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199
199화. 심층에서 온 메시지
대미궁 지하 41층.
그 층의 초입을 점령하고 있던 몬스터 무리는 그 형태가 조금 특이했다.
3~4m의 덩치에 양손에는 강철 같은 집게발이 달린, 돌덩어리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인간형 몬스터들.
그 육중한 덩치가 무색하리만치 엄청난 가속력과 덩치에 걸맞은 힘을 가졌고, 호흡기에선 지독한 마기와 독기를 뿜어내는 놈들. 바로 인간 세상에서는 자이언트 크랩맨이라 불리는 5단계급 몬스터였다.
말이 5단계지 그것은 한 개체만 평가한 등급이고, 가끔 바닷가에 단체로 출현하기라도 하면 그 규모에 따라 위험도가 올라가는데, 100마리 이상일 경우에는 최대 7단계급으로 취급되어 국가 경보가 발령되는 몬스터였다.
그리고 대미궁 지하 41층 초입에는 그런 괴물이 300마리 가깝게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41층의 다른 강대한 마물들도 차마 그 대규모 군집을 건드릴 수 없기에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아가던 그놈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재앙을 만났다.
“크에에에엑!”
입구에 가장 가까이 있던 한 마리가 낯설고 기분 나쁜 기운을 느끼는 순간 괴성을 질렀다.
눈이 온통 붉게 물든 놈은 한 번도 나가 보지 못한 지상의 기운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지독한 파괴 충동에 휩싸여 입구를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이 경호성을 내뱉는 것을 시작으로 무리 전체가 잠에서 깨어날 때, 그 중심에서 다른 것들보다 서너 배는 덩치가 큰 자이언트 크랩맨이 몸을 일으키며 포효를 내질렀다.
“꾸어어어……!!!”
그러나 그 뒤쪽에 검은 그림자가 아른거리는 순간.
포효를 위해 벌린 놈의 입에서 갑자기 피 분수가 솟구쳐 올랐다.
“……어어? 끄?!”
놈은 짧은 단말마를 끝으로 온몸이 검게 변색되더니, 이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끄륵!?”
“꾸에에?”
“꾸륵!?”
놈들이 일제히 당황하는 순간.
“그래도 이놈들은 익숙하군.”
위층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느닷없이 커다란 은빛 털북숭이를 탄 두발짐승이 등장했다.
“캬아아……. 크륵!?”
그 짐승에게 본능적으로 달려들려던 놈들은 생전 처음 느껴 보는, 하지만 지독하게 불쾌한 기운에 일순간 멈칫했다.
그 처음 보는 짐승들에게서 느껴진 기운에 위층 계층주의 냄새가 섞여 있었던 것이다. 왜 위층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강력한 포식자의 냄새가.
그렇게 그들이 주춤하는 찰나, 두발짐승이 먼저 달려들어 선두의 개체에게 뭉툭한 막대기를 휘둘렀다.
“크?”
그에 목표가 된 놈이 그 짐승만큼 커다란 자신의 집게를 내밀어 맞받아치는데.
콰아앙!
그 순간 놈의 팔이 날아가고.
“꺼륵!?”
뻐어억.
연이어 휘둘러진 작은 막대기에 그 거대한 몸체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튕겨 나가 허공을 날았다.
그러고는 이내 폭발하여 사방에 거무죽죽한 피를 흩뿌리며 산화했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 무리의 모든 개체가 작은 눈을 부릅뜨는데, 그 재앙을 만들어 낸 짐승들은 그대로 그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꽝!!
“손맛 좋고!”
타이니는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연신 워해머를 휘둘렀다.
그가 탑승하기 좋게 덩치를 줄여 준 월랑은 그 밑에서 가볍게 몬스터들의 다리를 썰어 버렸고.
“끄륵!?”
그에 균형을 잃은 몬스터는 그대로 타이니의 워해머를 맞고 말 그대로 허공으로 쏘아지듯 날아가 버렸다.
커다란 워해머가 휘둘러질 때마다 직격당한 마물들이 마치 무게가 없는 것처럼 가볍게 튕겨 나가고, 이내 그대로 뒤에 있던 다른 개체와 부딪치는 순간.
꽈아아아아앙!
“꾸에에엑!”
놈들의 몸이 폭탄처럼 터져 나가며 주변의 모든 동족들을 날려 버렸다.
히죽.
“오랜만이군. 역시 이 짜릿한 손맛, 끝내줘.”
생체 폭탄.
인간 해머와 더불어 그에게 지독한 악명을 선사했던 끔찍한 기술에 대한 감상은 그토록 간단했다.
물론 자신을 상대하는 괴물들에게는 재앙이겠지만 말이다.
콰아앙!
쾅!
“끄에엑!”
앞에서는 동족이 폭발하며 벌어지는 대규모 학살.
“끄륵!?”
그리고 그 뒤쪽에서는 소리 없이 움직이는 그림자가 만들어 낸 적막한 죽음의 공간이 펼쳐졌다.
– 게, 맛있어?
“게 아니야! 이놈들은 몸이 돌덩이라 못 먹어. 다 죽여!”
도중에 살짝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은빛 늑대의 기수도, 그림자의 악마도 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름대로 강력한 군집의 힘으로 주변의 강한 마물들을 잡아먹고 살던 자이언트 크랩맨의 소굴이 한순간에 초토화되어 버렸고, 그걸 기점으로 웬만한 지상의 소국만 한 넓이를 자랑하는 41층의 마물들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게 단 두 사람의 학살자가 등장하면서 벌어진 일.
그리고 그 거침없는 전진은 그보다 깊은 곳, 아래층에 있는 지배자들의 예민한 오감에도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 * *
– 이상한…… 것들.
– 내려온다.
– 기분…… 나빠.
대미궁 45층 이하의 층을 지배하는 강력한 괴물들이 서로 정신파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미 대미궁의 진득한 마기를 오랜 세월 흡입하며 진화해 온 심층의 마물들.
종의 한계를 ‘두 번’이나 넘어 지성을 획득한 괴물들은 살육하고 지배하려는 본능을 넘어선, 자신과 상황이 비슷한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정신파로나마 서로 교류해 오고 있었다.
이성을 얻은 동물들의 본능, 즉 사회성이 괴물들 사이에서도 미약하게나마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오래되고도 강력한 괴물은 이성을 얻었을 때부터 한 가지 준비를 해 오고 있었기에 곧바로 다른 마물들을 다독였다.
– 위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 포식자가 깨어날 때가 다가온다.
그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직 미약한 새끼일 때, 온 계층을 한순간에 넘나들며 지배자들만 골라 집어삼키던 진짜 괴물.
대미궁 내 모든 층 지배자들의 비명이 위로는 최상층까지, 밑으로는 자신이 있던 50층의 아래까지 메아리치던 그 공포의 시간을, 그는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성을 획득한 후에나 알게 되었다. 그 괴물이 진짜 이 세상의 지배자이며, 자신들은 고작 놈의 관용하에 잠시나마 일부분의 지배권을 얻은 피라미일 뿐이라는 걸.
하지만 절망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 이전에 계층의 지배자였던 ‘어미’는 아주 잠깐이나마 그 괴물과 대등하게 맞서 싸웠다는 것을.
그 기억이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마치 그 괴물도 무적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 이것에는 너희 종족의 마력이 어울리기는 하지. 간직하고 있거라. 흐…….
그 괴물이 선심 쓰듯 ‘뱉어 놓고’ 간 어미의 무기를 쥐어 들고 독하게 성장해 왔다. 언제고 저 밑으로 내려가, 그 괴물의 머리를 부수고 역으로 잡아먹을 날을 꿈꾸며.
하지만 그가 예전의 어미와 비슷한 수준의 힘을 얻었을 때쯤.
가장 아래층에서 놈이 잠깐 움직이는 것을 느끼는 순간,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넙죽 엎드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진동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공포를 뿌리치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때 알았다.
– 혼자서는 안 된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과 대등한 수준의 괴물들을 모아 무리를 지으려 애썼다.
다행히도 그가 각성한 능력은 무리를 지을 때 더욱 강해지는 것이었으니, 자신과 대등한 괴물들을 모으기까지 한다면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시도는 쉽지 않았다.
일단 가장 강하면서 가장 먼저 괴물의 먹이가 될 것이 분명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지배자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바로 최저층의 위, 즉 70층에서 76층까지의 일곱 지배자들.
분명 강렬한 존재감은 느껴지는데, 그들은 마치 오랜 시간 잠이 든 것처럼 어떤 정신파에도 미약한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다른 층의 지배자 중에서도 그의 말을 믿지 못하거나, 되지도 않는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있었다.
– 괴물? 내가, 먹는다.
– 내가, 최고.
결국 설득이 가능한 것은 69층까지의 지배자 중에서도 일부뿐이었다.
그 역시 쉽지는 않았지만, 가끔 잠에서 깨어난 괴물이 점차 활동력을 더해 간다는 건 그들 수준에 이른 이들이라면 다 알 수밖에 없었다.
괴물의 존재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감각 능력이 떨어지거나 그걸 알면서도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자들도 존재했지만, 지난번 포식의 때에 반쯤 ‘먹히다 만’ 경험 덕에 설득이 쉬운 자도 여럿 있었다.
– 좀 더 익을 수 있겠구나. 넌……. 다음에 보자.
그들에게 거의 비슷하게 전해진 그 공포가 호응하는 계층주들의 연계를 쉽게 만들었다. 그들이 전한 생생한 경험담이 있었으니까.
– 이제 곧 ‘그때’가 온다. 준비하라.
아마도 ‘두 번’ 허물을 벗은 자들 중에서도 다음 벽에 가장 가까운, 어쩌면 세 번째 허물을 벗기 직전인 그 괴물이 다시 그 끔찍한 ‘폭식’을 시작할 날이 머지 않은 것일 터.
하지만 그는 자신이 있었다.
그가 설득한 지배자 중 두 번 허물을 벗은 자들만 자신을 포함해 무려 여섯. 그리고 그에 준할 정도의 위력적인 무리를 이끄는 이들만 열아홉이었다.
그들이 한군데 모인다면, 그 괴물이나 부하들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 왜 내버려 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괴물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신이 하는 생각이, 하고자 하는 일이 대미궁의 긴 역사에서는 이미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되풀이되는 역사를 뒤틀 외부의 변수가 빠른 속도로 층을 내려오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그들에게 정말 다행스러운 일일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스각.
검은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 직후.
“끼에에에엑!”
체고만 10m는 될 듯한 거대한 여자의 상체, 그 목 부분이 갈라지며 검은 기운이 빠르게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쾅. 콰르릉!
여자의 상체 아래에 붙어 있는 거대한 거미의 몸체가 8개의 다리로 사방을 난도질하면서 난리를 치기 시작했지만,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크와아아앙!”
그 밑에서 거대한 은빛 늑대가 포효와 함께 그것의 몸체를 부수고 있었으니까.
그 강렬한 통증에 몸부림치는 그때, 괴물의 마지막 운명을 결정지을 사신이 이미 그 머리 앞에 떠올라 있었다.
– 아, 안 돼!
“돼!”
솟구쳐 오른 타이니는 괴물의 정신파를 무시한 채 가차 없이 워해머를 휘둘렀다.
동시에 검게 수축하던 오러가 새하얗게 변하며, 여태 집어삼켰던 거대 인면 거미의 막대한 에너지를 그 머리 위로 단번에 쏟아부었다.
번쩍.
꽈아아아아아아앙!
그 일격이 긴 전투의 끝을 알렸다.
쿵.
우르르르릉.
지축을 울리며 쓰러지는 괴수 시체.
영혼을 보는 눈으로 놈이 확실히 죽었음을 확인한 타이니가 홀가분한 얼굴로 지상에 착지했다.
탁.
“컹!”
그러자 자연스레 덩치를 줄이며 그에게 달려오는 월랑.
“그래, 잘했어.”
타이니는 씩 웃으며 월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킁!”
그에 월랑은 언제나처럼 시큰둥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지만, 녀석의 꼬리가 이미 풍차처럼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한 그는 재차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나는?”
그림자에서 불쑥 나타난 루나가 다짜고짜 머리를 들이밀었다.
“응?”
“나도, 잘했어.”
순간 어이가 없어진 타이니가 볼살에 경련을 일으키며 돌아섰다.
“스스로 쓰다듬어.”
“……칫.”
맨날 누나라면서 하는 짓이…….
타이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쓰러진 괴수의 시체를 내려다보았다.
아직 말려 놓은 육포들이 많은데, 굳이 거미 고기를 먹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인간과 섞인 것 같은 괴물로는 배를 채우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45층의 계층주가 생각보다 너무 쉽게 쓰러진 것이 아쉽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와 루나의 실력이 전투를 거듭하며 완숙해진 덕분도 있겠지만.
“역시, 이놈은 그 거북이보다 약해.”
“응.”
그 말에 루나 역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40층의 계층주를 박살 낸 후 반년.
그야말로 미친 듯이 질주한 타이니와 루나는 갈수록 넓어져 가는 대미궁의 45층을 드디어 완전히 정복한 것이다.
“정신파를 사용하는 걸 보니 이놈도 8단계에 살짝 닿은 거 같기는 한데, 정말 맛만 본 놈이야.”
“그 거북이가, 더 힘들었어.”
“그래.”
물론 그렇게 느낀 것은 그 이후부터 다시 무섭게 발전하기 시작한 타이니의 육체, 그리고 실력 탓이기도 했다.
루나 역시 꾸준히 성장하며 신체 능력과 기술을 갈고닦고 있었으니, 지금의 계층주를 쉽게 박살 낸 것에는 분명 그 영향도 무시 못 할 터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마음이 더욱 허망하기도 했다.
‘분명히 이놈도 전생보다 강하긴 한데……. 역시 마기를 극복한 것이 컸을까.’
45층은 계층주보다 끝없이 달려들던 독거미 떼가 더욱 거추장스러웠다.
끔찍한 촉감과 속박력을 자랑하던 거미줄을 일일이 불태우는 짓도 이젠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니, 절로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올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은 이로써 목표에 조금 더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대미궁 정복이라는, 전생에도 이루지 못한 위업에 말이다.
후, 하고 짧게 숨을 뱉어 낸 타이니가 전신에 엉겨 붙은 찌든 때와 먼지를 노을빛 마나로 씻어 내며 루나를 돌아보았다.
“이제 잠깐 눈 좀 붙였다가 다시 내려가자.”
다만.
“정말, 초월무구, 있을까?”
반년간 열심히 달려온 길이 루나의 의욕을 조금 꺼트렸는지, 갑자기 그녀가 회의적인 말을 꺼내 들었다.
‘뭐, 이젠 지겹기도 하겠지.’
그에 타이니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들의 정신을 뒤흔드는 강력한 영파가 전해졌다.
– 내, 소중한 패를……. 감히.
지금 그들이 있는 층, 그 한참 아래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