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위기
‘폭뢰!’
폭발력이 전달되기 직전 후끈한 열기가 먼저 느껴지자, 그 순간 타이니의 사고가 급속도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강화된 영혼의 힘이 인지 능력을 증폭시켜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거기에 감각마저 고양된 덕에 발밑에서 느껴지는 폭발의 규모도 얼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때보다 더해.’
카리나 성의 반란 사건에서 그의 목숨을 위협했던 그 폭발보다 위력이 훨씬 더 강한 것 같았다.
자연스레 일어난 의지가 본능적으로 철신갑의 패턴에 따라 움직이려던 마나를 제어해서 방향을 틀었다.
‘철신갑으로는 안 돼!’
노을빛 마나가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나눠지고, 이내 한쪽은 한없이 무거운, 또 한쪽은 한없이 가벼운 중력 속성을 담고 다시 섞이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격렬한 반발이 일어나며 엄청난 에너지가 번져 나왔다.
‘파멸 속성.’
모든 것을 박살 내려 하는 통제 불능의 에너지이기에 일부러 사용을 자제해 왔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그때처럼 하는 것은 바보짓이야.’
폭뢰를 소멸시켜서 막으려 했던 건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히 어리석은 짓이었다.
천운이 따랐기에 살았을 뿐, 만약 파멸 속성의 파괴력이 조금이라도 약했다면 오히려 더 큰 폭발을 불러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집중.’
이 모든 것을 소멸시키려 하는 힘으로 벽을 만든다.
다행이라면, 통제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던 에너지가 지금은 약간이나마 그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
우우우웅.
파아아아악!
월랑의 발밑, 땅거죽 위로 투명한 장벽이 생겼다.
다른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타이니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가까스로 투박하고 투명한 면 형태로 잡아 둔 파멸의 힘이.
그리고.
꽈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지면이 터져 나가고 불꽃이 솟구치는 순간, 그 파멸의 장막이 가두고 있는 지표면만큼은 단 몇 초 동안이나마 멀쩡하게 남아 있었다.
투명한 장벽에 가해지는 폭발력과 불꽃을 모조리 소멸시킨 것이다.
그리고 그 몇 초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우우우웅.
다시금 바닥난 마나를 끌어 올리고, 온몸에 노을빛 마나의 갑옷을 두른 채 폭발의 여력을 견뎌 내기에는 말이다.
콰콰콰콰콰콰.
후끈한 불꽃이 대수림 일각의 반경 수백 미터를 불태우며 어두운 밤을 환하게 밝히고.
“끄아아아악!”
“부, 불!”
“으아아악! 사, 살려……!”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폭사하지 않은 마인들은 불길에 휩싸여 비명을 질렀다.
‘자기 부하들도 신경 쓰지 않고 터트린 건가.’
참으로 쓰레기들답다.
불타오르는 숲속을 분노한 은빛 바람이 질주했다.
“저놈!”
“컹!”
폭발 때문인지, 그의 감각을 교란시키던 무언가가 사라진 듯했다.
그 덕에 타이니의 마나 감응력도, 월랑의 소울 사이트도 6서클 흑마법사들의 위치를 완벽하게 파악한 지 오래였다.
그중 한 놈, 정면으로 달려오는 은빛 늑대와 기수를 마주한 늙은 흑마법사의 얼굴이 파랗게 질리는 것이 보였다.
“어, 어떻게……!?”
정말로 크게 놀란 듯, 타이니를 가리키는 손끝의 마기는 덜덜 떨리는 통에 패턴조차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사신을 앞에 두고도 엉뚱한 소리나 내뱉고 있었으니.
“죽어.”
콰아아아아앙!
6서클 흑마법사는 단 일격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이 나 흩어졌다.
그나마.
“8, 8호가!? 막아!!”
“놈을 막아!”
악에 받쳐 소리를 지르는 나머지 두 놈은 조금 나았다.
살아남은 수하들에게 억지로 지시를 내리면서도 쏟아 내는 흑마법.
– 흐아아아아.
– 죽어어어어.
– 내놔아아아.
검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더니, 귓가에 소름 끼치는 괴성을 쏟아 내는 유령들이 그의 몸에 빙의하기 위해 몰려왔다.
그와 동시에 땅에선 검은 넝쿨들이 솟구치며 월랑의 발을 묶었다.
‘좀 전에 죽은 놈보다야 낫지만.’
파아아아앙!
다시금 전력으로 펼쳐 낸 노을빛 마나가 검은 안개를 흩어 내고.
“크르릉!”
월랑이 자신의 발을 묶는 검은 넝쿨들을 찢어 내자, 타이니는 그대로 마기의 흐름을 쫓아 다른 한 놈을 향해 돌진했다.
그에게는 전혀 소용없는 유령 형태의 저주 마법을 쓴, 좀 더 당황한 것이 분명한 놈을 향해서.
“비, 빌어먹을!”
로브의 후드 아래로 덥수룩한 갈색 수염만을 드러낸 자가 황급히 수인(手印)을 맺었다.
손가락으로 특정 패턴을 형상화하여 마법을 발현하는 방법 중 하나.
하지만 떨리는 손으로 맺은 수인은 제대로 된 마법으로 형상화되지 못했고.
“치잇!”
꽈아아아앙!
어설프게 터져 나온 폭발은 늑대의 기사를 잠시 멈춰 세우는 것으로 그 효력을 다하였다.
그리고 끝내.
“아, 안 돼!”
“돼!”
황급히 뒷걸음질 치려는 흑마법사의 머리 위로 노을빛 마나가 이글거리는 워해머가 유성처럼 떨어졌다.
콰아아아아앙!
‘이제 하나 남았다…….’
후으읍.
길게 들이켠 호흡을 통해 다시금 마나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속도는 확실히 이전에 비해 현격히 느렸다.
격돌 초기에 연달아 전력을 쏟아 낸 데다가, 파멸 속성을 발현, 통제하기 위해 마나와 정신력을 크게 소모한 탓이다.
얼핏 쉽게 처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그가 6서클 흑마법사들을 처리하기 위해 휘두른 일격들마저 한 방, 한 방에 전력을 쏟아 넣은 것이니.
‘이 정도야 당연한 결과지.’
남은 적, 가장 멀리 떨어진 놈을 향해 돌진하는 타이니의 움직임에는 잠시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파바바박.
“막아! 막으라고!!”
마지막으로 남은 목표.
후드 아래로 길고 흰 수염을 드러낸 흑마법사가 그렇게 고함을 질렀지만, 달려오는 마인은 없었다.
놈들이 스스로 일으킨 재앙의 가운데서 살아남은 인원이 드물뿐더러, 애초에 마인들은 서로 의리를 지킬 놈들도 아니었으니까.
그저 영혼의 계약에 묶인 것일 뿐.
명령하는 흑마법사와 직접 눈이 마주친 놈들은 어쩔 수 없이 적을 향해 몸을 던졌지만.
콰아아아앙!
쾅.
적이 휘둘러 대는 무식한 망치질은 그런 놈들을 여지없이 분쇄하고 있었다.
“이, 이런, 쓸모없는 놈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흰 수염의 흑마법사, 말룸(Malum)에서 6호라 불리는 사내는 치를 떨며 다가오는 은빛 사신을 향해 지팡이를 들었다.
그리고 서슴없이 그 지팡이를 부러트렸다.
빠각.
세상에 흔치 않은, 마기를 사용하는 아티팩트. 오스 비르가(Os virga)는 흑마법의 효율을 높이고 그 흔적까지 감춰 주는 최고의 보물이었지만, 자신의 목숨과는 바꿀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 보물을 파괴한 대가로, 그는 단 한 번 한계를 초월한 마법을 발휘할 수 있었다.
마계의 동식물을 소환하는 계열의 흑마법사인 그의 인지 영역이 극도로 넓어지며, 본래라면 생각도 못 했을 강력한 마계 생물에게 그 영혼이 닿았다.
그오오오오오.
“나와라, 파멸의 사자여!”
눈앞으로 달려오는 거대한 늑대.
그 압도적인 사신의 형상을 그려 낸 마기가, 차원의 틈을 열고 적과 가장 유사한 모습의 마계 마수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 캬아아아아!
거대한 타원형의 검은 포탈 사이로 튀어나온 울음소리.
본래 6단계급 마수 여러 마리를 불러낼 생각이었던 6호의 얼굴에 환희가 떠올랐다.
‘지배자급 마수!?’
7단계, 초인급과 비견되는 지배자급 마수는 ‘강림’ 의식이 시작되기 전에는 소환할 수 없다는 것이 상식.
하지만 그 전제가 깨어졌음에도, 6호는 이 이상한 상황이 벌어진 이유를 따져 볼 정신이 없었다.
‘다, 다행이다.’
그저 천운이 따랐다고 여길 뿐.
쿵.
검은 근육에 뒤덮인 마수의 거대한 앞발이 포탈을 찢고 세상에 한 발을 내디뎠다.
그오오오.
그저 앞발이 하나 튀어나오는 것만으로도 대수림의 일각을 검게 오염시키는 마기가 퍼져 나갔다.
“으흐흐.”
그 강렬한 기세에 6호의 미소가 더욱 진해졌다.
‘그냥 지배자급도 아니야. 마수병단의 지휘관급이다!’
마왕의 휘하 7개의 죄악을 상징하는 군단장들. 그중 폭식을 상징하는 마수왕의 휘하에는 8단계급 초월 마수들이 7개체나 있다.
그리고 그런 초월 마수들은 각기 지배자급 마수들 7개체를 바로 밑에 두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 하나하나가 동급의 마수 중에서도 최강에 가까운 존재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소환된 마수가 거의 그 정도 급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됐어!’
그야말로 필생의 운이 한 번에 몰린 것 같은 결과.
자연스레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과 함께.
‘놈을 처리하면 그 공은 나 혼자 가진다.’
보물 오스 비르가를 박살 낸 성과가 벌써부터 느껴지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이런 미친놈이……!!”
어느새 검은 포탈 앞에 도달한 적이 자신을 향해 고함을 지르는 것이 보였다.
모름지기 적의 욕설은 최상의 찬사가 아니던가.
‘그래 봤자 이젠 끝이다.’
6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진해졌다.
동시에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진 적의 손에 들린 무식한 망치에서 붉은빛과 노란빛이 불길하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 크르르르르르.
검은 포탈을 열고 나온 검은 뿔 달린 마수가 얼굴을 전부 드러내기도 전에.
“어딜 기어 나와! 꺼져!!!”
쩌쩌적.
눈에 띄게 금이 가기 시작한 놈의 망치가 노을빛 대신 지극히 불길한 회색의 빛을 뿜어내며 마수의 뿔을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사위를 진동시키는 폭음.
콰콰콰콰콰콰콰.
그 엄청난 폭음 직후 쏟아지는 충격파가 돌풍을 만들어 내는 순간.
– 캬아아아아아아!
분노한 마수의 포효 소리와 함께, 검은 포탈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퐁.
이내 웃기지도 않은 작은 소리와 함께 포탈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에 6호의 미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
“이 미친 새끼가……!”
입가에 핏물이 흥건한 창백한 얼굴로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워해머를 들어 올린 적의 모습.
낭패한 듯한 몰골이었지만, 기세만큼은 그야말로 세상을 통째로 씹어먹을 듯 난폭하게만 느껴졌다.
“……감히 마계의 문을 열어!?”
차마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멍한 눈으로 얼어붙은 6호의 머리 위로 노을빛 워해머가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아아앙!
* * *
“……실패, 했습니다.”
“뭐!?”
쾅.
검은 암실의 원탁이 요란하게 흔들렸지만, 지금 이곳에 있는 이들 중 거기에 신경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장로들은! 폭뢰는!!?”
“남은 폭뢰 1000여 발이 한 번에 터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대수림의 일각이 통째로 사라지고, 거대한 산불이 나는 통에 엘프들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은 귀환하지 않았고 목표는 다시 바토르로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멀리서 확인했습니다.”
“……돌진?! 부상도 없다고? 대체 그놈들은 뭘 한 거야!”
“그, 그나마 놈의 무기가 부서진 것 같다는 보고가…….”
“그딴 걸 보고라고 해!? 놈이 초인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그럴 수도…….”
까드득.
“이 정신 나간 새끼가!”
뻐어어억.
보고자의 머리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원탁에 다시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다 잠시 후.
“놈이 바토르로 간다 해도, 워로드가 움직인다 해도 이미 늦었습니다. 네르구이는 워로드의 말을 듣지 않을 테고, 오크족은 몰락할 겁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뒤를 생각해야지, 뒤를!! 오크족만 끝내고 말 거야!? 엘프들은? 드워프들은? 연합은!? 수인족은!?”
구석에서 조심스레 나온 말에 상석의 그림자가 연달아 고함을 질렀다.
“그래도…….”
“그놈! 그 모르스 놈이 문제란 말이다! 또 무슨 방해를 할 줄 알고!”
“더 이상은 여력이 없습니다. 놈을 치고자 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가 모두 나서든가, 그, 그분께서 다시…….”
“닥쳐! 닥치라고!! 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이따위 결과가 나와! 대체 얼마나 무능하길래!”
쾅.
다시금 원탁을 후려치는 그림자의 전신에서 자욱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 그럴 거면 네가 직접 나서지.
다른 그림자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생각이 스쳤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낼 수 있는 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 모두가 폭뢰에 더해 3, 6, 8호 장로까지 이번 작전에 투입된 것은 너무 과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들에게 있어 그 모르스 놈은 강자의 힘을 빌려 자신들을 방해했던 첩자 같은 느낌이었지, 일인 군단 같은 막강한 무력의 소유자는 아니었으니까.
거기다 그렇게 생각한 근거도 다름 아니라.
– 그분께서 놈이 잘해야 블레이더급이라고 하셨는데.
그들의 수장이 한 말이었다.
일의 실패 원인을 따지자면 그 비중이 가장 컸지만, 감히 누구도 따지고 들지는 못했다.
침묵에 잠긴 원탁.
그 침묵은 구석의 그림자 하나가 용기를 냄으로써 깨어졌다.
“정말 놈이 용사라는 것을 확인한 셈 치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분의 말씀도…… 흠, 흠. 게다가 지금까지 드러난 말도 안 되는 성장세만 봐도 이미 증명이 되었다고 보입니다만.”
그 말이 다시금 원탁을 고요하게 만들 때.
“……마침 그분의 그 대법이 끝날 때가 됐으니, 내가 직접 보고하겠다.”
억지로 쥐어짠 신음 같은 목소리가 상석의 그림자에게서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