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ammer RAW novel - Chapter 310
310화. 뜻밖의 보물
“허탕이네.”
아쉽게도 아하칸 패밀리의 보물 창고에는 조율기가 없었다.
“역시. 혹시 초월무구 하나 짱 박아 놓은 거라도 없나 했더니만. 쯧.”
“깡패, 거지야.”
초월무구가 뉘 집 애 이름이냐!?
버럭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아하칸은 그저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저기, 얘들아. 초월무구가 깡패 금고에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야…….”
그나마 갈색 머리 한 놈만이 상식적인 말을 내뱉는데.
“아니야. 전생에 내가 여길 다 박살 내고 떠났을 때, 누군가 폐허 속에서 초월무구를 건졌다고 들었거든.”
“뭐!?”
“그게 마법사용이라는 말도 있었는데 말이야. 그래서 널 데려온 것이기도 하고. 팔았다고 하던데…….”
“진짜!?”
“물론, 뻥이지.”
“…….”
백발의 오러유저는 계속해서 알 수 없는 헛소리를 던져 댔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저 오러유저 일행이 초월무구급 이하의 보물에는 정말로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초월무구만 노리고 강도질하는 오러유저? 그런 게 세상에 있었나? 더구나 저렇게 어린 나이에 오러를 쓰는데, 소문이 어떻게?’
망치를 쓰는 백발의 오러유저.
‘어디서 들어 본 것도 같은데?’
아하칸이 갑작스레 맞이한 재앙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지만, 눈앞에 보이는 강렬한 백발의 이미지가 그 기억에 노이즈를 흩뿌렸다.
그리고.
“어이, 대머리.”
쓰러진 자신의 몸을 발끝으로 툭 건드리는 그 공포스러운 얼굴의 주인이 씨익 웃으며 속을 뒤집는 말을 꺼냈다.
“이대로 박살 나고 소문나면, 주변에서 다들 물어뜯으려고 덤빌 텐데. 어쩌냐, 너?”
그게 다 누구 때문인데!!
한번 약세를 보이면 사정없이 물어뜯기는 것이 이 바닥의 생리.
비록 그것이 자연재해처럼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곤 해도, 다른 조직들은 그들의 사정 따위 신경도 쓰지 않을 터였다.
그저 눈앞의 재앙들이 아하칸을 떠나기를 기다리며, 언제고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런데.
“너만 털리면 억울하잖아. 그렇지?”
“예?”
“다 불러 모아 봐.”
“……예?”
“우리도 한꺼번에 다 털어서 물건 찾는 게 편하단 말이야. 싫어? 싫으면 혼자 죽을래?”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아하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좋아. 그럼 무슨 핑계를 대든, 타란의 대가리들을 전부 불러 모아 봐. 네가 원래 여기 짱이었다며?”
바로 악마의 유혹이 시작되었고, 아하칸은 서슴없이 그 손을 잡았다.
* * *
아하칸 패밀리가 영문 모를 침입자들에게 탈탈 털렸다.
타란에 그 소문이 퍼지자마자, 각 조직의 정예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하칸의 사업장과 저택을 습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서 와.”
그곳에서 새하얀 머리의 재앙신을 마주했다.
콰아아아아앙!
망치가 한번 쓸고 지나간 자리에 폐허만 남기는 재앙.
그 중심엔 사람을 휘둘러 사람을 부수는 괴물이 있었으니.
‘웬 미친놈이’ 하며 초장부터 달려들었던 무법자들 대다수는 죄다 사이좋게 반신불수가 되었고.
“놈들은 소수다! 숫자로 밀어붙여!!”
그중에서도 끝까지 독기 있게 덤빈 몇몇 조직은, 결국 숫자로 밀어붙인 만큼의 시체를 양산하며 완벽하게 망해 버렸다.
고작 하루.
아하칸 패밀리가 털린 뒤, 타란을 지배하는 모든 조직의 정예들까지 모조리 박살 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에 불과했다.
철컹.
끼이이이익.
“마법 코드도 아니고 자물쇠를 써? 희한한 새끼네.”
“그런데, 이렇게 찾아도 없으면, 어쩔 거야, 동생?”
“그럼 저놈들 중 누가 거짓말을 한 거겠지. 손가락부터 으스러트리면 누군가는 불 테고.”
그 순간 그 시선이 닿은 조직의 보스들이 움찔하며 몸을 떠는데, 그 광경이 루나에게는 이상하게만 보였다.
“고문, 안 통한다며?”
“경쟁자들은 멀쩡한데 자기만 죽게 생기면 또 얘기가 다르거든.”
“뭐야, 그게?”
“이기적인 악당들의 심리다. 착한 어린이는 몰라도 돼.”
“……나. 누나야.”
“알아.”
피식거리며 농담을 건네고는 있지만, 지금 타이니는 속으로 짜증이 쌓이고 있었다.
계속 입으로 내뱉는 헛소리는 그 짜증을 풀어내기 위함일 뿐.
‘슬슬 나와야 하는데.’
조직들을 일망타진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졸속으로 처리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그마저도 평상시라면 타란에 알게 모르게 돈줄을 두고 있다는 대륙 전체의 귀족들이 일제히 반발할 일이었지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런 일은 없을 터.
‘있다 해도 신경 쓸 바 아니고.’
하지만 급히 먹은 음식이 체한다고, 만약 조직과 관계없는 놈이 그 물건을 가지고 있다면 이 난리 통 때문에 오히려 더 꼭꼭 숨길 수도 있었다.
“재수 없으면, 타란 전체를 마나 스캔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진짜 재수 없는 말 하지 마. 아무리 나라도 그건 일주일은 걸려.”
아르곤의 말대로 한시가 급한 판이다.
– 타이니 경은 아직도 저를 불편해하시니…….
그 용사 자식이라도 데려올 걸 그랬나 싶은 생각까지 들던 그때.
쾅.
타란에서 규모가 세 번째로 큰 조직, 아톰 패밀리의 금고가 강제로 뜯기며 그 속살을 드러냈다.
그리고 다행히도.
“……있다!”
굳이 탐색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눈에 딱 띄는, 거대한 열쇠 형태의 황금빛 아티팩트가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후. 다행이군…….”
주기적으로 살기를 뿜어내던 타이니 역시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그 뒤쪽에 있던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고작 그 장식, 때문에, 이런 짓을…….”
아톰 패밀리의 보스, 아톰.
묶여 나뒹구는 와중에도 눈물까지 흘리는 게 진정 억울한 듯도 보였지만, 그런 그에게 눈곱만큼의 동정이라도 던져 줄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그는 반파된 아하칸의 저택에서 부하들에게 타이니 일행을 숫자로 밀어붙여 죽이라고 명령했던 자.
그것만 봐도 인생 자체를 피로 쌓아 올린 악당일 게 뻔했으니까.
‘결국은 자업자득일 뿐.’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그저 계획대로 바로 이 열쇠를 들고 곧장 아세리안으로 가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길일 터였다.
그런데.
흠.
우웅.
‘어쩐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단 말이지.’
오러익시더의 경지가 깊어지고 스피릿유저의 경지까지 벽을 두드리게 된 이후, 가끔씩 영혼을 울리는 감각과 함께 알 수 없는 예감에 휩싸일 때가 있었다.
실제로도 그 예감 덕분에 오렌 평야로 향하는 길을 앞당겼었고, 결국 참사를 막기까지 했으니.
‘왜지? 내가 드워프도 아닌데.’
이제는 갑작스레 떠오르는 직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 직감은, 이 차원 관측기의 조율기에 무언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인식되는 것은, 자신의 감각으로도 당장은 명확히 이해되지 않을 만큼 복잡하고 단단한 마나 패턴.
‘이걸 해석하게 되면, 차원에 관한 결도 풀릴 것 같은데.’
그것은 단순히 공간의 개념을 확장하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무력이 단순한 물리력을 넘어서서 마법의 영역까지 닿게 되는 것.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 무언가 본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 생겼지만…….
‘아니, 좀 달라.’
지금 이 직감은 조율기의 능력에 자극받아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타이니는 이 금고의 주인을 발끝으로 건드리며 물었다.
툭.
“……야. 이거 어디서 얻었냐? 이게 원래 제국에서 흘러나온 건 알고 있었냐?”
지금 아톰은 그가 여태 핍박해 왔던 약자의 위치에서 그 더러운 기분을 실시간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는 묻는 말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약자들을 아주 잔인하게 처리했었다.
자연스레 그의 고개가 죽을힘을 다해 좌우로 움직였다.
“저, 절대 아닙니다! 그건 제이시 가문이 가업을 정리하고 사라졌을 때 사들인 겁니다.”
“제이시 가문?”
그에 눈썹까지 새하얀 백발의 오러유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직의 보스들을 훑어보는 순간.
“타란의 분쟁을 조율하던 집안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1년 전쯤에 갑자기 가업을 정리하고 사라졌습니다!”
“저, 저도 제이시 가문에서 사들인 게 있습니다!”
여기저기서 연달아 증언이 튀어나왔다.
“제이시 가문이라……? 난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넌 외지인이니까 당연히 모르겠지, X새끼야!
보스들은 솔직한 그 속마음을 토해 내는 대신,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상냥한 태도로 썰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타란에서도 음지에 속하는 일의 처리를, 수백 년간 가업으로 이어 온 가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년 전 갑자기 재산 대부분을 금화로 환전해 사라졌습니다.”
“그놈들이 악마추종자랑 손잡았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그리마에서 큰 사업을 한다고 떠나더니, 반년쯤 뒤에 그 육망성의 재앙이 벌어졌습니다!”
다시금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증언들.
그것은 모두 ‘나 말고 다른 놈들만 잡아 죽여 줘’라는 이기심의 발로였다.
실제로 그 말에 얼마나 진실성이 있을지도 미지수.
다만 그 쏟아져 나오는 증언 중 한마디는 타이니의 귀를 사로잡을 수밖에 없었다.
“악마추종자?”
더구나 육망성의 재앙이라니?
흰자위와 구별되지 않는 색의 눈동자가 그 말을 언급한 조직의 보스를 노려보는 순간.
당사자는 잔뜩 쪼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런 소문이 있었다고…….”
“나, 나도 듣긴 했소이다!”
“실제로 그 많은 돈을 가지고 사라진 가문이, 간다던 그리마에서도 아무런 소문도 안 남긴 것도 이상하고…….”
“맞아. 제국의 귀족 작위를 사도 될 만한 돈이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해 봐. 그 가문이 있었다는 곳으로.”
“야, 왜? 급하다며?”
“동생 뭐 하러?”
“알아봐야겠어. 따라와 봐.”
타이니는 보스들을 재촉해 그 제이시 가문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 * *
“제이시 가문이 떠난 건 1년 전이지만, 그 상징성이나 위치상의 문제 때문에 저택은 팔리지 않았습니다. 뭐, 보시다시피……. 다른 돈 되는 것들은 싹 다 팔아치웠으니 이제 안에 남은 건 없습니다만.”
자칭 타란의 토지 사업가, 막스는 백발 청년의 뒤쪽에 묶여 있는 자신의 보스를 보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제이시 가문의 저택은 본디 타란의 중심가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 화려했던 과거가 사라졌다는 것을 증명하듯, 저택이라 이름 붙이기도 뭐한 목조 건물의 뼈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황량한 잔해를 둘러보는 일행들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아르곤 역시 반사적으로 펼쳐 본 탐색 마법을 거두고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건 뭐 찾고 자시고 할 것도 없구먼…….”
“뭐, 없는데?”
“아니, 있어.”
하지만 타이니는 주변의 말을 무시한 채 그 폐허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아무것도 없는 돌바닥 위에 발을 내리찍었다.
쿠우우우웅.
파지지지지직.
그 순간 돌바닥 아래에서 반응하는 거친 에너지.
“어!?”
“이건……!?”
일행의 눈동자가 커지는 순간, 타이니는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악마추종자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단 말이지?”
아르곤의 마법에도 감지되지 않았던 그 은밀한 흑마법진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충격에만 반응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갈 길이 바빠도, 타이니로선 이런 것을 보고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결심이 서는 순간 녹턴이 그대로 휘둘러졌고.
꽈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타란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저택의 바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파급 효과는생각 이상으로 컸다.
우르르르르릉.
콰콰콰콰콰콰콰.
한참 동안 지하에서 계속해서 들려오는 굉음.
“음?”
단순히 돌바닥 아래에 넓은 지하실이 있는 것이라 짐작했던 것과는 달리, 그 울림과 파장은 더 깊은 곳으로 넓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우르르르르릉.
녹턴으로 후려친 바닥에서 흘러나오는 굉음과 진동이 점점 커진다 싶던 그때.
“이런!?”
타이니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과 동시에.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들이 있던 자리 바닥에서 거대한 폭염이 터져 나왔다.
콰콰콰콰콰콰콰.
쾅.
우르르르릉.
오늘도 평화로운(?) 타란의 중심에서 터져 나온 엄청난 폭발.
그 여파는 타란의 중심 시가지를 그대로 폭삭 주저앉힐 정도였으며.
“으아아악!”
“사, 사람 살려!”
“지진이다!”
이내 사방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재앙의 중심.
“이게…… 뭐야?”
“후아, 식겁했네. 뭐야? 마나 반응도 없었는데!”
타이니의 ‘영역’ 안에서 폭발의 여파를 완전히 흘려 버린 일행은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리고.
“……뭔지 알 거 같아.”
“응?”
“루나도 봤잖아? 악마추종자놈들이 쓰던 거.”
“아……. 그, 폭탄?”
마나 작용 없이도 강력한 폭발력을 내던 소모성 아티팩트.
“그래. 그게 여기서 생산되었었나 봐. 남아 있던 게 지금 한 번에 터진 거 같고.”
“재수, 옴 붙었어.”
“미친놈들인가? 아무리 무법 도시라도, 이런 걸 지하에서 생산하고 있었다고?”
그에 인상을 찌푸린 루나와 아르곤이 투덜대는데.
“그래, 미친놈들이지. 하지만 우리는 재수가 좋은 것 같아.”
“뭐?”
“더 깊은 곳에, 더 단단히 봉인된 공간이 남아 있어. 이거 잘하면 꽤 쓸 만한 무기를 얻겠는데?”
짜증이 가득하던 타이니의 표정은, 서서히 미소로 바뀌고 있었다.