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21
121화. 바타르
‘모르스라…….’
또 꺼림칙하게 따라붙는 그 이름에 대한 찜찜함은 그렇다 치고.
“역시 알고 있었군요.”
“역시? 아…… 그게 티가 났던가?”
“충분히.”
그 대답에 바타르가 순간 움찔하더니, 이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인간들의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이름을 떨친 이가 우리 부족의 땅을 지난다는데, 어찌 모를 수가 있을까? 오크 전사로서, 자네에게 호기심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 않겠나?”
바타르의 반짝이는 눈빛을 본 타이니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먼저 지나온 토모도족은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말이야.’
공용어가 유독 유창한 점도 그렇고, 눈앞의 족장이 오크치고는 굉장히 특이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그러면서도 확실하게 속셈을 숨기지 못하는 점은 마냥 오크다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 관심에 부응해 드려야죠.”
우드드득.
거의 돼지 한 마리를 먹어 치운 몸이 완전한 회복을 알려 왔다.
그러자 붉은 멧돼지족의 족장이자 최강의 전사, 바타르 역시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바타르의 거처인 큰 천막에서 나오자,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 오크 전사들이 천막 앞 공간에 둘러서서 다른 오크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다만 그럼에도.
“цркцлвыдфвд врдйтвдыкрл кгачтаьа пледыул!!(족장님이 외부인과 결투를 하신다!!)”
누군가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자마자 자밍우드 전체가 떠들썩해지며 오크들이 벌떼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타르와 타이니가 적당히 거리를 벌린 채 자리를 잡는 순간에는 이미 두 사람을 에워싼 오크 전사들의 벽 너머로 구경꾼들이 빽빽이 모여 있었다.
“Хэтэрхий жижиг?”
“цркцлвыдфвд врщ цоаоы вдыклыкрл?”
그 소란스러운 분위기에 바타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타이니를 바라보았다.
“이거 미안하군. 이런 시선은 좀 부담스러우려나?”
“아닙니다. 뭐 족장님만 괜찮으시다면 저야…….”
그 말에 바타르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자신감이 넘치는군.”
이게 왜 자신감이지?
타이니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대충 봐도 경지의 차이가 크니, 나는 연습용 무기를 쓰겠네. 자네는 원래 무기를 써도 좋네.”
이어진 말이 그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챌린저급 오크와 블레이더급 인간의 대결이니 그렇게 ‘착각’하는 게 이해는 가지만.
“경지가 곧 승부를 결정짓는 건 아닐 텐데요?”
“호, 그런 말은 우리 오크나 혹은 수인족 친구들이 인간한테 할 법한 말인데? 그만큼 자신 있다는 소리인가?”
“손님이 주인을 팰 수는 없으니까요.”
“뭐……? 흐음, 자신감이 넘치는 것은 좋군. 하지만 용기와 만용은 다르다네, 젊은 친구. 아직 그것을 가르쳐 준 이가 없었던가?”
만난 이래 처음으로 바타르의 안색이 확연히 굳어지는 게 보였다.
그러나 타이니는 태연했다.
“그것은 직접 겪어보시고 판단하시지요.”
손가락을 탁 튕기는 순간 그의 어깨에서 영갑, 아니무스가 벗겨져 나가며 근육질의 상체가 드러났다.
오크들이야 인간의 빈약한(?) 몸 따위에는 관심이 없을 테지만, 가렌의 앞으로 떨어진 아니무스가 스스로 허공에 떠서 노을빛 마나를 뿜어낸 순간에는 시끄럽던 주변이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갑작스레 존재감을 드러낸 아니무스가 범상치 않은 보물임을 지켜보는 모두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초월무구?”
바타르 역시 신음하듯 한마디를 뱉어 내는데.
“그렇습니다. 이것도 없어야 공정할 듯해서 말입니다. 좀 많이 대단한 물건이거든요.”
아니무스가 주던 막대한 버프 효과가 사라지자 일순간 탈력감이 들었지만, 타이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 순간.
“воб, во?!”
근처에 서 있던 한 오크 전사의 놀란 목소리와 함께, 그의 허리춤에서 새하얀 뼈 몽둥이가 느닷없이 타이니를 향해 날아올랐다.
“실례지만 잠시 무기 좀 빌리겠습니다. 통역해 주실 분?”
“통역, 필요 없다. 좀 놀라서 그렇다, 써도 된다.”
그러자 타이니는 그 오크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뒤 뼈 몽둥이를 허공에 휘둘러 보았다.
파아아아아앙.
‘괜찮군.’
무슨 동물의 뼈를 어떻게 가공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둔기로서 균형도 잘 맞고 튼튼해 보였다.
하지만 스탬프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조잡한 무기.
아니무스와 스탬프를 쓰지 않는 것만으로도 타이니의 전투력은 일순간 1/3 이하로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월랑까지 봉인하면 1/5도 안 될 거 같은데.’
– 컹!
‘이번엔 참아. 미안.’
그럼에도 타이니는 자신감 어린 눈으로 바타르를 응시할 뿐이었다.
그에 아니무스를 홀린 듯 바라보던 바타르가 새삼스럽다는 눈으로 타이니를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방금 그 힘, 마나도 아닌 것 같은데?”
‘정답.’
타이니는 그 말에 싱긋 웃음으로 답할 뿐이었다.
“혹시나 족장께서 방심하실까 보여 드린 퍼포먼스였습니다.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에 바타르의 얼굴에 처음으로 살벌한 미소가 걸렸다.
“……그럴 리가.”
타고난 인상 탓에 그야말로 흉악하기 그지없어 보였지만, 타이니는 그것이 투쟁심을 품은 오크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만족스레 미소를 지었다.
‘과연 지금의 순수한 내 힘은 어디까지 통할까?’
상대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은 바타르만은 아니었으니까.
쿵.
바타르 역시 자신의 전용 무장을 전부 벗어 둔 채 다시 나섰다.
초원 오크족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세력인 붉은 멧돼지족의 족장이 가진 장비들은 초월무구는 아니더라도 모두 범상치 않은 아티팩트였으니. 맨몸이 된 바타르 역시 그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전용 무구 대신 육중해 보이는 뼈 도끼 하나만을 든 바타르는 어쩐지 오히려 흥이 나 보였다.
“오랜만이군, 흐.”
바타르가 본격적으로 투지를 보이자.
“втфцдквг!”
“коадаьа йоаадалкр!”
오크 전사들이 바깥쪽으로 구경꾼들을 밀어 내며 더욱 넓은 공간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렇게 확보된 공간 안에서 바타르는 천천히 도끼를 들어 올려 타이니를 겨누었다.
2m가 훌쩍 넘는 거대한 덩치, 드러난 상체 근육이 꿈틀거리는 순간.
녹색 피부 아래 감춰져 있던 붉은빛 문신이 떠오르며 그의 전신에 커다란 멧돼지의 형상이 나타났다.
이내 그의 주위로 붉은 마나가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며 흐릿한 멧돼지의 모습에 뚜렷한 입체감을 더하자, 그것이 가뜩이나 거대한 바타르의 몸집을 몇 배는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그 일련의 과정은 단순히 착시를 일으키는 재주가 아니었다.
‘부족 문신.’
오크 전사들이 주로 배운다는 독특한 마력회로 공법이자 그들에 대해 무지한 인간들은 문신 마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예.
그것은 가끔 미숙한 전사들이 부족의 상징물에 씌어 광전사처럼 날뛰기도 하기 때문에 붙은 오명이었지만, 경지에 이른 이들에게는 어지간해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새빨갛게 변한 눈동자로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바타르처럼 말이다.
“지금이라도 초월무구를 쓰는 게 어떤가, 타이니 경.”
“이걸로도 충분합니다, 족장.”
“그래도 날 실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오게.”
교차하는 투기 어린 미소.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바타르가 도끼를 까닥이는 순간 타이니의 몸이 번개처럼 그를 향해 쇄도했고, 바타르 역시 자신보다 훨씬 작은 타이니를 향해 서슴없이 도끼를 휘둘렀다.
‘자잘한 기술은 필요 없어!’
오크족의 부족 문신 또한 마력회로의 한 갈래.
부족마다 특징적인 기술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부족 문신이 추구하는 공통점도 있었다.
바로 강건함.
오크 전사가 보다 약한 적과 싸울 때 특별한 갑옷 없이도 압도적인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건, 공교롭게도 지금의 타이니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였다.
‘그러니 힘으로!’
타이니가 전력을 다해 후려친 뼈 몽둥이가 마주 휘둘러져 오는 도끼와 그대로 부딪쳤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경지에 이른 전사들의 싸움 같지 않은 야성의 충돌.
두 사람이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주르륵 밀려나는 가운데, 충돌의 여파로 생긴 후폭풍이 지켜보던 모든 오크들의 몸을 뒤흔들었다.
“фдсды……!!”
비슷하게 밀려 나간 것이 수치스러웠을까.
자신도 모르게 이를 뿌드득 갈며 몸을 멈춰 세운 바타르가 이내 표정이 일변하더니 금이 간 도끼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 그 순간.
“꾸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정말로 거대한 멧돼지의 괴성 같은 고함과 함께 붉은 멧돼지의 형상이 더욱 또렷해지며, 그가 타이니를 향해 번개처럼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 전면에서는 밀려난 직후 반 박자 늦게 균형을 찾은 타이니가 침착하게 뼈 몽둥이를 세우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강하다.’
짜릿한 위압감에 몸이 떨려 오는데, 입가에선 자꾸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릭과 같은 과야.’
처음 보는 오크에게서 물씬 느껴지는 옛 동료의 냄새.
– 화끈하게 한 방에 가야지. 내가 쪼개지거나, 적이 쪼개지거나. 그게 전사의 길 아닌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그 역시 피하지 않고 전면에서 돌진해 오는 바타르를 향해 그대로 몸을 내던졌다.
굳이 강력한 육체를 가진 두 수 위의 오크족에게 아티팩트도 없이 덤빈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다.
파아악.
가뜩이나 체형보다 16배는 무거운 몸이, 그가 한 걸음 내딛는 순간에는 거기서 16배 더 무겁게 압축되었다.
그리고 발끝에 힘을 주고 튕기자, 다시 1/16로 가벼워진 몸이 응축된 근육의 힘으로 세차게 쏘아져 나갔다.
그렇게 짧은 거리에서 반복된 속성 변환은 점차 몸을 가속시키며, 순간적으로 엄청난 동력을 만들어 냈다.
“으아아압!”
그와 동시에 염체가 한순간에 모든 마나를 전신으로 공급하여 일순간 타이니의 몸과 무기에 최대한의 출력을 부여했다.
보다 강력해진 영혼의 힘이 빚어낸 결과.
황궁 사태 때와 같은 경지임에도, 한순간에 낼 수 있는 출력이 훨씬 강력해진 것이다.
‘좋아!!’
그 끓어오르는 고양감 속에서 상대와 가까워지는 순간.
거대한 붉은 멧돼지의 형상이 다가옴에 따라 주변 공간 전체가 찌릿찌릿하게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바타르가 뿜어낸 공간 지배력이 그의 몸을 묶어 오는 것.
하지만 이미 극한까지 폭발시킨 타이니의 힘은 그 기운을 가볍게 찢어발겼다.
‘짜릿하군. 멋져!’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지는 순간, 그는 똑같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바타르의 얼굴을 마주했다.
– 지금!
누구의 생각일까. 헷갈리는 공감대 속에서, 서로의 무기가 동시에 휘둘러졌다.
타이니식 전투 살법, 벼락 떨구기.
바타르식 붉은 멧돼지 사냥법, 어금니 박치기.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름다운 붉은빛과 노을빛이 교차하며, 주변을 온통 뒤집어엎을 듯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이윽고.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그 후폭풍이 사방으로 퍼지며 평범한 인간은 거뜬히 날려 버릴 만한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젠장! 뭐가 이렇게까지……!?”
“вдкз фтеьы……?!”
“Крлк цлйвл!”
주변의 오크들이 서로의 몸을 붙잡아 가며 잠시 비틀거리는 동안, 그 중심에 선 두 사람은 박살이 난 무기의 손잡이만을 쥔 채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 있을 만했군.”
입가에 흥건한 핏물을 쓱 닦아 내며 바타르가 미소 짓자.
“당신 역시…….”
쿨럭거리며 시커먼 핏물을 토해 낸 타이니 역시 그를 보며 마주 웃었다.
“하하하하, 정말 한 마디도 안 지는구먼. 뭐, 좋지.”
바타르는 다시금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내밀었다.
“좋다. 소문은 충분히 확인했다. 그러니 이제 진실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어.”
“……??”
“따라오게, 친구. 아마 자네도 알아야 할 일일 테니까.”
“무슨……?”
“이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아…… 뭐, 그러시죠.”
의아한 표정의 타이니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그 뒤를 따르자.
“같이, 같이 가세, 타이니 경!”
가렌이 스탬프와 아니무스를 힘겹게 집어 들고는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йрлЕво?”
“цовфла фоецгЕво.”
말 그대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남겨진 오크들은 방금 목격한 광경을 되새기며 저마다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 한 오크만이 자루만 남은 뼈 몽둥이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ыщ фткд…….(내 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