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31
131화. 몬스터 웨이브
– 타이니 경, 나는!?
“혼자 가는 게 빠릅니다!!”
저 아래, 어렴풋이 들려오는 가렌의 목소리를 뿌리치고 그대로 내달리는 것도 잠시.
엘븐하임의 담장을 넘어간 후에는 바로 지상에 착지할 수밖에 없었다.
마역과 접한 곳까지 말로 전력 질주를 해도 일주일은 걸리니, 계속해서 공간 밟기로 허공을 내달렸다간 마나 소모가 너무 심할 테니까.
물론 그렇게 되면.
“크르르르르.”
지금처럼, 착지하자마자 보름달의 마성에 취한 듯 날뛰는 마수들이 덤벼들 수도 있겠지만.
꽝!!!!
“꿱!”
차라리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힘 낭비가 더 적을 것이다.
“가자!”
“아우우우우우우!”
뿔이 돋은 머리가 깔끔하게 박살 난 거대 멧돼지의 사체를 뒤로하고, 은빛 늑대와 기수는 보름달이 비추는 대수림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최고조에 달한 월랑의 스피드는 무시무시했다.
초월무구 아니무스의 힘으로 강화된 월랑은 체고 2.5m, 체장 5m에 육박하는 거대 야수가 되었고, 그 거대한 체구에 타이니의 특성을 받아들여 꽉꽉 응축된 근력은 생전의 수준을 뛰어넘은 지 오래였다.
거기다 중력 속성을 동원하면 십수 배는 가벼워진 몸에 근력은 그대로니.
파아아아아앙.
콰콰콰콰콰콰.
은빛의 거체가 순식간에 지나치고 나면, 대수림의 거대 수목들로 단단하게 다져진 땅에서 한 박자 늦게 흙먼지가 솟구치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모래 폭풍이 일어났다.
그야말로 폭풍처럼 질주한다는 표현이 꼭 들어맞는 속도로 숲속을 내달리는 월랑.
뒤늦게 그들을 인식하고 반응하는 몬스터도 있었지만, 그야말로 순식간에 지나쳐 버릴 정도였다.
거기다.
“아우우우우우우!”
달리는 와중에 터져 나온 하울링은, 그 안에 담긴 은은한 기세만으로도 어쭙잖은 힘으로 광기에 휩싸여 덤벼들려던 약한 마수나 몬스터를 얼어붙게 했다.
그야말로 방해할 자가 없는 질주.
“좋아! 계속 달려!”
하지만 그렇게 7일이 걸릴 거리를 하루 만에 주파하여 목표 지점에 거의 다다랐을 즈음부터는 그 무적의 질주도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시야에서 점점 줄어들어 가는 대수림의 수목들 대신, 무시할 수 없는 수의 괴물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으니까.
얼핏 보이는 것만 해도.
‘스켈레톤, 트롤, 괴수 전갈, 스펙터, 고블린……. 말도 안 되는 잡탕이로군.’
몬스터들이 등급이나 종류를 가리지 않고 대수림 안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저들끼리의 천적 관계도 무시해 가며 몰려드는 괴물의 대군.
그나마도.
– 콰아아아앙!
– 캬아아악!
저 멀리 보이는 검은 사막, 마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물 중 거대하고 강력해 보이는 놈들은 대수림 안으로 기어들어 오지 못하고 있었다.
어두운 하늘 탓에 당장 눈에 명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엘븐나이트들이 선전하고 있다는 증거.
그럼에도 이만한 숫자라는 것은, 제이의 말대로 정말 이례적인 수준의 몬스터 웨이브라는 뜻이었다.
‘어떻게……?’
문득 저 몬스터들을 토해 냈을 마역, 아니 대미궁의 전설이 뇌리를 스쳤지만, 지금은 상념에 잠겨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을 무시하고 지나치는 것보다는.
‘저쯤에 에스티나가 있겠지.’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손 거들어야지.”
“컹!”
척.
타이니는 이제 늘 봉을 결합한 형태로 들고 있던 스탬프를 한 손에 늘어트렸다.
“가자!”
“컹!”
스스슥.
타이니가 스탬프를 휘두르기 좋게 체고 2m, 체장 4m 크기로 덩치를 줄인 월랑이 쏟아져 오는 몬스터의 대군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선두의 괴물들이 터져 나가자, 본능에 따라 대수림 안으로 진입하던 몬스터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 크에에엑!
– 캬악!
웬 늑대를 탄 인간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앞서 나가던 몬스터들을 아예 피떡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영혼을 사로잡은 본능은 계속해서 전진을 명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한없이 더럽고 기분 나쁘게만 보이는 에너지, ‘마나’를 가진 생명체들을 모두 파괴하라고 속삭이는 목소리.
그에 다시금 눈이 새빨갛게 물든 몬스터들이 날뛰기 시작했고, 그에 맞서는 피의 폭풍 역시 거침없이 점점 더 안쪽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 끼에에에에!
영체류 몬스터에 속하는 스펙터(Spector)가 노을빛 마나에 찢겨 나가는 순간, 마물의 피를 뒤집어쓴 타이니가 악귀처럼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
본래 고스트(Ghost)류의 몬스터는 성직자들의 성법 혹은 마법사들의 화염이나 뇌전 같은 빛이 담긴 마법으로만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전사의 경우 그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게 아니라면, 파괴의 권능 오러(Aura) 외에는 답이 없다는 사실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눈앞의 스펙터는 노을빛 마나를 담은 중력 속성의 망치질 한 번에 허무하게 터져 나갔다.
그저 쫓아내려 휘두른 망치질 한 방에 말이다.
‘영혼의 힘이 이런 역할도 하는군. 역시…….’
새삼 영혼의 갑옷, 아니무스를 선택한 것이 최선이었다는 확신이 들면서 절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전부 뒈져라!”
꽈아아아앙!
특별한 기술을 쓸 필요도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전진하며 걸리는 모든 것을 부술 뿐.
꽝!
콰아앙앙!
“컹!”
마기를 혐오하는 정령인 월랑 역시 주인보다 더한 살기와 함께 이빨과 앞발로 자잘한 몬스터들을 으스러트리며 돌진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그야말로 초토화된 몬스터의 선혈만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타이니는, 그렇게 쏟아지는 몬스터의 혈우를 고스란히 맞으며 광소를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그래, 이래야지.
회귀한 이래, 등급 이상의 강적들만 상대하느라 이리저리 치이며 반죽음 상태를 반복했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리는 것 같았다.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 내 버리는 힘의 폭군.
악인 분쇄기 혹은 마수 도살자로도 불렸던 ‘괴력의 기사’의 영혼이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살육의 감각에 전율하며 기쁨을 표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으로, 똑같은 머리가 두 개 달린 괴물이 튀어나왔다.
3m가 넘는 덩치, 인간을 닮았지만 훨씬 험상궂은 얼굴, 얼룩덜룩한 녹색 피부가 불쾌하게 번들거리는 이족 보행 괴물.
‘트윈 헤드 트롤.’
생각해 보면, 한때는 저것과 비슷한 놈에게 고전한 적도 있었다.
고작 4단계로 분류되는 괴물한테.
씨익.
“잘 걸렸다.”
그 말과 함께 스탬프에 깃든 노을빛 마나가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바닥을 힘껏 내려치는 거대한 망치.
콰아아아앙!
눈앞의 하급 몬스터 세 마리를 박살 내며 뻗어 나간 마나의 파동이 트윈 헤드 트롤을 강타했다.
“캬오오오오!”
붉어진 두 쌍의 눈이 그를 노려보는데, 은빛 늑대와 기수는 어느새 놈의 코앞에서 워해머를 휘두르고 있었다.
“캭!”
“우라!”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두 개의 머리.
두 쌍의 눈동자가 더욱 붉게 타오르고, 그와 동시에 두 개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내 놈이 오른손에 쥐고 있던 작은 나무만 한 몽둥이를 건방진 인간을 향해 휘둘렀다.
방어는 생각지도 않는 듯 거침없는 모습.
그런데 놈에게는 생소하게도, 그것은 놈을 마주한 인간 역시 마찬가지였다.
두 쌍의 붉은 눈에 짧은 의문이 스치는 순간.
꽈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놈의 상반신이 그대로 터져 나갔다.
재생력이 아무리 뛰어나 봤자 소용없게 만드는 강격.
게다가.
“킁!”
트윈 헤드 트롤의 몽둥이질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낸 인간은 콧김만 뿜어냈고.
“크릉.”
그 아래 늑대 역시 지면에 움푹 박힌 발을 뽑아내 쓱 털어 냈을 뿐,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크륵.”
“켁?”
“끄으.”
그 믿지 못할 광경에, 주변 몬스터 중 일부는 영혼을 휘어잡은 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나 그 상황을 만들어 낸 인간은 그런 몬스터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과 정령을 감싸는 노을빛 마나의 갑옷을 슬그머니 갈무리하고 있었다.
‘역시.’
초월무구 아니무스 덕분에 영혼의 힘이 강해지니, 철신갑 역시 최대 출력으로 몇 번이고 전개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지금의 그는 전생의 비슷한 경지일 때에 비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무력을 손에 넣은 것이다.
“확인 끝.”
그리고 이런 영혼의 힘이라면.
‘파멸 속성도 더욱 강력해졌겠지만…….’
컨트롤할 수 없는 힘을 무작정 휘두르는 것은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대신.
“이런 것도 가능하지.”
타이니의 검은 눈이 주변을 둘러싼 몬스터들을 향하자, 사방을 가득 메우는 서늘한 살기에 몬스터들이 주춤했다.
그 순간.
늑대의 기수는 다시 한번 몬스터들의 가운데로 파고들었다.
여지없이 휘둘러지는 워해머.
콰아앙!
“끼에에에!”
콰아앙!
“끄륵!”
콰아앙!
“캬아아!”
일정한 박자로 휘두르는 족족 박살 나는 몬스터들의 시체 위로, 노을빛 마나가 여운처럼 떠돌면서 주변 공기를 휘감고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자, 이제……!”
뒤집어쓴 핏물보다 더욱 섬뜩한 웃음을 머금은 타이니가 노을빛 마나가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스탬프를 몬스터가 아닌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터어어어어엉!
요동치던 마나를 하나로 묶는 마지막 조각.
타이니식 전투 살법 2식. 폭풍 휘두르기, 풀 차징.
“싹 뒈져라!”
살기 어린 고함과 함께 대수림의 변방에 붉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키엑!?”
“크롸롸!?”
“캬아아악!?”
주변의 몬스터들이 빨려 들어간 즉시 갈기갈기 찢겨 버리는 흉포한 바람.
사방에 널려 있는 사체들까지 빨아들인 노을빛 회오리는, 이내 선명한 진홍빛 토네이도가 되어 검은 사막을 향해 쏘아졌다.
고오오오오오오오.
콰콰콰콰콰콰콰콰.
– 끼에에에엑
– 캬륵!
– 끄아악!
직경 50m의 공간을 장악하고 그대로 마역까지 밀어붙이는 피의 폭풍이 타이니 앞의 공간 수백 미터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
그 결과.
“……쓸 만하군.”
일순간 안색이 창백해진 타이니가 잠시 숨을 고르곤, 어깨 갑옷에서부터 전신으로 노을빛을 피워 올리며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금 시작되는 질주.
“끼, 끼엑?”
초토화된 전방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몬스터들은 그 누구도 감히 그를 향해 흉성을 드러낼 수 없었다.
영혼에 새겨진 명령마저 능가하는 깊은 공포가, 이성을 잃은 괴물들의 몸조차 잠시 얼어붙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타이니는 그런 몬스터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안 덤빌 거면 그대로 죽어라.”
콰아아앙!
살벌한 미소와 함께 무시무시한 망치질이 다시금 피 보라를 일으켰다.
뒤이어 노을빛 기운이 그 피 보라 사이로 번져 나가고.
“크하하하! 또 간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또다시 일어난 붉은 폭풍이 그 전방을 초토화시키는 일이 반복되었다.
한순간에 쓸려나가는 몬스터의 무리.
그것이 딱 3번 반복된 이후로는 더 이상 타이니의 앞길을 가로막는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았다.
“끼에에에!”
“캬오오오!”
공포감에 몸이 얼어붙다 못해 완전히 공황 상태에 빠져 도망치는 몬스터들.
그 지경이 되어서야 타이니는 핏물이 흥건한 얼굴을 슥 닦아 내었다.
“흐…….”
우우웅.
영갑 아니무스가 영혼을 고양시키며, 몇 번이고 바닥까지 긁어 낸 염체의 마나를 다시금 급속도로 충전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보다 강력해진 영혼의 힘과 염체의 마나 회복력이 합쳐진 덕에 가능한 이적.
“여기는 대충 정리가 된 것 같고.”
초토화된 사방에서 도망치는 일부 몬스터들을 보며 중얼거리다 보니, 등 뒤에서 조금씩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것이 느껴졌다.
아침이 다가오면 몬스터들의 공세는 주춤해지기 마련이지만, 여전히 반대쪽 검은 사막에서 쏟아지는 놈들의 수는 많고도 많았다.
햇빛이 들기 시작한 검은 사막, 마역의 표면이 알록달록하게 보일 정도니, 적게 잡아도 만 단위는 훌쩍 넘어갈 듯했다.
하지만 걱정은 없었다.
‘곧 물러났다가 밤에 다시 오겠지.’
그것이 그가 알고 있는 몬스터 웨이브의 특징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순간.
– ♬♪♬♪!!!!
어디선가 노랫소리 같은 엘프어가 유난히 크게 들려오는가 싶더니.
검은 사막과 맞닿은 곳에서 거대한 독수리의 환영이 떠올랐다.
– 쓰아아아아아아아!
전장을 떨어 울리는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녹색 ‘오러(Aura)’를 휘감은 거대한 독수리의 환영이 6개로 늘어나더니, 지면을 긁으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속수무책으로 터져 나가는 몬스터 대군의 모습이 지켜보는 모든 이의 눈에 선명히 새겨졌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타이니의 입가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