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09
309화. 무법 도시 타란 (2)
“……마계 대전의 영향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게 말이 되나?”
아르곤은 아무리 대륙의 동쪽 끝이라 해도, 그 누구도 마족들의 침략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의아했다.
세상의 지배자들이 일부러 소문을 퍼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어차피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바로 코앞의 현실만 보게 되는 거지. 어리석어 보여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응?”
“……라고 누가 그러더라고.”
“개소리 같은데?”
“개소리지. 변명이고. 그냥 인생 포기했다는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거야.”
타란의 살벌한 풍경을 둘러보며 나아가는 타이니의 표정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자연히 아르곤의 호기심이 일어나는데.
“……이 동네에 맺힌 게 있나 본데?”
“아. 쫓을 놈이 있어서 찾아왔다가, 사방에서 자꾸 걸리적거리는 놈들이 있길래 다 때려 부쉈었거든.”
“…….”
그냥 던져 본 질문에 너무 과격한 답변이 돌아왔다.
‘역시 이 새끼는…….’
전쟁 끝나면 근처에 얼씬도 안 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하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의문도 들었다.
“다 때려 부쉈으면 끝 아냐? 넌 지나간 일은 머릿속에서 지우잖아.”
멍청하니까.
진심이 담긴 그 뒷말은 입 안으로 꿀꺽 삼킨 아르곤이었지만.
그 즉시 얼굴을 더 찡그리는 타이니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걸음을 늦춰 뒤로 물러났다.
‘이 새끼, 이젠 독심술도 쓰나?’
싶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달라붙는 거머리들 때문에 꽤 시달렸었거든. 진짜…… 지독한 새끼들이었지.”
죽여도 죽여도, 끝도 없이 습격해 오던 타란 출신 암살자들.
오랜 경험상 범죄자들 사이에 의리 따위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타이니에겐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경험이었다.
개중 몇 놈들은 잡아 족쳐 보니 타란에 돈줄을 대고 있던 타국의 고위 귀족들이 고구마 줄기 캐듯 딸려 나오기도 했지만, 거기에 연루되지 않은 놈들이 훨씬 많았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그런 몇 놈을 사로잡아 물어보자, 하나같이 독기 가득한 얼굴로 비슷한 말을 외쳤었다.
– 네가 뭔데 우리 터전을……!!
개중 또 몇 놈은 눈물까지 줄줄 흘려 가며 악을 써 대는 바람에, 죽일 마음도 들지 않게 만들었었다.
‘먼저 시비를 건 새끼들이 말이야. 사람 찜찜하게.’
이 도시, 타란은 대체 여기 사는 인간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타이니는 전생에도 현생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떠올리며, 도시의 어두운 곳으로 거침없이 나아갔다.
이곳에 온 목적, 타란의 장물아비들이 있는 골목을 향해.
그 사이 타이니가 자연스레 흘려 내는 기세가 보이지 않게 주변으로 퍼져 나가자.
“저 백발, 이방인 같은데…….”
“쉿.”
“왠지 꺼림칙해.”
처음 본 사이에 인사처럼 주머니를 털거나 강도 짓을 한다는 타란의 주민들조차,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이런 게 위화감 없이 된다고? 마법으로도 힘든 걸……. 하여간 괴물 새끼.’
아르곤이 타이니가 뿌려 대는 그 기세를 인식 장애 마법이나 현혹 마법과 비교해 가며 고민을 이어 나가던 어느 순간.
사전에 목표했던 지역으로 들어가는 골목 앞에서, 그들의 앞을 막아서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여어, 기사 양반들. 어디 가시나? 이 앞으로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진데?”
“흠……?”
그리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타이니의 시선이 그제야 전면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장물아비 구역 장악한 것들이 무슨 패밀리였더라?’
타란의 이 막장 치안을 아주 최악까지 치닫지는 않게 만드는 조직 중 하나.
이곳 주민들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집단이겠지만, 그에겐 그래 봤자 그냥 때려잡아도 무방한 군소 악당일 뿐이었다.
‘……알 게 뭐냐. 귀찮게.’
전생이었다면 칼부터 꺼내 드는 놈을 적당히 어루만져 주고 강제로 길을 돌파했겠지만.
이 시기에 굳이 그 진상들을 뒤통수에 달고 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
“손님이면 관계자가 아닐까?”
나름 부드럽게 나가 보려 했는데, 상대가 협조해 주지 않았다.
“손님이라……. 뭐, 그럼 그 자금 여력 좀 증명해 주실까? 우리가 통행세도 받아야 하고 말이야.”
앞니가 빠진 게 드러나도록 느물느물하게 웃어 보인 한 놈이, 뒤쪽에 늘어선 동료들에게 눈짓하며 칼을 들이밀었다.
타이니 일행이 걸치고 있는 장비만 봐도 동료 십수 명으로는 상대가 안 되리란 것을 느끼고 있을 텐데, 그럼에도 이리 나온다는 것은.
‘저놈인가?’
타이니의 시선이 뒤쪽에서 분위기를 잡고 있는 놈에게로 향했다.
자괴감 어린 무거운 표정으로 바닥만 보고 있는 중년인.
‘외부에서 도망쳐 온 실력자들에게 하찮은 임무를 맡겨서 자존심을 꺾는다고 했던가.’
어디서 수배된 기사라도 되는지 익스퍼트급이라는 것이 특이하긴 했지만, 타이니에게는 같잖을 뿐이었다.
“자금 여력이라? 뭐, 쉽지.”
“오, 그래? 얼마나 있는데?”
앞니 빠진 놈이 활짝 웃으며 한 발 더 다가오자.
타이니 역시 환하게 웃으며 그 미소를 받아 주었다.
“너희가 가진 만큼.”
그 대답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놈들이 잠시 어리둥절해 있던 그 순간.
멍한 표정의 그들을 향해 타이니가 서슴없이 뛰어들었다.
콰드득.
* * *
“지, 진짜, 그, 그겡 전붕잉니다. 저, 정말. 사, 살령 중셍용.”
발목이 으스러진 채로 벽에 처박혀 의식을 잃은 익스퍼트급 기사를 연신 흘겨보며, 앞니 빠진 노…… 아니, 이젠 이가 전부 빠진 놈이 한쪽 볼이 퉁퉁 부어오른 상태로 연신 손을 비볐다.
이전의 그 당당했던 기세는 깔끔히 사라진 지 오래.
조직의 힘을 믿고 협박을 내뱉기에는, 너무나도 손쉽게 박살 난 기사의 모습이 그에게 막대한 공포를 심어 준 것이었다.
‘최, 최소 블레이더, 어쩌면 슈페리어?’
거기다 그의 다른 동료들을 처리한 것은 눈앞의 이 백발 남자가 아니었다.
“동생, 왜 안 죽여?”
바로 저, 어디선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보랏빛 머리 하프 엘프가 한 짓.
“사, 살려…….”
“다, 다 드렸습니다. 목숨만은…….”
“용서해 주세요.”
갑자기 사방에서 신음을 뱉어 내는 그의 동료들 대다수는, 저마다 팔다리가 처참하게 비틀려 있었다.
하나같이 다시 회복이 될까 싶은 기괴한 각도로.
거기다.
“죽이면 귀찮아져, 달라붙는 놈들을 다 때려죽일 시간도 없고.”
사람을 폐인이 되도록 부숴 놓고 마치 자비를 베푸는 양 그리 말하는 백발 남자의 태도에서는 넘치는 자신감이 느껴졌고.
“일단 그것부터 찾아야지. 반응은?”
“근처에는 없어.”
그 뒤에서 고개를 젓는 갈색 머리 남자의 칼에서 이상한 모양의 마법진이 번뜩였다 사라지는 것도 보였다.
‘잘못 건드렸다. X발…….’
물론 아하칸 패밀리의 정예들이 모두 출전하면 슈페리어급이 둘이 아니라 셋이라도 처리 못 할 것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막대한 피해가 뒤따를 테고, 조직의 두목 아하칸은 그런 피해를 감수하고 저 외부인들을 척결하느니 그대로 묻어 둘 사람이었다.
타란에서 가장 돈이 되는 구역인 이곳 장물아비 거리는 안 그래도 다른 조직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었으니, 조직의 약화는 반드시 피해야 할 재앙이었다.
그러니.
“무, 무엉을 창으싱숑?”
이빨 빠진 놈, 릭은 연신 손바닥을 비벼 대며 살기 위해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그런데.
“타란의 거리를 지배하는 조직들의 본거지, 전부 불어 봐. 일단 너희 조직부터.”
이 백발의 미친놈이, 스스로 무덤을 파려고 하고 있었다.
* * *
“누구냐!?”
아하칸 패밀리의 보스, 아하칸의 저택을 지키던 졸개가 접근하는 이방인들을 향해 창을 겨눴다.
“아하칸 안에 있나?”
너무 당당한 태도에 일순간 ‘보스의 손님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있나 보네? 나오라고 해.”
거침없이 이어진 말에는 일순간 머릿속이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에.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뒤에 있던 동료가 튀어나와 그를 대신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데.
샤아아악.
갑자기 검고 묵직한 무언가가 번개처럼 녀석의 눈앞을 스치더니.
꽈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저택의 문과 이어지는 장벽이 통째로 날아가 버렸다.
– 콰아앙!
– 우르르르릉.
저택 안쪽까지 멀리 날아간 강철 문짝과 담벼락이 건물의 1층을 온통 뭉개 버리는 소음이 아련하게 번지고.
휘이이이잉.
“…….”
반 박자 늦게 불어닥친 후폭풍 속에서 흙먼지를 뒤집어쓴 졸개들이 고함을 지르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을 때.
“노크, 노크야. 알지?”
똑. 똑.
그 원흉, 거대한 해머를 어깨에 둘러멘 남자가 다른 손으로 문이 있던 허공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미친 소리를 내뱉었다.
그 순간.
– 어떤 놈이!
– 침입자다!
– 적이다!
우렁찬 고함과 함께, 저택 안쪽에서 수십 명의 인원이 날 듯한 기세로 이방인들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많네…….”
그런 그들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쳐다보던 타이니가 뒤를 향해 손가락을 까닥이는 순간.
한숨을 내쉰 아르곤이 마기를 휘둘러 허공에 상형 문자를 그려 냈다.
[束縛(속박)]콰드드득.
그러자 엉망이 된 정원의 흙 속에서 순식간에 거대한 칡넝쿨이 자라나더니, 달려오던 조직원들을 그대로 잡아채기 시작했다.
“아, 아악!”
“이건 뭐야!”
“식인 식물이다!”
콰드득.
우드드득.
“끄아아아!”
일순간에 거대한 식인 식물(?)들의 넝쿨에 휘감겨 버린 조직의 정예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타이니가 얼어붙은 졸개 둘에게 손가락을 까닥였다.
“저, 저 말입니까?”
“그래. 저 중에 아하칸이라는 놈 있냐? 내가 좀 급해서 그런데.”
파지직.
눈앞에 내민 손에서 정체 모를 푸른빛이 번뜩이는 순간, 졸개의 시선이 식물에 사로잡힌 인원들의 얼굴을 재빨리 훑었다.
“어, 없습니다!”
“그래? 그놈 어떻게 생겼는데?”
“오, 오른쪽 볼에 흉터가 난 대머리…….”
쯧.
인상을 찡그린 그가 뒤를 돌아보는 순간, 가만히 구경하던 루나가 그와 눈을 맞추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불과 십여 분 뒤.
“얘? 맞아?”
대머리에 손자국이 찍힌 채로 기절한 보스의 얼굴을 대면한 두 졸개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
“보물 창고 열어. 우리가 찾는 게 없으면 그냥 간다. 있으면 그것만 가져갈 거고.”
“흐, 흐흐흐. 나보고 그 말을 믿으라고?! 웃기지 마! 차라리 죽여라!”
갑작스러운 습격에 기절한 상태로 납치된 뒤 전기 쇼크에 의해 깨어난 대머리, 아하칸은 입가에 문 거품을 다 털어 내지도 못한 채 독기 어린 고함을 내질렀다.
“내 몸이 가루가 된다 해도, 네놈들한테 줄 보물은 한 점도 없다!”
캬악. 퉤!
얼핏 궁지에 몰려 하는 발악으로 보일 테지만, 타이니는 저 말 대부분이 진심이라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다.
보물을 주면 살려 준다? 타란에서 그런 말을 믿을 자는 없다.
어차피 죽을 목숨, 적에게 눈곱만큼도 이득을 주지 않고 죽고 말겠다는 독기.
물론 그저 악과 깡에 기반했을 뿐인 독기는 고문에 꺾이기도 쉬울 것이다.
하지만 타란에서 가장 많은 돈이 오가는 거리를 지배하는 조직의 보스라면, 그 독기와 깡이 신념 수준에 이르러 있을 가능성도 충분했고.
“……굳이 고문할 필요도 없겠지.”
“뭐?”
아르곤의 반문을 무시한 타이니는, 그대로 쪼그려 앉아 바닥에 널브러진 아하칸과 시선을 맞췄다.
“저거 보면 알겠지만, 쟤가 상당한 수준의 마법사야. 네가 아무리 보물 창고를 꼭꼭 숨겨도, 어차피 찾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별 의미는 없어.”
“지랄…….”
본능적으로 욕설을 토해 보지만, 사방에 자라난 거대한 식물들과 그 넝쿨에 매달려 있는 부하들의 모습을 담은 아하칸의 눈동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우린 필요한 것만 찾으면 떠난다니까?”
우우웅.
눈앞의 남자가 손에서 노을빛 서광을 피워 올리는 것까지 본 순간.
그의 눈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지경까지 커졌다.
“……오, 알아보네? 뭔지 알지?”
“오러……?”
“오, 칭찬해. 그럼 지금 네가 해야 할 일도 알겠지?”
사실 그가 오러를 몰라봤대도, 상대의 무력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저기 가장 두꺼운 식물에 칭칭 감겨 있는 그의 오른팔 루더스는 챌린저급의 강자였으니.
온통 독기에 사로잡혀 있던 아하칸의 머리가 차가워지는 순간, 그의 옅은 눈썹이 떨리기 시작했다.
“워, 원하는 게 뭐, 뭡니까?”
“물건 하나 찾는 거라니까 안 믿네, 참.”
“…….”
“내가 여기서 너랑 드잡이할 사람으로 보여? 좋게 좋게 가자고. 난 물건 하나만 찾으면 돼. 봐, 아무도 죽은 놈은 없어. ‘아직은’ 말이야. 어때, 딜?”
이죽거리는 백발의 남자. 그의 마지막 말에, 아하칸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