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37
137화. 몬스터 웨이브의 마무리
다시 만난 에스티나가 그를 보고 화들짝 놀란 것은 좀 의외였다.
“……왜 놀라는 건데?”
“고작 3주라니, 역시 넌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회복력도 그렇고.”
진심으로 놀란 표정이었기에 왠지 더 찜찜했다.
“얼마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보통은 그 생활만 최소 반년은 해야 하거든. 그것도 감 잡는 수준이 되는 데만.”
“……그런 걸 시킨 거냐.”
“어차피 오버리바운드의 후유증을 겪는 동안 네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검제한테 다 얘기를 해 놨다면, 네 가치는 무력뿐인데…….”
지극히 현실적이지만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에스티나의 말에 타이니가 입을 삐죽이는데.
“회복하는 기간을 겸해서 네가 감이라도 잡길 바란 건데…….”
에스티나가 연신 탄성을 토해 내니, 딴지를 걸 수도 없어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몬스터 웨이브는 아직도 그칠 기미가 없어?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는데?”
타이니의 시선이 에스티나와 그 주변을 훑었다.
또 힘겨운 밤을 보냈는지 안색이 창백한 에스티나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보이는 엘븐나이트들.
3주 전보다 상황이 더욱 안 좋아진 것 같았다.
“아, 또 지평선을 덮을 듯이 몰려왔었어. 동터 올 때 스피릿 웨이브를 한 번 더 써야 했고. 그 빌어먹을 대미궁을 박살 내 버려야 하는데.”
“……그런 상상 많이 해 보긴 했지.”
둘의 얼굴에 동시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전설의 오러마스터조차 정복하지 못한 곳. 그리고 전생에 오러익시더급에 올랐던 타이니도 녹턴을 얻고 빠져나오는 것이 고작이었던 마역 중의 마역.
대미궁은 신전에서도 포기한 세상의 일부라고 봐야 했으니까.
고대에 인류의 승리로 기록된 마계 대전이 이 땅에 남긴 상흔은 그토록 컸다.
‘어쩌면 현세의 마계 대전을 이겨 낸다 해도 그 후유증은…….’
최악의 상상을 한 타이니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념을 털어 버렸다.
그러자.
“……어쨌거나 이겨 내고 볼 일이야. 벌써 후유증을 걱정하긴 너무 일러.”
에스티나가 그 생각을 읽은 듯한 말을 건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니 그 전에 빨리 덩치 좀 키우고. 왜 아직도 요만해? 산만 했던 놈이.”
그렇게 말하며 내려다보는 뜬금없는 도발은 덤.
에스티나는 여성 엘프 중에서는 키가 큰 편으로, 지금 그보다 10cm 가까이 컸다.
전생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입장에서야 이상하게 들릴 법도 했지만, 타이니는 그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못 먹어서 그래. 네 덕에 무리도 좀 했으니, 먹은 게 전부 몸 회복하는 데 쓰였지.”
실제로 제국에서 축난 몸을 붉은 멧돼지족 만찬에서 가까스로 회복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쉴 새 없이 내달린 이후에 엘븐하임에서 먹은 것이라고는 제이와 합류한 뒤 먹은 유동 식량과 엘프들의 주식인 과일과 야채뿐.
심지어 많은 양도 아니었고, 고기류는 늑대 가족과 함께하며 먹은 생고기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염체가 오버리바운드의 후유증을 치료하는 데에 쓰였기에, 그의 키는 여전히 170cm 근방에서 머물고 있었다.
“그럼 언제쯤 다시 그 정도로 커질 것 같은데? 네 그 말도 안 되는 파괴력은 덩치에 따른 힘과 폭발 속성의 결합에서 나오는 거 아니었나? 녹턴은 둘째 치고.”
그에 타이니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현생의 기억도 보지 않았어?”
“네 비전처럼 복잡한 상념까지 완전히 읽은 것은 아니야. 너도 그럴 텐데?”
“아……. 그렇긴 하겠네. 아무튼 현생에서는 그 정도로 커지지는 않을 거야.”
“뭐? 왜?”
“그렇게 안 커져도 그 이상으로 강해질 수 있으니까.”
“너, 정령술 하나 믿고 본연의 무력을 등한시하는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순전히 육체적인 측면만 봐도 그렇다는 거야. 전생의 덩치는 내 잘못된 열망으로 과하게 키운 것이었어. 그게 균형을 어긋나게 만들어서 더 발전하지 못한 거야.”
현생의 깨달음. 그 일부가 담긴 자신감 넘치는 발언.
그에 에스티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묘한 눈으로 타이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오, 그럼 설마 이게 다 큰 거야?”
“아니야!! 나 아직 열네 살……!”
그 무시하는 듯한 눈빛에 발끈해서 소리를 지르다 보니 영혼은 서른도 훌쩍 넘었으면서 어리다고 우기는 꼴 같아서 순간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우씨. 뭐, 육체 나이가 어리니까 아직은 좀 더 클 거야. 내 육체가 가진 태생적 한계, 딱 거기까지만. 그게 발전을 위해서도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도 피식 웃는 듯한 에스티나의 표정이 마음에 걸려, 타이니는 굳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뭐,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너보다야 커지겠지만.”
그 말에 에스티나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왜, 왜!?”
“귀여워서 그런다.”
“뭐!?”
피식.
“얼른얼른 자라라고, 꼬마 기사님.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네가 하루빨리 완성되어야 할 테니까.”
“……그럴 거야. 그런데, 스피릿 웨이브를 또 썼으면 내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아, 괜찮아. 카일룸에게서 보충했으니까.”
“어? 그럼!?”
“그래, 발전한 건 너만이 아니야. 뭐, 나중에 더 보여 주겠지만.”
타이니가 놀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대부터 존재해 온 대정령 카일룸은 여타의 정령에 비해서도 한층 높은 격을 가지고 있었으니, 자신의 실체화를 계약자의 도움 없이도 유지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정령이었다.
그래서 전생의 에스티나는 카일룸에게 마나 오버차지 상태를 유지시키고, 자신의 마나가 부족해지면 그 마나를 다시 빨아들이는 방식으로 전투 지속력을 유지했었다.
물론 그 기술을 쓰기 위해서는 전투가 없는 평화로운 날이 며칠씩은 필요했기에, 결국 말세의 끝에 이르러서는 타이니를 끼고 다니기도 했지만 말이다.
“좋은 소식이군.”
“더 좋은 소식도 있어.”
“뭐?”
“여기 오래 있진 않을 것 같아.”
“음?”
“스피릿 웨이브로 만 단위 이상 쓸어 버린 것만 벌써 세 번이야. 이번 몬스터 웨이브가 아무리 심해도, 이제는 슬슬 끝날 때가 됐겠지.”
“그렇겠군.”
“엘븐하임으로 돌아가서 우리 엘프 내의 배신자들을 가려낼 거야. 거기까지는 도와줄 수 있겠지?”
“물론.”
“그리고 나서도 별일이 없다면, 너는 떠나야 할 테고.”
“……그래야지.”
“함께할 수가 없어서 아쉽군.”
“어쩔 수 없잖아.”
“그래, 그렇지.”
전생의 기억을 읽었다지만, 엘프족의 범위를 벗어난 일에 에스티나가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었다.
제국 무력의 상징인 검제와 마찬가지로, 엘프족 무력의 상징인 그녀가 다른 종족의 영역으로 움직이는 것 자체만으로도 분란의 소지가 차고도 넘칠 테니까.
“그래, 그러니까 오늘 내가 정령술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너에게 보여 줄게. 똑똑히 새겨 둬.”
“어?”
“네 기억 덕분에 ‘가속’도 확실히 몸에 새겼거든.”
그 말에 타이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녀가 엄청난 기술 하나를 20년의 세월을 앞당겨 익혔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러니 잘 배워 두라고. 확실하게.”
에스티나의 자신만만한 표정에는 이유가 있었고, 그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타이니는 그녀에게 정령술에 관한 교육을 받아야 했다.
“4단계 포텐셜 링크를 성공하는 것까지가 정령술의 기본이야. 넌 아직 멀었어.”
에스티나는 단호한 어조로 설명을 이어 갔다.
“5단계부터가 진짜 정령술사지. 정령의 능력을 직접 쓸 수 있으니까. 내가 ‘독수리의 눈’과 ‘바람의 속성력’, ‘가속’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녀의 말처럼 월랑의 능력은 모두 녀석을 근원으로 하는 것이니, 지금으로선 아무리 계약자라 한들 타이니가 그것을 주체적으로 응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만약 네가 나처럼 정령술사로서 초인의 경지인 7단계에 올라서게 되면, 네 정령이 개화했다는 이능 ‘동족 강화’도 직접 쓸 수 있겠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
월랑이 새로 개화한 이능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다.
월랑보다 타이니 자신이 주체가 되어, 늑대가 아닌 인간에게 쓸 수 있게 된다면 말이다.
“대단위 전쟁이라면, 그 동족 강화라는 능력은 진짜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어. 상상해 봐. 네가 전생의 힘을 되찾고 난 뒤 인류의 군대 가운데서 그 힘을 쓰는 모습을.”
개인 전투력 측면에서는 솔직히 가속 같은 특성이 더욱 탐나지만, 에스티나의 말대로 전술적 측면에서의 효용성은 그야말로 비할 데가 없을 것이다.
돌격대장 같은 역할밖에 못 했던 자신이 오히려 전술의 중심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멋진데…….’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뛰기 시작하는데.
“그러니 이젠 본래 무력 못지않게 정령술의 경지 상승도 필수로 생각해야 해.”
그 마음을 읽은 듯, 에스티나가 싱긋 웃으며 곧바로 말을 이었다.
“오늘 밤 나를 잘 봐 두라고. 네 감각이라면, 나와 카일룸이 어떻게 연계가 되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알았지?”
그날 밤.
산발적으로 몰려오는 검은 사막의 몬스터들을 앞에 두고, 에스티나와 타이니가 최전선에 나섰다.
“잘 봐 둬, 타이니. 늑대 어르신도 힘내시고.”
“그릉, 킁.”
이제는 아예 목을 꺾어서 올려다봐야 할 수준으로 커진 월랑은, 목덜미를 쓰다듬으려면 에스티나조차 팔을 쭉 뻗어야만 했다.
어차피 이번 전투는 타이니를 태우고 싸울 것은 아닌지라, 성장한 월랑의 전투력을 본래 덩치인 상태로 봐 보려 한 것이다.
초월무구 아니무스의 힘으로 강화된 월랑은 굳이 자신의 특성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미 단계를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온다!”
“준비!”
“♬♪!!”
산발적으로 다가오는 몬스터들의 모습을 본 엘븐나이트들이 부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간다.”
세계수의 수호자, 그리고 인간의 나라에서는 천공의 기사로 불리는 이가 본격적으로 그 향상된 무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일순간 그녀의 몸에 거대한 매의 환영이 겹쳐지는가 싶더니, 이내 그녀의 모습이 환상처럼 사라졌고.
꽈아아아아아앙!
그와 동시에 다가오는 몬스터의 정면에서 폭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쏴라!!”
“♬♪!!”
한발 늦게 엘븐나이트들의 화살 세례가 이어졌지만, 타이니의 정신은 오로지 에스티나에게 쏠려 있었다.
‘확실히 대단해.’
녹색 오러의 화살이 가로막는 모든 것을 꿰뚫으며 날아갈 때, 어느새 측면에서 나타난 에스티나가 검을 휘둘러 거대한 몬스터를 두 쪽 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활과 검은 한순간에 여러 개로 분화되어 움직이며 사방의 모든 것을 박살 냈다.
마치 에스티나가 여럿의 분신을 만들어 사방으로 공세를 가하는 듯한 모습.
그 놀라운 광경을 보며, 타이니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가속. 정말 터득했군.’
대정령 카일룸의 능력 중 가장 대단한 기술이 바로 저것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보조 마법도 권능에 속하는 오러의 힘을 이겨 낼 수 없다면 초인의 몸에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은 적이 발휘한 마법도, 아군이 발휘한 마법도 마찬가지.
그래서 그 한계를 뛰어넘는 초월무구가 대단한 것이고, 초인들이 그것을 탐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마법보다 효율적인 정령의 힘은, 마치 초월무구처럼 초인의 능력에도 간섭할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의 에스티나처럼.
타이니는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에스티나의 모습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녀가 내뿜는 마나의 패턴과 흐름을 똑똑히 기억하며 눈으로 좇자, 거기에 더해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일룸!”
– 끼에에에에에에엑!
창공에서 날아 내려온 거대한 독수리가 무지막지한 발톱과 부리, 바람의 칼날을 휘두르며 그 근처의 몬스터를 초토화시키는 광경도.
그리고 그 대정령과 에스티나 사이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도.
지금의 자신이 월랑에게 보내는 마나의 흐름보다 훨씬 깔끔하고 효율적인 경로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곳에는 그가 기억하는 동료, 천공의 기사의 모습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멋지군. 마나가 좀 과하게 뚜렷하긴 하지만.’
아마도 에스티나의 배려일 것이다.
타이니는 그 배려를 고스란히 흡수하며 뇌리에 새겼고.
“너도 가야지, 월랑!”
이내 녀석의 옆구리를 툭 치자, 거대한 새의 정령을 보며 투지를 불태우던 월랑이 그대로 전장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이전에 보았던 것보다 규모가 확실히 줄어든 몬스터 웨이브가, 그때부터 빠르게 정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