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늑대와 함께 밥을
– 정령술 수련은 꼭 마나가 없어도 되거든.
타이니는 에스티나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일종의 정신적 수련 같은 것을 떠올렸었다.
가령 정령과의 소통을 강화하거나 활용하는 방안 같은.
그런데 긴 밤이 지나고 다시 낮이 왔을 때, 피곤한 표정으로 나타난 에스티나는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것을 제안했다.
“……뭐?”
“레인저 울프 가족들 사이에서 좀 살아 보라고. 네 정령, 늑대잖아.”
“그게 무슨 개, 아니. 큽, 아. 혀, 씁……. 아, 아무튼 무슨 소리야?”
너무 황당한 소리에 혀가 꼬여서 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인간관계를 예로 들어 보자, 사람들끼리 말이 잘 통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뭘까? 소통의 수단 말이야.”
“그, 글쎄. 음, 소통의 수단이라면…… 해머?”
농담이랍시고 던져 보았는데, 쓰레기를 보는 듯한 시선이 돌아왔다.
“하…….”
“아니, 그냥 농…….”
“……하긴, 그러고 보니 넌 해머로 대화를 하긴 했지. 보통 대화 상대가 다져져서 문제지만.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네. 너 대체 어떻게 정령술사가 된 거야?”
……진심으로 받는 거냐.
타이니가 에스티나의 따가운 눈빛을 받으며 경련이 일어난 볼을 간신히 진정시키는 동안.
“아, 맞다. 타락해서 소멸할 뻔한 정령을 구해 줬었지? 그때 네 나이가 어리기도 했고. 3단계까지 온 것도 천운이네. 하.”
그는 에스티나에게 쓰레기로 확정되었다.
“아니야!”
“뭐가 아닌데?”
“아무튼 아니야!”
“됐고. 일단 레인저 울프 가족과 부대끼며 살아 봐.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넌 행운아야. 적어도 우리가 길들인 늑대들이 있으니까.”
“……진심이었냐?”
“그럼, 엘프가 농담하는 거 봤어?”
“어.”
“누구?”
“내 눈앞에.”
그녀가 그의 기억을 봤다면 당연히 알 것이다.
적어도 미래에 그의 동료였던 에스티나는 그에게 인간식 농담도 많이 했었다.
‘사기를 올리려고 억지로 하는 농담 같기는 했지만…….’
그것이 인간들 사이에 오래 머물면서 생긴 습관인지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크흠.”
에스티나도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라 헛기침을 했지만, 말을 바꾸지는 않았다.
“정령술사의 4단계는 정령을 완전히 이해한 뒤 자신의 힘과 조합해서, 본래 생전의 정령에게 없던 능력, 즉 묻혔던 가능성을 이끌어 내는 거야.”
“음?”
“보통 정령이 될 만한 영물들도 능력은 단순하니까. 특별한 능력을 개발하기보다 덩치를 키우는 데 집중하는 게 보통이지. 나무도, 맹수도. 뭐, 초식 동물의 정령은 좀 다르지만, 그 계열은 희귀한 동물 정령 중에서도 특히 드문 경우니까.”
“……그렇겠지. 그런데 꼭 같이 살아야 하는 거야? 늑대랑? 이해만 하면 되잖아!”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고 말해 줘.
그런 마음을 담아 애원하듯 바라보았지만.
“진짜 이해는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공감하는 거야. 그리고 공감은 부대끼면서 느껴야만 알 수 있는 거고. 네가 내 밑에 있는 엘프 정령술사였으면 아예 맨몸으로 짐승처럼 늑대들과 같이 살라고 했을 텐데, 그렇게 해 볼래?”
“……아니.”
그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이라도 지키기로 타협을 볼 수밖에 없었다.
* * *
“컹!”
“크르르.”
대수림에서도 가까운 곳에 있던 엘프 레인저들이 에스티나의 호출을 받고 레인저 울프 늑대 일가족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에스티나는 엘프 레인저들과 엘프어로 몇 마디를 나누더니, 타이니를 돌아보며 피식 웃었다.
“이 녀석들과 같이 살 때는 항상 네 정령을 생각해. 실체화하기보다는 영체 상태로 꺼내 놓고 ‘연결’에 집중하는 게 좋아.”
“뭐 그거야 쉽…….”
“그리고 가능하면, 말도 하지 말고 같이 짖어. 최대한 비슷하게.”
“뭐!?”
“그리고 식사도. 지금 네 위장이면 생고기 소화하는 데 지장 없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야?”
“정령술사로서 성장하고 싶다며. 너도 이제 알고 있을 텐데? 영혼의 격이 성장하는 것, 그게 오러마스터로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을.”
에스티나는 확신 어린 어조로 그리 말했다.
예기치 않았던 영혼의 교류가 가져온 이점은 단순히 두 사람의 유대감이 공고해졌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타이니가 현생에서 얻은 영혼의 힘에 관한 고찰을 에스티나 역시 알게 된 것.
‘검제는 말을 해 줘도 감도 못 잡던데, 아직 경지가 낮아서 그럴까?’
다른 오러유저들과는 다르게, 정령술사로서 영혼의 격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해 온 에스티나는 그것만으로도 무언가 자신만의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넌 어쩌면 이대로 정령술사로서 경지를 올리지 않아도 오러마스터가 될지도 몰라. 내가 봐도 네 재능은 상식을 초월한 수준이니까. 하지만 확실히 하자면…….”
“아, 알았어. 한다고. 한다고 했잖아.”
“호, 그럼 뭐 하고 있어?”
“뭐?”
“시작해야지?”
“당장?”
“그럼 언제?”
“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내려놓기가 생각보다 힘겨웠지만.
“급할 텐데? 악마추종자들이 다른 데서 일을 벌일지도 모른다고 말한 건 너 아닌가? 오버리바운드 회복할 때 아니면 이렇게 느긋하게 수련할 시간 없을 텐데? 빠르게 배우고 싶다며?”
에스티나의 말에는 하나도 틀린 점이 없었다.
“아으으으, 그래. 한다, 해!”
타이니는 이를 갈며 늑대들에게 다가갔다.
아무리 오버리바운드 상태라지만, 몸의 부상은 이미 치유된 지 오래.
지금 그의 육체 능력이라면 마나가 없어도 하급 마수도 때려잡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과 상관없이.
“카릉!”
“컹!”
갑자기 자신들 옆에 끼어든 인간에게 늑대들이 얌전히 협조해 줄 리가 없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크르르르.”
그중에서도 무리의 수장, 아빠 늑대로 보이는 녀석이 유독 경계심이 심했다.
콰득.
친해지려고 그 옆의 늑대한테 슬쩍 손을 갖다 대자, 으르렁대던 녀석이 아예 그의 손을 물어 버렸다.
“♬♪!?”
“♬♪!”
엘프 레인저들이 화들짝 놀라 뭐라 말하는데, 정작 손을 물린 타이니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른 손을 들었다.
“괜찮습니다.”
평범한 늑대의 이빨은 그의 피부조차 뚫지 못하니 다치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그의 육체는 물린 손에 그대로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맹수의 턱을 부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놔라. 좋은 말 할 때.”
타이니의 검은 눈동자가 살기를 가득 싣고 자신의 손을 문 늑대에게 향했다.
그 순간.
“타이니,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인간의 존엄성을 좀 더 내려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날아왔다.
‘허으…….’
정말 이 길이 맞는 것일까 고민이 들었지만.
“……컹!”
타이니는 살기를 뿜어내면서도 순순히 개 짖는, 아니 늑대가 짖는 소리를 흉내 내기 시작했다.
당연히 쪽팔린 만큼, 아니, 인간의 존엄성을 저버린 만큼 살기가 한층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쌍, 반드시 오러마스터가 돼서 마족 놈들 골통 다 깨부숴 버린다.’
그의 눈빛에 맹렬한 살기가 넘실거리기 시작하자.
“깽.”
“크륵.”
그의 손을 문 늑대는 물론, 다른 늑대들까지 공포감에 몸을 덜덜 떨었다.
“타이니, 살기는 치워! 어울리라니까!? 같이!”
“아니, 그게……!?”
“어허, 말!”
“끄응…… 컹!”
“좋아, 그렇게만 해.”
에스티나가 흡족한 미소를 짓고, 늑대 가족을 데려온 엘프 레인저 둘이 손가락으로 머리에 빙빙 원을 그리던 그때.
“♬♪♪♬♬♪♬♪.”
“♪♬♪?”
“♬♪♪♬…….”
에스티나와 이야기를 나눈 엘프 레인저들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늑대들에게 특이한 마법을 거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타고난 혈통 마법사, 소서러의 한 계통인 드루이드(Druid) 계열의 마법 같았지만, 처음 보는 마나 파장이라 정확히 무슨 마법인지는 알 수 없었다.
“조치를 취해 놨으니 널 가족이라 생각할 거야. 이 녀석들이 널 버리지는 않을 테니 함께 대수림으로 가. 늑대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돌아와.”
에스티나의 말이 끝난 그때부터, 타이니와 늑대 가족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당연히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솔직히 인간으로서 생고기를 씹어 먹고 짐승들 사이에서 잠을 청하는 일이 어찌 쉬울 수가 있을까.
아무리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육신이 있다곤 해도, 본능적인 혐오감이나 회의감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타이니에겐 생고기보다 못한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 먹으며 삶을 연명했던 기억이 있다는 것.
그리고.
– 난 너를 더 알고 싶어.
– 크릉.
타이니의 의지에 따라 영혼의 반려인 월랑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에 새록새록 스며들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큭, 크르르르.”
비켜.
“컹!”
왜?
“컹!!”
충분해.
늑대 흉내를 내기 시작한 직후부터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한 월랑의 영혼 덕에,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부터는 울음소리로 다른 늑대들에게 뜻을 전하는 경지까지 이를 수 있었다.
심지어 거기서 시간이 더 지나자, 마법 때문인지 늑대 가족들이 압도적인 전투력을 가진 타이니를 자연스레 리더로 따르기 시작했다.
“컹!”
왔다, 라는 뜻.
사냥감을 유인해 온 늑대 가족이 뒤로 물러서자.
“꾸에에엑!”
기다렸다는 듯이 수풀 속에서 튀어나오는 커다란 멧돼지.
몸을 웅크리고 있던 타이니는 이내 그들의 전면에서 튀어나온 멧돼지 앞으로 뛰어들어 그대로 뺨을 후려쳤다.
뻐어어어어억.
쾅!
난데없이 귀싸대기를 맞고 날아간 멧돼지는 대수림의 거대한 나무와 부딪치며 머리가 함몰되었다.
“취, 취륵.”
털썩.
억지로 일어서려 노력해 보지만, 결국 마지막 신음을 끝으로 털썩 쓰러지는 멧돼지.
“컹!”
신나서 달려드는 늑대 가족들 사이, 타이니는 손으로 멧돼지의 뒷다리를 뜯어내고는 시뻘겋게 드러난 살점을 거침없이 물어뜯었다.
“콰득.”
질겅질겅.
날고기가 역했던 것도 3주쯤 지나자 무뎌졌고, 배고프던 참에 잘 걸렸다는 생각만 들었다.
오버리바운드의 후유증도 거의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지금 타이니는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월랑의 기억과 본능을 받아들이며, 영혼의 파트너에 대한 보다 완벽한 공감과 이해를 갈구하는 마음뿐.
그런 면에서 레인저 울프 일가족과의 생활은 월랑의 기억을 흡수하는 데 확실히 큰 도움이 되었다.
– 크릉.
‘배부르네.’
그렇게 정신없이 고기를 물어뜯고 나니 다시 스르르 잠이 왔고, 그는 본능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느새 잠에 빠진 타이니는 꿈속에서 또다시 월랑의 기억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한때는 큰 무리를 이끌던 문울프. 그 태생부터 영물이 되기 전까지의 기억들.
월랑이 살아온 삶의 장면들이 이제는 마나의 힘을 깨달아 영물로 거듭나던 시기의 기억까지 다다랐다.
– 아우우우우!
본능을 억제하고 세상의 이면에 흐르는 힘을 받아들여, 단순한 짐승에서 특별한 영물로 거듭나던 순간.
그 순간이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무리를 이끄는 리더로서 적아를 구분하던 후각이 영혼의 냄새를 맡는 능력으로 진화하고, 장애물 없는 밤하늘을 거침없이 내달리기를 좋아했던 성정이 공간 밟기의 능력을 개화했다.
그 외에 그에게 필요한 것은 적을 쓰러트리고 사냥감을 잡을 수 있는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 그리고 거대한 덩치뿐.
자연히 나머지 잠재력은 모두 육체를 강화하는 쪽으로 집중되었다.
그것이 맹수가 영물로 거듭날 때 대부분 선택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그때 미미한 인간의 이성이 어렴풋이 끼어들었다.
– 다른 방향도 가능했는데.
– 킁?
큰 늑대 무리에서는 꼭 힘이 센 개체가 우두머리가 되는 건 아니다.
오래 살아남아 지혜를 얻은 늑대, 즉 경험이 많은 늑대가 무리의 장으로 인정받기도 하는 것이다.
월랑도 영물이 되기 전에는 그런 케이스였다.
오히려 영물이 된 후 너무 덩치가 커진 나머지 홀로 남게 된 것.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과거의 기억에 닿는 순간.
월랑의 영혼은 과거에 이루지 못했던 또 하나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 무리 사냥을 하는 야수, 그 우두머리의 전투력이 굳이 높을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 순간, 타이니는 자신이 드디어 경지를 넘어섰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정령술사 4단계.
– 잠재력 개화(潛在力開花, Potential Link)
우우웅.
여러 번 겪어 본 적 있는 짜릿한 쾌감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관통했다.
월랑과 연결된 보이지 않는 끈이 더욱 탄탄해지고, 두 영혼의 파장이 서로 겹쳐지고 커지며 영혼의 질 역시 한 단계 상승하는 느낌.
그리고 그것이 완성되는 순간.
우우웅.
주인의 성장에 자연스레 반응한 초월무구, 영혼의 갑옷 아니무스가 노을빛 마나를 뿜어내며 주인과 그의 정령에게 더욱 강력한 영혼의 힘을 부여했다.
스스로의 존재가 실시간으로 강화, 승격되는 듯한 짜릿한 느낌이 그의 영혼을 사로잡으며, 오버리바운드의 후유증을 깨끗하게 씻어 내 주었다.
우우웅.
그에 다시금 파도처럼 몰려들기 시작하는 마나.
‘허으으으…….’
그 전율적인 쾌감 속에서 상당량의 마나가 월랑에게 흘러들어 가며 자연스레 녀석이 실체화되었다.
그리고 월랑이 오랜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아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체고만 3m에 가까운 괴물 늑대의 엄청난 하울링이 대수림의 일각을 강타하며, 격하의 존재들을 압도하는 피어(fear)가 퍼져 나갔다.
“컹!”
“컹! 컹!”
그간 함께했던 늑대 가족들이 그대로 눈을 빛내며 월랑과 타이니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이내 늑대들의 몸에서 마나가 넘실거리며 녀석들의 육체와 감각이 눈에 띄게 강화되는 광경이 월랑과 타이니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마치 그들이 영물이 된 것처럼.
바로 월랑에게서 개화한 또 하나의 스킬, 자신의 휘하에 있는 이들을 지배하고 강화하는 능력.
– 동족 강화(Strengthen Species).
영혼 탐지(Soul Sight)와 공간 밟기(Space Step)에 이은 세 번째 능력.
생전의 월랑이 놓쳤던 가능성이 그 순간 개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