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reatest Warrior of All Time Returns RAW novel - Chapter (24)
역대급 무신님께서 귀환하신다 24화(24/40)
제24화
이건 단순한 사전 조사 같은 게 아니었다.
무인이라면 가지는 최소한의 자격.
바로, 향상심이었다.
아무리 일개 소드 마스터와 비교할 수 없는 검성이라도 그의 성장이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까.
“어르신.”
나는 조용히 그에게 찻잔을 건네며 말했다.
“아시다시피 저희 가문이 현재 적이 많습니다.”
“그렇지.”
“제 동생 멜리사에겐 아직 버거운 짐이기도 하고요.”
“그 또한 그렇지.”
“그러니 미엘레폰 가문이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겠다 약조해 주시면, 어르신이 필요로 하시는 걸 넘겨드리겠습니다.”
세상사 기브 앤 테이크 아닙니까.
내 제의에 그가 눈을 꿈틀했다.
“마음 같아선 도와주고 싶다만,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나는 바타 왕국이 아닌 제국의 귀족이다.”
이 일에 그가 간섭하면…….
“아뇨. 뭐 정확히는 이름만 빌리는 겁니다. 백작령과 반영구적으로 관계를 맺는 게 아닌 시간을 버는 정도입니다.”
“말해 보거라.”
“타국 사이에서도 별말이 나오지 않을 수단, 정략혼이죠.”
“음?”
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미엘레폰과 카스카디아 백작가 사이에 약혼의 징조가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약소국인 저희 바타 왕국의 귀족들은 함부로 저희를 어찌하지 못할 겁니다.”
내가 제안한 건 간단했다.
가짜 약혼.
“말이 오간다 정도만 풀어놔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으니까요.”
“허…… 허허허.”
내 제의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내가 거절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이런 화끈한 제안을 하는 게로구나.”
“저는 어차피 백작가를 이어받지 않습니다. 향후, 약혼이 무산되어도 제 동생이 괜한 구설수에 오르지 않아도 됩니다. 또한 구체적으로 누굴 집어서 약혼을 진행하는 것도 아니니 미엘레폰의 영애들에게도 크게 문제가 되진 않지요.”
“흐음…….”
“어르신의 제자가 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대상 없는 정략혼이었다.
“이건 단순한 거래입니다. 다만, 절대 어르신이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닐 거라 장담하지요.”
약혼이니 뭐니 거창하게 말했지만.
파고들면 결국 이쪽은 미엘레폰이라는 제국의 거대 가문과 연줄이 생겼다, 정도만 이용하면 되는 문제였다.
“정말로 약혼하는 건 아니니까요.”
내 말에 그는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그래. 네 말대로라면 크게 문제가 되진 않겠구나. 그렇다 할지라도 자기 인생을 걸고 이리 나올 정도로 네 동생이 소중하더냐.”
“얄미워도 가족이니까요.”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다만, 네가 한 행동은 자칫 정말로 약혼이 성사될 위험이 있다는 것만 알아 두거라. 소문이란 그런 것이다.”
“고작해야 약혼에 대한 소문이 퍼져 봤자죠. 중요한 건 약혼 자체를 성사시킬 생각까진 없다는 겁니다.”
“그럼 대답을 부탁하마.”
그의 말에 나는 종이에 한 문장을 적었다.
그리고 그에게 내밀었다.
“어르신. 어르신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건 제가 검강을 어떻게 유사하게 만들어 냈느냐가 아닐 겁니다.”
“이건…….”
“지금 어르신에게 가장 필요한 게 아닐까 싶네요.”
내가 적어 준 것은 소드 마스터 최상위.
그가 맞닥뜨리고 있는 벽에 대한 힌트였다.
“그걸 뚫어 낼 수 있는 건 어르신의 역량입니다.”
“너…… 너는 대체.”
“원하시는 대가가 되었습니까?”
무려, 대륙의 검성과 이제 익스퍼터가 된 소년의 대화치고는 너무 이상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진지하게 그 문장을 뇌리에 담았다.
* * *
“어르신, 가셨던 일은 잘 해결되었습니까.”
“돌아가자꾸나.”
굳은 얼굴로 걸음을 재촉하는 오스베르크를 보며 수행원인 바그무트 미엘레폰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어르신? 기분이 상한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물음에도 오스베르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한참 후에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미엘레폰과 가짜 정략혼을 하자고 하더구나.”
“예?!”
“그저 말이 오간 정도만 되어도 가문에 가해지는 압박이 줄어들 거라더군. 작은 왕국의 입장에선 미엘레폰의 사돈 가문에 압박을 가하기도 쉽지 않을 테니.”
“가짜 정략혼이니 실제로 오가는 이야기는 없다는 뜻이로군요. 그것 때문에 기분이 상하신 겁니까?”
“아니, 그 사안은 오히려 좋은 일인 게지. 다만, 내가 고심한 것은 그 아이가 넘긴 심득 때문이다, 바그무트.”
“예?”
그가 말했다.
“기연이로구나, 기연이야. 이 나이를 먹고 아직 새파랗게 젊은 소년에게 기연을 얻을 줄이야…….”
“기연이라니…… 어르신?”
“가문으로 돌아가자. 원하는 대로 이야기가 나오게는 해 줘야겠지.”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물론, 그놈이 소문의 힘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본인이 감당할 업보가 아니겠느냐.”
“하나, 어르신…….”
“이 심득이 가져다줄 가치가 얼마나 커지는가에 따라 그 대가를 철저하게 계산해서 돌려주어야겠지.”
검성이 껄껄껄 웃었다.
“그래. 전에 준비하기로 한 그 검은 예단으로 보내도록 하면 되겠구나.”
“알겠습니다.”
* * *
검성 오스베르크는 마치 넋이 나간 것처럼 문장이 쓰인 종이만을 바라보았었다.
그 내용이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다른 이가 봤다면 이게 무슨 개소리인가 할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오로지 그에게만큼은 가장 필요한 문장이었다.
사람은 버릇이라는 게 존재한다.
그가 가진 오러의 흐름이나 운용 방식을 보면 그가 모르는 버릇 같은 것이 미세하게 묻어나는 것이다.
그것을 보고 그가 어느 경지에 있고,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추측, 그 고민에 쐐기를 박는 글귀를 썼을 뿐. 사실 해석하고 받아들이기는 그의 나름이었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그런 점에서 보면 오스베르크 미엘레폰은 참 나를 닮은 양반이다.
물론, 스스로 마인드 마스터, 무협으로 치면 현경의 벽을 두드리고 있는 양반이니 놀랍긴 하지만.
“내가 저 경지에 들기 위해서 몇 번을 죽었더라…….”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죽은 횟수만 헤아린다.
[어림잡아 10만 단위의 죽음을 겪으셨습니다.]뒤로 갈수록 생존율이 올랐음에도 10만 단위.
“그, 10만이라는 숫자는 말입니다, 망할 사서님.”
[확인.]“한 번에 베어 죽인다고 해도 몇 날, 며칠, 몇 주, 몇 달을 베어야 되는 숫자입니다. 직접 겪으면 아주 X랄맞아요. 알아들어? 죽인 것도 아니고 내가 죽은 횟수라고.”
내 타박에 사서는 반응하지 않았다.
“자, 그럼 미엘레폰에서 언급만 해 주면 왕실의 귀족 놈들은 당분간 우리를 못 건드리겠지.”
명분이야 많았다. 카스카디아 백작령에 생겨난 괴물을 처리하면서 인연이 닿았다 정도.
정식 약혼이니 정략이니 하는 건 아니지만 세간에는 나를 마음에 들어 한 검성이 미엘레폰의 영애 중 하나의 짝으로 나를 찍었다 정도로만 소문이 퍼져도 충분했다.
그리고 오스베르크는 약속을 지켰는지 백작령에서도 미엘레폰과 나 사이에 약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소문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모종의 움직임을 취하려던 왕실의 고위 귀족들이 올 스톱 상태가 된 게 훤히 보일 정도로 방해가 없다.
아니, 오히려 멜리사에게 어서 익스퍼터의 공인 인증을 받으라는 왕실의 명령까지 내려왔다.
티벨의 횡포 때문에 휘청이던 사업체를 정리하고 부족한 물자를 거래해 오는 등, 며칠 정도의 시간이 더 흘렀다.
인력이 매우 부족하지만 멜리사가 그 반동을 최대한 작게 만들기 위해 규모를 축소해 둔 덕에 어느 정도는 해결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는 망할 티벨 카스카디아의 망령을 주기적으로 잡아 뜯어 놈을 붕괴시켰다.
그를 온전히 언데드화시켜 망령 기사로 만들면 제법 쓸 만한 패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그를 온전히 망령화시켜 줄 생각이 없었다.
우선적으로 확보하려는 사령 마법의 서클은 5서클 마스터 정도.
검사로 치면 익스퍼터 최상에 가깝다.
비록 사령 마법이 비주류의 마법이라곤 하지만 금지된 마법만 쓰지 않는다면 상관없는 정도였다.
고된 서류 작업을 끝내고 그동안 준비해 왔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주방을 찾았을 때였다.
“레온! 이 개X끼야!!!”
정신을 차린 멜리사가 극대노하며 찾아왔다.
“또 왜 저래. 뭐 잘못 먹었냐?”
“너, 내 얼굴에 낙서했지!”
“뭐…… 뭔 개소리지?”
내가 어색하게 시선을 피하자 그녀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하지만 이내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넘어간다고?
“절대 안 잊어. 두고 봐.”
아, 뒤끝 부리겠구나.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보다 정략혼 이야긴 대체 뭐야.”
“아…… 그거.”
나는 주변을 스윽 둘러본 뒤 사령 마나를 펼쳐 장막을 만들어 냈다.
“거짓말이야, 그거.”
“뭐?”
“어르신과 거래를 좀 했어. 어르신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대신 미엘레폰의 이름만 빌리자고. 정략혼이라고 했지만 대상도 없고, 실제로 오가는 이야기는 없을 거야.”
내 말에 그녀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응수했다.
“아니, 그걸 검성 어르신이 받아들이셨다고?”
“안 받아들이면 어쩔 건데. 이득은 저쪽이 더 큰데.”
내 대답에 멜리사가 기겁한 얼굴을 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어.”
“그것보다 널 습격한 괴물이나 사후의 이야기는 왜 안 물어. 가문의 기사들이 얼마나 다쳤는지도.”
“이미 보고 다 받았어. 솔직히 널 이해하는 건 포기하는 게 좋을 거 같거든.”
“네가 약해서 못 잡은 건 아니고?”
내 깐족거림에 그녀가 곁에 있던 접시를 그대로 던져 버렸다.
텁!!
물론, 아까운 식기를 깨 먹을 생각은 없기에 나는 접시를 받아 냈다.
지금 그런 자잘한 건 다 내버려 두고 중요한 도전을 하고 있다.
“이게 성공하면 우리 돈 벌 수 있어.”
나는 손을 멈추지 않은 채 멜리사에게 말을 쏘아붙였다.
“보고 들었겠지만 티벨은 뒈졌고, 왕실 귀족들은 미엘레폰 때문에 당분간 수작질을 못 부릴 거야. 사업체들은 정상 운영을 시작했고. 다만 손해가 너무 크고 인적으로 공백이 많아. 이건 네가 다 처리해야 할 일이다.”
내 설명에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서 할 거야.”
그녀는 자신의 불편한 몸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시선을 피했다.
“그런데 지금 뭐 하는 거야. 계란에 우유? 저건 또 뭐야?”
“연유야. 지금 뭐 만들고 있는 거 같냐.”
내 질문에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디저트? 디저트 사업이 돈이 되는 건 맞는데 경쟁이 꽤 셀 텐데. 돈이 되겠어?”
“원래 세상엔 맛있는 게 돈이 되는 법이야.”
이놈의 세상은 디저트는 다양하지만 아이스크림에 대해선 아직 발전할 여지가 많다.
라비린토스에 갇혀 있다 보니 입맛이 확 당기는 것들이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다행히 전생에 만들어 본 적이 있던 간단한 아이스크림 레시피 정도는 기억하고 있다.
바닐라 엑스트랙트 같은 게 없는 건 아쉽지만. 다행히 이놈의 세상엔 초코 맛을 내는 액상이 따로 존재한다.
“이걸 쑤셔 넣어 볼까.”
적절히 강불과 약불을 오가며 재료들을 쑤셔 박고 빠르게 저어 준 뒤 냉장 기능이 있는 마법 도구에 집어넣고 사령 마법으로 냉기를 더해 주었다.
멜리사는 하던 일도 내버려 둔 채 멍하니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적절하게 냉장이 된 것들을 꺼낸 뒤 또다시 준비한 재료들을 쑤셔 넣고 이리저리 저어 주자 걸쭉한 무언가가 만들어졌다.
“뭐야, 이게. 수프 같은 건가?”
“자, 다 됐다. 이제 대강 8시간 정도 얼리면 돼.”
“뭐? 다 만들어 놓고 얼린다고?”
“어, 차게 먹는 거니까.”
냉동 아티팩트에 처박아 놓은 뒤 내가 말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제법 괜찮은 게 나올 거 같다. 기대해 봐.”
“맛없기만 해 봐.”
말은 그리하지만 그녀도 제법 단것을 좋아하는지 기대가 된다는 표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