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80
280화. 드디어……!
성산, 니두스.
중앙신전 솔이 존재하는 돌산은 오랜만에 수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각기 다른 깃발을 든 인간들 사이로 소수의 오크와 수인족이 섞여 있는 모습.
“이종족들이 어딜…….”
“쉿, 입조심해. 큰일 나. 제국이 이젠…….”
“저 인간들은 우리 수인족들이 귀가 좋다는 걸 모르나?”
“인간이 다 그렇지. 한심한 것들. 이런 것들하고 무슨…….”
웅성웅성.
시끄럽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차례로 산을 오르는 사람들.
당장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모두가 이곳에 모인 목적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그들 사이사이에서 분란을 막는 성기사와 사제들 덕이기도 했다.
그렇게 성산에서는 보기 드문 소란한 분위기 속에서, 테르티우스를 떠난 일행이 니두스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성산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이들 중 한 사제가 일행을 보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다.
“기다렸습……. 오!? 드워프족의 첫 번째 망치께서 직접 오시다니요? 이런 영광이……!”
하이넨의 얼굴을 알아본 건지, 사제가 신분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아? 그때 그……. 허허, 오랜만일…….”
그러고는 하이넨이 인사를 끝내기도 전에 타이니를 돌아보더니.
거대한 늑대와 검은 머리, 망치를 빠르게 훑어보고는 갑자기 입을 쩍 하니 벌렸다.
“서, 설마 과, 광휘의 기사!!!!?”
“……?”
심상치 않은 반응에 타이니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월랑이 절로 뒷걸음질을 치는데.
“우와아아! 미친!! 대륙 최고의 유명인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상급 사제 오르테가라고 합니다!”
……이거 사제 맞아?
‘게다가 상급?’
그 당황스러울 만큼 격한 환대에 타이니가 선뜻 입을 떼지 못하는데.
“……여전하구먼, 저거. 후…….”
하이넨은 그 광경을 보자마자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며 다른 사제를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그 와중에도 그것을 보았는지.
“아, 아닙니다. 귀하신 분은 제가 직접 모셔야죠. 드워프족의 첫 번째 망치, 그리고 광휘의 기사님, 어서 산을 오르시지요. 어우, 많이도 데리고 오셨네. 백 명도 넘나 봐요? 엘프분들은 꼴랑 대여섯 명만 날아서 오시던데, 왜 이렇게 많……!”
“시끄럽네! 안내나 하게, 오르테가! 아니면 또 험한 꼴을 보고 싶나?”
“아, 하하. 예, 옙. 그래야지요. 하하하.”
하이넨의 고함에 식은땀을 삐질 흘린 오르테가가 어색하게 웃다가 입을 합 다물었다.
아니, 다물려는 것 같다가 이내 일행에 합류해 있는 은빛 성기사를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어, 그쪽은…… 우리 형제님 같으신데? 누구……?”
“크롬이라 합니다. 얼마 전 성하의 명을 받아 여기 타이니 경을 만나러 하산하였었지요.”
“아, 그러시구나. 하하. 뭐, 좋습니다. 다들 저를 따라오시지요.”
“……나는 공기로 보이나. 씁.”
오르테가의 수다에 일그러지는 하이넨의 얼굴과 별개로, 아예 외면당한 아르곤이 작게 불만을 터트렸다.
그리고 타이니는, 일행의 심기보다 눈앞의 대화가 더 신경 쓰였다.
상급 사제라면 작은 왕국의 지역 교구 책임자 정도는 된다.
심지어 중앙 신전의 상급 사제. 더구나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오르테가의 용모를 볼 때, 분명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제일 것이다.
최소 차기 주교나 대주교, 어쩌면 교황 후보에 속할 수도 있는 인재일 터.
그런데.
‘그런 상급 사제가, 오러까지 쓰는 성기사를 모른다?’
이 크롬벨, 아니 스스로 크롬이라 소개한 자가 진짜 용사가 맞긴 한 건지 의문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또 성큼성큼 서슴없이 성산을 올라가는 태도를 보면 거리낌이 조금도 없는 것 같으니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 새끼, 걸리는 게 너무 많단 말이야.’
– 우리가 가릴 처지냐?
의심쩍은 생각이 들 때마다 검제의 말이 자꾸 떠올랐지만.
‘그래도 가릴 건 가려야겠는데…….’
그러나 정체를 파헤칠 방법이 생각나질 않았다.
놈의 육체 저변에 깔린 이상한 느낌. 마치 신성력으로 흑마법을 쓰는 것 같은 그 기묘한 감각은, 자신 외에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증거가 안 된다.
‘마나 감응력이 뛰어난 아르곤의 탐색 마법으로도 감지가 안 된다면, 다른 사람은 아예 모를 거야.’
심지어 놈은 대사제급 신성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정신 나간 광신도일 수는 있을지언정 타락한 사제일 확률은 없어야 정상이다.
‘정말 헷갈리는 놈이란 말이지.’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너무 많은데도 뚜렷한 물증이 없으니, 모든 주장이 힘을 잃고 무너지는 꼴.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질 않으니 타이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던 그때.
“아, 광휘의 기사님은 그 소드 엠퍼러 님과도 친분이 있으시죠? 그분도 얼마 전에 오셨는데…….”
수다스러운 사제가 묻지도 않은 정보를 술술 내뱉으며 해결책(?)을 알려 주었다.
‘그래, 검제한테 맡기자.’
머리 아픈 일은 동료에게 떠넘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기분이 조금 개운해졌다.
골치 아픈 일들은 검제한테 다 떠넘기고, 나는 수련만 하면서…….
“너, 갑자기 기분 좋아 보인다? 불안하게…….”
이 새끼만 조지면 된다.
아주 확실하게.
“왜, 왜 그렇게 무섭게 쳐다보냐? 난 자, 잘못한 거 없다?”
“……알아. 그냥.”
타이니가 피식 웃어넘기는데.
그게 자존심이 상했을까, 아르곤이 찡그린 얼굴로 옆구리를 툭 찔러 왔다.
“야, 너. 엄밀히 말하면 내가 형인 거 알고는 있지?”
“……형 취급 해 줘?”
뭐, 안 그래도 속이 찜찜했는데 잘됐다 싶었다.
“당연하지! 제국은 몰라도 연합에서 나이란……!”
“날 이기면 해 주마. 올라가면서 대련 한판 하자.”
“……중요하지 않지. 그럼,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너, 넌 300살 넘은 드워프 노인한테도 맞먹잖아. 넌 그래도 돼.”
어색해진 표정의 아르곤이 헛소리를 남발하며 그대로 말을 몰고 사라지려 했지만.
히이이잉!
타이니가 말 주변의 마나를 동결시키며 녀석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낙장불입.”
“그, 그게 무슨 소린데!?”
“너 동대륙어 알잖아.”
“모, 몰라. 그냥 글자만…….”
“표정 보니 아네.”
“에, 에이. X발…….”
“뭔 발?”
“아니, 내, 내가 잘못했어! 뭔지 몰라도, 내가 다 잘못……!”
“닥쳐.”
결국 그날.
– 끄아아아악!
사실상 처음으로 열리는 인류 연합 회의의 시작을 삼 일 앞두고, 성산 니두스의 초입에서부터 처절한 비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비상 대기 상태였던 성기사단이 우르르 몰려들 정도의 큰 비명이었지만, 그 전후 사정을 파악한 후에는 오히려 감탄을 터트리며 물러날 뿐이었다.
광휘의 기사는 재앙을 대비하느라 이동 중에도 수련에 여념이 없다.
다시 한번 타이니의 평가를 제고시키는 소문이 성산에 모인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갈 때.
“이씨, 왜 눈에서 땀이 자꾸…….”
주변에 넘치는 사제들 덕분에 바로바로 회복되는 수련용 기사(?)는 억울함과 분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검에서 뿜어지는 마나의 색이 조금씩 조금씩 더 짙어지고 있다는 것만이 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 * *
중앙 신전에 도착해 거창한 숙소를 배정받은 직후.
타이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방으로 몰려든 면면들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이렇게 다 모이네.”
“그래. 대륙에 있는 오러유저들은 다 모였다고 봐야겠어. 신기하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타이니의 말을 받은 저릭.
그러자 검제가 바로 그 말을 수정했다.
“루나 양은 아직 엘븐하임에 있으니 제외해야지 않겠습니까? 문나이트도 자국 상황이 정리가 안 돼서 대리인만 보냈습니다, 저릭 공.”
“아, 그 아가씨? 그리고 늑대 친구도? 알지, 알고 있소이다. 대신 저 친구가 있잖소. 소개나 좀 해 주시지, 공작.”
“물론 그래야지요. 자, 제나스.”
검제의 말에, 그의 뒤에 시립하듯 서 있던 제나스가 바로 한 발 앞으로 나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나스 프리웰입니다.”
“호오, 진짜 오러유저네?”
“‘그때’는 없었다고?”
모두의 시선이 은발 기사에게로 향하는 순간.
에스티나가 타이니의 곁으로 다가왔다.
“루나 양을 위한 초월무구가 거의 완성되었어. 내가 확인했으니, 좋은 성과 기대해도 돼.”
“고마워, 티나. 아, 그리고 하나 더 다른 점. 저기 아르곤 녀석은 아직 오러유저가 아니야. 이제부터 제대로 굴려야지.”
흠칫.
타이니의 지적에, 가뜩이나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는 초인들을 피해 구석에 짱박혀 있던 소심한 남자가 더욱 움츠러들었다.
그러자 하늘색 머리 콧수염 신사가 그 앞을 다시 가로막았다.
“우리 연합의 샛별을 구박하지 말게나, 타이니 경. 내가 솔레인 님한테 받은 부탁이 있단 말이지.”
“그리드 영감님. 영감님도 맘 편히 등을 맡기려면 그놈 훈련 좀 시켜야 합니다.”
“여, 영감…… 끙, 타이니 경. 이름이 높을수록 품위를 지켜야 그 이름이 빛나는 법이네.”
피식.
자기도 보는 눈 없을 땐 막말하면서.
타이니가 헛웃음을 지을 때.
“클클클클. 바랄 걸 바라시오, 웨폰 마스터. 저놈한텐 씨알도 안 먹힙니다. 막 자란 놈 같던데, 뭘.”
하이넨이 시비를 걸어 왔다.
하지만 실제로 막 자란 타이니는 아무런 타격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 빛나도 됩니다. 마왕만 때려잡을 수 있다면.”
“……그건 그렇지.”
그리드가 한숨을 내쉬며 수긍하자.
“정말 저놈의 말을 다들 믿고 있나 보군. 아무리 그래도 내 직감으로는 아닌데…….”
다시 드워프가 끼어들었다.
“분위기 파악 좀 하시죠, 하이넨.”
순간 움찔하던 하이넨은 이내 그 말을 뱉어 낸 이를 보며 사납게 이를 갈았다.
“……세계수의 수호자, 못 본 사이 입이 거칠어졌군.”
“드워프만 할까.”
“호오? 이 자리에서 한판 해보자는 건가, 엘프?”
엘프와 드워프의 초인이 치열하게 신경전을 벌이자, 오크의 초인 역시 삐죽 튀어나온 어금니를 긁으며 끼어들었다.
“오, 싸움인가? 그럼 나도 끼워 주지?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그 바람에 애꿎게 기세의 중심지가 된 아르곤이 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제발, 멀리 딴 데 가서 싸우시면 안 될까요? 오러에 다치면 잘 낫지도 않는데…….”
그 작태가 신나서 다가서던 오크의 시선을 끌었다.
“하? 타이니, 이 녀석 정말 그 10대 기사 맞아?”
“응, 불행히도…….”
분위기가 점점 난장판이 되어 가려는데.
“그만!”
검제가 소란스러워지던 실내에 고함을 내질렀다.
“우리가 힘겨루기나 하자고 모인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일단 각자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다시 되짚어 봅시다. 지금은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논의해야 할 때입니다. 자, 타이니 경부터 시작하지.”
그 말에 난장판이던 실내가 단숨에 고요해지며 타이니에게 시선이 몰렸다.
왜인지 가슴 뿌듯해지는 느낌과 함께 타이니는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동료들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런 날이 다시 오긴 하는구나.’
검제, 에스가르드 폰 발렌티아.
오크의 대전사, 저릭.
세계수의 수호자, 에스티나.
웨폰 마스터, 그리드 반 셀던.
드워프의 첫 번째 망치, 하이넨.
그리고 아직은 부족해도 충분히 그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마도 기사, 아르곤.
루나와 갓 핸드, 실버 팽이 빠지기는 했지만, 대신 검제의 충실한 부관이자 제자인 북풍의 기사 제나스가 있다.
다른 이들에게는 생소하고 어색한 자리일지 모르지만, 타이니에게는 일종의 감동까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보는 것만으로도 든든하게 느껴지는 동료들의 시선을 받으며, 타이니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