉기가 휘몰아쳤다. 언데드 군대의 선봉을 지키고 있는 해골병들과 좀비들이 사정없이 쏟아지는 냉기의 세례에 힘없이 쓰러졌다.
그리고 템페스트 후작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칼날을 머금은 폭풍이 언데드 군세를 덮쳤다.
해골병들과 좀비 떼가 칼날을 머금은 바람에 도륙 당했다. 공포스럽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해골병들과 좀비들의 전투력은 상상 이하였다.
“별거 아니네요.”
황군 병사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황군 기사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해골병이나 좀비는 언데드 중에서도 하급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언데드가 진정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수가 많기 때문이 아니지. 저길 봐라.”
황군 기사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서 녹색의 불길한 마나가 터져 나왔다. 쓰러졌던 언데드들이 빠른 속도로 재생하며 몸을 일으켰다.
“맙소사…….”
“이게 언데드라는 건가?”
황군 병사들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는 언데드가 낯설고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 네크로맨서가 백 년 전의 인물이었으니까.
“네크로맨서의 위치를 찾았어요. 저기예요.”
두려워하는 병사들과 달리 실비아는 침착하게 네크로맨서의 위치를 특정했다.
불길한 마나의 움직임으로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전 흑마법의 발동으로 더욱 확실해졌다.
강한 확신을 담아 말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레이먼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른손에 마나를 불어 넣었다. 영혼검이 더욱 선명하게 빛났다.
“황제 폐하. 저 망자들은 제가 침묵시키겠습니다.”
검성, 게슈타인이었다. 그는 황제가 손에 망자들의 썩은 피를 묻히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별도의 지시가 없으면 황제의 곁을 지키던 그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그렇게 해주겠는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제가 엄호할게요.”
데시아가 스태프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레이먼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끄덕이자, 게슈타인이 검을 뽑아 들며 언데드 군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수십 개의 얼음 창이 언데드들을 관통했다. 그리고 검성이 휘두른 오러 블레이드가 언데드들을 도륙했다.
“우리도 간다.”
레이먼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길을 여는 건 게슈타인이었지만 레이먼도 뒤에서 구경만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검성이 길을 열고 로열 가드들이 옆에서 호위하고 있으니, 전장의 중심을 걷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거듭 발걸음을 재촉하기를 10여 분, 검성이 멈춰섰다.
“크하하하! 설마 황제가 직접 행차하실 줄이야!”
엉망진창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과 초췌한 얼굴, 검은 로브와 그를 중심으로 피어나가는 불온한 녹색의 마나는 그가 네크로맨서라는 걸 증명했다.
“저자의 목을 쳐라, 게슈타인.”
“황명을 받들겠습니다.”
게슈타인이 땅을 박찼다. 일순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예상치 못한 속도에 네크로맨서는 헛바람을 삼키며 뒤로 물러났고, 옆을 지키고 있던 목 없는 기사 듀라한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콰아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금속 특유의 마찰음이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가 충돌하는 듯한 폭음이 터져 나오면서 듀라한의 몸이 땅속으로 깊이 꺼졌다.
듀라한이 검을 회수하기도 전에 게슈타인의 두 번째 일격이 그의 몸을 쪼갰다.
“나, 나의 듀라한이……!”
언데드라고 할지라도 몸이 두 조각으로 쪼개졌는데 전투를 수행할 수는 없다. 재생 주문을 외우기에는 게슈타인과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
“황제 폐하 만세!”
“크아아악!”
허공에 오러가 흩뿌려지고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핏줄기가 솟구쳤다. 네크로맨서가 강화 마법까지 동원하여 회피를 시도했지만 검성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왼팔이 잘렸고 그는 힘없이 비틀거렸다.
“무장을 해제시켜라.”
백 년 만에 등장한 네크로맨서다. 포로로 잡아서 심문할 가치는 충분했다.
‘종말 협회 놈들인가?’
네크로맨서의 오른팔마저 잘라내는 것으로 그를 무장해제 시키는 게슈타인의 뒷모습을 보며 레이먼은 입술을 씹었다.
《망자들의 제국》 소설 속 세계관에서 네크로맨서가 되기 위해서는 ‘검은 새벽의 축복’을 받아야만 하는데, 설정상으로는 축복을 받는 방법이 유실되었다고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네크로맨서가 모습을 드러낸 걸 보면, 완성되지 않은 설정이면서 세계관의 이레귤러적인 존재인 종말 협회가 움직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무장을 해제시켰습니다.”
게슈타인이 보고했다. 레이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네크로맨서에게 다가갔다. 데시아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네크로맨서의 양팔에서 쏟아지는 피가 멎었다.
“종말 협회에서 보냈느냐?”
“크하하! 다 알고 있지 않을 텐데?”
네크로맨서는 미친 사람처럼 시시덕거리며 웃었다.
“밤의 집행관께서 이곳에 오셨으니, 종말이 도래할 것이다!”
순간, 그의 몸에 집결하는 녹색의 마나를 본 게슈타인이 황급히 황제의 앞을 막아섰고 뒤이어 데시아가 방어 마법을 완성했다.
콰앙!
푸른 방패가 게슈타인과 황제의 앞에 생성된 직후, 네크로맨서의 몸이 폭발했다.
“자결인가…….”
로열 가드의 템페스트 후작이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위해를 가할 생각은 없었던 것인지 폭발의 위력은 크지 않았다. 네크로맨서의 육신 하나만 조각낼 정도였다.
살점 파편만 사방에 튈 정도였는데, 그마저도 데시아가 펼친 방어 마법 덕분에 레이먼에게는 닿지 못했다.
“밤의 집행관이라고……?”
레이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망자들의 제국》 소설 속의 세계관과 설정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가가 거의 유일하게 아직 완성하지 못한 설정인 종말 협회에 대한 정보는 전무했다.
“황제 폐하. 이곳은 위험합니다. 속히 숙영지로 돌아가시지요.”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템페스트 후작.”
레이먼은 템페스트 후작의 우려에 차갑게 대답하고는 카시야스를 가까이 불러들였다.
“황제 폐하. 부르셨나이까?”
“숙영지에 전령을 보내서 사냥제의 중단을 알려라. 그리고 황군과 기사 여단 병력을 재정비하여 집결시키도록 하여라. 또한 이곳에 방어 진지를 구축하여, 만약의 공격에 대비한다.”
“황명을 받들겠나이다!”
카시야스가 움직였다. 전령들이 대열에서 이탈하여 숙영지로 향했고 남은 이들은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황제의 천막이 가장 먼저 세워졌고 레이먼은 데시아와 게슈타인, 실비아, 그리고 청탑주와 함께 조용히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준비하거라.”
“예? 무슨 준비를 말씀하시는 것이옵니까?”
설명 하나 없으니, 청탑주가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이윽고 레이먼의 시선이 리세필드에게 향했다.
“황금초 일족의 도시로 간다.”
불길한 생각이 고개를 들고 있으니, 변고가 없는지 두 눈으로 확인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