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42
242화. 황궁의 이상 사태
– 혼돈의 씨앗이 가까이, 조심…….
– 이것은 내 축복을 받은 아이에게 전하는 마지막…….
“악!!?”
클로이는 소름 끼치는 느낌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일으킨 몸으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데, 전신에 가득한 식은땀과 두근거리는 심장은 꿈의 여운을 쉽사리 잊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릉?”
품에 안겨 잠들어 있던 월이 나른하게 눈을 뜨는 동안에도 두근거리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꿈결에 보았던 아름답고 성스러운 여인의 모습은 아직도 아련한 느낌으로 남아 있었지만, 그와 상반되는 긴장감과 공포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건 설마…….’
절대 일반적인 꿈이 아니라는 직감이 든 순간, 클로이는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하늘에 계신 나의 주께 아룁니다…….”
“킁?”
우우웅.
월의 의아한 시선을 애써 무시한 채 기도를 올리는 클로이.
그때부터 그녀의 전신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한 은은한 성광이 이내 넓은 방 안을 가득 메울 정도로 강렬해지고.
“컹!?”
그제야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월랑이 침대에서 폴짝 뛰어내려 그녀의 옆구리에 머리를 비비는데.
“……신성력이 커졌어. 그것도 많이.”
떨리는 음성을 내뱉던 클로이가 그런 월랑을 바라보다가 이내 녀석을 와락 껴안았다.
“정말 신탁……? 월! 네가 요새 과한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었어. 무시해서 미안해!”
“컹?”
“이, 이럴 때가 아냐. 폐하를 뵈어야 해.”
정식 사제도 아니고 클레릭인 그녀에게 신탁이라니, 절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클로이는 최근 웨어비스트를 압박하기 위한 군사 동원, 사절단, 왕국 연합의 항의 등으로 바빠 밤중에도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는 남편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죄송합니다, 마마. 폐하께서 한동안은 일에 집중하시겠다면서 접견을 거부하셨습니다.”
황제의 집무실을 지키는 호위 기사가 생각지도 못한 말로 그녀를 막아섰다.
“뭐라고요? 내 말 똑바로 전한 거 맞아요?”
“물론입니다, 마마.”
“그런데 폐하께서 거절하셨다고요!? 말이 안 되잖아! 익실란 경은! 익실란 경이라도 다시 불러 줘요!”
황후가 된 뒤에도 늘 궁인들에게 존대하며 예의를 지키던 클로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황궁 기사의 대답은 여전히 칼 같았다.
“죄송합니다. 폐하의 특명이십니다. 황후 전하를 뵙게 되면 일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하시면서…….”
그 헛소리 같은 말은 둘째 치더라도,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그녀만의 직감은 아닌 것 같았다.
“컹! 크르르르.”
품 안에 안고 있는 월마저 그 기사를 보며 짖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녀는 월이 가진 선명한 적의를 느낄 수 있었다.
“컹!”
당장이라도 튀어 나가 눈앞에 있는 황궁 기사의 목을 물어뜯을 것 같은 월.
최근 자신에게 다가오는 궁인들을 향해 보였던 반응보다 훨씬 격했다.
그땐 혹시나 하는 생각에 궁인들을 신성력으로 검사해 봐도 아무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격하게 짖던 월도 이내 고개를 갸웃하며 짖기를 멈추곤 했었으니.
‘그래서 사소한 질투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지금은 신탁으로 추정되는 꿈까지 꾸고 온 마당이니, 그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클로이는 입술을 깨물며 그런 월을 억지로 진정시켰다.
그리고 기사를 향해 물었다.
“경, 이름이?”
“샌턴 오르무스입니다. 샌턴이라 불러 주십시오.”
“좋아요, 샌턴 경. 미안한데, 내가 경을 테스트해 봐도 될까요?”
“예?”
우웅.
클로이가 성광을 피워 올린 손을 기사의 머리 쪽으로 갖다 대려는데.
“죄송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찌 제가 감히 마마의 손길을 받겠습니까? 거두어 주십시오.”
아예 그것을 피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기사.
황실의 예법상 부적절한 태도는 아니었지만, 그것마저도 그녀의 눈에는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클로이는 황급히 그녀의 전속 호위 기사를 호출했다.
“마마!?”
“비비안! 빨리 아버지께 다녀와 줘. 황궁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네? 갑자기요?”
야심한 밤에 전해진 갑작스러운 호출에 옆방에서 검 한 자루만 들고 튀어나온 비비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내가 폐하를 만나는 것을 기사들이 막고 있어. 폐하께서 침전에 안 오신 지 이틀째인데도!”
“……그거야 바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기사들이 나와 만나는 걸 막고 있다고!”
“뭐 사정이 있겠지요.”
“아니라고! 당장 황궁을 나가서 아버지께 알려 줘. 입궁해 달라고! 월권을 하더라도 무조건 폐하를 뵈어야겠다고!”
“굳이 그러실 필요가 있을까요?”
……뭐?
클로이는 문득 비비안의 반응에 위화감을 느꼈다.
아버지께 다녀오는 일은 제나스 경을 만날 기회이기도 하다. 평상시의 비비안이라면 옳다구나 하고 반색하며 좋아했을 일인데, 이상할 정도로 무관심한 것이다.
“크르르르.”
그때, 월이 비비안을 보며 짖기 시작했다.
“비비안, 내 손을 잡아 봐.”
“네? 굳이 왜?”
“피하지 마!! 당장 내 눈을 보고, 움직이지 말라고!!”
애써 피하려는 비비안을 보며 클로이가 버럭 고함을 지르는 순간.
마주 잡은 손에서 성광이 쏟아졌고, 비비안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클로이가 신성력을 끌어 올린 손을 그녀의 머리 위에 올렸다.
우우웅.
그녀의 손이 닿는 순간, 아니 정확히는 신성력이 비비안의 머릿속에 쏟아지는 순간 갑자기 어떤 이상한 기운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신탁을 받기 전이었다면 절대 느끼지 못했을, 희미한 에너지가 가진 기척.
마치 스스로의 존재를 알리기 싫다는 듯, 신성력이 닿기도 전에 황급히 사라지는 그 힘의 정체는…….
“……마기?”
클로이의 놀란 음성과 함께.
“마마? 이게 무슨…….”
“비비안, 이상함을 못 느끼겠어?”
“예?”
어리둥절한 비비안의 표정을 보니, 그 자신의 변화마저도 확실히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블레이더급의 기사가 자신의 몸에 침투한 마기조차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수법이라니, 클로이의 얼굴이 더욱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좀 전에 내가 한 부탁 거절한 거 기억나? 왜 그랬어?”
“예? 제가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무언가 떠올랐는지, 비비안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갔다.
“마마, 대체 이게 지금……!?”
그러나 그 의문에 상세히 대답해 줄 시간은 없었다.
“당장 아버지께 알려! 빨리 폐하를 뵈어야 한다고, 만약 누가 입궁을 막는다면 무력이라도 써서 들어오시라고 해! 무조건 폐하의 안위를 확인해야 한다고!”
“가, 각하께요!? 예, 알겠습니다!”
확 변한 안색으로 뛰쳐나가는 비비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아버지가 오시면…….’
홀로 남은 클로이는 입술을 깨물며 초조하게 방 안을 서성이기 시작했다.
* * *
쿨럭. 쿨럭.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래. 오러에 대한 감을 잃지 않도록 집중을 놓지 마라.”
“예!”
피투성이가 된 제나스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검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다.
흘러내린 땀이 검의 손잡이를 축축하게 적실 정도였지만, 그나마 오늘은 희망을 보았다. 제나스의 오러 발현 간격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으니, 조만간 각성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다만 여전히 8단계, 오러익시더에 대한 감을 못 잡고 있는 자신이 문제였다.
‘강림의 시간이 빨라진다……. 연합도 연합이지만, 군단장을 상대할 초인 전력도 중요해.’
이대로라면 자신은 타이니에게 들었던 마수병단의 장군들은커녕, 그 바로 밑의 급들도 홀로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는 곤란했다.
– 뭐, 꼭 초월급 이상의 괴물들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건 아니죠. 인류 연합이 결성되면 단체 스킬을 쓰거나 마법의 도움을 받는 등 다른 수단이 많아질 테니까요.
– 물론 전 필요 없지만요.
피식.
“망할 놈…….”
어쭙잖은 도발이나 하는 놈.
전생의 관계가 어쨌건, 현생에서는 반쯤 스승이나 다름없는 자신에게 싸대기를 날리기까지 한 싸가지 없는 놈.
그리고.
– 대련 좀 합시다, 영감님! 쫌!!
끝까지 자신의 변죽을 울리다 떠난 놈.
솔직히 견적이 나오지 않아서 피한 것은 사실이었다. 자신으로선 녀석과 대등하게 싸우는 것만으로도 손해니까.
그러니까.
“먼저 익시더급에 올라서 먼지 나게 패 주마. 반드시.”
그날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놈이 새로 얻었다는 그 무식하게 큰 워해머, 녹턴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솔직히 발렌티아의 가주 전용 초월무구 ‘붉은 날개’ 역시 그에 못지않다고 생각했다.
‘아니, 검수한테는 붉은 날개가 더 좋아. 그러니 내 실력만 기르면 된다.’
솔직히 지금으로선 강림의 시간이 빨라지는 것에 대비하고 있다기보다, 그놈을 패고 싶어서 노력하는 쪽에 가까웠다.
사실 녀석의 활약 덕에 전력을 거의 온전히 보존하게 된 인류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으니, 그 힘을 아무리 작게 잡아도 자신을 비롯한 10대 기사 몇이 당장 전생의 경지를 찾지 못했다는 약점 정도는 가볍게 메우고도 남을 테니까.
물론.
‘마수병단이 끝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전설에나 나오는 마왕을 제외하더라도, 최소 그와 같은 재앙이 6번은 더 찾아온다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암담하기는 했지만, 끝도 없이 걱정만 한다고 해결되는 건 없다.
실력은 당연히 길러야 하는 거고.
‘타이니가 체베르를 처리하면 황제 폐하께 건의해 본격적인 인류 연합에 시동을 걸고, 신전에도 알려야겠지?’
타이니가 간섭한 것도 아닌데, 전생에 있었다는 신전 쇄신 혁명, 이른바 신전 혈사가 십수 년은 더 빨리 일어났다.
그렇다면 신전도 온전히 전력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 회귀에 대한 진실이 알려진다 한들, 신전에서 지금의 타이니에게 직접적인 무력 간섭을 할 수는 없을 테니까.
여신의 권능 침해니, 뭐니 하며 교리적 문제를 걸고넘어지는 것도 신전이 그 대상을 압박할 수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다.
지금의 타이니라면…….
‘오히려 갓 핸드 경을 무너트리고 교황을 겁박할 수도 있겠지.’
생각해 보면 정말 난놈은 난놈이다. 아무리 회귀를 했다고 해도 이제 고작 열일곱인데, 녀석이 대륙 유수의 강자들에게 진다는 상상조차 어려우니 말이다.
이제 신전에서 시비를 걸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도리어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정답이다.
‘강림 때 나타났다는 스무 살짜리 용사……. 뭐, 거기까지 바랄 수는 없겠지. 시간이 너무 이르니.’
솔직히 고대 전설에 나오는 용사의 힘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 전설을 반의반만 믿는다 해도 작금의 신전에서 그런 인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전생에 신전에서 내세웠다는 용사나 성녀도 그저 상징일 뿐일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신전의 참여는 필요했다.
“사제들의 신성력에 의한 치유와 마기 배제, 오염 정화……. 그래, 필요하지.”
마족과의 전쟁을 앞둔 인류에게 큰 힘이 될 능력들이 바로 그들의 특기였으니까.
“……해야 할 게 참 많구나.”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래도.
“내 무력을 키우는 거지.”
반드시 그놈을 예전처럼 패 주고 말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을 위해.
그렇게 손을 부르르 떨며 어둠이 깔린 저택을 걷고 있을 때.
– 각하! 황후 마마께서 찾으신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