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296
296화. 티그리스
갑작스러운 고함에 황급히 뛰쳐나가 보니, 그 튼튼하다던 마기의 보호막이 흐려지고 있는 것이 한눈에도 명백하게 보였다.
– 크롸롸롸!
– 크아아앙!
– 취르르르!
그리고 그 안에 가득한 마물들이 진한 살기를 내뿜으며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또한 눈에 들어왔다.
– 이런! 우란!
“갑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펜릴과 우란 누드가 수인족의 진형을 향해 번개처럼 사라졌고.
– 타이니 경, 명심하라. 그대가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펜릴이 남긴 묘한 파동을 가진 목소리만이 울려 퍼질 때.
타이니는 황당한 심정으로 갑작스레 변한 상황을 눈에 담기 바빴다.
“이게 갑자기 무슨…….”
“검제 각하와 다른 초인분들은 모두 병력을 지휘하기 위해 흩어지셨습니다. 타이니 경도 빨리 대비하라고…….”
기사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면서, 타이니는 마물들을 향해 감각을 곤두세웠다.
‘너무 공교로운데…….’
내가 일어나자마자 이런 사태가 생긴다고?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타이니는 차원문이 존재하는 보호막 너머 상공에 떠올라 있는 날개 달린 검은 사자와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거리도 멀고 둘 사이에 보호막도 있는 이상 눈빛이 보일 리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벤투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설마…….’
나를 인식해서 갑자기 전략을 바꾼 건가?
억측일 수도 있지만, 왜인지 그럴 것 같다는 직감이 강하게 들었다.
정말 그 추측대로라면, 이것은 일종의 도발.
“흥. 그렇다면…….”
우드득.
오러익시더의 경지에 오르며 육체와 마나의 활용이 이미 극한에 다다른 몸.
짧은 시간 동안 대량의 음식을 흡입하면서 회복은 이미 끝났다.
“……받아 줘야지.”
타이니가 허공에 손을 뻗는 순간.
파아아아앙!
그가 깨어났던 천막 쪽에서 파공음이 터지며, 거대한 워해머가 천막을 찢고 그를 향해 날아왔다.
우우우웅.
“크르르르.”
“가자, 월랑!”
“컹!”
파바바바박.
자연스레 현신한 월랑을 탄 그의 몸이, 옆의 기사가 뭐라 말릴 틈도 없이 전장을 행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에게 옵션(?)처럼 따라붙은 그림자 한 조각이 의지를 전해 왔다.
– 그 사자, 내가, 죽일 거야.
“그래, 맡길게.”
전생의 얘기 때문인지, 루나는 벤투스를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기절하기 직전에 보았던 광경을 생각하면 굳이 말릴 이유는 없어 보였다.
다만.
“……그 전에 내가 또 쓰러지면 뒤로 빼내 줘야겠지만 말이야.”
우우우우웅.
늘어트린 녹턴에서 다시금 노을빛 오러가 뭉쳐지기 시작했다.
‘검제가 한 말도 있으니.’
다시 한번 빅뱅으로 보호막을 깨트리고 마물의 주력들을 타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파아아아아앙.
월랑이 다시 지면 대신 허공을 밟고 마기의 보호막 위로 날아오르려던 순간.
남쪽에서 낯익은 고함이 들려왔다.
– 타이니! 지금은 아니다!!
고개를 돌리니, 테르티우스로 향하는 지하 마수군을 막아 내기로 했던 하이넨이 기갑 마병 테그멘을 탄 채 쿵쾅거리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 지금은 아냐!!
이미 허공을 내달리기 시작했지만, 그 순간 타이니의 안색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일상에서야 똥 촉으로 민폐만 끼치는 하이넨이었지만, 전투 시에는 그의 직감을 절대로 무시할 수 없었으니.
‘지금은 아니다?’
타이니는 계속 질주하면서도 흐려지는 보호막 안을 주시했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대상들의 흔적을 눈으로 좇기 시작했다.
지옥 삼두견 카니스는 분명 자신의 눈으로 시체를 보았고, 루페스는 빅뱅의 일격에 휩쓸려 부관들과 함께 죽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에스티나와 루나가 네불라도 죽었다고 했으니, 그들을 빼면 남는 장군은 벤투스와 티그리스, 그리고 지하 마수군의 대장들인 철갑 두더지 탈파와 자이언트 웜 베르미스밖에 없다.
그중에서.
‘벤투스…….’
날개 달린 검은 사자의 시선은 연합군의 전방으로 향하고 있었고.
‘티그리스.’
마물들이 바글바글한 보호막 외곽 쪽에서 거대한 할버드를 든 호랑이 인간의 거체도 보였다.
보호막이 사라지는 순간 바로 튀어 나가 연합군을 찢어발길 것 같은 느낌.
– 이상해.
귓가에 들려온 루나의 목소리가 그의 의심을 부추겼다.
“그래.”
특히나 벤투스는 직전까지 자신을 주시하는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시선을 거둔다고?
부풀어 오르는 의심을 안은 채로 타이니의 시선이 마물들의 진형을 좀 더 자세히 훑기 시작했다.
애초에 탈파나 베르미스는 지하에 있을 테니 확인이 불가능하고.
‘부관들은 거의 죽긴 했을 텐데, 그래도…….’
처음 빅뱅을 먹였을 때 대다수의 악마 귀족들은 글러터니의 소환을 위해 힘을 쏟아붓고 있었으니, 장군들과는 달리 거의 죽었을 것이 확실하다.
실제로 거대 마수급 악마 귀족, 볼텍스나 리구루 같은 놈들이 살아 있다면 그 거체가 안 보일 리 없었다.
다만 작은 놈들의 경우는 장담할 수 없었는데, 당장은 마물이 너무 많다 보니 악마급 부관 중에 살아남은 놈이 섞여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저 보호막 때문에 소울 사이트로 확장된 그의 감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더욱 눈에 힘을 주려는 순간.
– 크롸롸롸!
– 끼에에에에!
날아오른 비행형 마물들이 잇따라 보호막 안쪽에 부딪히며 그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차원문에서 비행형 마물들이 대량으로 튀어나오며, 이제 보호막의 상공까지 마물로 가득 차기 시작한 것이다.
우연일까.
‘……아니겠지.’
의도적인 방해가 분명하다.
다른 곳을 보는 척하면서 일부러 틈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흥.
“짐승 새끼들이 주제에 머리를 썼다 이거지?”
놈들은 빅뱅에 큰 피해를 보았지만, 아마 그러면서 그 약점도 파악했을 것이다.
한번 쏟아 내기 시작하면 여력이 다할 때까지 멈출 수 없는 일격의 약점이야 척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 함정을 파는 것이라면, 그 대응책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갔다.
거기다.
“타이니!!”
새의 정령 수십 개체와 엘븐나이트 무리의 가장 앞에서 카일룸을 타고 날아오른 에스티나의 든든한 모습도 눈에 들어왔으니.
그 순간 타이니는 결정을 내렸다.
– 보조해 줘, 티나, 루나. 내가…….
영역의 힘을 이용해 영혼의 파동, 즉 영파를 두 사람에게 전달하자, 에스티나의 눈이 커지고 그림자 속 루나가 흠칫하는 게 느껴졌다.
영혼의 힘에 대해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그들로서도, 마족이 아닌 인간이 영파를 사용하는 것에 놀란 것이다.
하지만 타이니는 그들의 반응을 신경 쓰지도 않은 채 그대로 허공을 내달리며 녹턴을 치켜들었다.
“그래도 내가 짐승들보다는 더 똑똑하지.”
“컹?”
“……의심하지 마, 인마!”
월랑의 의문을 일축한 타이니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그대로 보호막의 극점에 도달해 녹턴을 내리쳤다.
꽈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지직.
확실히 보호막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평범한 일격(?)에 녹턴의 망치 머리가 반쯤 그 안쪽으로 파고들며 균열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내.
우우우웅.
녹턴이 보호막에 남아 있는 마기를 그대로 빨아들여 노을빛 오러로 변환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우우우우!”
월랑이 하울링과 함께 그의 몸으로 스며들 듯이 사라지고.
우드드드득.
그의 몸이 2m가 넘는 은발의 거한으로 변신하는 순간.
“주인의 의지도 실리지 않는 마기 따위, 이용하는 것도 쉽지.”
파지지지지직.
그 극점에 일어난 균열이 가뜩이나 약화되어 있던 보호막 전체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를 떨쳐 울릴 듯한 굉음과 더불어 보호막이 터져 나가며, 그 안에 가득하던 마물들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꾸에에에에엑!”
“끼에에에에!”
“끼르르르르르르!”
지상의 사정을 눈에 담을 겨를은 없었다. 새와 비슷한 형태의 비행형 마물들이 눈앞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으니까.
그 순간 타이니의 몸은 노을빛 서광에 휩싸인 채 지상을 향해 유성처럼 낙하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꺾!”
“끼에!”
비행형 마물들이 철벽에 부딪힌 듯 튕겨 나갈 때.
타이니는 급격히 가까워지는 중심부의 지면, 그 근처에만 마물들이 휑하니 비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몇백 미터 밖에서 바라보는 벤투스와 티그리스, 그리고 수십에 달하는 초월급 마수들의 시선도 분명히 느꼈다.
‘역시…….’
하지만 이미 힘이 집중된 녹턴의 움직임은 멈출 수가 없었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며칠 전 자신이 만들어 낸 거대한 크레이터 안에서, 또 한 번 찬란한 노을빛 오러의 파도가 일어나며 거대한 빛을 터트렸다.
우르르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
여지없이 시작되는 지진과도 같은 파장과 태풍 같은 충격파.
그것을 지켜보는 마족들의 눈이 커졌지만, 그 폭심지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던 정예 마족들에게 타격을 주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강렬한 에너지의 폭풍이 점차 사그라든다 싶은 순간.
“크와아아앙!”
– 지금이다!!
5m 덩치의 거대 호랑이 인간, 티그리스의 포효와 함께 마수군단의 정예들이 폭심지를 향해 질주했다.
다만 그중 단 하나.
“크와앙!”
– 잠깐! 이전보다 훨씬 약하다!!
벤투스만이, 그 강렬한 에너지의 폭풍이 5일 전 보았던 것에 비해서 훨씬 약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군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의 폭발에 마족들 대다수가 현혹되던 순간에도, 검은 사자는 한 가닥 의심을 남겨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땐 이미 티그리스를 비롯한 다른 초월급 마수들이 타이니의 근처까지 쇄도한 후였다.
그리고.
“왔어?”
날카로운 송곳니를 번뜩이는 은빛 거한이 섬뜩한 미소를 짓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 들어온 순간.
바닥을 파고들고 있던 거대한 워해머가 다시금 찬란한 노을빛을 내뿜었다.
동시에 그 거한의 몸이 정면에서 거대한 할버드를 휘두르는 티그리스를 향해 유성처럼 쏘아졌다.
‘무언가 잘못됐다.’
티그리스 역시 한발 늦게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힘을 집중해 속도를 높였다.
– 이놈!!!
비록 데모닉 웨폰은 아니지만 바로 그 아래 등급 수준은 되는 그의 애병, 길로틴.
그 마병이 이글거리는 암흑 오러를 품고 상대를 반으로 갈라 버릴 기세로 휘둘러졌다.
후작급에 이를 때까지 오직 본신의 힘을 증폭시키는 것에만 집중해 온 영역의 힘이 ‘적’의 영역과 상쇄되며 효력을 잃어 갔지만 상관없었다.
자신의 주변에는 거의 오십에 달하는 초월급 마수들이 있었다. 적이 만들어 낸 참상에서도 살아남은 마수병단의 진짜 정예들이.
거기다 마수도 아닌 수인 마족으로서 마수병단의 장군이 되기까지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사투로 쌓아 올린 그의 무투술은 중간계의 미물이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으니.
– 죽어라!!
번쩍.
이글거리는 암흑 오러에 실린 암흑과 저주, 파괴의 세 가지 복합 속성이, 적의 눈을 멀게 하고 몸을 약화시키는 기운을 담아 길로틴의 날에 몇 배의 파괴력을 더했다.
‘끝이다!’
티그리스는 직전에 크게 에너지를 쏟아 낸 적이 자신의 일격을 받아 낼 수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설령 힘겹게 받아 낸다 한들, 주변의 정예들에게 찢겨 죽을 것이라고.
하지만.
쩌어어어어엉!
호랑이 인간의 확신을 담은 일격은 노을빛 유성과 부딪치는 순간 산산이 깨어져 나갔다.
그의 절기, 삼혼격의 세 가지 속성이 맞물리는 틈을 절묘하게 파고드는 노을빛이 그의 애병을 완벽하게 분쇄하며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떻게?!’
일 초를 수백 분의 일로 쪼갠 듯한 그 짧은 순간.
– 그거 알아? 너 전생에도 나한테 이렇게 죽었어.
코앞까지 다가온 새하얀 사신의 비웃는 듯한 영파가 그의 영혼을 울리고.
타이니식 전투 살법 3식.
유성 떨구기(Meteor Strike) 이연타.
직전에 터져 나온 충격파에 못지않은, 아니 완벽하게 똑같은 거대한 노을빛 오러의 파도가 티그리스와 그 주변의 마족들을 향해 쏟아졌다.
번쩍!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끄아아아……!”
콰콰콰콰콰콰콰콰콰.
우르르르르르릉.
마수병단의 장군, 티그리스의 비명까지 집어삼킨 폭음과 충격파가 노을빛을 싣고 다시 한번 사방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후으으으. 흐흐.”
쿨럭.
“짐승 새끼들이 머리 써 봤자…….”
우드드득.
그 중심부에서 키가 다시 20cm는 줄어든 검은 머리의 기사가 심각한 탈력감에 비틀거리는 순간.
그의 코앞으로 섬뜩한 검은 발톱이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