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67
267화. 잡았다!
바람의 지배자 효과로 인해 타이니의 질주 속도는 이전에 비해서도 두 배는 더 빨라졌다.
그에게서 도망치는 적이 도시의 밀집된 건물들 사이사이로 숨어들며 추격자의 감각을 속이기 위한 환상 마법과 분신, 은신의 마법을 연달아 펼쳤지만.
“흥!”
이미 소울 사이트로 상대의 본질을 확인한 타이니는 그 모든 마법을 무시하고 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달릴 뿐이었다.
급한 만큼 중간에 걸리적거리는 건물도 무시하면서.
꽈아아앙!
“꺄아아아악!”
우르르릉.
쾅!
“뭐, 뭐야!”
“지진이다!”
꽈아앙!
“무슨 일이야?”
“바, 방금 사람이 지나간 거 같은데…….”
눈앞의 건물들을 아예 부숴 버리며 적의 본체를 향해 돌진하니, 혼잡한 도시 속에 숨어들려던 마족 역시 점점 가까워지는 그를 확인하고는 그저 일직선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문제라면 그때부터 마족과의 거리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령 합신을 괜히 썼나? 젠장!’
순간적으로 전체적인 능력이 대폭 상승됐어도, 이런 추격전에서라면 월랑이 네 발로 직접 달리는 것보다는 확실히 느릴 수밖에 없었다.
치솟는 짜증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지는데, 마족 놈이 지나간 자리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광휘의 기사가 국왕을 살해했다!”
“제국의 테러다!”
“광휘의 기사가 제국의 앞잡이가 되어 왕국을 정벌하려 한다!”
물론 타이니로선 그 모든 게 적의 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왕궁에서 요란한 폭음이 들려온 직후에 이런 소란이 벌어지니, 어둠에 잠겼던 아그라의 곳곳에서 다시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까드득.
‘찢어 죽여 주마.’
절로 이가 갈리고 속이 뒤집히던 그때, 순식간에 수도를 벗어난 적이 아예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분노를 연료 삼아 폭발적으로 가속한 타이니 역시 놈을 따라 하늘 위로 내달렸다.
“놓칠까 보냐!”
중력 속성, 극경화 전환.
폭발 속성, 추진력 강화.
공간 밟기.
퍼버버버벙.
그의 발밑에서 폭음이 터지며 몸에 막대한 부하가 걸렸지만, 그 대가로 적이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단번에 끝낸다!’
아무리 월랑의 특성이 있다고 한들, 전력을 동원해 싸우는 상태에서 높은 고도에 오래 머물 자신은 없었다.
심지어 공중전은 익숙하지도 않다.
속전속결은 선택이 아닌 필수.
그러니.
‘여기서 한 번 더.’
우우웅.
콰콰콰콰콰콰콰.
신고 있는 금속 부츠, 바람의 지배자가 발밑으로 치명적인 예기를 품은 거대한 폭풍을 쏟아 냈다.
일주일에 한 번 쓸 수 있는 7서클의 광역 마법, 칼날 폭풍이 그저 추진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 것이다.
우드드득.
이미 몸에 부하가 걸린 데다 무릎과 발목에서 파열음까지 들리기 시작했지만, 그 대가로 적의 바로 등 뒤까지 따라붙을 수 있었다.
그러자 흘깃 뒤를 돌아본 붉은 머리 마족의 입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꺄아아아아악! 살려 주세요!!!”
우우웅.
단순한 비명이 아니었다.
잠시나마 그 마족의 얼굴 위로 클로이와 에리나 누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을 정도로 심상을 뒤흔드는 현혹의 마력이 담긴 목소리.
하지만 상성이 매우 좋지 않았으니.
“어디서……!”
어쩌면 오러익시더급의 정신도 뒤흔들어 버릴 수 있을 치명적인 현혹 마법이, 타이니에게는 그저 분노를 부채질하는 발악으로 보일 뿐이었다.
“……개수작을!!”
휘둘러지는 녹턴에 노을빛 오러가 넘실거리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추가적인 마법을 준비하던 마족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순간.
번쩍!
갑자기 아래에서부터 쏘아져 그들이 있는 곳을 관통하는 빛줄기가 있었다.
심지어.
꽈아아아아앙!
‘무슨!?’
그 빛에는 녹턴의 궤도를 살짝이나마 틀어 버릴 수 있는 강렬한 힘이 실려 있었다.
‘조력자가 있었다고!?’
덕분에.
“꺄아아악!”
녹턴은 적을 직격하지 못했고, 그 여파에 휘말린 마족이 비명을 지르며 튕겨 나갔다.
‘젠장, 시간이 없는데.’
공간 밟기의 권능을 한계까지 짜내며 마족을 쫓아가려던 타이니의 위쪽으로 폭풍의 마법이 쏟아졌다.
콰콰콰콰콰콰!
8서클의 강대한 마력을 바탕으로, 살상용도 아닌 그저 허공에서 그를 밀어 내기 위한 용도로 쏟아부어진 마법.
그것까지 거스르며 마족을 쫓을 여력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제엔장!!!!! X발!!!!!”
우드드득.
정령 합신의 시간도 끝나 가는 탓에 몸이 본래의 체격으로 돌아오면서 탈력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허공에 머물 여력이 없어진 타이니의 눈이 살기를 담아 지상을 향했다.
‘이렇게 되면…….’
추락하고 있는 곳. 자신을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재수 없는 개자식에게로.
놈이 갑옷에 빛나는 원 문양을 새긴 성기사라는 사실도 타이니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니 더욱 열이 받았다.
아무리 신전이 타락했다고 한들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런 막대한 신성력을 가지고 흑마법에 홀렸을 리는 없으니, 자의로 한 짓일 터였다.
“성기사가 마족을 도와!!? 이 미친 새끼가!!!”
갱생의 여지가 없는 폐기물 수준의 인간쓰레기.
타이니가 판단한 놈의 정체는 그러했지만, 정작 그 고함을 들은 성기사의 눈빛은 그 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냥 쫓기는 마법사가 아니라.
“마족?”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타이니의 녹턴은 다시금 노을빛 오러를 머금고 성기사를 향해 휘둘러졌다.
“패 죽여 주마!”
“잠깐!!”
비명 같은 고함과 함께 성기사의 검에서도 성광이 피어올랐다.
막대한 신성력,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섞이는 패턴화된 마나. 거기에 더해…….
‘오러?!’
초월적인 감각으로 성기사의 일격을 자연스레 읽어 낸 타이니가 눈을 부릅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10대 기사를 제외한 다른 오러유저, 심지어 갓 핸드가 아닌 다른 성기사라니?
하지만 그 짧은 당혹감과는 상관없이, 거대한 워해머와 장검이 각자의 빛살을 머금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꽈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아그라 남쪽 성문 들판의 관도가 그대로 깨어져 나가고,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그 충격에 형편없이 튕겨 나간 은빛 갑옷의 기사가 수십 미터 상공에서 간신히 균형을 잡고 착지하는 동안, 상대적으로 훨씬 약하게 밀려나 먼저 자세를 잡은 타이니가 인상을 쓰며 물었다.
“너, 뭐냐?! 대체!!?”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튀어나온 질문은 단순했다.
이것은 자신이 운명을 틀었다는 이유로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무리 미래가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 5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성기사 오러유저가 튀어나온다고?
심지어 마족의 협력자로?
쿨럭.
“지금, 오해가 생긴 것 같은데…….”
스아아아.
내상을 살짝 입은 것 같았는데 신성력이 빛나자 한순간에 정상으로 돌아오는 안색.
전생에 갓 핸드를 통해 무수히 보았던 광경이지만, 그걸 쓰는 놈이 적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오러까지 쓰는 성기사라면 그야말로 바퀴벌레보다 더한 생명력을 가진 괴물.
‘시간을 주면 안 된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타이니는 적에 대해 더 알아보려던 마음을 바로 접었다.
“오해는 무슨!”
쾅.
일단 때려죽여 놓고 생각하자.
그렇게 결심한 타이니의 몸이 급속도로 가속하는 순간.
성기사의 몸에 빛이 어리더니, 일순간 7개의 진짜 같은 잔상으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 일단 대화를……!
본체를 찾을 수 없도록 이상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분신 하나하나마다 신성력과 오러, 마법의 기운이 마치 실체처럼 어려 있었는데.
‘지랄!’
안타깝게도 타이니의 초월 감각을 속일 수준은 아니었다.
“흡!?”
꽈아아아아앙!
서슴없이 휘둘러진 녹턴에 다급한 음성을 토해 낸 성기사가 다시금 수십, 아니 수백 미터의 허공을 날았다.
“잔재주를!”
하지만 그것이 온전히 타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충격을 줄이기 위한 회피 기동에 가깝다는 것을 안 타이니는 곧바로 놈을 쫓아 몸을 날렸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특히나 무릎과 발목에서 짜릿한 통증까지 올라왔지만, 그 이상으로 분노가 컸다.
저놈 때문에 인류의 암 덩어리가 될 마족을 놓쳤다.
다음번에는 얼마나 더 깊이 숨어 얼마나 더 큰 분란을 일으킬까.
그러니.
‘이놈이라도 확실하게 숨통을 끊는다.’
이글거리는 분노가, 끓어오르는 살기가 그대로 기세를 더했다.
“말 좀 들어!!!”
“닥쳐!”
놈이 고함을 지르며 허공에서 채 자세를 잡기도 전에 뛰어오른 타이니의 몸.
다시금 전력을 다해 휘둘러지는 녹턴이 한층 짙은 노을빛 오러를 뿜어냈다.
그에 성기사가 간신히 몸을 돌려 검을 휘두르자, 그 앞에 오러와 신성력, 마법으로 이루어진 세 개의 방어막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타이니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쳤다.
꽈아아아앙!
“흐, 쥐새끼 같은……!”
타이니의 시선이 생각보다 멀리 튕겨 나가는 성기사의 몸을 그대로 쫓아갔다.
입가에 흐르는 옅은 핏줄기가 놈이 입은 타격의 전부이거늘, 그조차 튕겨 나가는 순간 반짝이는 빛과 함께 치유된 것 같았다.
녹턴을 버텨 내는 저 검도, 놈이 입고 있는 갑옷도 범상치 않은 물건인 듯했다.
거기다 힘을 분산하는 기교 또한 대단한 수준이었지만.
“이제 다 읽었다.”
쾅!
다시금 지면을 뒤집어엎으며 튀어 오른 타이니의 몸이 성기사를 향해 무서운 기세로 쏘아져 나갔다.
그 순간.
그그그그극.
지면을 긁으며 뒤로 밀려나다가 간신히 자세를 잡은 성기사의 눈빛도 한없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일단 팔다리를 잘라 놓고 대화를 나누지.”
한없이 타오르는 불꽃 같은 기사가 저돌적으로 돌진해 오고.
한없이 차가운 얼음 같은 성기사가 그에 맞서 검을 들었다.
불꽃처럼 넘실거리는 노을빛 오러와, 세 가지 색이 뒤엉키며 차가운 성광을 뿜어내는 검이 서로의 기세를 한껏 뿜어내는 순간.
쎄에에에에엑!
꽈아아아아앙!
멀리서 날아온 ‘무언가’가 갑자기 그들이 출동하려던 지점의 바닥을 강타하더니, 마치 물수제비처럼 연달아 튀어 오르며 수십 미터를 날아가다가 지면에 나뒹굴었다.
아무리 이상한 상황이 생긴다 한들, 웬만해서는 돌진하던 기사와 성기사가 멈추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두 사람은 이 대륙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마기에 민감한 이들이었다.
자신들 사이에 떨어진 그 무언가에서 느껴지는 막대한 마기를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사람들.
“가, 같잖은 하등 종족들이……!!!”
자연스레 싸움이 멈춰지고,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마족을 향해 시선이 모이는데.
“하, 이게 웬 떡이냐.”
소울 사이트를 가진 타이니는, 다소 초라한 뿔과 박쥐의 날개가 달린 3m 크기의 여성형 마족이 자신이 쫓던 적이라는 것을 대번에 눈치챘다.
그리고 그것은 그와 대적하던 이도 마찬가지.
“악마급?! 벌써 강림이……?”
범상치 않은 무력을 뽐내던 성기사 역시 칼을 들어 그 마족을 겨누는 순간.
쑤에에에에에에엑!
콰콰콰콰콰콰쾅!
거대한 ‘녹색 오러’가 실린 화살이 날아와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마족을 강타했다.
“끄아아악! 이 X년이!!!!”
콰콰콰콰콰콰.
무수히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서 마족의 비명이 터져 나올 때.
– 나이스 샷! 에스티나!!!!
들판을 울리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더불어 무시무시한 녹색의 거한이 급속도로 전장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는.
– 내 몫은 남겨 두시오, 저릭 공!
한 손에는 새하얀 검을 들고, 주위에는 투명한 얼음에 갇힌 4개의 무기를 띄우고 있는 하늘색 머리의 기사가, 마치 높은 하늘 어딘가에서 뛰어내린 듯 마족을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자연히.
“하…….”
연신 분노만을 토해 내던 타이니의 입에서 실로 오랜만에 커다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하하하하!”
X발, 놓친 줄 알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