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웨폰 마스터 vs 청혈의 마도사
경(sir).
아스란과는 다른 고대의 혈통. 고대 요정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하늘빛 머리카락을 가진 오러유저, 그리드 반 셀던.
아스란과 더불어 세상에서 유‘이’하게 반이라는 가운데 이름을 쓰는 고귀한 핏줄의 초인이 처음으로 타이니에게 존칭을 사용했다.
타이니가 그것을 채 인식하기도 전.
쩌어어억.
우르르릉.
푸른 오러에 반으로 갈라진 골렘이 그대로 무너지자, 마도사가 분노 어린 고함을 토해 냈다.
“웨, 웨폰 마스터!! 연합의 검이 왜!!?”
버럭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도 마나를 끌어모으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그리드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여기 있는 이 친구, 그리고 옛 악우한테 약속한 게 있어서 말이지. 그런데 그 상대가 청혈의 마도사라니, 이거 예상도 못 했소이다.”
“이건 내정 간섭이다, 그리드 반 셀던!! 지금이라도 물러서면 이 일은 불문에 부치겠다!”
오러유저와 상대하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는지 청혈의 마도사, 루드비히 반 아스란이 명분을 들먹이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그리드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글쎄, 저기 계신 황제 폐하의 생각은 좀 다를 것 같습니다만?”
웨폰 마스터의 칼끝이 향한 곳, 그곳엔 몸이 속박된 채 입이 틀어막힌 황제가 그리드의 말을 긍정하듯 눈을 한껏 치켜뜨고 있었다.
“……황궁이 위험하여 내 마법으로 폐하를 보호하고 있었을 뿐이다!”
“날 바보로 아는 것이오? 청혈의 마도사라는 명성답지 않게 궁색한 변명이오.”
누가 들어도 코웃음을 칠 변명이었지만, 루드비히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웨폰 마스터가 이 광경을 본 이상 당장 황제를 죽일 수도 없다.
그것을 본 웨폰 마스터가 싸움을 포기하고 이 자리를 벗어나 증언을 하기만 해도, 자신은 차기 황제가 아니라 제국의 반역자가 되어 추살당할 테니까.
아무리 제국의 적이라고 한들 웨폰 마스터의 이름에는 그만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속셈이 드러나 버린 이상 황제를 살려 둘 수도 없으니, 그에게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바로 웨폰 마스터와 반 시체 상태의 괴물 애송이를 황제와 함께 죽여 버리는 것.
그러니 차라리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암살자가 웨폰 마스터였다고 하면 이목을 돌리기도 좋겠지.’
다행이라면, 지금 환경은 그에게 오러유저에게도 대적할 수 있을 만한 힘을 주고 있었다. 황궁 전체에 깔린 결계의 마력이, 황실 마탑주의 권한 아래 그의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다! 나는 저 암습자에게서 폐하를 지킨 것뿐이다!”
그는 타이니를 가리키며 헛소리를 하면서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슬금슬금 마나를 움직여 대마법의 시전을 준비했다.
“시간 끄실 때가 아, 아닙니다. 노, 놈은, 황궁의 마나를, 끌어다, 쓰는 것 같…….”
초주검이 된 애송이 놈이 그 속셈에 초를 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희열에 찬 목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놈들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폭발이 일어나며 화염이 솟아올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르르릉.
쩌저저저저저적.
폭발의 여파만으로도 중앙 궁이 통째로 흔들리고, 대전의 바닥이 지진이 난 듯이 갈라졌다.
그가 완벽히 깨달은 세 속성 번개, 불, 땅 중 두 개의 속성을 극대화한 대마법, 볼케이노(Volcano).
그 위력은 꽤 만족스러웠다.
‘아무리 오러유저라도 이걸 당해 내진 못하겠지.’
그렇게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시야에 무언가 하얀 게 들어오는가 싶더니, 이내 강렬한 충격이 전해졌다.
퍼어어억.
“꺼……윽!?”
복부에서 시작된 극렬한 통증에 루드비히는 자신도 모르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배를 부여잡은 손을 흥건하게 적시는 핏물이 아니더라도, 복부가 관통당했단 사실은 단번에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 시야를 자욱하게 뒤덮은 연기 너머에서 비웃음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청혈의 마도사, 불 속성을 위주로 한 폭염과 파괴 마법의 달인. 비기는 대마법 볼케이노……. 정보만 알면 대처는 쉽지요.”
어느새 활을 꺼내 든 웨폰 마스터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연기 속에서 걸어 나왔다.
“특히나 그 비기의 특성이 내 힘과 상극이라면, 그걸 쓴 직후의 빈틈을 노리는 게 상책이지요. 괜히 시간을 끈 게 아닙니다, 타이니 경.”
그가 있던 자리.
그리고 애송이 놈이 쓰러져 있는 곳의 바닥이 새하얗게 얼어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 루드비히의 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타이니 역시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불 속성 마법 분쇄……. 그새 이걸 터득했어?’
자신이 알려 주었던 미래 웨폰 마스터의 특기 중에 하나.
그걸 벌써 터득해 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는데, 그리드는 자신이 이룬 성취보다 다른 것이 더 이상한 모양이었다.
“타이니 경, 그대는 이걸…… 이자에 대해 몰랐던가요?”
“……아마도 저놈은 이때 죽은 것 같습니다. 원래대로라면요.”
“호오? 그럼 죽여도 되겠군요.”
루드비히로선 무슨 의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대화.
그것이 그의 심기를 자극했다.
“이, 이 연합의 개 주제에…….”
절대 이대로 끝낼 수는 없었다.
루드비히는 억지로 마나를 운용해 상처를 봉합하며, 다시금 황궁의 마력을 끌어모았다.
우우우웅.
‘그래, 이 힘.’
이 황궁 내에서라면.
“……나는 무적이다.”
그는 스스로 최면을 걸며 다시금 투지를 북돋웠다.
놈들을 없애지 못하면 내가 죽는다.
그 각오가 고통마저 잊게 해 주는 듯했지만.
“품위 없는 말투하고는……. 하긴 그러니 이따위 짓을 벌였겠지요.”
아스란의 적통 후계자라 자부하는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죽여 주마!!”
그그그그그극.
파지지지지직.
붉은 불꽃과 샛노란 번개, 뜯어낸 대전의 바닥이 뭉쳐진 덩어리를 들어 올리는 루드비히.
타이니와 싸울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마나가 유동하며, 그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미 중상을 입은 몸으로 견뎌 내기에는 누가 봐도 무리한 마나 운용.
청혈의 마도사가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이 겉으로도 여실히 보였지만, 그리드는 오히려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달려들었다.
꽈아아아아앙.
쾅!
번쩍.
파지지지직.
두 사람의 격돌은 연달아 퍼부어지는 루드비히의 공격을 웨폰 마스터가 피하거나 파훼하며 접근하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이제 완전한 경계 태세를 굳힌 마도사의 방어막을 웨폰 마스터의 활이 뚫지 못한 탓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루드비히는 일개 마도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엄청난 마력을 휘두르고 있었다.
‘말이 안 되지.’
죽기 직전의 몸을 염체가 조금씩 치유하는 동안 짜릿한 고통이 전신을 울렸다.
그러나 그 고통은 오히려 타이니의 정신을 고양시켰고, 이내 그의 초월적인 감각이 루드비히의 마력 원천을 낱낱이 분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웨폰 마스터가 자신의 초월무구를 가지고 있지 않다지만, 마도사가 지근거리에서 오러유저와 단독 전투를 벌이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든 일이었다.
청혈의 마도사가 실은 대마도사였던 게 아닌 이상 말이다.
‘그렇다면 역시…….’
어느 순간, 타이니의 눈이 번뜩였다.
짐작이 맞았다.
이 결계의 근원, 황궁 곳곳에 넘쳐흐르는 마나의 힘이 저 마도사에게는 오히려 힘을 보태 주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을 끊어 버리면…….’
이미 중상을 입은 루드비히는 더는 싸움을 이어 가지 못할 것이다.
결심한 순간, 타이니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무리할 대로 무리한 전신의 관절이 삐걱거리고, 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도 한순간에 아찔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영혼의 힘은 그런 육체의 고통에도 아랑곳없이 그의 몸을 착실하게 움직여 가기 시작했다.
저벅. 저벅.
콰아아아아앙!
쩌어어억.
쾅.
번쩍.
오러유저와 마도사가 부딪치며 만들어 내는 굉음에 묻혀 들리지도 않는 걸음 소리.
염체의 회복력으로 조금씩이나마 기력을 찾고 있는 몸이 다시 스탬프를 들었다.
다소 느릿하던 걸음이 점차 빨라지더니, 이내 그의 몸이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 전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흥!”
경계를 완전히 놓고 있지 않았던 듯, 루드비히의 왼손이 그를 가리킴과 동시에 강렬한 전격이 연이어 쏟아졌다.
“이젠 좀 죽어라! 질긴 놈!!”
우르릉.
콰콰콰콰쾅.
앞선 공격에 밀려난 웨폰 마스터가 다시 돌진해 오기 직전까지의 짧은 순간, 루드비히는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타이니를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다.
‘큭!’
그에 타이니가 재빨리 스탬프를 들어 올려 공격을 막은 보람도 없이 형편없이 뒤로 나가떨어지고.
“이놈!!”
“어림없다!”
루드비히가 분노한 웨폰 마스터의 오러를 속성이 중첩된 방어막으로 간신히 가로막은 그때.
그 충돌의 틈 사이로, 어느새 루드비히의 발치에 다가온 은빛 강아지가 바람처럼 뛰어올랐다.
그리고.
콰직.
“끄아악!!”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놈의 왼손 약지를 그대로 잘라 냈다.
그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금룡의 문양이 정교하게 새겨진 반지와 함께.
“컹!”
월랑은 반지가 끼워진 손가락을 쓰러진 타이니를 향해 물어 던졌고 그 즉시 역소환되었다.
폭발을 저지하기 위해 대전을 종횡무진하며 무리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은 지금, 그것이 월랑의 한계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콰아아아앙!
일순간 루드비히의 방어막이 급격히 옅어지며, 그대로 푸른 오러의 관통을 허용한 것이다.
“아아악!”
완벽하게 제어된 두 속성 이상의 중첩된 권능과 허용량 이상의 마력에 가로막혔던 파괴의 권능, 웨폰 마스터의 오러가 마도사의 오른팔을 단숨에 잘라 냈다.
쿨럭.
“이, 이럴 수는 없…….”
“있다!”
스각.
“끄…….”
청혈의 마도사, 루드비히 반 아스란은 제대로 된 유언조차 남기지 못한 채 그대로 그리드의 검에 목이 잘렸다.
그 직후.
“읍! 읍! 읍!”
마력의 주인이 죽어도 이미 완성된 속박 마법은 사라지지 않는 건지 아직도 석상처럼 굳어 있는 황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신의 존재감을 피력했지만.
“타이니 경!”
그리드는 그런 황제를 외면한 채 그대로 타이니에게 뛰어갔다.
안 그래도 빈사 상태로 보이던 타이니가 이제는 정말 죽은 것처럼 미동도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세리안의 숙소에서 무작정 무구들만 들고 뛰어나온 그에게 타이니를 회복시킬 만한 아티팩트나 포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그때.
“끄으응.”
새까맣게 그을린 몸뚱어리가 작게 꿈틀거리더니, 자신의 앞에 떨어진 반지를 향해 힘겹게 손을 뻗었다.
너무나도 느린 동작, 덜덜 떨리는 손가락.
그 움직임이 너무 처절해 보여 그리드가 먼저 움직여 그 반지를 집어 들었다.
“이, 이 반지? 이게 필요한가?”
그 물음에 타이니는 그나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검은 눈동자와 충혈된 흰자위를 살벌하게 번뜩였다.
– 잔말 말고 빨리 내놔.
그리 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에, 그리드는 서둘러 타이니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 주었다.
그와 동시에.
우우우우웅.
어느새 눈을 감은 타이니를 중심으로 선명한 푸른 마나의 폭풍이 일기 시작했다.
“뭐, 뭐야!?”
그리드가 당황한 것도 잠시.
우드드드득.
관절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타이니의 피부를 뒤덮고 있던 검은 재가 떨어져 나가고, 그 사이로 새살이 돋는 모습이 보였다.
“……허, 이게 된다고?”
그리드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지만, 타이니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애초에 루드비히의 반지를 통해 황궁의 마나를 이용한다는 발상을 실행으로 옮기는 것 자체가 도박이었으니까.
우우우우웅.
반지는 권한이 없는 사용자의 마나를 끊임없이 밀어 내려 했지만.
‘닥쳐!!’
빈사 상태에서 한층 강해진 영혼의 힘이, 반지에 깃든 인증 마법의 틈을 헤집고 그를 정당한 주인으로 각인시켰다.
동시에 이전보다 한층 강한 마나가 타이니의 몸으로 유입되었다.
그것은 죽음에 한 발 걸친 경험 덕에 알게 된 영혼의 힘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하지만 타이니는 그 가치를 생각할 틈도 없이 죽어 가는 몸을 살리는 데에 정신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드드득.
어긋난 뼈를 맞추고.
쩌저저적.
화상을 입은 피부를 재생시키고.
욱씬욱씬.
뇌를 쑤시는 듯한 고통을 참아 가며 뒤틀린 장기를 제자리로 되돌렸다.
‘다, 다행이다.’
황실 마탑주를 상징하는 반지가 착용만으로도 그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라는 게.
그리고 그 반지의 효능이 황궁에 널린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라는 게 실로 다행이었다.
물론 마나는 무상의 가능성을 가진 에너지였지만, 그것만으로 이런 기적을 일으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타이니의 이 급속 회생의 배경에는 두 가지 요인이 더 있었다.
바로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육체의 힘, 그리고 몸에 축적된 영양분을 쪼개서 육체를 온전한 상태로 복구하고 있는 염체 덕분이었다.
그것은 염체가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일 때의 몸 상태를 기억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그 덕분에 체중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데다가 그만큼 약해지기는 했지만, 충분히 감내할 만한 손실이었다.
‘돌아가면 다시 또 열심히 먹어야겠군.’
타이니가 그렇게 결심하는 순간.
우드드드득.
우우웅.
마지막 파열음을 끝으로 염체가 회생이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으어, 진짜 뒈질 뻔했네.”
감았던 눈을 번쩍 뜬 타이니의 첫 마디.
그 앞에는 웨폰 마스터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