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트리플 헤드 드래곤
– 역시, 왔다.
천 개의 눈이 음산한 뜻을 동지에게 전했지만, 커맨더의 답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괴물’이 사용한 마법은 계층을 초월해 지배자들을 모으는 중심이 되었던 커맨더로서도 쉽게 뿌리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었으면, 이제 커맨더는 없어도 된다.
기세를 탔으니 군단은 이제 멈추지 못한다. 멈추면 결국 죽으리라는 것은 아무리 멍청한 마수라도 알 테니까.
또한.
우우우웅.
검은 안개가 요동치는 것을 보니 커맨더가 마냥 허무하게 당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 차라리 잘됐어.
놈이 괴물의 머리 중 하나만 감당해 줘도 충분하다. 이미 도구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으니까.
천 개의 눈은 그 생각에 속으로 웃으며, 괴물의 나머지 두 머리가 쓰는 마법을 방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아직 닿지 않는가.
두 머리의 마법을 동시에 무력화하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천 개의 눈은, 그중 더 위험해 보이는 검은 머리의 마법을 봉쇄하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하나의 머리.
– 건방지구나!! 미물!
분노한 괴물의 음성과 함께 하늘을 메우며 쏟아지는 푸른 불길은.
– 막아라, 거인!
악마급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다루기 쉬운 외눈 거인을 움직여 몸으로 때우게 했다.
“꾸에에에에에!”
거인의 비명이 전장을 떨쳐 울렸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구 하나가 당해도, 어차피 그 빈자리를 메울 변수들이 오고 있으니까.
이제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길었다. 복수의 시간이다. 미궁의 주인이여.
아주 오래전, 천 개의 눈이 60층의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을 때 등장한 저 괴물은, 그가 자랑하는 마력 운용법을 ‘본능에 의거한 하등한 수법’이라 매도했다.
그저 매도로 끝났으면 분노하고 말았을 일이지만, 놈은 그 원리가 짐작조차 되지 않는 고차원적인 수법으로 그의 마력 운용법을 완벽하게 무력화시켰다.
게다가 제각기 다른 속성을 담아 수백 가지 마력 운용법으로 다른 몬스터들을 농락했던 그의 촉수는, 놈의 ‘이빨’에 모조리 뜯어 먹히고 말았다.
자신의 가장 큰 무기가 봉인되는 바람에 반항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먹이가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가능성이구나. 다시 익을 때까지 남겨 두마.
목숨까지 놈의 손에 농락당했다.
천 개의 눈은 그때부터 놈의 수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촉수를 뜯어 먹힌 만큼 영혼의 격은 추락했지만, 놈이 보여 준 상상 이상의 마력 운용법은 그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기도 했다.
분하지만, 여태 자신이 정말 단순하게 마력을 다루어 왔음을 자각한 것이다.
마(魔)력을 운용하는 법(法)이 따로 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오랜 세월 동안, 천 개의 눈은 놈을 엿 먹일 방법을 강구해 왔다.
비록 부족한 영격일지라도 마력을 다루는 수법만은 발전을 거듭한 끝에, 그도 자신만의 ‘마법’이라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있었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것은.
– 움직여라, 하찮고 위험한 것들아! 놈의 빈틈을 만들어라!!!
저 외부의 것들이 지닌 힘. 거대 고릴라와 박쥐 악마를 전투 불능으로 만든 그 일격들이라면, 놈에게도 충분히 통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자신이 저 괴물을 위해 만든 수법을 통해 오래된 원한을 갚을 것이다.
몬스터에게 어울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오랜 기억 속 깊은 원한을 떠올린 천 개의 눈, 그의 무수한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떠올랐다.
그런데.
스아아아.
– ……안 움직여?
괴물의 발밑까지 다가온 그 변수들이 움직이지 않았다.
게다가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놈들은 자신과 커맨더의 마력이 주입된 덕분에 존재감만 느껴질 뿐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의 눈앞에서는.
– 네놈도 새로운 변수로구나.
괴물의 세 머리가 동시에 눈을 빛내며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이런……!
순간적으로 위축된 천 개의 눈이 빠르게 주변 상황을 파악했다.
거인은 반쯤 무릎을 꿇은 채 신체 재생을 위해 마력을 집중하고 있었고, 커맨더를 둘러싼 검은 안개 역시 요동치고 있긴 하나 그 안에서 특별한 움직임은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도구들은 모두 놈의 부하들과 치열하게 격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
그때, 천개의 눈의 몸체에 늘어진 그림자 한 가닥이 외부에서는 보이지도 않을 그의 귀를 통해 소리를 전했다.
[네가, 기회 만들어. 우리가, 끝장낸다.]외부의 것들이 내는 이상한 패턴의 진동.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 영역의 감정 해석을 거쳐 그의 뇌에 전달되었다.
그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불쾌하고 당혹스러웠지만.
– 충분히 새로웠다. 그러니 이제 죽어라.
거대한 마력이 요동치며 전신을 옭아매고, 자신의 영혼을 뜯어 갔던 세 머리의 ‘이빨’들이 동시에 다가오는 것이 보인 순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 어림없다!! 쉽게 죽을까 보냐!!
천 개의 눈, 그 전신의 눈동자에서 솟구친 검붉은 마력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 * *
우르르르르르릉.
꽝.
– 키에에에!
– 크롸롸롸!
번쩍.
콰아아아아앙!
거대 마수들이 떼를 지어 세상을 뒤엎을 듯이 요동치는 전장.
그 중심에 있는 트리플 헤드 드래곤의 그림자가 본체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살짝 꿈틀거렸다.
반정령화 상태로 루나가 넓게 펼친 ‘그림자 장막’에 동화되어 있던 타이니의 눈동자는.
‘이런 기회는 다시는 없어.’
그 200m쯤 위에 보이는, 드래곤의 세 머리와 천 개의 눈이 충돌하는 지점을 향해 있었다.
천 개의 눈의 몸체에서 퍼져 나온 검붉은 파동이 드래곤의 세 머리를 막고 주춤하게 만드는데.
우우우우우웅.
찌이이이이이잉.
번쩍이는 불빛이나 강력한 충격파는 없었지만, 공간을 떨쳐 울리는 진동과 영혼을 자극하는 불쾌한 느낌이 그림자를 사정없이 흔들었다.
엄청난 마력을 지닌 두 존재가 그의 인지 범위를 벗어나는 마법으로 서로 충돌하며, 불규칙적인 마기의 파장을 사방에 뿌리고 있는 것이다.
“끼에!?”
– 무슨!?
“취르륵!”
– 하찮은 것 중에, 군주의 마법에 대응하는 것이 있다!
악마급 마족들마저 그 마법에 흔들릴 정도의 위력.
그리고 놈들이 그 정도라면 자연히.
– 이제 곧 한계야.
루나 역시 오래 버틸 수 없을 터였다.
애초에 동료까지 끌어들이는 광범위 은신술, 그림자 장막은 동급의 존재에게도 쉽게 걸릴 정도로 격이 떨어지는 수법이었다.
거기에 타이니의 반정령화가 더해져 그의 존재감이 그나마 흐려진 데다 전장이라는 특수한 환경도 한몫한 덕에 여기까지 온 것이지, 그들이 본격적으로 적의를 보인다면 주변의 모든 마수가 대번에 눈치챌 것이다.
지금 이 전장의 중심에는 그들보다 격이 떨어지는 몬스터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래서일까.
– 정말, 가능해?
루나는 여전히 불안한 듯했다.
그에 타이니는 고개를 끄덕여 보지만, 솔직히 지금은 상황이 조금 애매했다.
저 트리플 헤드 드래곤이 큰 타격을 받은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이 상태로 기습해서 그 꿈의 일격을 제대로 성공시킨다고 해도.
‘저놈을 끝장낼 수 있을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자 마음속에 남아 있던 미련이 다시 그의 시선을 안개에 뒤덮인 커맨더 쪽으로 이끌었다.
‘녹턴만 있으면.’
정말 자신감이 생길 텐데.
녹턴의 영원성은 아직 확신이 없는 그 수법의 부작용을 확실히 버텨 낼 것이고, 위력 증폭은 드래곤의 비늘이라도 쉽게 뭉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멸절의 권능은,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을지 모를 신화 속 용의 회복 능력까지 없애 버릴 터.
그러던 그때, 그 염원이 통했을까.
그 순간 검은 안개 사이에서 검은 기운을 두른 망치가 튀어나왔다.
“끼에에에에!”
– @!!@ 괴물이!!
그 안개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치 칼날 밭에서 구른 것처럼 전신에 상처가 가득한 커맨더가 공간 자체를 찢어 버릴 듯 뭉개며 뛰어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놈이 향하는 곳, 녹턴을 휘두르는 대상은 다름 아닌 천 개의 눈과 대치 중인 용의 머리들이었다.
‘옳지!’
그것을 본 타이니의 눈이 빛났다.
“뒤를 부탁해, 루나.”
– 응.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반투명한 몸이 그림자에서 빠져나와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자신감이 일순간 급상승했다.
실로 절묘하기 그지없는 타이밍에 나타난 커맨더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요소가 자신이 생각한 방식으로 움직여 주고 있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그 직후에 바로 깨어져 나갔다.
– 모를 줄 알았더냐, ‘운명의 파편을 지닌 인간’이여.
천 개의 눈에게 묶여 있는 줄 알았던 용의 검은 머리, 그 눈동자가 허공을 달리는 자신의 눈을 직시하는 것이 보였다.
파지지지직.
천 개의 눈이 뿜어내는 검붉은 마력과 대치하느라 확실히 자유롭지는 못한 듯했지만, 곧이어 나머지 두 머리도 타이니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이 대치하고 있는 천 개의 눈이나 다가오고 있는 커맨더보다 그가 더 중요하다는 듯이.
– 아직 파편을 다 개화하지도 못한 상태로 내 앞에 서다니.
– 너에게는 불행, 나에게는 행운이로구나.
– 네 파편이 영락한 내 영혼을 살찌우게 될 것이니.
그 순간 용의 눈동자 세 쌍이 불꽃 같은 붉은 영기를 일렁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 명하노니. 너, 죽어라.
놈의 마력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마땅히 그 말대로 되어야 한다는 듯한, 담담하게까지 느껴지는 정신파가 울리는 순간.
‘컥!’
타이니는 형체 없는 무언가가 자신의 영혼을 거세게 후려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게 무엇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영혼살!?’
9단계의 권능으로, 8단계에 올라 ‘영역’을 가지지 않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최고이자 최악의 살상기.
그의 영혼을 쥐어짜는 듯한 압박감이 실시간으로 영혼을 소멸시키려 하고 있었다.
‘못 쓰는 줄 알았는데?’
그저 경악하고만 있던 그 순간, 타이니보다 먼저 그의 어깨 갑옷 아니무스가 반응했다.
우우우웅.
마치 자신의 존재를 잊지 말라는 듯이.
동시에 타이니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의 경지를 월등히 초월한 자신의 영혼과 초월무구, 아니무스의 힘이라면 이 영혼살의 권능을 버틸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버티는 것만으로도 급박하던 전장에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 하!?
당혹스러워하는 용의 정신파와 함께, 세 머리의 눈동자에서 붉은빛이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큰 타격을 입은 듯한 느낌.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영혼살을 버텨 낸 반동이라는 사실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역시! 불완전해!’
제대로 된 9단계급, 반신의 존재라면 상대에게 영혼살의 권능이 통하지 않았다고 해서 타격을 입을 리는 없다. 그들에게 그것은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권능일 뿐이니까.
하지만 지금 저 드래곤은 다르다.
마력은 쓰지 않았어도 정신력의 상당수를 할애한 듯, 그 반동만으로도 놈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리고 그 결과.
– 흐하하하! 복수의 시간이다!
천 개의 눈이 뿜어낸 검붉은 마력이 세 머리를 동시에 옥죄었고, 그 위로 녹턴을 치켜든 커맨더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끼에에에에!”
– 죽어라. 괴물!!!!!
커맨더의 고함과 함께 녹턴의 망치 머리에서 검붉은 마기가 거세게 치솟아 오르더니, 그대로 용의 세 머리 중 가운데에 있는 붉은 머리를 강타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르릉.
순식간에 퍼져 나가는 굉음과 강렬한 충격파.
그 뒤를 이어 용의 소름 끼치는 비명이 나머지 ‘두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크롸롸롸롸롸롸롸롸!!”
– 감히! 감히! 감히!!!!
– !@ 위해 !$ 무구로 나를!!!
축 늘어진 채 울컥 피를 토해 내는 붉은 머리의 양옆, 분노한 두 머리에서 천장을 꿰뚫을 듯한 마기가 솟구쳤다.
마치 위기 속에서 생명력까지 짜내는 발악과도 같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꽈아아아앙!
번쩍!
녹색 머리가 천 개의 눈을 번개처럼 후려치고, 검은 머리가 짧게 뿜어낸 광선이 커맨더를 직격한 순간.
간신히 몸을 비튼 커맨더의 왼팔이 그대로 소멸되며, 그가 쥐고 있던 녹턴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얼핏 빗나간 듯했지만, 남은 두 머리의 시선은 떨어져 나간 커맨더가 아닌 떠오른 녹턴을 향해 있었다.
– 아무리 지루하다 해도.
– 영락했다 해도, 너무 어리석었다.
– 처음부터 내가 보관했어야 했다.
– 지금이라도.
검은 머리가 나가떨어진 커맨더를 향해 다시 이빨을 드러내는 동안, 녹색 머리도 그대로 입을 벌리며 녹턴을 삼키려 들었다.
그리고 그 직전.
붉은 바람이 솟구치며 나타난 손이 녹턴의 손잡이를 잡아챘다.
너무나도 새빨간 용혈을 전신에 뒤집어쓴 인간의 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