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찾았다
3국 병력, 이너빌에서 진군 시작.
가스턴에서 통신소 폭파 테러 발생. 제국 소속 발렌티아의 수작으로 추정.
연합과 제국의 전쟁이 시작된다!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세력들 간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솟구치던 시기.
락스턴 왕국의 국경을 넘은 타이니와 아르곤은 왕국 연합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자랑하는 그리마 왕국의 수도, 아그라가 멀리 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저기 있는 거 맞지?”
타이니의 물음에 수정구를 든 아르곤이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그래도 왕궁 제일 깊숙한 곳 같은데 괜찮겠어? 왕이 근처에 있다는 건데, 가까이 가면 이걸로는 확인이 안 돼. 난 말했다?”
“됐어. 가까이 가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문제는 그 마족이 과연 정면으로 싸워 주느냐인데…….”
타이니가 입술을 깨물며 고민에 잠기는데, 수정구 속에 비친 기기묘묘한 문양들을 해석해 보던 아르곤이 조심스레 반문했다.
“……마계 귀족, 그러니까 악마라면서? 정면으로 싸우면 이길 자신이 있는 거냐? 추산되는 마기만 봐서는 8서클 중에서도 마스터급인데?”
“당연하지.”
그 태연한 대답에 아르곤이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자연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건지, 모자란 건지.”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당연히 타이니의 귀에 안 들릴 리는 없었다.
이 겁쟁이가 대놓고 이런 소리를 하다니.
‘쓰읍. 내가 너무 편하게 대해 줬나…….’
지금 이 시기에 기어오르게 두면 안 될 인간을 두 부류 꼽자면, 바로 라프탄 같은 잠재적 범죄자와 아르곤처럼 언제 겁먹고 튈지 모를 겁쟁이일 것이다.
‘이제라도 살풀이를 한번 해?’
스아아아.
어느새 서늘해진 타이니의 눈빛이 섬뜩한 살기와 함께 주변 온도를 낮춰 가자, 아르곤이 바로 뒷걸음질을 쳤다.
“아, 마, 맞다! 그 세계수의 수호자도 온다고 했으니까 당연히 가능하겠지. 하하, 하, 하……. 아, 아니야?”
“기다릴 시간 없다. 당장 전쟁이 터지느니 마느니 하는데.”
그 말을 하면서도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서쪽 하늘을 흘깃 바라보았다.
검제와 통신한 뒤로 벌써 3일의 시간이 흘렀다. 에스티나가 바로 연락을 받았다면 오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아직도 소식이 없는 게 조금 신경 쓰이긴 했던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눈앞의 아르곤을 단련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아, 안 기다려? 그럼 진짜 혼자?”
“아니, 그럴 리가.”
“역시, 아니지? 하하. 노, 놀랐잖아.”
“너랑 같이.”
멈칫.
“……어? 아, 하하. 화, 환청이 들리네, 갑자기.”
“제대로 들었다.”
“진짜 미친 거냐!!”
“뭐 인마?”
직면한 생명의 위협에 잠시간 솟구쳤던 아르곤의 용기는, 다시금 눈앞에 넘실거리기 시작한 노을빛 오러 앞에서 급속히 사그라들고 말았다.
“아니, 내, 내 말은 그, 자신감 넘쳐서 좋겠다고…….”
“그 자신감의 이유를 보여 줄 테니, 바로 가자.”
하이넨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사고를 치는 놈은 겁박한다고 해도 그 천성이 고쳐지지 않겠지만.
‘아르곤은 강제로 고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전생에 증명되었던 사실이기에 타이니의 행동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러나 역시 겁쟁이 놈은 쉽게 호응해 주지 않았다.
“아, 아냐! 너, 너라면 뭐 악마도 그냥 한 방이겠지. 그럼! 자, 그럼 무운을 빈…….”
우우우웅.
한순간에 아르곤을 중심으로 피어올라 시야를 뒤덮는 안개.
“어쭈?”
파아아아앙.
하지만 타이니는 손짓 한 번으로 안개를 싹 걷어 냈고, 미끄러지듯 숲속으로 사라지려던 아르곤의 뒷덜미를 그대로 잡아챘다.
턱.
“컥!?”
갑옷의 덜미 부분을 잡혀 움직이지 않는 몸.
아르곤이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끼기긱 고개를 돌리자.
“어디 가냐??”
그 앞에 이글거리는 사신의 눈동자가 보였다.
“진짜 나도…… 가?”
“당연하지.”
“……왜?”
떨리는 아르곤의 두 눈을 보며 타이니는 한숨을 쉬었다.
“성장하고 싶지 않냐?”
진심이었다. 정말로 이 녀석은 단련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처음 만났을 때 사용한 마법 방벽을 보고 이 시기에도 마도 검술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나 싶었었는데, 고작 그게 전부라는 말을 듣고는 얼마나 황당했던가.
‘강림의 날이 가까워졌다는데.’
아직 오러도 못 쓰는 동료는 이 녀석뿐이니, 제대로 굴려야 한다.
그러자면.
“성장하는 거랑, 악마한테 덤비는 게 무슨 상관……?”
이 썩어 빠진 정신부터 뜯어고쳐야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마도 검술 몇 개 완성했잖아. 시험해 봐야지?”
“그 시험을 왜 마족 앞에서 목숨 걸고 해야 하냐……?”
아르곤이 쭈그러든 얼굴로 최후의 항변을 해 보았지만.
“하, 싫으면 지금 여기서 생을 끝내든가.”
콰드득.
덜미를 움켜쥔 손이 갑옷을 그대로 우그러트리는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는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그대로 아그라의 성벽을 뛰어넘었다.
* * *
초월무구가 대체할 수 없는 무상의 가치로 평가받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그 무구가 가진 아티팩트로서의 능력, 주로 7서클 이상의 마법 효과 때문이다.
특히나 그것은 오러유저에게 더 가치가 큰데, 웬만한 마법은 파괴의 권능 오러 앞에서 그대로 분쇄되어 버리거나 극미한 효과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오러가 깨트리는 마법은 적아(敵我)를 가리지 않기에 오러유저는 보통의 아티팩트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 그러니 마법이 오러유저에게 제대로 효과를 보이려면 한 가지 이상의 원소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7서클 이상의 마법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달리 말하면, 수준이 좀 떨어지더라도 그 원소에 대한 지배력이 완전하여 오러에 대항할 수 있다면 오러유저에게도 마법이 통한다는 뜻이 된다.
그런 와중에, 마나의 응집력에 있어서만큼은 아르곤이 개발한 마도 검술을 따를 만한 마법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불과 며칠 만에 심상 각인을 능숙하게 터득하여 마도 검술의 식을 또 하나 완성해 낸 아르곤이, 바로 이 자리에서 그 성과를 보였다.
[隱身(은신)]우우우웅.
“기껏 완성한 두 번째 마법이 숨는 거라니.”
아르곤은 투덜거렸지만, 그 효과는 대단했다. 그가 펼쳐 낸 마법이, 오러유저인 타이니의 기척까지도 완벽하게 숨겨 주고 있었으니까.
전쟁을 앞두고 삼엄한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는 아그라의 병력 중 그 누구도 대낮에 성벽 위를 타 넘는 두 사람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왕궁의 결계조차도.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
“에이, 설마…….”
“그래도 폐하께서 공언하신 건데…….”
그들의 바로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병사들. 하지만 익스퍼트급에 달하는 기사들도 코앞에 있는 침입자의 기척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같은 마법이 걸린 그들끼리는 서로의 모습이 반투명하게나마 보였지만, 그 밖의 타인들에게는 존재감이 확실하게 지워진 것 같았다.
‘이 정도면 정말 정령술 수준인데.’
전생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동료의 특징이 새삼스레 마음에 와닿는 순간.
– 지금.
타이니는 수신호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자 작아진 월랑이 빠르게 아르곤의 곁으로 붙으며 오른쪽으로 사라졌고, 타이니 본인은 왼쪽으로 향했다.
월랑이 아르곤에게 붙은 것은 그 마족의 위치 탐색과 혹시라도 도망칠지 모르는 아르곤의 감시 목적, 거기에 전력의 균형 등을 모두 고려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아르곤이 마족이나 그리마의 병력을 유인해 나갈 미끼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지금 내가 마족을 처리하는 것 정도야 문제가 아닐 테니까.’
경지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실력은 확실히 성장했고, 초월무구까지 새롭게 얻은 상황. 괴물도 아닌 인간형, 무투파도 아닌 흑마법사 형태의 악마급 마족을 때려잡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리 없었다.
조금 걸리는 것이라면 아그라에 들어선 뒤로 언제부턴가 느껴지던, 지하에 옅게 깔린 마기 정도.
자신의 감각으로도 아그라에 진입한 지 한참 뒤에야 눈치챌 수 있었던 그 은밀함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걸 조사할 시간은 없었다.
‘마족이 무언가 수작을 부린 거겠지.’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
흑마법사형 마족이라면 무슨 준비를 했다 한들 발동에는 시간이 걸릴 테니.
‘그 수작을 발동시키기 전에 최대한 빨리, 확실하게 끝장낸다.’
아르곤의 마법으로 감춰진 타이니의 몸이 그리마 왕궁의 결계를 무시하고 부드럽게 그 안으로 사라져 갔다.
* * *
“……전하, 아니 이제는 폐하라고 불러 드려야겠죠? 곧 우리 그리마의 세상이 올 겁니다.”
“아하하하. 그래야지. 암, 그렇고말고.”
오트만 2세의 부드러운 웃음과 함께 대전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파티장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대전에는 온갖 음식과 술들이 즐비했고, 자리를 채운 귀족들의 얼굴에는 조금의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았다.
대전쟁의 시발점이 된 왕궁이라기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
심지어 이 잔치를 즐기는 이들 중에는 갑작스러운 선전 포고에 대해 항의하러 온 셀던 왕국의 사절까지 속해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스스로의 행동과 주변 상황이 이상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렇게라도 번민을 잊게 만들어야지. 인간은 여러모로 귀찮단 말이야.’
릴리스는 자신의 붉은 입술을 살짝 핥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번 욕망을 자극해 주면 끝도 없이 폭주하는 마족과 달리, 인간은 태생적인 연약함 때문인지 너무나도 걱정이 많았다.
‘권력도 너무 분산되어 있고.’
왕과 왕실 기사들만 세뇌해도 충분할 줄 알았더니, 전쟁 선포에 태클을 걸어 오는 귀족이 너무 많았다.
덕분에 광범위하게 세뇌를 걸다 보니 이런 부작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이제 전쟁은 시작된다.”
이미 불화살의 시위는 당겨졌으니, 그 화살이 목표에 맞든 안 맞든 세상은 곧 불바다가 될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운명이 흔들리고, 차원의 벽은 더욱 크게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그것’까지 더해진다면…….”
강림이 시작된다.
그 감미로운 단어는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중간계의 추종자들이 쌓아 놓은 모든 재원을 갈아 넣은 그것이, 대업의 시작을 알릴 것이다.
‘다시 시작될 정화의 시간.’
무도한 여신이 억지로 비틀었던 이 세상의 순리를 다시금 원래의 흐름으로 돌릴 시간이 도래한 것이다.
척박한 마계에서 수천 년 동안 이를 갈아 온 이 세상의 정당한 주인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그 정점에 선 자들 곁에서 무궁한 영광을 누릴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만 된다면 내 공은 어떤 마계 대공도 무시하지 못할 거야. 그럼 혹시라도…….’
그분, 지배자께서 자신을 어여삐 보아 주신다면, 질투의 군단, 언데드 군단의 장군 자리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지위도 쟁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이 그녀를 더욱 미소 짓게 만들었다.
물론 그러자면.
“미리 승전의 축배를 듭시다, 내 사랑. 이 모든 것이 당신 덕분이오.”
현혹에 걸려 앞뒤 구분도 못 하는 이 역겨운 인간과 조금 더 놀아 줘야겠지만 말이다.
“예. 영광입니다, 폐하.”
이 정도 장단을 맞춰 주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제가 먼저 한잔…… 음?”
다만, 그 기쁜 와중에 무언가가 그녀의 감각에 걸려들었다.
‘……침입자?’
왕궁의 결계 속에서 은밀히 감춰 둔 자신의 마법. 거기에 걸린 외부인의 흔적이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하지만 릴리스는 이내 피식 웃음을 지었다.
‘뭐, 이쯤 되면 무력적 간섭이 들어오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지.’
오히려 상당히 늦은 감이 있었다. 마계였다면 사절이 아닌 암살자가 먼저였을 텐데 말이다.
어차피 그런 경우를 대비한 준비는 다 끝내 놓았으니.
“어떤 것들인지 몰라도 너무 늦었단 말이지.”
“무슨 말이오, 내 사랑?”
“아, 아닙니다, 폐하. 신경 쓸 일이 생겨서 말이죠.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워도 될까요?”
“아, 편히 일 보시오. 내가 괜한 방해를 했구려. 오래 걸리는 일이요?”
“아닙니다. 잠시면 됩니다, 폐하.”
“하하. 그럼 즐거이 기다리고 있겠소이다.”
왕이 일개 시종에게 매달리는 듯한 광경. 그리고 스르륵 미끄러지듯 대전을 가로질러 사라지는 시종의 모습.
분명 모두 비상식적인 일들이었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이들은 여전히 아무런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시각.
“왕궁으로 들어갔다? 이 시기에? 왜?”
타이니의 뒤를 쫓아온 한 성기사가 아그라의 성벽 밖에서 성안을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