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여신의 기사가?
다행이랄까.
“우이씨…….”
타이니는 자신보다 먼저 울컥한 루나의 손을 잡아 말리느라 오히려 냉정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만큼 검제가 지금 꺼낸 얘기가 충격적이었으니까.
‘……그 정도로 사이가 나빴어?’
전생에도 전쟁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것은 제국이 엉망이 된 후의 일이었다.
‘실버 팽이랑 검제도 그렇게 사이가 나쁘진 않았었는데?’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더니.
타이니가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는데, 그 시선의 의미를 모르는 듯 검제는 계속해서 우려를 표했다.
“만약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국제 사회의 관심은 바로 그쪽으로 쏠릴 것이다. 그리고 그 틈에 다시 놈들이 분탕질을 치기 시작하면 진짜 곤란해지는 거야.”
“악마추종자들이 자신들에게 상극인 성물을 왜 가져갔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제나스가 한마디를 보태자 검제 역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 때문에 현자의 마탑이나 황실 마탑에서 고대 자료를 찾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뭐, 그 전에 악마추종자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면 쉽게 알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당장은 우리가 뭘 해야 할지가 애매하다는 게 문제다.”
“광휘의 기사의 이름은 지금 가장 뜨겁습니다. 그 이름으로 각국을 방문해서 위협을 일깨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보입니다.”
“아니, 다른 나라는 몰라도 웨어비스트나 왕국 연합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수작을 부린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설령 타이니와 우리의 연대가 알려지지 않았다 해도, 이 녀석이 황궁에서 상을 받은 사실만 가지고도 그리 의심할 나라들이니까.”
막막함에 한숨만 나오는 얘기였다.
“그럼…….”
“하지만 그럼에도 다른 의미에서 괜찮은 방법이긴 하다.”
“예?”
“솔직히 타이니, 네 성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그렇게 할까 생각했었으니까.”
응?
“네가 혼자 돌아다니다 보면 웅크리고 있는 악마추종자들이 알아서 미끼를 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봤고.”
“미끼!?”
그 말에 두 모르스가 동시에 울컥했지만 검제는 태연히 웃었다.
“네가 놈들에게 저지른 짓이 있지 않느냐. 내가 그놈들이라면, 이젠 무슨 피해를 보더라도 너부터 죽이고 싶을 거 같거든. 왜, 겁나느냐?”
“흥. 무슨 헛소리를!”
검제의 시답지 않은 도발에 타이니는 코웃음을 쳤다.
피식.
“그래, 그렇게 놈들을 낚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작전이 생각처럼 안 통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최악의 경우 네놈이 죽을 수도 있지.”
“웃기지 마쇼. 내가 그런 쓰레기들한테 당할까.”
타이니가 으르렁거렸지만, 검제는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만약 네가 타국을 방문해서 경고를 했는데 재앙이 안 벌어진다면, 앞서 말한 나라들이 오히려 그것으로 트집을 잡으려 할 수 있다. 여러모로 부작용이 걱정되는 방법이지.”
“그럼 뭘 어쩌는 게 좋을까요?”
“그건…….”
타이니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겠다.”
맥이 확 빠지는 대답이 돌아왔다.
“뭐요!?”
“모든 게 바뀌었는데, 무슨 변수가 어떻게 발생할지 내가 어떻게 알겠느냐.”
“엑!? 하지만…….”
“내가 무슨 예언자라도 되는 줄 아느냐, 이놈아!?”
기다렸다는 듯이 타이니의 머리통을 후려치는 손.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지만, 지금의 경지론 어림도 없었다.
공간을 장악하는 검제의 마나가 제대로 된 방어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것.
쾅.
“아우우. 에이, 쌍! 진짜 폭력 반대! 말로 합시다, 쫌!”
머리를 움켜쥐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러 보지만, 검제는 비웃음으로 대답했다.
“뭐라는 거냐, 워해머로 대화했다던 놈이.”
“그건 또 어디서 들었어……요?”
난 영감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타이니가 황당한 마음에 눈만 끔뻑이는데.
“세계수의 수호자와 통신을 했다.”
“엑?”
“이래 봬도, 악마추종자 놈들의 꼬리를 잡기 위해 열심히 손을 쓰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 불평 따윈 받지 않겠다.”
아으씨, 에스티나. 악마추종자 잡는데 왜 내 옛날얘기를…….
“그리고 솔직히 말해 대책을 생각해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 아니냐? 이 땅에 만약 예언자가 있다면, 그건 네놈이 제일 가깝지!”
“……쳇.”
틀린 말은 아니라 할 말이 없어졌지만,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왜 애써 검제를 만나러 왔겠는가.
하지만 다행히도 검제의 말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곳으로 돌아온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이어지는 말에 뜨끔한 타이니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오늘 아침, 국경 도시 퍼스트원에 여신의 기사 갓 핸드 경이 방문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너를 만나러.”
“엑!?”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타이니의 눈이 몇 배로 커졌다.
물론 그 혼자 놀란 것은 아니었다.
“성령 기사가 말입니까?!”
“여신의, 칼이 왜?”
여신의 기사, 혹은 성령 기사.
전신을 순백의 갑옷으로 감싼 괴인(?)에 대한 전설은 이미 수백 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었다.
여신의 축복을 받아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는 신의 기사.
어찌 보면 현 대륙 7대 기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물론 얼굴을 내보이지 않아 신비롭게 다뤄질 뿐, 신전의 오러유저인 성전 기사단장이 대대로 물려받는 칭호 정도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세상의 권력자들, 그리고 갓 핸드를 직접 겪어 본 이들은 그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죽지 않는다는 건 뻥이지만.’
말세를 함께한 타이니도 그의 사정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은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글러터니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그가 자신을 회복시키고 대신 죽었다는 것뿐.
마족을 상대할 때 믿을 만한 동료라는 것은 확실했지만.
“……지금 우리의, 특히 타이니의 사정상 그가 순수한 의도로 만나러 온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신전과 제국의 불가침 조약을 들어 그가 제국 내부로 진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검제의 그 말에 일행이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하겠네요.”
“음?”
인상을 찡그린 타이니의 그 한마디가 모든 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가 여기까지 움직였다면, 아마 신탁에 의한 것이거나 신전의 총의가 모인 결과일 겁니다. 여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삶의 목표인 자인 만큼, 세속의 법률이나 제약 따위로는 그를 오래 잡아 둘 수 없을 겁니다.”
“……조약을 어겼다간 우리 제국과 신전이 본격적으로 갈등을 빚게 될 텐데?”
“뒷일 따위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에게는 여신의 뜻이 곧 전부니까요.”
그 단언에 방 안에 잠시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그러다.
“꼭, 나쁜 이유로, 오는 건, 아닐 수도, 있지 않아?”
“음?”
“만나러, 왔다며? 잡으러, 아니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닐 경우 감수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큽니다. 회귀의 비밀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더 큰 일이죠. 시간을 거슬러 여신의 권역을 침범했다? 어떤 사제도 반발할 주제니까요. 성령 기사라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그것에 타이니의 목숨이 걸려 있다면, 모험을 할 수는 없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던 루나는 제나스와 검제의 반박에 시무룩한 표정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에 타이니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는데, 검제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렇다 한들 그가 너를 어찌할 수는 없을 거다. 감히 아세리안까지 와서 나와 우리 가문까지 적대하며 일을 벌이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분위기를 환기하려는 듯 가볍게 손뼉을 친 검제가 다시금 좌중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 말을 하려다 끊겼는데, 무슨 변수가 생기건 우리 목표만 생각한다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예?”
“마족들의 골통을 깨고 세상을 지키는 것. 그게 목표지 않나?”
“그런……데요?”
“인류의 역량을 모으는 것. 그리고 군장급 이상을 상대할 힘을 기르면서, 우리 중 누군가는 마왕의 골통을 깰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검제의 뜨거운 시선이 타이니를 향해 쏘아졌다.
“다행히 네 성취는 이미 내 기대치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니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넌 수련이나 해라. 세상을 움직여서 악마추종자들을 잡아내고 연합을 구성하는 일은 내가 할 테니. 알겠냐?”
성령 기사의 이름이 언급된 뒤로 형성되었던 무거운 분위기를, 그 묘한 박력이 단숨에 날려 버렸다.
그때 루나가 불쑥 끼어들었다.
“타이니, 내 동생, 가문, 이어야 해. 혼자, 위험한 일, 안 시켜.”
그 엉뚱한 말에 당황한 타이니가 입을 쩍 벌리며 그녀를 바라보는데.
“그래.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같이 노력해야지.”
검제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말을 굉장히 좋게 해석해 대답했다.
그리고.
“그럼 결정된 거겠지? 다른 변수가 발생하기 전에는 너는 수련에만 집중하도록. 옆에 있는 아가씨도 마찬가지.”
“루나.”
“그래. 루나 양도. 가능하겠지?”
검제는 웃었지만, 루나는 좀 전의 대화에서 뭔가 앙금이 남았는지 투지 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해 볼게. 단, 먼저, 그쪽 실력, 확인하고.”
그 당돌한 발언에 제나스가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루나 님!”
대체 오러유저를 뭘로 생각하는 걸까.
그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주군을 바라봤지만, 의외로 검제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푸하하하, 그래. 그런 호승심 나쁘지 않아. 얼마든지 상대해 주마.”
타이니는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을 뿐이었다.
두 사람이 대련한다면 말릴 이유가 없었다.
‘전생에도 이런 일이 많았는데.’
그때의 상황과는 좀 많이 다르지만, 마나유저인 지금의 루나에게 오러유저와의 대련은 돈을 주고도 못 할 경험이 분명했으니까.
다만.
“좋아. 이 아가씨의 실력 좀 보고 있을 테니, 타이니 네놈은 황궁에 좀 다녀오너라.”
“엑?”
그 대화의 방향이 엉뚱하게 틀어져서 자신에게 불똥이 튀었을 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요?”
“황궁에 있는 클로이가 요즘 조금 외롭다고 하더구나. 폐하도 바쁘시니.”
미뤄졌던 결혼식을 아직까지 치르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타이니도 듣기는 했다.
‘몇 달이 지났는데 황궁 상황이 아직도 정리가 안 된 건가?’
새삼 드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하는데, 검제가 황궁에 있을 딸을 떠올렸는지 씁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비비안이 곁에 있고 나도 가끔 찾아가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적적함이 완전히 달래지진 않는 것 같아.”
“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이었지만, 그 반응이 왜인지 검제에게는 다소 거슬린 것 같았다.
“혹시나 착각할까 해서 말하지만, 내 딸은 네놈이 아니라 네 정령을 보고 싶어 하는 거다. 가능하면 정령만 소환해서 보내거라. 정령술사로서도 성장했을 테니, 그 정도 거리는 가능하겠지.”
“허…….”
타이니가 순식간에 말을 바꾸는 검제를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 역시 민망했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했다.
“혹시나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그런다! 네놈 명성이 쓸데없이 높아졌으니까.”
얼씨구.
“아, 그렇지. 지금 네놈이 나가기만 해도 몰려드는 사람이 많을 테니, 반드시 정령만 보내라.”
……아무래도 그 핑계, 지금 생각해 낸 거 같은데.
타이니가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보자 검제가 뜨끔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뭐?”
“아니, 뭐…… 일리는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클로이 누……나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하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월랑이라면 황궁에 갇혀 답답할 그녀에게 꽤 도움이 될 테니.
“찾아갈 수 있지?”
스르륵.
작게 실체화한 자신의 정령을 보며 타이니가 물었다.
“컹!”
경쾌하게 대답하는 월랑.
녀석이 짖는 소리에 묘하게 리듬이 섞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빨빨거리며 방문을 밀고 쫄랑쫄랑 뛰어가는 뒷모습이 정말 신이 난 듯 보였다.
그 기분을 반영하는 듯 좌우로 씰룩이는 궁둥이가 유독 시선을 사로잡으니.
타이니는 어이없는 얼굴로 그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너 예전에는 클로이 싫어하지 않았니…….’
– 컹!
내가 언제 그랬냐는 의미의 영파.
여러모로 헛웃음 나오게 만드는 월랑 덕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