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크게(Big), 한 방(Bang)! 그리고 끝
– 감히!!
드래곤의 발악에 대꾸해 줄 시간은 없었다.
우우우웅.
손에 잡히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전해지는 진동은 분명 착각이 아닐 터였다.
‘역시, 기억하고 있었구나.’
타이니는 손에 잡히는 순간 자신을 반가워하는 녹턴의 반응을 느끼며, 온전히 녀석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럼으로써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꿈꿔 오던 환상의 일격을 반드시 성공시킬 수 있다고.
우우우우웅.
영혼살을 극복하며 다시 튀어오른 순간 어쩔 수 없이 뒤집어쓴 붉은 머리의 피.
그 용혈에서 느껴지는 이상할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도 그 자신감을 더해 주었다.
용이 죽으면서 토해 내는 용혈을 뒤집어쓴 자는 용들의 적개심을 사는 대가로, 엄청난 생명력을 부여받는다는 전설이 사실처럼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내게는 의미도 없고, 당장은…….’
우우우웅.
‘이게 더 중요하지.’
녹턴을 이용해 발동한 블랙홀이 그가 뒤집어쓴 모든 용혈을 곧바로 흡수하며 에너지를 축적했다.
그리고.
– 죽어라!
– 그리고 운명의 파편을 내게 바쳐라!
일순간 다시 그에게 시선을 집중한 드래곤의 남은 두 머리.
녹색 머리가 진녹색의 안개로 공간 전체를 뒤덮고, 그 사이로 검은 광선이 그를 향해 정면으로 쏘아졌다.
그러나 그 녹색의 독기 어린 브레스도, 루나의 죽음의 권능과 비슷한 힘이 느껴지는 광선도 녹턴의 망치 머리에서 점점 크게 박동하기 시작한 검은 구체를 뚫지 못하고 그대로 빨려 들어왔다.
– 어떻게!?
– 분명, 아직 개화하지 못했는데!?
눈에 띄게 당혹스러워하는 적의 정신파, 그리고 블랙홀 안에서 한없이 응축되는 거대한 힘이 타이니에게 확신을 더해 주었다.
드래곤의 힘은 분명 막강했으니, 녹색 브레스의 일부와 검은 광선을 흡수한 것만으로도 블랙홀의 용량을 거의 꽉 채워 버린 것이다.
‘정말 할 수 있다.’
두근거리는 심장 고동이 느껴지자, 절체절명의 상황 속에서도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언제나 바라 온 절대적인 힘의 이미지가 뇌리에 또렷이 떠올랐다.
불행한 삶의 시작점에서부터 쌓아 온, 불합리하고 부당한 모든 것에 대한 분노를 터트릴 힘.
– 가로막는 모든 것을 부수는 강력한 한 방.
그가 추구했었던, 그리고 지금도 추구하는 가장 이상적인 힘의 형태가 머릿속에 또렷이 그려졌다.
그리고 그의 의지에 따라 몸 안의 마나가, 블랙홀에 뭉쳐진 적들의 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검은 구체 안에서 끝없이 작은 한 점으로 뭉쳐지는 힘.
현생에 새롭게 변화시킨 유성 떨구기가 흡수한 힘을 토해 낸 것에 폭발 속성을 더하는 식이었다면, 지금의 방식은 근본부터 달랐다.
끝도 없이 응축되는 그 거대한 에너지가 중력 속성에 의해 가늠조차 안 될 정도로 작게 압축되자, 일순간 무형의 에너지가 한없이 작은 점으로 실체화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 작은 점에 폭발 속성이 더해졌다.
– 폭발이란 불꽃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일그러트리고 팽창시켜 밖으로 터져 나가게 하는 것.
이해할 수 없었던 그 말도 이 순간만큼은 명확하게 뇌리에 새겨졌다.
그리고 극한까지 뭉쳐졌던 에너지의 본질, 본래 인간의 감각으로는 느끼지도, 만지지도 못했을 본질의 구조가 그의 의지에 따라 무너졌다.
그러자 그 내부에서 가장 근원에 가까운 핵들이 갑자기 일그러진 구조 속에서 안정성을 찾기 위해 다른 핵과 합쳐졌고, 그 결과 그 극미량의 핵을 제외한 모든 구조가 일시에 붕괴되며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 냈다.
그리고 그의 심상에서 시작된 빛은 그대로 실제 에너지가 되어 녹턴을 통해 발산되었다.
정상적으로는 어느 누가 어떤 무기를 쓴대도 절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에너지.
하지만 녹턴의 영원성은 그것을 고스란히 품고 버텨 냈으며, 에너지가 생산되는 과정에서 남은 극미량의 핵이 타이니의 육체에 흡수되며 잠시나마 그 일격을 휘두를 수 있는 내구성을 부여했다.
그리고.
번쩍.
그 에너지가 터져 나온 순간, 확신이 들었다.
약점을 노릴 필요도 없다. 신화 속 드래곤이건 뭐건, 대상이 무엇이건 상관없다.
‘이거라면!’
– 무엇이든 부술 수 있다.
“흐아압!”
그 확신 속에서 치켜든 녹턴이 무서운 기세로 아래로 휘둘러졌다. 당장이라도 그를 찢어발길 듯 다가와 있는 검은 머리의 이빨을 향해.
그 순간 머릿속에 그려진 것은 항상 상상해 왔던 꿈속의 일격.
가슴속의 한을 모조리 토해 내고,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는 폭력성이 더해진 한 방.
‘핵(Nuclear)에너지로 만들어진 일격(Impact)이…….’
아니, 아니다.
굳이 복잡한 이미지는 필요 없었다. 긴 세월 간절하게 바라 온 목표는 가장 단순한 것이었으니.
그 바람 그대로, 간단하게.
– 크게(Big), 한 방(Bang)!
형언할 수조차 없는 노을빛 파멸이 눈앞에 다가온 거대한 이빨을 향해, 아니 그 근원을 향해 내려앉았다.
그리고.
번쩍.
———!!!!!!
그의 감각으로도 가늠할 수 없는 에너지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순간.
목표와 그 주변의 모든 것이 짙은 노을빛 속에서 소리도 없이 터져 나갔다.
‘영혼살’의 권능이 일부 담긴 용의 이빨도, 한때 찬란했던 영광을 증명하는 뿔도, 머리도.
커맨더의 일격에도 흐트러지지 않았던 드래곤의 육체와 비늘까지 전부.
– 안 돼! 이, 이럴 순 없어!! 안 돼애애애!!!!!
직격을 피한 녹색의 머리도 짙은 노을빛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멋지군.’
속에 든 모든 것을 토해 낸 듯한 막대한 탈력감 속에서 추락하던 타이니가 그 광경을 보며 미소 지었다.
마침내 염원하던 꿈속의 일격을 재현해 낸 순간.
몸에 남은 힘은 없어도 마음만은 날아갈 것처럼 상쾌했다. 모든 것이 백열되며 부서지는 파괴의 정경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일 만큼.
물론 흡족한 그의 마음과 상관없이, 그 파멸의 빛은 여전히 확장하며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꽝!!
뒤늦게 터져 나온 폭발음과 거기서 비롯된 충격파.
용의 육체를 사멸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주변의 공간 수백 미터를 말 그대로 그냥 터트려 버린 그 일격은 전장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르르르릉.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캬아아아아악!”
“크롸롸롸롸!”
지근거리에서 전투를 벌이던 악마급 몬스터들까지 튕겨 나가는 광경이었다.
‘영역’을 가진 몬스터들의 거체가 직접적인 충격도 아닌 그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공깃돌처럼 가볍게 날아가는 장면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거기다 그 순간에 그들의 갑각이나 핏덩어리들까지 흩어져 허공을 수놓았으니, 중상이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절대 가벼워 보이는 부상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몬스터들은.
– 주군!!!
– 어찌, 이런 일이……!
–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 안 돼애애!!!
바로 용이 사멸하는 순간 동시에 털썩 쓰러진 그 부하들.
전투 불능 상태였던 마누스와 이우리스는 그 순간 육체가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고, 남은 다섯 역시 충격에 튕겨 나감과 동시에 빠르게 마력이 흩어지며 몸이 사라져 가는 것이 보였다.
‘무슨 마법 같은 걸로 엮여 있었나?’
자세한 사정 따윈 모르겠지만, 덕분에 타이니는 한시름 놓은 셈이었다. 상상했던 최악의 경우는 저놈들이 죽자고 자신에게 따라붙는 것이었으니까.
다행히.
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르르르르릉.
“끼에에엑!”
“크롸롸롸!”
대미궁을 무너트릴 듯 점점 거세지는 지진 속에서, 마수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용의 브레스와 빅뱅의 여파까지 연달아 받아 내며 멀리 튕겨 나간 커맨더는 아직 의식을 차리지 못한 듯했고, 다른 대미궁의 악마급 마수들 역시 나가떨어진 뒤에도 타이니를 보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상식을 벗어난 이변을 만들어 낸 그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서, 오히려 먼저 용에게 한 대 맞고 떨어져 나갔던 천 개의 눈이 멀리서 그를 향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 이, 이런 위험한 것이……!
용에게 받은 공격이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던 듯, 멀쩡해 보이는 겉모습에 비해 이동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렸다.
하지만 그 살의만큼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거기다.
스아아아아!
– 모두 물러서지 마라! 저놈은 이미 힘이 다했다!!
수많은 눈동자를 빛내며 뿜어내는 정신파.
‘이런…….’
그에 뒷걸음질 치던 악마급 마수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멈추기 시작하는데.
그 순간.
퓨슉.
– 놈을……!?
가벼운 소음과 함께 천 개의 눈의 몸 한가운데에 검은 선이 통과하는 듯한 흔적이 생기더니, 이내 그 지점에서부터 검은 핏줄 같은 것들이 퍼지며 놈의 전신에 기괴한 문양을 새기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아!
– 이, 이런!!
단말마와 함께 그대로 허공에서 추락하는 천 개의 눈.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놈과 타이니를 번갈아 보며 견적을 내던 악마급 마수들이 모두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추락한 놈의 잔해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이내 떨어지는 타이니의 몸을 가볍게…….
쿵.
아니, 무겁게 받아 냈다.
“윽! 왜 이렇게, 무거워.”
그리고 그 그림자, 루나를 보며 타이니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 속성을 제대로, 조절할……. 큽, 힘이 없어.”
마치 루나의 끊어서 말하는 어투처럼 힘겹게 말을 잇는데, 그녀의 시선은 타이니보다는 그의 손에 잡힌 거대한 워해머를 향해 있었다.
“그게, 녹턴?”
“그래. 드디어 얻었어.”
타이니를 내보낸 채 전장을 벗어났던 루나가, 그에게 들었던 상황이 벌어지자마자 다시 달려온 것이었다.
“……확실히, 대단해.”
그리고 녹턴을 바라보던 그녀의 보랏빛 눈이 이내 점점 커지고 있는 바닥의 균열로 향했다.
“녹턴도, 타이니 너도, 말했던 것보다, 파괴력 훨씬 커. 대단해. 여파가, 어디까지……?”
“아니, 저건 아마 그 드래곤이 죽으면서 생긴 후유증일 거야. 대미궁의 본질에 손상이 간 걸 테지.”
“본질?”
“어, 아마도. 아니, 확실히 그래.”
빅뱅으로 놈의 숨통을 끊은 순간, 타이니는 자신이 대미궁의 근원 중 하나를 박살 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단지 그것만으로 대미궁이 무너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이곳이 예전과 같진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었다.
그 파멸적 파괴의 흔적이 더없이 만족스러워서 절로 미소가 나오는 것은, 그가 지금 정신이 나갔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결국…… 해냈어.”
타이니의 입에서 나온 기쁨의 탄성.
전생에도 이루지 못했던 일을 드디어 성취한 자의 뿌듯함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서.
“나도.”
“응?”
“나도 도움 된 거지?”
“하……. 당연하지. 우리가 해낸 거야. 우리가.”
그 대답해 ‘히’ 하고 웃는 루나를 보다 보니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이상한 것도 눈에 들어왔다.
“그건…… 뭐야?”
“아, 이거? 저 눈깔 괴물, 핵 같아, 보이길래…….”
“뭐!?”
그 말에 탈진한 채 루나에게 안겨 있던 타이니의 고개가 바로 휙 하고 돌아갔다.
“죽음의 오러에, 오염되기 전에, 적출했……. 왜?”
“왜라니? 그딴 걸 왜 빼낸 건데?”
“그란돌이, 갖다 달라고, 했잖아?”
“어……? 아……!”
자신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그걸 생각하고 있었다고?
“나, 초월무구, 못 구했어. 이걸로, 그란돌이 만들면, 내 거. 괜찮지?”
거참.
“……그래.”
초월무구, 그 단어를 다시 꺼내는 루나의 눈동자에 불꽃이 타오르는 것을 본 타이니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도 있었다.
바로 격전 중 트리플 헤드 드래곤이 남겼던 정신파의 내용.
한창 전투 중이었으니 정신없이 듣고 흘렸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이상했던 말.
– !@ 위해 !$ 무구로 나를!!!
그중 뭉개졌던 단어는 인간의 언어보다 복잡한 뜻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정신파로 한 번에 전달이 되지 않았다.
그분? 예비? 아니면, 신? 제물?
게다가 단어는 잘 들렸으나 다소 애매한 뜻이 담긴 정신파도 있었고.
– 아무리 지루하다 해도.
– 영락했다 해도, 너무 어리석었다.
– 처음부터 내가 보관했어야 했다.
– 지금이라도.
명확히 녹턴을 향해 입을 벌리던 놈의 모습도 다시금 떠올렸다.
그러자 늘어진 몸으로도 손잡이를 쥐고 있던 녹턴으로 시선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빅뱅의 힘을 감당하느라 마기는 자연히 씻겨 나갔고, 녹턴 특유의 그 위험하고 불길한 느낌의 기세도 많이 죽은 듯했지만.
‘너도 아직 비밀이 남아 있는 거겠지?’
우우웅.
그렇다고 대답하는 듯한 녹턴을 보며 타이니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거기다.
– 운명의 파편.
– 개화……!
의지로 전해지는 정신파임에도 이해가 되지 않는, 그럼에도 또렷하게 기억에 남은 그 말들까지.
‘알아볼 게 많아.’
그렇지만.
“그란돌한테, 녹턴보다, 더 뛰어난 칼, 만들어 달라고, 할 거야. 반드시……!”
입술을 꾹 다물며 무언가 다짐하는 루나를 보며 타이니는 희미하게 웃었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은 여전히 산재해 있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성과를 즐겨도 될 테니까.
그래,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으니까.
“일단 좀 푹 쉬고, 회복한 다음에…… 돌아가자.”
돌아가자.
그 말이, 계속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루나의 입가에도 타이니와 같은 미소를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