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성기사?
“말 그대롭니다. 검은 코뿔소족을 주축으로 붉은 랩터족, 푸른 하마족 등등 오크들 가운데 가장 큰 부족 다섯이 힘을 합쳐 연합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엘븐하임을 나와 만난 제이는 간결하게 소식을 전했다.
“연합 전쟁이라는 것이 조금 특이하긴 하지만, 근 50년간 전쟁이 없었으니까요. 제국에서는 차라리 잘됐다 싶은 모양입니다.”
“잘됐다라…….”
“오크족들이 서로 상잔해서 그 수가 크게 줄어 버리면, 서부의 위협이 그만큼 줄어드니까요.”
“젠장…… 왜 지금…….”
그 말에 타이니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가 아는 오크족 최악의 내전은 몇 년 뒤의 일이었다.
‘바타르 족장의 말을 너무 쉽게 생각했나? 이게 정말 선황이 뿌린 씨앗 때문인가? 아니면 내가 바꾼 역사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검제는? 공작 각하는 아무 말 없었나? 분명 조치를 취하려 했을 텐데?!”
다급히 물어보는데, 그를 보는 가렌과 제이가 짠 것처럼 동시에 눈살을 찌푸렸다.
다만, 각자 내뱉은 말은 달랐다.
“……조치라니, 타이니 경? 전쟁은 오크족에게는 숙명과 같은 일이야.”
가렌은 지극히 상식적인 입장에서 딴지를 걸었지만.
제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도 일단은 가렌 경의 의견에 동의합니다만, 공작 각하의 생각은 다른 것 같더군요.”
“뭐?”
“제가 정보를 전달하기도 전에 가문의 문을 두드린 오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각하께서는 미리 알고 계신 정도를 넘어 조사까지 하고 계셨던 거 같은데…….”
“역시 하잘, 그 친구가 약속을 지켰군.”
가렌이 흡족한 듯 웃자 그에게 시선이 쏠린 것도 잠시, 제이는 연신 한숨을 내쉬며 타이니를 바라보았다.
“오크족을 통합하는 대부족이 탄생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 악마추종자의 음모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강조하며 황제 폐하께 제국 차원의 개입을 설득 중이시라고 합니다. 여차하면 저희 가문의 전력만으로라도 중재를 하겠다고요.”
“뭐!?”
그 말에 놀란 가렌의 시선 역시 타이니에게 꽂히는데.
“그 때문에 우리 발렌티아 가문에 대한 여론이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대체 왜 그러시는지 의문이었는데, 타이니 경은 뭔가 아시는 것 같군요. 그렇죠?”
제이가 확신하는 어조로 묻자, 타이니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솔직히 여전히 선황제의 수작일 확률이 더 높아 보이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 역시 악마추종자의 수작일 가능성이 크니까.”
그 말에 제이가 대뜸 인상을 찌푸렸다.
“그 미친놈들이 또 무슨 짓을 저지른다는 말입니까?”
근거를 댈 수 없는 일방적 주장에 불과했지만, 카룬에서 전설의 마수가 등장하는 것까지 직접 본 그로서는 타이니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만.
“아니, 그 전에 타이니 경은 그걸 어떻게 아는 겁니까? 다른 정보조직이라도 있는 거라면 말씀해 주십시오. 정보 공유가 필요합니다. 절실히.”
새삼스레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어……?”
블랙윙이라는 발렌티아 정보 조직의 수장으로서는 당연히 가질 수 있는 의문.
그 말에 타이니는 다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냥 다 말해 버릴까?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다시 한번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곧바로 다시 검제의 경고가 떠올랐다.
– 혹시라도 새어 나가면 너 화형.
‘하아, 씨X…….’
만약 신전과 싸우게 된다면, 적어도 인간족의 나라 전체와 적이 되는 건 기본적으로 확정이다.
그렇다고 다른 종족과 친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오크나 수인족, 드워프는 자신들의 조상신을 더 섬기긴 하지만 여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엘프 역시 여신보다 세계수를 우선하지만, 여신의 존재 자체는 인정한다.
즉, 신전의 적을 감싸 줄 세력은 대륙 어디에도 없다는 것.
벌써 여러 차례 했던 고민이지만, 여전히 이 선택지는 배제해야 마땅하다는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다면 할 수 있는 말은 정해져 있었다.
“내가 어디 출신인지 이젠 알 텐데? 그런데 무슨 조직이 있겠어.”
“……그렇긴 하죠.”
제국 빈민가 출신인 데다 이제 고작 14살.
그 경이적인 성장과 재능이 너무 독보적이라 주변 사람들은 그의 출신에 대해 까맣게 잊곤 했다.
거기다 그 나이에 말도 안 되는 업적을 두 번이나 이뤄 내기까지 했으니, 제이 역시 그 사실을 깜빡하고 만 것이다.
“그럼 대체 어떻게……?”
그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며 쓰게 웃은 타이니가 그나마 설득력 있을 법한 말을 더해 주었다.
“난 그저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이 벌이는 일을 일부나마 감지할 수 있고,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도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뿐이야.”
그 말에 제이보다 가렌이 먼저 반응했다.
“엘프족의 소서러처럼, 타고난 혈통 능력 같은 게 있는 건가?”
“뭐, 비슷합니다. 거기다 두 번의 성과를 거두었으니, 각하께서도 확실히 믿으시는 거지요.”
그 말에는 제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이내 어두운 안색으로 부정적인 말을 꺼냈다.
“카룬은 중립국이었으니 대승적 차원에서 도왔다 쳐도, 오크족의 분란은 제국 상부에서는 오히려 환영하는 쪽에 가까울 겁니다. 크라켄 같은 전설의 마수라도 나오지 않는 한은요.”
혹시 그런 쪽이 아니냐는 기대가 담긴 제이의 눈빛에 타이니는 또 한 번 고개를 저었다.
오크 족의 전쟁은 전생에서도 일어났던 일이지만, 거기서 세상을 놀라게 한 마수 같은 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유난히 희생이 컸던 전쟁으로 기록되었을 뿐.
‘여기서 인류 전력의 큰 손실 같은 말을 하면 얘가 납득을 할까?’
그럴 리가 없다.
‘인류애’라는, 아직 자신에게도 어색한 단어가 등장한 것은 마왕군 강림 이후의 일이니까.
제이의 말대로 지금 시점에서는 악마추종자의 수작이건 뭐건, 제국 서부의 위협인 오크족이 저들끼리 치고받고 죽어 간다면 제국은 오히려 손뼉을 치며 기뻐할 것이다.
그러니 거창하게 뻥을 좀 칠 필요가 있을 듯했다.
“전설의 마수는 몰라도 통합된 오크 종족이 제국을 침범하고 종족 전쟁이 일어날 수는 있지. 그게 전설의 마수보다 더 무섭지 않을까?”
“정말 오크족이 하나로 통일이 된다고요? 그 전쟁광들이? 아니 그렇다 쳐도, 전쟁으로 박살 난 오크 종족이 어찌 제국의 상대가 되겠습니까?”
제이가 다시 의문을 표했지만.
“제국의 상대가 오크족만 있는 건 아니잖아.”
이어진 말에는 그도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
북쪽의 웨어비스트, 동쪽의 왕국 연합.
제국 북부에는 아직도 국지전이 일어나고 있고, 공식적으로 휴전한 지 30년도 되지 않은 왕국 연합도 건재했으니까.
“오크족이 제국에 싸움을 걸어 온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쳐들어오겠지. 그건 쉽게 예상되지?”
“그 능력이라는 걸로 거기까지 봤다는 말입니까, 타이니 경?”
“……정확히는 오크족의 전쟁 이후 이어지는 죽음과 파멸이 덮인 대륙을 보았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거짓 연기지만 그 말의 일부는 진실.
전생에 겪은 말세의 기억을 떠올리자, 자연스레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전달되었는지, 제이 역시 입술을 질끈 깨무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 이내.
“제국도 아니고 대륙이라……. 각하께서도 어떻게든 경을 도우라 하셨는데, 이거 어쩌다 보니 전설의 용사를 돕는 느낌이네요. 뭐, 그래도 그게 더 보람은 있겠네요.”
제이가 가슴을 치며 웃는 모습을 보니, 타이니 역시 슬쩍 미소가 지어졌다.
‘역시 사람은 이성으로 설득하는 것보다, 감성으로 호소하는 편이 쉽지.’
일단 감성이 움직이면 이성은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자연스레 그것을 믿게끔 만든다.
‘그건 내가 아주 잘 알아.’
상습적으로 격한 감정을 분출하며, 쓰레기라 분류한 놈들을 모조리 쳐 죽이며 살아왔던 괴력의 기사.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속이고, 손을 쓸 때는 누구보다 과격했던 그가 종국에는 사람들에게 예찬을 받았던 이유는 하나뿐이다.
그가 적대하는 것은 오로지 괴물이나 마수, 혹은 불의한 인간뿐이라는 대명제.
숱한 매도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수배를 당하면서도 결국 삶으로 증명해 왔던 그 원칙.
그것이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타이니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왕군만 아니었어도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을 텐데.’
쩝.
너무 바쁘게 움직이느라 각 도시에 산재해 있을 인간쓰레기 청소를 등한시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그를 돕겠다고 했던 제이가 바로 부정적인 말을 꺼내 들었다.
“물론 그래도 황제 폐하는 움직이지 않으실 겁니다. 국가의 운영에는 확실한 근거가 필요하니까요. 우리 발렌티아도 공식적으로는 움직이지 못할 거고요.”
“알아.”
“더구나 이번에는 제나스 경이나 여기 계신 가렌 경도 나서면 안 됩니다. 오크족의 전쟁에 제국이 간섭한다는 빌미를 주면 일이 복잡해질 테니까요. 물론 안 좋은 쪽으로.”
“……그거야 그렇겠지.”
“흠, 이거 막막하군요. 전쟁을 막아, 아니 이미 일어났으니 멈춰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하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그마저도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제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타이니도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마침 나도 하나만 생각나는데, 그래도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고 봐.”
제이가 ‘어라?’ 하며 놀라는 듯한 눈빛으로 타이니를 바라보고.
“……둘이 무슨 얘기하는지 나도 좀 알 수 있을까?”
영문을 모르는 가렌이 둘 사이를 두리번거릴 때.
“오크족의 대전사를 만나…….”
“워로드 저릭을 만나야지.”
두 사람의 입에서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와우.”
제이가 뱉은 감탄사가 비웃음같이 느껴진다면 자격지심일까.
“쯥.”
전생에 들은 적이 있으니 자연히 알 수밖에 없다.
– 오크족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본 전쟁이었지. 승자도 없었고. 나 역시 대체 왜 그따위 일이 생겼는지 아쉬울 뿐이다.
– 우리 종족의 섭리라고 생각해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이 지경이 나고 보니 솔직히 내가 나섰어야 했던 게 아닐까 하는 후회가 들긴 한다.
오크족의 성지인 바토르에 머물고 있는 대전사 저릭. 그에게는 오크족 내부 전쟁을 멈출 권한이 있다.
다만 문제라면.
“……그 전쟁을 악마추종자가 사주한 것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할 겁니다. 그게 아닌 이상 부족 분쟁일 뿐이니, 오크족 대전사는 나서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
“……예. 타이니 경이 카룬과 제국에서 연달아 재앙을 막았다는 사실만으로는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당대의 대전사는 굉장히 완고하고 고지식한 것으로 소문이 나 있으니까요.”
제이의 말대로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
‘저릭은 한번 고집을 피우면 절대 안 꺾이지. 확실히 설득해야 해.’
그리고 이 사건이 악마추종자들이 벌인 일이라는 생각에 자신조차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선황이 벌인 일일까, 악마추종자가 벌인 일일까? 타이밍을 보면 후자가 맞을 것 같기도 한데…….’
하지만 후자가 맞다 하더라도, 어디서 그 증거를 찾는단 말인가.
전생에서도 유난히 크게 번진 전쟁이라는 것 외에는 악마추종자와의 연관성은 찾지 못했었다.
그러자 문득 붉은 멧돼지족의 족장, 바타르의 말이 떠올랐다.
‘검은 코뿔소족에 있는 인간들? 그놈들이 악마추종자일까?’
아니, 설령 그렇다 해도 무력이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후셀처럼 마기가 없는 놈이 투입됐을 것이다.
‘그럼 증거가 안 돼.’
그렇다면.
“……다른 방향으로 설득해야지.”
“예?”
“아니, 내게 방법이 있어. 일단 바토르로 간다.”
“불안한데……. 그 방법 저한테도 좀 말해 주시면 안 됩니까?”
“어, 안 돼. 나도 확신은 없으니까.”
타이니는 그리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이 제이와의 대화를 끝내고 다시 엘븐하임에 돌아갔을 때.
“엘븐하임에 들어오지 않고 밖으로 도는 놈들을 잡아 오고 나면, 정말 악마추종자가 맞는지 네가 구별해 줘야 해. 그런데 지금 어딜 가겠다는 거야? 한 달, 아니, 3주 안에 끝낼 테니 그 동안만 더 기다려 줘.”
에스티나의 말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미 전쟁이 일어났어. 한시가 급한데…….’
그녀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기에 한숨만 나왔다.
심지어 그렇게 에스티나가 떠나간 뒤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허, 중앙 신전에서 파견된 성기사가 자네를 만나고 싶다고 통보를 해 왔네. 신전 기사가 엘븐하임에 오다니, 거참 신기한 일이로군.”
장로 에우리나가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의 등장 소식을 알려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