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이거라면……?
마치 하늘이 무너진 듯, 굳건하던 벽이 허물어져 위층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사라져 버린 자리.
타이니의 초월 감각이 아니었다면 그저 장소를 잘못 찾아온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아니야?”
“여기가 맞아. 빌어먹을, 아예 지형이 변했어.”
타이니의 입에서 한탄 섞인 욕설이 터져 나왔다.
층과 층을 잇는 거대한 통로.
대미궁의 규칙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층마다 꼭 하나씩은 있던 그 통로가 아예 없어진 것도 모자라, 이곳 지형 자체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통로가 이어진 공간에 장대하게 걸쳐져 있던 벽조차 자취를 감춰 버린 이 상황을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미친…….’
그냥 쌓여 있는 돌 더미를 박살 내고 통로를 찾을까 생각하는데, 순간 이상한 흐름이 느껴졌다.
“이건……?”
“왜?”
통로는 분명 이 회색 돌무더기 안에 존재한다. 그런데 그 돌들이 이상한 패턴의 끈끈한 마기로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마치 안에 있는 무언가를 봉인한 ‘마법’처럼.
‘설마 진짜?’
그에겐 마학적 지식이 없으니, 그걸 풀 방법은 모른다.
하지만 감각은 누구보다 탁월하니, 이것을 부수고 돌덩이들을 치우려면 어느 정도의 힘이 필요할지는 예상이 갔는데.
“……열 배.”
“응?”
“여길 묶은 힘의 열 배의 충격을 한 번에 가해야…… 될 것 같은데. 이게 대체…….”
“뭐? 무슨, 소리야?”
루나가 놀라서 재차 물었지만 타이니는 답답함을 풀 수가 없어 그저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말 마법이라면…….
“몬스터들이 한 짓이라고? 그것도 그 멀리서?”
“설명, 해 줘.”
“……어.”
타이니가 한숨을 내쉬며 루나에게 자신이 느낀 바를 얘기해 주자, 그녀 역시 미간을 좁혔다.
“말도, 안 돼.”
“그래, 말도 안 되지.”
마수병단에는 드물었지만, 전설에 따르면 다른 마왕군의 고위 마족 중에는 대마법을 너무도 쉽게 써 대는 놈들도 있다고 하니, 백번 양보해서 이성이 발달한 악마급 괴물이면 ‘봉인’ 같은 고급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거의 한 나라 크기라 할 수 있는 48층에, 더구나 여기보다 더 넓을 것이 분명한 아래층에서 이따위 마법을 걸어 오는 게 가능하다면.
“놈이 적어도 9단계, 마계 대공급이라는 건데…… 그건 말이 안 돼.”
자신이 아는 그 산양 머리가 리더 역할을 할 만한 분위기일 리도 없고 말이다.
차라리 대미궁에 얽힌 또 다른 비밀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였다.
“빌어먹을 대미궁.”
전생과 현생을 통해 확인한 사실.
대미궁은 단순히 물질로 구성된 게 아니라 바깥세상과는 다른 특정한 법칙에 속해 있다는 것도 그 추측에 확신을 더했다.
애초에 지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공간이 수십 층씩이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만난 그들은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
“컹!”
가만히 돌무더기를 노려보고 있던 월랑이 무언가 알아챈 듯 짖었다.
그 뜻을 바로 전해 받은 타이니가 눈을 크게 뜨며 다시 돌 더미에 손을 갖다 댔다.
“왜?”
“쉿, 잠시만.”
정신을 집중하여 돌무더기의 마법적 흔적을 더듬어 보니, ‘소울 사이트’를 통해 그 마기의 흐름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내, 월랑이 말한 것이 무엇인지도 이해가 되었다.
“영혼…….”
“뭐?”
“뭔가 강력한 괴물의 영혼 일부가 이 폐허를 묶는 마법의 동력이야. 아마도…….”
“컹!”
“그래. 이 층에서 아래로 내려간 계층주의 영혼 냄새라는군. 나도 능력을 체화했다지만, 역시 오리지널이 다르긴 다른가 봐?”
타이니가 웃으며 월랑의 턱을 쓰다듬었다.
“컹!”
강력한 혼이 남긴 흔적은 체취처럼 선명하니, 그 자체로 월랑의 소울 사이트에 기억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타이니 역시 그 자리를 보긴 했지만, 월랑이 봤을 때와는 거리와 날짜상의 차이가 있는 데다 ‘냄새’의 이미지로 정보를 기억하는 습관도 없으니 대번에 알아보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월랑은 그 칭찬이 기분 좋은 듯, 무심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꼬리는 풍차처럼 돌리고 있었다.
집채만 한 덩치 때문에 꼬리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일어날 정도인데 당사자만 모르는 듯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답답한 와중에도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맺혔다.
물론.
“그래서? 이거 해결, 가능해?”
원인을 알았다고 바로 해결이 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아니. 그래도 방향은 잡을 수 있지.”
“어떻게?”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계층 폐쇄는 대미궁의 근본 같은 무언가와 계층주 사이의 계약으로 이뤄진 것 같아. 걱정했던 대마법은 아닌 듯해.”
“다행, 이라고, 봐야 해?”
“글쎄. 이걸 해제하려면, 여기다 혼의 일부를 걸고 봉인한 놈을 때려죽여야 할 거 같은데.”
“……그럼, 그놈들, 중에?”
“그래. 뭉쳐 있는 놈들 중에 있겠지.”
“으…….”
그 말에 루나가 진저리를 쳤다.
이게 무슨 해결책인가 싶었을 거다.
“아니면 아까 말한 대로 열 배의 충격을 가하거나.”
“돼?”
“내가 생명력을 쏟아 넣으면 어찌 되긴 하겠지만…….”
“그놈, 잡자.”
그 터무니없는 소리에 루나가 정색하며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아니면 그의 경지가 전생 수준으로 상승하거나 각성하면서 생각했던 궁극에 닿은 일격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면 이 돌무더기를 부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건 두 사람 모두에게 아직은 막막하기만 한 일이니까.
그도 아니면.
“컹!”
정령술만 7단계에 오른다면 다른 돌파 방안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쪽은 어쨌건 곧 될 거 같아. 그럼 가능할까?’
어쨌건 결국은 성장해야 한다.
그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지금 상황이 막막했다.
다만 그 와중에도 그나마 긍정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이라고 해도, 그렇게 뭉쳐 다니면 우리를 따라잡기 힘들 거야.”
단순한 전투력이라면 모를까, 그 새를 제외하면 월랑의 속도를 따라잡을 놈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응. 도망, 다니다 보면, 튀어나오는 놈, 있지 않을까? 그 새, 처럼.”
루나가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타이니의 생각은 달랐다.
“그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또 그럴 일은 없겠지.”
“그렇……겠지.”
그 반박을 듣고 대번에 우울해지는 루나를 보며, 타이니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문제는…… 내가 기억하는 그놈이라면 우리가 도망치게 놔두지도 않을 거라는 말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컹! 크르르르.”
월랑의 경고가 그들의 신경을 다시 곤두서게 만들었다.
“뭐야!?”
“뭐!?”
놀란 두 사람이 소리를 지르기 무섭게.
두두두두두두.
사방의 먼 곳에서 불길한 울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래, 이렇게 나오겠지.”
타이니는 이를 갈며 자세를 잡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소음의 주인공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두두두두.
우르르르릉.
지층이 통째로 울리는 듯한 소음.
48층 몬스터의 대다수를 차지하던 돌덩이 같은 몸을 가진 거대 늑대.
그런 놈들을 잡아먹던, 송곳 같은 금속 이빨과 온몸에 돋아난 강철 뿔을 자랑하는 거대 사슴.
또 그런 그들을 사냥하면서 살던, 번개 같은 스피드와 그 절삭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손톱을 가진 작은 괴물 다람쥐까지.
바깥세상과 먹이 사슬이 거꾸로 된 듯한 48층의 몬스터들이 옆에 있는 먹잇감을 못 본 체하며 그야말로 개떼처럼 돌진해 오고 있었다.
“X발…….”
층 전체를 초토화시키며 전진하는 그들을 피해 숨어 다니던 것들이, 갑자기 한마음 한뜻이 되어 눈을 벌겋게 물들인 채 달려오는 모습은 너무나도 이질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타이니의 전생 경험을 통해,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이다. 산양 머리.”
“왜, 이제야……!?”
“세뇌하는 데 시간이 걸린 탓이겠지.”
타이니는 인상을 쓰면서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딱 전생에 겪었던 일이다.
물론 그때는 덤벼드는 모든 놈을 학살한 뒤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도 산양 머리 놈을 때려죽이는 데 성공했지만, 그 과정에서 극심한 부상을 피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은 그때보다 경지가 낮은 데다, 적에겐 비등한 동료가 여럿 있는 상황.
그나마 나은 점을 찾자면 자신에게도 루나와 월랑이 있다는 것인데, 이걸 활용할 방안이라면…….
“컹!”
“뒤쪽을 뚫자.”
월랑과 타이니의 감각이 집중되며, 몰려드는 몬스터들 사이에서 그놈들을 세뇌한 익숙한 영파의 자취를 읽어 냈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셋은 약속한 것처럼 일제히 움직였다.
월랑을 탄 타이니, 그리고 그 그림자에 스며든 루나.
그들은 그 상태의 자신들을 향해 겁도 없이 달려드는 몬스터 무리 중 그나마 수가 적은 쪽으로 돌진했다.
* * *
현신한 육체를 작게 압축하여 그 성능을 더욱 강화하는 능력을 깨친 월랑.
정령술 6단계에 오르며 거의 집채만 한 크기로 커졌던 월랑이 타이니가 타기 편한 크기로 작아졌고, 그에 비례해서 속도도 한층 빨라졌다.
거기에 타이니가 탑승하여 동조율을 극도로 끌어올리자, 둘 모두의 속도와 전투력을 더욱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를 낳았다.
자연스레.
“하!”
뻐어어어억.
돌진하며 휘두른 워해머 한 방에 그들보다 큰 돌 늑대가 공처럼 튕겨 나갔고.
콰아아아앙!
이내 몸이 폭탄처럼 터지며 전면의 몬스터를 쓸어 버렸다.
그렇게 놈들의 전열에 생겨난 틈을 바람처럼 질주하는 월랑.
그리고 그들의 그림자 속에서는 오러가 담긴 날카로운 돌조각이 쏘아지며, 황급히 그 뒤를 쫓는 몬스터들을 덮쳤다.
퍼버버버벅.
빠르지만 대단한 힘이 담기지는 않은 공격.
얕은 상처 정도만 남긴 돌조각 세례에 몬스터들은 움찔도 하지 않고 그대로 월랑의 뒤를 쫓으려 했지만, 어쩐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크륵?”
“끄으?”
쿵.
털썩.
상처 부위부터 검은 먼지로 화해 사라지는 자신의 신체를 허망한 눈으로 내려다보다 연달아 쓰러지는 몬스터들.
그 공격을 피해 낸 나머지 몬스터들이 동족의 시체를 넘어 돌진했지만, 적들은 은빛 흔적만 남긴 채 이미 저만치 사라져 가고 있을 뿐이었다.
두두두두두.
– 이대로, 계속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질주하는 와중, 귀에 걸린 그림자로 전달된 음성에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계속 이렇게 갈 순 없을 거야. 놈이 아래층의 몬스터까지 끌어모은다면, 결국 우리가 몰리게 되겠지.”
생각해 보니, 전생에도 그랬던 듯했다.
‘어차피 수가 정해져 있을 테니 다 때려죽이면 된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다 엄청난 몬스터의 대군을 상대하게 된 탓에 거의 탈진 상태까지 몰렸었더랬다.
그놈이 있던 50층에서만 몬스터가 끝도 없이 생산될 리는 없으니, 다른 데서 끌어들였다고 봐야 했다. 즉, 이번에도 그렇게 될 확률이 높았다.
“나중에는 아무리 피하려 해도 결국 놈들과 마주칠 수밖에 없을 거야.”
– 그럼, 어떻게?
“……나도 몰라.”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저 지금의 이 질주가 그 답답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식혀 줘서 좋은 생각이 떠오르길 바랄 뿐이었는데.
“컹!”
“응?”
“컹. 컹!”
“……어!?”
– 뭐래?
“월랑이, 방법이 있다는데?”
월랑의 의식이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해 왔다.
“오! 그래, 확실히 여기라면…….”
그것은 타이니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수법이었다.
적어도 놈들 사이에 틈을 만들 가능성은 있을 듯했다.
“그래, 해 보자.”
“컹!”
잘 생각했다는 듯 신나게 짖는 월랑.
이내 그들은 질주하던 방향을 반대로 틀어, 몬스터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