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실버 팽 vs 타이니
다시 옛 생각이 났다.
– 번개 속성을 몸 안에서 조정해서, 신경을 가속시키는 것으로 속도를 높이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제일 빠르지.
– 인간이 번개 속성을 개화했어도 나처럼 하면 신경이 타서 죽거나 폐인이 될걸? 푸하하. 나만 할 수 있는 거야.
고작 오러유저 수준(?)으로 오러익시더인 자신의 공세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던 녀석이 자랑스레 지껄인 말.
그게 하도 얄미워서, 타이니는 놈의 말을 토대로 ‘오러 신경망’이라는 기술을 개발했다. 자신의 ‘영역’에 미세한 오러를 깔아 놓고, 그 안으로 들어오는 움직임에는 그야말로 반사적으로 반응할 수 있게.
그때 처음으로 녀석을 신나게 두들겨 팰 수 있었다.
– 자, 잠깐! 이, 이건 반칙……!
– 닥쳐!
뻐버버벅.
정말이지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그 뒤론 육체 능력으로만 겨뤘었지, 아마?’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수동적인 비기를 쓰지 않아도 녀석의 속도를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정령 합신으로 인해 실버 팽만큼 커진 육체는 녀석을 압도할 만큼의 근력과 탄력, 순발력을 낼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녀석처럼 번개 속성을 활용하진 못하더라도.
‘다른 방법이 있으니까.’
적어도 직선으로 달리는 질주에서만큼은 말이다.
중력 속성, 극경화 전환.
폭발 속성, 추진력 강화.
펑.
발밑에서 마나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실버 팽과 가까워지는 몸.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녀석의 눈동자가 확 커지는 것이 보이고.
‘일단 한 방.’
타이니의 주먹이 처음으로 실버 팽의 몸통을 직격했다.
쾅!
“꺽!”
순간적으로 반사 신경을 발휘해 몸을 비틀어 보지만, 그 일격에 실버 팽의 몸이 형편없이 튕겨 나갔다.
녀석에게 닿기 직전 무거워진 육체의 관성이 실린 주먹은 오러가 없더라도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담고 있었고, 그건 실버 팽의 의식을 아득하게 날려 버리기에 충분했다.
쾅. 쾅!
우르르르릉.
광장을 둘러싼 인파를 넘어, 대수림의 나무까지 몇 그루 부러트리며 숲속에 처박히는 늑대인간.
“피. 피해!”
“나무가 쓰러진다!”
쾅.
하지만 큰 타격을 받았을 늑대인간은 그 와중에도 발밑의 나뭇등걸을 폭파시키며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이번에는.
“크르르르르르.”
사나운 짐승의 소리를 내면서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커다랗고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늑대인간의 살벌한 인상을 다소 누그러트리던 실버 팽이, 어느새 눈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로 사방으로 번갯불을 뿜어 대고 있었다.
그리고 수인족의 붉게 물든 눈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대륙인 대다수에게 상식이었다.
“광폭화……!?”
“피, 피해!”
“문나이트가……!”
일순간 다급한 비명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저릭!”
“알고 있다고!”
에스티나와 저릭이 흩어지는 상인들의 앞으로 뛰어들며 그들을 보호했고, 덩굴 담장 위에서 타이니를 배웅하러 나왔던 엘븐나이트들마저 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이젠 샛노란 오러까지 피워 올리고 있는 늑대인간의 붉은빛 시선은 오직 자신을 그렇게 만든 원흉, 타이니에게 꽂혀 있었다.
그리고 타이니는 오히려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역시 이렇게 되나.”
“타이니?”
“그대로 있어. 어차피 아무렇게나 미쳐 날뛸 정도로 수양이 얕은 놈은 아니야.”
아직은 전생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말이야.
타이니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붉은빛 안광이 번뜩이더니, 한순간 시야에서 사라진 실버 팽의 몸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마치 그의 머리를 씹어 삼키려는 듯 커다란 입을 쩍 벌리고 샛노란 오러까지 이빨에 두른 채로.
하지만.
쾅!
“캥!”
정령 합신 상태로 마나 신경망까지 가동하고 있던 타이니의 반응이 그보다 더 빨랐다.
아무리 광폭화하여 신체 능력이 몇 배로 상승한 실버 팽이라 하더라도, 그 움직임을 예상하고 수비 태세를 갖추고 있던 타이니를 어쩔 수는 없었던 것이다.
“냄새나는 아가리를 어디다……. 쯧.”
그렇게 펀치 한 방에 실버 팽의 몸을 허공으로 날려 버린 타이니는 그런 녀석을 향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들어라, 사림! 너는 광폭화한 상태로도 이성을 유지할 수 있다!!”
광장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
난장판이 된 장내에서 그 의미를 알아듣는 이는 거의 없었지만, 목이 뽑힐 듯한 충격과 함께 허공에 떠오른 늑대인간의 귀가 살짝 쫑긋하는 것을 타이니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몸을 뒤집어 착지한 늑대인간의 붉은 눈이 살짝 흔들리는 것도 그의 눈에 확실하게 들어왔다.
“정신 다잡아! 그럴 수만 있다면, 그게 네 최고의 비기가 된다!!!”
전생에는 말세의 때나 간신히 익숙해진 것이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일찍 깨치게 해 줄게.’
그 생각으로 연신 고함을 지르려는데.
“크르르르르.”
늑대인간의 붉은 눈동자가 언제 흔들렸냐는 듯이 더욱 진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갔다.
그리고.
“컹!”
신경질적으로 짖는 소리와 함께 다시 사라진 실버 팽의 몸이 어느새 은빛 바람이 되어 타이니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그런 실버 팽의 몸에서 튀어나오던 샛노란 전격마저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본 타이니는 아쉬움에 혀를 찼다.
“역시 쉽게는 안 된다 이거지?”
타이니가 주변의 움직임에 감각을 집중하는 순간 그의 뒤쪽에서 번개처럼 튀어나오는 실버 팽.
그리고 이어지는 박투의 양상은 두 사람이 변신(?)하기 이전의 상황과 비슷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보다 몇 배는 더 빨라진 실버 팽이 세련된 기교보다는 훨씬 야성적이고 난폭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쾅!
“미친놈은!”
뻐어억!
“패서!”
콰앙!
“정신 차리게!”
뻐버버벅.
“만들어야지!”
그에 대응하는 타이니의 움직임 역시 더욱 살벌해져 있었다.
이내 실버 팽이 만들어 낸 붉은 전격이 섞인 바람 속에서 짙은 혈향이 풍기기 시작했다.
그 가장 큰 이유가 실버 팽의 몸에 생겨난 제법 깊은 상처들이라는 것을, 장내의 인원 중 ‘두 사람’만은 또렷이 인식하고 있었다.
“저러다 큰일 나겠는데…….”
“내버려 두세요. 생각이 있겠지요.”
“타이니가?”
“……어, 음. 일단 조금만 더 지켜보자고요.”
엘프와 오크족의 수장이 그렇게 미심쩍고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동안, 그 혈투는 빠르게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뻑!
“정신!”
빠아악!
“차려!”
쾅!
“X신아!”
콰아아아앙!
우르르르릉.
광장의 바닥에 마치 운석이 떨어진 양 커다란 크레이터가 파이고, 엄청난 충격파와 함께 주변이 옅은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그리고.
“미친 수인족은 두들겨 패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면 된다. 네가 나에게 가르쳐 준 거다, 사림.”
“크르르…….”
실버 팽의 한쪽 발목을 움켜잡은 채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아 버린 타이니가 살벌한 웃음을 지으며 녀석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런 타이니의 목 근처에 길게 그어진 옅은 상처에서 핏물이 점점이 배어 나오고 있는 것이, 그에게도 이 대련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물론 그래 봤자 현 상황이 승패를 명확하게 보여 주고 있었지만.
“크륵.”
치명적인 타격 때문일까. 실버 팽의 눈에서 붉은 기가 많이 사라진 듯했고, 이미 끝난 듯한 상황에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자신의 목에서 흘러내린 액체를 발견한 타이니의 표정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피?”
은빛으로 변했던 눈동자가 점차 요동치더니, 이내 그의 입에서 섬뜩한 말이 흘러나왔다.
“자, 이제 광폭화 상태에서 이성 유지하는 연습을 해 보자.”
“크륵!?”
꿈틀거리던 늑대인간이 흠칫 놀라 몸을 떠는데.
“정신이 들면 얘기하라고, 친구.”
여전히 실버 팽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던 타이니의 얼굴에 살벌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일순간에 몸을 돌려 반대편 바닥을 향해 늑대인간의 몸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앙!
“정신이 들어? 아니구나.”
꽈아아앙!
“지금은?”
“끄, 끄륵.”
“역시 아니구나.”
꽈아아앙!
“컹! 커흑!”
“아직!?”
꽈아아아앙!
한순간에 엘븐하임 동쪽 광장에 사람 모양의 크레이터 여러 개가 생겨나는데.
마침내.
“미, 미친놈아! 그만!!!”
“오! 정신이 들어!? 그럼…….”
“그. 그래! 정신 차렸, 크륵. 쿨럭!”
“……그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도 확인해 보자.”
“뭣!?”
꽈아아아앙!
“끄르르륵! 그, 그만!”
“오, 조금만 더!”
“미친 새……!”
콰아앙!
그렇게 계속된 늑대인간 해머질은, 실버 팽이 붉은 기운을 내뿜으면서도 명확하게 인간의 말을 구사한 후에나 간신히 멈추었다.
* * *
“……아무리 수인족이라도, 이 정도 상처면 일주일은 정양해야 할 겁니다. 저 문 아머의 만월 효과까지 감안해서 하는 말입니다.”
빛의 소서러로서 7단계의 원소술사, 대사제급 치료 능력이 있다는 트루엘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리자, 타이니는 창밖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딴청을 피웠다.
대련이 생각 이상으로 격해져서 뜻하지 않게(?) 중상자가 생기는 바람에 일행이 다시 엘븐하임 안으로 들어오게 된 상황.
그 모든 일의 원흉이나 다름없는 자로서 할 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
“……너, 인간. 설명해 봐. 끄으응.”
온몸에 붕대를 감은 늑대인간이 신음과 함께 타이니를 노려봤다.
“그게…… 할 말이 좀 많은데…….”
켕기는 것이 있는 타이니가 연신 헛기침을 하며 트루엘의 눈치를 보자, 연륜만큼의 지혜가 있는 대장로가 웃으며 자리를 피해 주었다.
마침내 방 안에 옛 동료들만 남게 되자.
‘그래도 몇 번 해 보니 할 말이 나름대로 정리가 되네.’
타이니는 다시 전생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믿기 힘든 이야기로군. 하지만…….”
누운 상태의 실버 팽이 에스티나와 저릭, 타이니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지었다.
“세계수의 수호자와 오크의 대전사가, 그리고 광휘의 기사가 나를 놀리기 위해 이런 상황을 짰을 리는 없겠지?”
“사실이다.”
“……그래. 그러면 네가 늑대 투법을 아는 것도 말이 되고, 내 약점을 아는 것도 말이 돼……. 크르릉. 이건 무효다, 알지? 약점을 알고 하는 대련이라니, 어디서 그런 야바위를……! 윽. 끄으응, 젠장.”
말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짜증을 내다가 스스로 아파하는 꼴이 우습기는 했지만, 과하게 예의를 차리는 것보다는 이쪽이 옛 친구의 모습에 가까운지라 타이니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웃음을 보는 피해자는 반대로 경기를 일으켰다.
“웃지 마, 미친놈아! 사람이 사람을 그따위로 휘두, 으윽…….”
옆에 있던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달되는 분노.
하지만 가해자는 뻔뻔하기만 했다.
“덕분에 차가운 광폭화(Cold Berserker) 터득했잖아. 고마운 줄 알라고.”
“……차가운 광폭화?”
“네가 그렇게 이름 지었었다. 일시적으로 몇 배의 육체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이성을 유지하는 상태.”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모두 눈을 치켜뜨며 타이니와 실버 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말도 피해자를 완전히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딴 무식한 방법으로…….”
“전생에도 나와 대련하다가 깨달은 거니까. 그때보다 좀 더, 아니 한참 빨라진 거라고 생각해. 고맙지?”
“……하, 쓰읍.”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차마 욕설을 토해 내지는 못하겠다는 얼굴.
그러다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실버 팽이 다시금 와락 인상을 일그러트렸다.
“그러니까, 전생에도 날 이렇게……?”
“물론. 그때도 정당한 대련이었지.”
뻔뻔한 얼굴로 턱을 치켜드는 타이니의 모습에 실버 팽의 눈이 다시 회까닥 돌아갔다.
“너, 너 이 개새……!”
“잡아!”
“진정하세요, 문나이트!”
저릭과 에스티나가 간신히 그를 진정시킬 때.
“개는 너지, 털만 봐도…….”
시선을 피하며 작게 중얼거리는 타이니의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또렷하게 귀에 꽂히는 순간, 다시금 실버 팽의 눈은 붉게 물들 수밖에 없었다.
“놔! 놓으라고! 마왕이고 뭐고, 그 전에 저놈 먼저 패 죽일 거야!!”
크와아아앙!
한바탕 난리가 일어난 방 안.
하지만 그 시끌벅적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그래, 이래야 너답지. 어우, 아까 존대할 때는 닭살이…….”
태평한 얼굴로 팔을 긁어 대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